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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목적을 가지고 설교하라
    2024-06-18 07:30:25   read : 819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설교 할 때마다 목적이 뚜렷해야 한다. 설교를 오래 하다보면 매 설교마다 어떤 효과를 얻으려 하는지에 별 관심이 없어지게 된다. 막연하게 하나님의 말씀 전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설교하면서 청중의 변화를 기대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하게 된다. 설교는 매번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1. 설교 목적을 세우라

    왜 설교하는가? 물론 하나님의 말씀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특정한 한 편 설교의 목적이 무엇인가? 넓은 의미에서가 아니라 지금 하려는 설교의 목적 말이다. 물론 논지가 그것을 설명해 준다. 그러나 설교하는 사람은 그 논지만큼이나 명확한 대답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멋진 설교라도 이루고자하는 분명한 목표가 없다면 힘이 떨어진다. 내용에는 좋은 것이 다 들어있다. 예화도 훌륭하다. 설교가 아주 달변으로 사람들을 사로 잡는다. 그러나 그저 하나님 잘 믿으라는 식의 막연한 내용으로 흘러간다면 청중은 결국 아무 것도 가지고 갈게 없다.

    설교자들에게 지금하는 설교의 목적에 별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냥 막연히 복음 전한다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면 분명한 목적이라고 할 수 없다. “신자들에게 도전을 주기 위해서” 또는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식의 목적은 너무 애매하다. 그러므로 설교의 내용도 두루뭉수리다.

    월드컵 축구의 목적은 무엇인가? 팀워크, 절묘한 패스, 골득실, 감독의 지휘, 열광하는 관중, 중개방송 등 여러 내용들이 뒤섞여 있다. 하지만 여기의 목적은 아주 분명하다. 이기는 것이다. 이에 대한 확실한 생각이 없다면 경기도 재미없고 거기 들어가는 모든 것들도 싱겁기 짝이 없다.

    설교의 목적은 무엇인가? 감동을 주는 것인가? 어떤 목사는 감동주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는다. 그래서 감동을 준다. 그러나 복음의 내용을 듣고 감동해야지 분위기나 감동적인 이야기 때문에 감동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 설교 들을 때 감동해도 기억되는 건 감동적 기분뿐이다.

    설교가 영적이고 초자연적이며 영혼부터 인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이해 못하는 설교자는 비참한 사람이다. 설교는 교리 가르치는 정도가 아니다. 교회생활을 설명하고 하나님 섬기는 법을 지도하는 정도가 아니다. 설교는 감동과 함께 영혼을 움직이는 무엇이어야 한다.

    토우저의 말이다. “성경의 교리를 그 자체 때문에 가르치는 것만큼 답답하고 무의미한 것도 없다. 삶과 관련 없는 진리는 전혀 성경적 의미에서 진리가 아니다....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한 사실을 안다고 나아지는 사람은 없다. 마귀도 아합도 가룟 유다도 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의 독생자를 주셨다는 사실을 안다고 사람이 더 좋아지는 건 아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수백만이나 지옥에 있다.” 그러면 어쩌라는 말인가? “신학적 진리는 복종하기 전에는 의미가 없다. 즉 모든 교리의 목적은 도덕적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행동을 목표로 할 때 교리 강의는 불이 튀는 것처럼 강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절대로 그냥 성경의 내용을 말하는데 그치지 않을 것이다. 우선 감동을 주고 그 내용이 기억되고 행동에 옮겨지도록 가르칠 것이다. 마찬가지의 일은 어디나 다 일어나지만 특별히 설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개개의 설교 목적은 무엇인가? 지도를 자세히 연구하는 것과 실제로 여행 해보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논지가 복음의 내용을 말하고 있지만 설교의 목적은 그것을 통해 성취되는 삶을 알게 만드는 것이다. 총으로 새를 쏘는 사람처럼 목표가 맞고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아야 한다.

    목사는 목회현장의 신자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그들의 신앙을 지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설교를 통해 구원의 확신을 얻게 하든지, 이신칭의를 이해하고 삶에 적용시킨다든지, 자신의 영적인 은사를 발견하고 봉사하게 하든지, 가정생활을 신앙적으로 하게 하든지,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야 한다.

    2. 목적에 도달하는 방법

    무슨 일이건 말할 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잘못된 것 지적하는 것과 되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율법적인 것과 복음적인 것이라 이름해 보자. 이 두 방법은 삶 속에서 언제든지 나타난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문제만 지적할게 아니라 해결책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길이 막힌다. 여기 대해 교통 문제 지적하는 논문이 있다고 치자. 얼마나 막히는지, 신호등이 얼마나 많고 차가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질서가 얼마나 없는지 자세히 말한다. 그러나 해결방안은 말하지 않고 단지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결론을 말한다. 이게 율법적인 방법이다.

    다른 논문은 한 가지라도 실제적인 도움을 제시한다. 이면 도로의 효과적인 사용 방법이라든지, 손쉽게 고칠 수 있는 신호주기라든지, 시간별로 다른 출근이라든지 한 가지 집중해서 실제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면 복음적인 논문이다. 문제점만 들추는 게 아니라 할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이다.

    설교는 더욱 이것이 요구된다. 신앙생활에서 어려운 점을 지적하면서 해결방안을 주어야 한다. 단지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공부 하라든지, 하나님을 잘 섬기라든지, 성령에게 복종하라는 식은 너무 모호하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라. 성령께 복종하는 게 구체적으로 뭔가?

    어느 결혼식에 참석했다. 주례자가 신혼부부에게 말씀을 준다. 장수와 부귀와 행복의 축복을 선언하고 그것을 받기 위해 다음과 같이 하라고 권한다.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고 교회 일에 충성하라. 둘째, 부모에게 효도하고 친척에게 잘하라. 셋째, 이웃에게 잘 해주라. 그러면 축복 받는다.

    흔히 듣는 율법적 설교의 전형적 모습이다. 분명한 것은 아직 복 받은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앞으로 받으리라는 약속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율법적인 축복은 다 그러하다. 열심히 노력하면 앞으로 받으리라는 약속뿐이지 지금 받았다는 말은 없다. 아무리 축복해도 현재시제는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해도 그 복 받을 가망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경외하는 한 가지만해도 절대로 온전히 할 수 없는 게 인간이다. 축복의 상급을 받을 정도로 온전한 행위를 인간은 절대로 할 수 없다. 할 수 있다고 믿으면 큰 오해이다. 행위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게 인간 아닌가.

    하나님이 죄로 오염된 인간의 노력을 받고 복을 주는가? 아무리 해도 인간의 노력은 육신일뿐이다. 전혀 영적 가치를 얻지 못한다. 칼빈이 지적한대로 하나님도 모르고 인간 자신도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예수를 믿어도 여전히 인간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그 내용은 기원전(BC)신앙을 주는 설교이다. 지금은 아직 못 받았고 장차 받을 복을 목표로 나가라는 식이다. 그러나 그 목표는 인간으로서는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할 수 있다. 동시에 인간이 그 목표를 성취해야만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며 인간이신 그리스도가 오신 것이다.

    여기서부터 기원후(AD)의 신앙이 나타난다. 앞의 결혼식 설교를 다시 해보자. 장수와 부귀와 행복의 축복을 선언한다.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졌다. 이미 받은 복을 어떻게 누릴지 이야기 해준다. 우선 이 사실을 알고 믿어야 할 것이요, 감사하며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적용을 말해준다.

    그러면 믿음을 가지고 새출발을 시작한다. 앞으로 받을 축복과 구원이 아니다. 이미 받은 것이다. 그리스도로 인해서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되었음을 알기에 전혀 다른 삶을 산다. 세상에 대한 관점부터 달라진다. 언어행동도 차원이 달라진다. 신자에게 설교는 이미 받은 것의 내용을 듣는 것이다.

    목표를 향한 율법적인 접근과 복음적인 접근방법을 말했다. 율법은 신앙을 인간의 노력으로 하도록 한다. 하나님 앞에서 복 받기 위해서 할 일은 단 한 가지, 오직 믿음뿐이다. 믿음만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선행이다. 그외 는 아무 것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모두 기준 미달이기 때문이다.

    3. 근본적인 목적: 구원과 구원의 적용

    그러면 설교의 궁극적인 목적을 말해보자. 영혼 구원이다. 이 목표를 벗어난 것은 전혀 설교라 할 수 없다. 물론 일상생활에 도움을 주는 설교를 줄 수 있다. 그러나 결국에는 영혼에 유익이 되고 구원에 도움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영원한 것이 된다. 반드시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많은 설교들이 신앙적인 단어를 나열하고 있지만 궁극적인 구원으로 인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성령충만, 하나님의 말씀, 기도, 은혜, 교회 등 분명히 신앙적인 말들이다. 하지만 교회의 단어들이라도 그것으로 영혼이 힘을 얻고 구원의 생활을 하게 하지 않으면 겉도는 설교일 뿐이다.

    또한 목적은 분명해도 영혼을 위하지 않는 설교는 얼마든지 있다. 거의 매일 교회에 살면서 봉사만 하거나 목사만 섬기게 할 수 있다. 기복적인 이유로 헌금을 많이 내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상한 헌금 이름을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전혀 영혼에 도움 안 되는 목적도 많이 있다.

    그런 식으로 아무리 오랜 신앙생활을 해보아도 마음은 언제나 차가울 것이다. 듣는 사람의 마음을 뚫고 영혼에 영향을 주는 양식을 주리라 결심해야 한다. 속사람의 변화를 목적으로 설교해야 한다. 구원의 능력이 삶 속에 나타나도록 도와야 한다. 그리하여 궁극적인 구원에 이르게 해야 한다.

    영혼이 이미 받은 구원을 누리게 하려면 신앙을 주어야 한다. 모든 설교는 반드시 신앙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신앙을 주지 못하면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구원 받고 축복 받으려는 율법적 시도만 일어난다. 신앙만이 하나님의 도움을 얻게 하고 위대한 삶의 힘을 공급한다.

    신앙은 세상에 흔한 믿음과는 다르다. 세상에도 의지하고 믿을 게 있다. 가족 믿고, 친구 믿을 수 있다. 돈을 믿고 자기의 능력을 믿을 수도 있다. 그것도 분명히 믿음이다. 세상 것에 대한 믿음도 어느 정도의 보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믿음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돈과 권력이 그리고 사랑이 행복을 준다고 믿는다. 그래서 무슨 수를 내서라도 그것들을 얻으려 한다. 하지만 그것을 의지하는 믿음이 영원한 행복은 절대로 주지 못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지도 죄를 없애주지도 못한다. 지옥의 형벌을 면하게도 못한다. 물론 천국도 못준다.

    그래서 예수께서 가지셨던 그런 신앙이 필요한 것이다. 신앙은 하나님의 도움을 얻게 한다.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것을 얻게 한다. 영원한 나라를 얻고 구원 받게 한다. 물론 세상을 사는데도 꼭 필요한 힘을 준다. 세상 차원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을 받으려면 절대로 신앙이 있어야 한다.

    신앙을 가지게 하려면 반드시 믿을 내용이 주어져야 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해주신 일들을 설명하라. 그래서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 설명하라. 그 사실을 듣고 받아들이게 하라. 그렇게 되면 신앙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복음의 내용만이 신앙을 준다.

    이러한 신앙이 영적 초자연적 구원을 얻게 만든다. 회개, 중생, 성령충만, 성화, 신유 등의 일들이 벌어지게 만든다. 이러한 구원의 여러 면들이 눈 앞에 펼쳐지게 하려면 복음의 내용을 주라. 그러면 목표한 바가 이루어진다. 구원의 현상들이 나타날 것이다. 구원은 신앙으로만 얻기 때문이다.

    구원의 여러 면과 과정중 하나를 설교의 목적으로 잡을 수 있다. 그들은 구원이라는 큰 목적에 달린 가지들이다. 구원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이루는데 여러 단계가 필요하다. 이것들이 있게 하려면 신앙을 주어야 한다. 반복하지만 하늘의 신앙은 반드시 복음의 내용을 통해서만 얻게 될 것이다.

    설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영혼의 구원이요 일상에서의 적용이다. 이것은 목회 자체의 목적이기도 하다. 이 목표를 향해 나가고 있는지 스스로 반성해 보라. 설교가 그 궁극적인 목표를 구원에 두지 않을 때 하나님이 주신 설교의 사명은 절대로 성취되지 못할 것이다. 언제나 확인하라. 내 설교가 구원의 말씀을 주는지. 나는 그 힘으로 살고 있는지.

    4. 목적을 분명히 해 본 설교요약

    설교자가 복음의 내용을 논지로 잡는다면 그것을 어떻게 적용시킬 가를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효과를 이끌어낼 것인가 결정한다. 그것이 설교의 목적이 된다. 순전히 인간의 힘으로 성취하는 무엇을 목적으로 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되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게 해야 한다.

    설교 요약은 한눈으로 설교의 논지와 대지의 관계를 보게 한다. 통일성 있는 설교를 하게 만든다. 그러나 더욱 영혼을 새롭게 하려는 목적을 이루도록 요약을 사용하라. 그냥 진행하는데만 신경을 쓰지말고 내가 어떤 목적으로 이 한 편의 설교를 하는지 분명히 인식하면서 해야 한다.

    다음은 해돈 로빈슨의 「성경적 설교」에서 뽑은 에베소서 1장의 강해설교 요약이다.(129면) 아주 잘 만들어진 요약이다. 이 내용이 설교의 목적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1.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기에 찬양해야 한다.(1:4-6)
    2. 하나님이 자기 은혜의 풍성하심대로 대하셨기에 찬양해야한다.(1:7-12)
    3. 하나님이 우리가 우리의 유업을 완전히 소유하기까지 성령으로 인치셨기에 찬양해야 한다.(1:13-14)

    이것에 제목을 붙이고 논지를 세워 보라. 같은 요약이라도 설교의 목적에 따라서 다른 제목과 논지가 나올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확신하게 하는 게 목적이라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제목: 은혜의 확신
    논지: 은혜의 확신은 하나님이 해주신 일들의 엄청남을 알 때 온다.
    1.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
    2. 하나님은 자기 은혜의 풍성하심을 따라 우리를 대하셨다.
    3. 하나님은 우리가 받은 유업을 완전 소유할 때까지 성령으로 인치셨다.
    강조할 말: 이 엄청난 은혜를 깨닫고 확신 속에 거하자.

    다음에는 찬양에 목적을 두어보자. 왜 찬양하는지 그래서 참으로 기쁨과 확신 속에 그것이 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제목: 찬양의 이유
    논지: 찬양의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엄청남 때문이다.
    1.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에
    2. 하나님이 자기 은혜의 풍성하심을 따라 우리를 대하셨기 때문에
    3. 하나님이 우리가 받은 유업을 완전히 소유할 때까지 성령으로 인치셨기 때문에
    강조할 말: 주신 은혜를 확인할 때 참된 찬양은 나온다.

    같은 내용을 가지고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를 말해보라. 거룩한 긍지를 일으켜 그대로 살게 만든다. 이것을 보면 설교의 목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계속해서 얼마든지 목적을 만들어서 설교할 수 있다. 설교자의 이기적인 목적으로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

    제목: 믿는자의 긍지
    논지: 믿는자의 긍지는 하나님이 베푸신 일을 알 때 나온다.
    1.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
    2. 자기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우리를 대하셨다.
    3. 우리가 받은 유업을 완전히 누리기까지 성령으로 인치셨다.
    그러므로 세상 것보다 거룩한 긍지로 살라.

    설교 목적의 중요성이 분명해졌는가? 항상 거룩한 목표를 세우도록 하자. 그 목표는 언제나 영혼의 유익이다. 복음의 내용은 그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 어떠한 목적이건 세우고 설교하면 강한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기에 더욱 영혼을 사랑하면서 설교해야 한다. 그것이 설교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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