요14:4-6/ 길 / 조용기 목사 2014-09-22 09:16:05 read : 1233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저는 오늘 ‘길’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의 삶은 분리할래야 분리할 수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니 그것이 바로 길입니다. 세상에는 오솔길, 황토길, 논길, 자갈길, 가시밭길, 신작로, 국도, 고속도로 등 수많은 종류의 길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어느 나라든지 그 나라 문명의 척도는 그 나라의 길의 형편과 정비례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문명한 나라일수록 길이 발달되고 미계한 나라일수록 길이 험합니다. 과거 서구 문명의 중심지였던 ‘로마’하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로마는 군대를 신속히 이동시키고 세금을 원활히 운반하기 위해 많은 도로를 건설했습니다. 전쟁을 위해 진군할 때도 병사들이 길을 만들며 나갔기 때문에 전쟁에서 승리하는 즉시 속국과 연결하는 길이 만들어졌습니다. 로마의 길은 그 길이가 무려 15만 km에 달한다고 합니다. 로마 제국의 문명은 이 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19세기 초 조선시대에 이를 때까지 길이 형편없었습니다. 우마차가 겨우 다닐 정도의 길밖에는 길다운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나다니는 길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도로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에 의해 최초로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었습니다.
‘IT 강국’이라고 불리는 지금 우리나라의 도로 포장률은 전국이 98%입니다. 이제는 우리나라 어느 곳에 가나 사통팔방으로 길이 뚫리고 고속도로가 열리고 포장되어 있어서 교통이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시대를 불문하고 한 나라의 문명의 척도는 그 나라의 길의 형편과 정비례합니다.
<본론>
1. 길을 잃은 인류
그런데 가장 큰 비극은 우리 인생은 길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살던 에덴동산은 사통팔방으로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사통팔방으로 통하면서 하나님이 지은 만물을 돌보고 다스렸습니다.
심지어 마귀까지 에덴동산으로 자유롭게 들어갔다 나갈 수 있을 정도로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큰 비극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범죄하고 하나님께 내어 쫓긴 이후로 길이 막혀 버리고 만 것입니다.
창세기 3:24에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다시 에덴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막혀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들은 길을 잃어 버렸습니다. 돌아갈 길이 없습니다. 쫓겨나오기는 했지만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막혀 버리고 버림받게 된 것입니다.
에덴으로 돌아가는 길이 막혔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는 손을 잡고 에덴 근처에 와서 눈물을 흘리며 통곡을 했을 것입니다. 에덴의 그 아름답고 영화로운 삶을 생각하고 근심, 걱정 없던 삶을 생각하고 현재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괴로운 삶에 탄식하며 에덴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기 위해서 에덴 근처에 왔으나 길은 이미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는 길이 막혀 버리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의 길이 막혔습니다.
죄악의 담이 천길, 만길, 아담과 하와 하나님 사이를 막아 버렸기 때문에 아무리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려고 해도 갈수가 없는 비극적인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와 함께 큰 문제가 먹고 사는 길이 막혀 버렸습니다. 에덴에 있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예비해 주셨기 때문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당장 호구지책을 위해서 염려해야 됐습니다. 먹고 살길이 막혔습니다. 그들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살 수 있습니다. 온 천지가 저주를 받아서 가시와 엉겅퀴 판입니다. 땅을 개간해도 잘되지 않습니다. 눈물과 고생, 가난과 괴로움이 그들의 운명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영생의 길이 막혔습니다.
그들이 죄를 짓고 난 다음 하나님께서 너희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했으므로 그때부터 생로병사의 슬픔이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태어나고 그리고 병들고 늙고 인간은 죽었습니다. 인간은 자기 신분도 정체성도 다 잃어버리고 천지간 재앙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나올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기쁨과 행복과 소망과 영생의 길은 완전히 상실한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2:19에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통계청이 지난 해 말 발표한 ‘2005년 사회통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은 ‘먹거리 불안’, ‘범죄 불안’, ‘노후 불안’ 등 3대 불안에 시달리고 그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2005년 6월 통계청이 전국 3만 3천 세대의 15세 이상 7만 명을 대상으로 면접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0% 이상이 우리가 먹는 농산물의 안전성을 믿을 수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먹는 농산물 중에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다 농약이 있고 중금속에 오염되어 있고 편안하고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오늘날 이 세상에 어디에 있습니까? 모두다 우리가 시장에 가서 먹거리 살 때는 이것이 안전한가 안한가를 제일 먼저 마음속에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응답자 50% 이상이 범죄 피해의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경찰대 이웅혁 교수는 “일가족 살인 등 엽기적인 범죄 소식이 날로 증가하는 속에서 국민들의 공포감은 증폭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오늘날 성폭행이 얼마나 사회적인 문제가 되어서 자녀를 기르는 부모들의 가슴속에 불안과 공포가 떠나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고령화 시대에 진입하면서 60세 이상 고령층의 절반 이상이 노후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다고 말해 노후에 대한 강한 불안을 표시했습니다. 아담이 범죄 하여 에덴에서 쫓겨난 후 그는 길을 잃어버린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인류의 먹고 사는 길을 잃어 버렸습니다. 저주로 말미암아 온 세상은 불안과 공포와 좌절과 적막함으로 꽉 들어차 있습니다.
2. 인류 역사는 길을 찾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가 쫓겨난 이후로 인류 역사는 길을 찾는 역사입니다. 다시 에덴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에덴이란 말을 안 쓰지만 유토피아,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려고 하는 노력이 모두 다 길 찾는 노력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타락한 이후로 하나님과 영생을 찾으려고 몸부림 쳤습니다. 그것은 종교라는 길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고 영생을 찾아보려고 몸부림쳐 왔습니다.
세계복음운동(The Global Evangelization Movement)이 1999년 발표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95.5%가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전 세계 인구의 95.5%가 종교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람들 속에는 눈에 안 보이는 영원을 사모하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영혼이 있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기라도 아직 말 못하지만 가정예배에 와서 손 모아 하면 손을 모읍니다. 머리 숙여 하면 머리 숙입니다. 아멘! 하라고 하면 아멘 합니다. 그러나 개나 고양이 갖다 놓고 머리 숙이라고 해도 머리 숙이지 않습니다. 아멘 하라고 해도 아멘하지 않습니다.
왜, 개나 고양이나 동물은 영혼이 없습니다. 영혼을 사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라도 말을 아직 못하더라도 그들은 본능적으로 영혼에 대한 인식이 있으며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종교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무려 95.5%의 세계 인류가 종교를 가지고 있는데 그중에 기독교는 33%에 불과하고 62.5%가 불교와 힌두교, 이슬람교 등 다른 종교입니다. 세계인구의 95.5%가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도 사람들이 하나님과 영생을 얼마나 간절히 찾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의지할 수 없기 때문에 영적이고 절대적인 존재자를 찾아 헤매는 것입니다. 그래도 지금 세상은 이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습니다. 그 길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내놓고 다른데 방황하고 아무리 길을 찾아도 그 길은 막다른 골목이요, 잘못된 길이요, 삐뚤어진 길이요, 멸망의 길밖에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오늘날 정치를 통해서 유토피아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한번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왕권주의 혹은 독재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온갖 주의를 다 동원해서 이 세상에 참으로 빈부귀천 없는 잘 먹고, 잘 입고, 평안하게 잘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들려고 노력해 왔지만 사람들은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로 아직 그 에덴을 인간의 힘으로 창설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이 사는 곳에 어느 곳에 가나 가난이 있고 질병이 있고 양극화 현상이 있고 그리고 부정과 부패가 따르고 유토피아는 없습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해방 이후로 여러 정권이 서로 바뀌면서 우리 한국을 잘사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큰소리 쳤지만 아직도 빈부격차가 심하고 양극화가 심하고 부정부패는 매일같이 화제 거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치를 통해서 에덴동산을 도로 찾아보려고 했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닫아 놓은 에덴동산을 인간의 힘으로 열어 제킬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문명이 이기를 통해서 과학과 학문을 통해서 이 세상을 유토피아로 만들어 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과학은 엄청나게 발전했습니다. 우리 어릴 때보다도 지금은 얼마나 발전했는지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인간은 통신과 교통에서 눈부신 성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도덕성이 함께 성장, 발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류의 과학이 발달될수록 인간의 죄악성은 그대로 있으므로 이 과학을 사용해서 대량 살상무기를 만들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순식간에 세계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처지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문명이 발달되므로 숨을 곳이 없습니다. 감시 카메라가 어디가도 있어요. 주차장에도 있고, 집에 들어가도 있고, 길거리 걸어가도 있고 우리는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전화를 걸지만 언제나 마음속에 누가 도청하고 있지 하는 의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문명이 발달될수록 우리는 자유를 잃어버리고 불안하고 대량살상의 위험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은 점점 더 고독하고 황폐하게 됩니다. 옛날에는 우리 어릴 때 집에 오면 할아버지 방으로 다 모입니다.
그러면 거기서 새끼 꼬고 옛날이야기의 꽃을 피웁니다. 도깨비 나오는 이야기, 범에 물려가는 이야기 온갖 이야기란 이야기는 다 하면서 우리 식구들이 오순도순 재밌게 교제했습니다. 그러나 요사이는 집에 가면 아들, 딸들은 컴퓨터나 인터넷 앞에 게임한다고 앉아서 나오라고 아무리 고함쳐도 안 나옵니다. 남편은 TV 앞에 앉아 입을 탁 벌리고 대화를 해도 듣지도 못합니다.
부인은 전화통 한번 잡으면 몇 시간씩 이야기 합니다. 다 자기 개인의 생활에 고독하고 외롭고 분리되어 있는 것입니다. 문명이 좋은 것 같지만 문명이 인간을 편리하게 만드는 것만큼 고독하게 만들고 외롭게 만들고 전부 섬 속에 살고 삐뚤어진 성격과 고독 속에서 몸부림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과학문명을 통해서 에덴동산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그 아름답고 사랑이 넘치는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의학이 발달되면 건강을 얻고 무병장수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망상입니다. 의학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언젠가 우리 몸은 더 이상 기능할 수 없는 순간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선진국들은 이미 이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미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1975년 이후 평균 수명이 늘어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의학이 발달하는데도 생명은 연장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니 우리 생명의 연한이 한계점이 도달한 것입니다. 또한 의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신종질병이 자꾸 생겨납니다. 에이즈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제시카 윌리엄스가 쓴「우리가 꼭 알아야 할, 그러나 알지 못했던 세상의 몇 가지 사실들」
이란 책에 보면, 아프리카의 보츠나와 같은 나라에서는 에이즈 때문에 2002년에 태어난 아이들의 평균 수명이 고작 39살에 불과하고 2010년이 되면 27세로 줄어진다고 합니다. 오늘날 과학이 이렇게 발달된 세계 속에서 평균 국가의 수명이 39살, 27살이 된다면 얼마나 비극적입니까? 이것이 과학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도덕이 함께 따라오지 못하면 아무리 과학이 발달되고 의학이 발달되어도 그것으로써 인간 수명을 늘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또한 전쟁으로 대량살상을 하므로 얼마나 수명이 짧아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무한정 늘어갈 것처럼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더 이상 수명이 늘어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신종질병이 속출해서 영생의 꿈이 허상임을 밝혀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조류독감은 우리는 무관심하고 있지만 온 세계 보건기구는 벌벌 떨고 있습니다.
조류독감이 한번 유행하면은 수 천만 명이 그 유행병에 걸려 죽을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런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입니다. 의학으로 건강 장수의 꿈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영원 장수의 꿈은 예수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이어야 금세도 오래 살고, 장래에는 영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역사는 에덴동산을 찾아가는 길을 찾았고 지상낙원의 길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고 장차도 찾을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문을 닫아 놓으면 열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닫아 버렸는데 에덴동산 낙원의 유토피아는 사람의 힘으로 열수가 결코 없는 것이며, 그 길은 사람의 힘으로 찾지 못합니다.
시편 107:10~12에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그러므로 수고로 저희 마음을 낮추셨으니 저희가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고 곤고와 쇠사슬에 매인 이유는 아담과 하와 이후로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을 멸시하고 인본주의에 서서 인간의 힘으로 유토피아를 만들겠다고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그 유토피아는 바로 에덴동산에 들어가겠다는 것입니다. 안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교만을 신으로 삼고, 우상에 절하면서 하나님 앞에 동등하게 하려고 애를 써봤자 소용없는 일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3:10에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길은 이미 주어진 것인데 그것을 모릅니다. 언젠가 신문에서 시사만화를 보았는데 참으로 재미가 있고 의미심장해서 여러분에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이 감옥에 갇혀있는데, 창살로 이렇게 내려다보고 있으니까 나무가 창살 밖으로 나와서 가지가 뻗었는데 새 한 마리가 후루룩 날아와서 앉더니만 죄수를 가만히 보고 새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의 어린 시절은 뭐했어?” “응, 그때 난 걷지 못했어.” “그래? 지금은 잘 걷나봐?” “응, 우리 부모님이 지극정성으로 도와주셔서 걷는 걸 배웠어.” “그런데 왜 감옥속에 들어 있어?” “우리 부모님이 걷는 것만 가리켜 주셨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가르켜 주시지 않았어. 길을 잘못 들어서 감옥에 들어왔단다.”
그의 부모가 어떤 길로 가야 할지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죄의 길로 들어섰다고 말한 것입니다. 인간은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다 모르는 너 나 할 것 없이 길 잃어버린 사람인 것입니다.
3. 내가 곧 길이요
그런데 여기에 주님께서 길을 주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의 이미 2천 년 전에 오셔서 에덴으로 돌아가고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길,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길,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길을 우리가 따르지 아니하면 다른 길을 따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영생은 하나님의 생명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받고 하나님 앞에 나가는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는 이 땅에 오셔서 길 잃어버린 인생들을 위해서 그 죄를 대신 짊어지고 몸 찢고 피를 ㅍ흘려 죽으심으로 인간의 죄를 다 청산하시고 막힌 에덴동산의 문을 확 열어 제켜 버리고 만 것입니다. “내가 바로 길이다.”
제가 한참 고통당할 때 한번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제가 엘리베이터에 갇혔는데 엘리베이터에 갇혀서 들어가도 나가지도 못하고 발버둥을 치고 있으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엘리베이터에 갇혔는데 어떻게 할까요?”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시더니 “내가 곧 길이니라”
예수님을 안으니까 엘리베이터 밖에 나와 있어요. 그것이 깊은 인상에 내 마음에 박혔습니다. 예수님을 끌어안으면 엘리베이터에 갇혔어도 밖으로 나와 있더라.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면 막다른 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동굴은 막다른 길입니다.
동굴에 들어가 보십시오. 나갈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터널은 어떻습니까? 터널은 아무리 어두워도 걸어가면 저쪽 편에 나갈 길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동굴에 들어갔을 때 인생의 동굴에서 무엇을 합니까? 길이 막혔을 때 예수님을 모셔 들이면 동굴이 터널로 변화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동굴에서 다시 저쪽 편에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인 것입니다.
모든 인류는 아담과 하와 이후로 이 세상 사망의 동굴 속에 떨어졌습니다. 더 이상 에덴으로 나갈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길로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그 동굴을 뚫어서 터널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가 우리 죄를 짊어지고 세상의 더러움을 짊어지고 질병과 저주와 죽음과 좌절과 절망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이를 청산하시고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시고 길을 확 뚫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길을 통하면 거기에 용서의 길이 있습니다. 죄가 아무리 많다고 할지라도 우리 스스로 죄를 씻을 수 없고 정하게 할 수 없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내가 곧 용서의 길이다.” 예수님을 통하면 그 흘리신 보혈로 우리의 죄가를 맑게 씻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흰 눈같이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주님의 보혈이 우리를 정결케 씻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혈이 씻지 못할 죄는 이 세상 어디가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바로 용서받고 씻음 받는 길이요, 의로움을 얻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길이 되시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 2에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성결과 성령충만의 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깨끗해지고 거룩해지고 성령충만해 질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통하면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씻은데다가 성령을 보내 주셔서 성령을 통해서 우리가 변화 받고 거룩하고 깨끗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변화는 노력하므로 변화가 되지 않습니다. 교육을 통해서 변화가 되지 않아요. 형벌을 통해서도 변화가 되지 않아요. 우리 속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거듭나야만 되는 것입니다.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태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함께 죽고 장사 지낸바 되고 함께 부활해서 성령의 능력으로 속이 달라져야 돼요. 돼지를 변화 시키려고 목욕을 시키고 양복을 입히고 넥타이를 매주고 좋은 방 아랫목에 요 이브자리에 깔아서 앉혀 놓아도 얼마 있지 않으면 돼지소굴로 만들어 버리고 맙니다.
왜, 속이 돼지인 이상 겉을 아무리 치장해도 돼지는 돼지입니다. 사람이 범죄하고 타락하고 부패한 이상은 아무리 교육을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변화시켜도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으면 변화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타락한 인간 그 자체인 것입니다. 사람이 변화 받는 것은 예수 믿고, 거듭나고, 성령 받아야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 길이 바로 예수 믿는 길입니다. 예수를 믿어서 씻음을 받고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도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11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치료의 길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다 병든 사람이지요. 병이란 정상적이지 않은 것이 병 아닙니까? 우리의 마음이 병들었습니다.
불안, 초조, 절망, 미움, 저주, 시기, 분노, 질투, 사악함이 꽉 들어찬 병든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상적이 아닙니다. 마음이 병이 들었어요. 요사이 우리가 신문을 보면 얼마나 무섭습니까? 자식이 보험금 타려고 부모를 죽이려고 하고, 남편이 아내를 죽이고, 아내가 남편을 죽입니다.
최고의 교육을 받아 우리 한국의 최고의 기관인 청와대에 근무하는 사람이 아내를 넥타이로 목을 졸려 차안에서 죽인 것 보십시오. 저는 너무 너무나 믿을 수 없습니다. 정말 미쳤지. 미치기는 정말 미쳤어요. 어떻게 아내를 차안에서 넥타이로 묶어서 죽이고 난 다음 그대로 버려두고 그 길로 집에 돌아와서 편하게 옷 입고 또 출근을 합니까?
그것이 오늘날 사람들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불안하고 병들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오늘날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아서 정상적인 마음을 갖고 있지 못해요. 마음이 병들고 또 몸이 병들었습니다. 어디가나 병들었어요. 오늘날 병을 고치려고 다이어트 하다가 또 다이어트 병이 걸렸어요.
이래도 병이 들고 저래도 병이 들고 너무 다이어트하지 마세요. 유명한 개그맨이 다이어트 하다가 세상 뜬 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제가 설교하다가 처 다보니까 저 2층에 그 어른이 와 있더라구요. 우리 교회에도 왔다 갔다 했는데 아마 몸줄이려고 왔다 갔다 했는가 봅니다. 그러나 너무 다이어트 많이 하고 운동 심하게 하니까 생명이 단축되지 않았습니까?
치료의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다 마음도 몸도 우리 가정도 생활도 병들었습니다. 온갖 방법으로 치료를 가져오려고 애를 써도 여기가 그 길이다, 저기가 그 길이다 해도 가보면 다 헛된 길입니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는 것입니다.
말라기 4: 2에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의 태양인데 예수님 앞에 나오면 치료하는 태양의 광선이 비춰서 우리를 치료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일날 이렇게 예배에 모이면 이 자리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우리 안 보이는 사이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치료하는 광선이 여러분에게 비춰지는 거예요. 여러분의 마음이 고침을 받고 육체가 치료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가정에 계셔서 가정예배를 보면 그 가정에 치료하는 광선이 발해서 가정에 모든 질병이 치료받는 것입니다.
장마철에 집이 눅눅하고 온갖 벌레가 다 있을지라도 햇빛이 쨍쨍 보이고 공기가 건조해지면 모든 병균들이 다 죽고 벌레들이 도망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광명한 빛이 비치면 그 치료하는 광선에 모든 마귀와 귀신들이 쫓겨 나가고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살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치료의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치료의 길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마음에 계시면 마음에 치료하는 광선이 비치고 내 몸속에 계시면 내 몸에 치료하는 광선이 비치고 우리 가정에 있으면 가정에 치료하는 광선이 비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치료받고 정상적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24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치료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 안에서는 축복과 형통의 길이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복 받기를 원하지요. 새해가 되면 우리 인사가 복 많이 받으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복 받기를 원치 않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그러나 복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로 가시와 엉겅퀴 속에서 잘사는 길을 찾으려고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이마에 땀이 흐르는 일 이외에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어디가 복 받는 길입니까? 어디가야 형통의 길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 믿는 길이 복 받는 길이요, 예수 믿는 길이 형통의 길입니다
. 왜냐, 예수님이 다시 에덴으로 돌아가는 길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돌보는 길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돌보지 않고야 복을 받을 수가 없어요.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람 이외의 힘이 작용해야 잘된다는 것 안 믿는 사람들도 다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초나 특별한 일이면 사주팔자 보려고 하지 않습니까?
자기 힘 이외에 타력이 있어서 운명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분이 누굽니까?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아야 되는데 하나님의 손길을 움직일 수 있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복 받고 형통한 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아담의 모든 저주를 대신 갚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13~14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쇠 가시에 찔리고 가시관 쓰시고 가시와 엉겅퀴를 다 그 피로 무력화 하시고 주님은 우리를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복 받는 길인 것입니다.
세계 역사를 통해서 보십시오. 예수 잘 믿은 나라치고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 나라가 안 된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축복의 강물은 예수를 믿는 그 길을 따라서 흐르는 것입니다. 축복과 형통의 길도 예수 믿는 길이요, 영생 천국의 길도 예수 믿는 길인 것입니다. 아무리 의학적으로 영생을 얻으려고 해도 그것은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죽습니다. 죄를 지은 인생은 죽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육신의 장막 집은 70이 아니면 80 이후에 죽습니다. 오래 살면 100살살까, 120살 사는 사람도 별로 있지 않습니다. 사람은 다 육신의 장막 집을 허물어뜨리고 떠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죽는 사람은 다 뒤로 제켜 버리고 잊어버리고 살아있는 사람은 지금 발버둥 치지만 한 세대가 가면 다 그 세대는 사라지고 또 새로운 세대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영생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셨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만 부활 영생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지낸바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일으킴을 받아 하늘에 올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우리를 앉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길인 것입니다. 사망을 이긴 분은 예수밖에 없습니다. 역사이래로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없어요. 위대한 종교가, 철학가, 도덕군자들 다 훌륭한 말씀을 가르치고 했지만 죽고 난 다음에는 소식이 없습니다. 죽은 다음에 부활하사 영광을 나타내신 분은 우리 주 예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영생복락의 길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는 영생합니다.
고린도후서 5: 1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우리에게는 영원한 집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가 왔다가 죽었다가 부활해서 승천하지 않았느냐.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인도하여 나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육신이 장막 집 무너져서 우리이가 이 땅을 떠나면 곧장 예수님과 함께 있게 되는 것입니다.그리스도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서 영광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이니 예수 믿는 사람은 죽는 것은 하나의 절차에 불과한 것입니다. 삶의 하나의 방법입니다.
죽음과 우리 사이에는 종이 한 장 차이고 우리 주님도 저편에도 우리 주님이요, 이편에도 우리 주님이요, 성령님도 저편에 계시고 이편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 윗동네, 아랫동네.
우리는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죽은 사람도 예수 안에서는 저 윗동네에 살아있고 우리 살아남은 사람은 아랫동네에 살아 있어서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윗동네로 올라가고 육신의 장막집이 안 무너지면 아랫동네에서 살고 그럴 따름인 것입니다. 다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써 함께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 4에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 땅에 저주받아 죄악으로 말미암아 부패하고 사망에 종 된 우리들은 이 땅에 영원히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 와서 천국이 우리 마음속에 와있거니와 이 아랫동네 장막 집 벗어 버리면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윗동네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그리스도 이후에 사망은 휴지쪽지처럼 구겨지고 찢어지고 패하고 만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의 길이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진리의 길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요, 하나님과 함께 사는 길이요, 참된 길이요, 거짓된 길이 아닌 것입니다. 성경에는 다른 이로써 구원을 받을 수가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은 예수님인 것입니다. 참으로 금세와 내세에 사는 길, 기쁨과 행복과 성공의 길은 예수님을 믿는 그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대책이 없어요. 다른 길이 없어요. 예수 그리스도가 그 대책이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참 사는 길, 기쁨과 행복과 성공을 주는 길인 것입니다.
시편 16:11에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주님 안에는 영원한 즐거움, 영원한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이 바로 그 기쁨과 즐거움으로 들어가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성가 중에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라는 찬송이 있지 않습니까?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또한 세상사람 부럽지 않네 /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이 노래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영국 황제였던 루이스가 황궁생활에 너무나 염증이 났습니다. 황금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괴로워요. 너무나 문제에 쌓여서 마음에 번뇌하고 고통에 괴로워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관을 불러서 “우리 평복으로 차려 입고 좀 시골로 나가보자.” 그랬습니다. 여러분, 권력의 자리는 고독하고 외롭고 어려운 것입니다. 청와대가 좋은지 압니까? 우리 한국에서 가장 고독한 곳이 청와대입니다. 제가 사랑하고 존경하던 대통령 한분이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조목사, 너무나 외로워 견딜 수가 없다. 밤이면 적막강산이다. 내가 대통령 되기 전에는 외로우면 나가서 빈대떡도 먹을 수가 있고 그리고 아무 식당도 내가 골라갈 수가 있고 포장마차집도 갈수 있는데 청와대는 그런게 없어. 저녁이 되면 다 퇴근하면 첩첩이 둘러싸여 지키고 적막강산이야. 너무나 고독하고 외로운 곳이야.”
그리고 하는 말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문제란 문제는 다 모여 오기 때문에 앉은 자리가 가시방석이야. 하루속히 이 자리를 떠나고 싶다.” 그 말을 제게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맞아요! 그 괴로운데 왜 올라가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고독하고 외롭고 괴로운 것입니다.
영국 황제 루이스도 너무 몸부림치게 괴로워서 좀 마음에 휴식을 얻기 위하여 보좌관을 데리고 평복을 갈아입고 런던 밖 교외로 나가니까 어느 시골길을 걸어가는데 노랫소리가 들리거든요. 그 어느 노파가 노래를 부르는데 바로 그 노래인 것입니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또한 세상사람 부럽지 않네 /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그래서 그 노래를 하도 흥겹게 부르기에 그 노파에게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여보세요. 당신 보자 하니 옷도 남루하게 입고 얼굴도 거칠고 생활이 풍요롭지 못하고 별로 좋은 일이 많지 않은 것 같은데 무엇이 그렇게 좋아가지고서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또한 세상사람 부럽지 않네’라고 큰 소리합니까?” 그러니까 “생각해 보세요.
나는 예수님이 마음속에 계시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과 소망이 있지요. 내가 이 세상에 가진 것 없더라도 하늘나라에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어요. 내가 이 세상 떠나면 하늘나라가 나의 고향이 되고 예수님이 나의 신랑이 되고 그 영광스러운 곳에 들어가 살 것이니 나는 얼마나 행복합니까?
나는 걱정 없이 잠자고 걱정 없이 깨어나고 내일을 큰 희망으로 기대하고 사니 이 노래가 저절로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루이스가 “그래요? 노래 2절이 없는데 1절만 부르지 말고 2절을 한번 부르지요. 2절 어떻게 부를지 내가 지어 드리지요.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영국황제 루이스가 날 부러워해.’”
그러자 이 할머니가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어떻게 감히 황제를 말합니까? 큰 일 날 소리 합니다.” 그러니까 루이스가 허허 웃으면서 “괜찮아요. 그렇게 불러도 괜찮아요. 내가 바로 그 루이스 황제입니다.” 루이스가 이 할머니를 부러워했습니다. 그러나 그 노파를 따라 갈수가 없습니다. 그는 황제이기 때문에 골치가 아픈 황궁으로 돌아가야 되고 어려운 문제에 또 봉착해야 되는 것입니다.
참 우리에게 생명이 되고 기쁨이 되고 평안이 되고 소망이 되고 행복이 되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 사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지위, 명예, 권세, 부귀, 영화, 공명은 한편으로 보면 아름다운 것 같으나 다른 면에서 보면 가시둥지인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영원한 삶의 길을 찾을 뿐 아니라 이 땅에 사는 하루하루의 길도 우리가 예수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길 찾지 않습니까? 우리는 행복의 길, 성공의 길, 축복의 길, 기쁨의 길, 영광의 길을 다 찾고 삽니다. 오늘도 여러분은 이 교회에서 올 때 인생에 길을 더 확실히 찾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4. 매일의 삶도 길 찾는 삶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길을 찾았으면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항상 주님이 주신 길을 따라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의 길을 찾아 살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 주님은 여러분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 삶의 길을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해 놓은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깨닫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깨닫지 못한 길을 예비해 놓았어요. 우리가 문제를 만나서 앞길이 캄캄하고 갈 길이 없을지라도 하나 알아야 될 것은 주님은 만세전에 이미 우리의 갈 길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로 길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길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 찬송 중에 ‘주 나의 길 예비 하시네’라는 찬송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의 길을 예비하시기 때문에 예비하신 길을 우리가 찾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가지 말아야 될 길은 다 닫아 버리고 그리고 우리가 가야 될 길을 열어 놓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해서 ‘주여, 나는 어디로 가야될지 모르겠습니다. 길을 보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못 갈 길은 다 닫아 버립니다. 쾅, 쾅, 쾅. 한쪽길만 열어 놓습니다. ‘아이쿠, 별 볼일 없는 길인데요?’ 그러나 주님이 예비해서 열어놓은 길은 볼 일없이 보여도 들어가면 볼일이 있습니다.
세상길은 넓은 것 같아도 들어가면 좁아지고 하늘나라 길은 좁은 것 같으나 들어가면 넓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인간이 스스로 길을 만들려고 몸부림을 치다가 낭패를 당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가에 왔을 때 앞에는 창열 하는 홍해수요, 뒤에는 애굽의 대군대의 공격을 받아 살길이 없습니다. 갈 길이 없습니다. 길이 다 막혔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백성들은 이제는 길이 없으니까 통곡을 하고 “모세야! 애굽에 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곳에 불러내어 죽이느냐?”고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이든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지 못한 길을 예비해 놓은 것을 알았습니다.
“주께서 내 길 예비하시네./ 주께서 내 길 예비하시네./ 내가 악을 버리고 참된 생활할 때/ 주께서 내 길 예비하시네.” 주께서 길을 예비하는 것을 안 모세는 강하고 담대해서 출애굽기 14:13~14에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만히 있어 주님께 길을 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하면 주님이 내길 예비하십니다. 여러분 주께서 여러분 길을 예비하십니다. 길을 달라고 고하면 안 될 길은 다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좋다고 생각한 길이라도 안 될 길은 막아 버리고 내 생각으로는 바보 같은 길이라도 주님이 될 길은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 열린 길로 들어가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홍해의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 길로 통해서 성공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인생을 살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의 길을 인도해 주시도록 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 늦게 잠잘지라도 길을 잘못 들면 헛수고 하지 않습니까? 주님이 길을 열뿐 아니라 우리 길을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오른편으로 가야될지 왼편으로 가야될지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면 인도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고요하고 잠잠하게 기다리면 마음에 주님이 깨달음을 통해서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깨달음이란 놀랍습니다. 고요한 호숫 물이 흑탕 물이 되어 있으면 아무것도 안 비치잖아요. 탐욕이 흑탕 물처럼 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인도하는 길을 얻을 수 없습니다.
또한 바람이 마구 불어서 물이 출렁거리면 버드나무도 하늘에 구름도 해도 달도 별도 안 비취잖아요. 잠잠해야 되잖아요. 고요한 호숫가에 맑은 물에는 하늘에 구름이 두둥실 떠있고 수양버들 나무가 다 비추는 것처럼 우리가 마음을 고요하고 잠잠하게 하여 주를 앙망하고 기다리면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성령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우리의 깨달음을 통해서 우리 마음속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안 된다. 이것은 된다. 저 길로 가라. 이 길로 가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셔서 그 지혜를 통해서 인생을 선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길을 잘못 들면 큰 일 납니다. 길을 잘못 선택하면 패가망신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셔서 인도하시는 길로 가면 성공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내 길을 예비하실 뿐 아니라 주님 내길 인도하십니다. 우리한번 다 같이 부르십시다. “주님 내 길 인도 하시네./ 주께서 내 길 인도 하시네./ 주께서 내 길 인도 하시네./ 내가 악을 버리고 참된 생활할 때 주께서 내 길 인도 하시네.” 내가 하도 음정이 나쁘니까 피아니스트가 따라오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용하게 따라 오시네요. 음정은 나빠도 진리는 똑바로 말합니다. 주님께서 내길 예비하실 뿐 아니라 주님을 기다리면 매일같이 주님이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기도하고 기다려서 깨달음이 올 때 까지 움직이지 마십시오. 멋도 모르고 따라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깨닫고 따라가야 돼요. 주님이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히 주시는 주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하고 믿지 않는 사람하고 다릅니다. 믿는 사람을 위해서는 주께서 길을 예비해 놓으실 뿐 아니라 또 그 길속에 들어가면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또 인도할 뿐 아니라 그 길을 가도록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길을 따라갈 때 마귀들은 우리의 길을 막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가나안 땅으로 갈 동안에 광야에서 아말렉이 쳐들어 와서 거의 멸망당할 뻔 했습니다. 그럴 때 여호수아가 군대를 거느리고 나와서 싸우고 모세가 아론과 훌을 데리고 언덕에 올라가서 전쟁을 내려다보고 지팡이를 들고 기도할 때 성령이 역사하여 주셔서 힘을 주셔서 아말렉을 쳐서 다 멸하고 그 길을 보호하여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주님께서는 원수 아말렉이 여러분의 길을 아무리 막아도 내가 예비한 길을 알고 인도하는 길대로 따라가면 주님께서 우리를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주의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길 잃어버린 사람이 안 된 것이 얼마나 놀라운지 모르겠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길을 예비하시고 하나님이 길을 인도하시고 하나님이 길을 갈 때 지켜 주십니다.
이사야 41:10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 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결론>
성경에는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는데 시온은 바로 하나님이 계신 산을 시온산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으로 가는 대로가 있는 사람은 복이 있다. 마음에 하나님께 나가는 대로가 누굽니까? 예수님인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지혜의 근본도 예수님을 아는 것이고 지식의 근본도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내가 인류 대학을 나오지 못하고 내가 머리가 좋지 않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이 계시면 지혜의 근본을 모시고 있고 지식의 근본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없이 일류대학을 나오고 천재라는 소리 들어도 별 볼일 없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면 일류대학을 안 나오고 천재가 아니더라도 주님이 내 지식이 되시고 지혜가 되어 주시고 주님이 나를 위해서 길을 예비하시고 길을 인도하시고 지켜 주시므로 우리는 주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나를 믿는 백성은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게 만들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양은 별 볼일 없습니다. 양은 근시 아니에요? 양은 멀리 못 보기 때문에 앞에 벼랑이 있는 것도 모르고 가다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양은 잘 뛰지 못해서 도망도 잘못 칩니다. 양은 이빨이 날카롭지도 못하고 발톱이 있어서 원수와 싸우지도 못합니다. 이 세상에 양만큼 무방비 상태가 없습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동물 중에 가장 많은 수가 사자와 범과 이리와 곰이나 늑대가 아니고 양이 세계에서 제일 수가 많습니다. 뉴질랜드에 가면 인구수보다 양수가 더 많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보육부에서는 양이 너무 많아서 방귀를 너무 많이 뀌어 공기가 오염되어서 양의 방귀를 정화하게 하는 길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양이 많은지 양의 방귀가 오스트레일리아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정도로 양의 수가 많습니다. 왜, 양은 근시안이라 멀리 바라보지도 못하고 도망도 못치고 방어도 못하지만 양은 무능하고 무력하나 양을 지키는 목자는 유능하고 지혜롭고 총명하고 능력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양은 목자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근시안적이고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무능하고 무력하고 힘이 없어 보일지라도 일류대학을 못나오고 지혜와 총명과 지식이 모자랄지라도 우리의 목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와 같이 계신 예수님은 전지전능, 무소부재 하십니다.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에 그를 따를 자가 없습니다. 나는 못나도 예수님이 같이 계시기 때문에 나는 이기고 또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예수님 목자, 예수님 우리 길, 시온의 대로가 있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일어나도 복이 있고 앉아도 복이 있고 들에 가도 복을 받고 집에 와도 복을 받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길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나는 살길이 없다.” “아니요. 예수님이 살길입니다.” “나는 복 받은 길이 없다.” “아니요. 예수님이 복 받은 길입니다.” “나는 대책이 없다.” “아니요. 예수님이 바로 그 대책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길로 모신 사람은 여러분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행복하고 영원한 천국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감사하고 찬송합니다. 에덴동산에서 뛰어나온 이후로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우리들에게 그리스도가 길이 되어 주신 것을 너무나 감사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막다른 동굴에 갇힐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동굴을 터널로 만들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길 되신 예수님 우리 모든 성도들의 가슴속에 시온의 대로가 되시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아버지를 섬기고 아버지의 능력을 의지하고 아버지께 복 받아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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