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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라
    2024-06-18 07:32:41   read : 784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믿고 설교하라

    어느날 강단에 서서 설교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인가 막힌 것 같다. 청중들은 저 멀리 석고처럼 앉아있다. 막막한 느낌이다. 목이 타고 자꾸만 그만 하고 싶다.

    그러면 생각한다. “거 보아라! 기도가 부족하니까 그렇지. 설교준비가 안된 것이다.” 이러면 그 날 설교는 확실히 망치고 만다. 준비가 부족했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괴로워한다고 좋은 설교 나오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설교자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이 설교시에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는가. 준비가 완전해야만 아니라 항상 어느 시기에나 함께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 말씀을 믿지 않고 무슨 설교를 하겠는가.

    그러므로 스스로에게 말하자. “하나님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다. 지금 내 속에 계시다. 단지 나는 워밍업이 필요할 뿐이다. 이제 마음을 잘 가다듬고 성령에게 자신을 맡기자.” 대개는 이 정도로 해결된다.

    이것은 설교 도중의 가질 믿음의 자세이다. 믿음으로 대처하는 것은 신자라면 누구나 다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설교자는 설교를 시작할 때만 아니라 설교를 구상하고 작성할 때도 같은 믿음으로 해야 한다.

    1. 설교의 능력

    능력있는 설교자! 누구나 원하는 것이다. 듣는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다. 이적이 일어난다. 병자가 낫고 문제가 해결된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그래서 참된 신자로 만들어진다. 이렇게만 된다면 목회보다도 더 재미있는 직업도 설교보다 더 신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은 그 자체가 구원의 능력을 준다. 본래 구원의 능력은 인간에게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주어진다. 그래서 놀라운 변화가 나타난다. 이것이 복음 전하는 사역의 핵심이다.

    사람들이 교회에 오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다. 눈으로 보고 만지지 못해도 느끼고 감화를 받고 그래서 힘을 얻기 위해서다. 그런데 실제로 이러한 경험을 매 주일마다 하느냐? 이것이 문제이다. 이런 경험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받고 나갈 것인가?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예배를 통해서 일어나야 한다.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그러한 경험을 하겠지만 특별히 예배는 그러한 경험이 집약된 것이다. 찬양과 기도와 헌금 그리고 축도 어느 하나도 하나님과 관계없는 사항은 없다. 특별히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을 전하는 가장 중심되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먼저 이 능력과 만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느끼는 것은 너무도 한계 속에 있는 자신이다. 하나님께서 전도 (설교)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너무도 연약한 지혜나 말솜씨 그리고 무엇보다 영감에 빈약한 자신을 느낀다.

    목회자들은 자주 고통스런 가정을 방문한다. 너무도 착한 신자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무슨 말을 위로로 할 것인가? 늘 하는 말로 대충 넘길까? “참 안됐습니다. 너무도 좋은 분이었는데. 자 이제 천국 가셨으니까 위로를 받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남은 분들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너무도 무력감을 느낀다. 그러나 후에 목사의 설교를 들은 그 가족이 말한다. “그 설교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정말로 말씀이 아니었더라면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리둥절해 진다. “아니, 내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는데.” 하나님이 일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들은 믿음을 가지라. 하나님은 분명히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물론 감동을 못 받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하나님은 필요할 때 일하신다. 설교자는 단지 도구이다. 도구가 유능하면 말씀도 잘 전해진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말씀의 도구로서 믿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비록 말이 졸해도, 지혜가 부족하고, 성경지식과 기도와 열정이 한참 연약해도 일단 설교자로 나섰으면 하나님의 약속과 임재를 믿어야 한다. 항상 훌륭한 설교를 위해 준비하고 연습하고 열정을 다해 설교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능력이 공급된다는 믿음으로 임해야 한다는 점이다.

    2. 준비단계에서부터 주어지는 능력

    목회자들은 언제나 설교를 준비하고 있다. 상담할 때나 심방할 때나 아니면 운동을 하면서도 언제나 설교를 준비한다. 교인들의 문제를 들으면서 전혀 배우지 않았던 대답이 나온다. 또한 성경을 읽으면서 전혀 모르던 새로운 감동이 나온다. 참으로 신기하다. 분명히 성령이 주신 것이다.

    설교자는 느껴진 감동을 적어놓을 수첩이 언제나 필요하다. 성령이 주신 도움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다. 성령이 주신 논지가 가장 훌륭한 것이다. 그것은 신자들의 문제에 대한 대답이다. 이것이 영감있는 설교를 만들어 준다. 또한 설교자는 이러한 영감에 민감해지는 훈련을 해야 한다.

    바울은 말씀하셨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3) 성령이 주신 복음의 내용만 말한다면 얼마나 신나겠는가. 그리고 그것만이 사람의 깊은 곳까지 변화를 줄 것이다.

    하지만 영감을 무조건 믿어서는 안된다. 그것이 신학적으로 옳은지를 판단해 보아야 한다. 사탄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기발한 것이라고 하나님에게서 왔다고 믿어선 안된다. 이단들도 같은 방법에서 나왔다. 그것이 옳건 틀리건 영적인 것은 틀림없다.

    과연 이것이 복음인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감동을 주더라도 완전한 율법일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완전한 이단의 주장일 수도 있다. 그것이 반드시 복음적인 논지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신학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아무나 다 감동이 있다고 설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성령이 감동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제목을 쓸 때까지 또는 토요일 밤까지 심지어는 주일 아침까지도 아무 생각이 안 떠오를 수 있다. 모든 힘이 고갈된 느낌이다. 때로는 감동적 논지가 생각나도 이번 주 행사와 다를 수도 있다. 절기 설교와 맞추어 준비를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설교를 준비하면서도 설교자는 하나님의 힘을 의지한다. 어떠한 절차를 거치든 간에 계속 기도하면서 해야 한다. 비록 주일 아침까지 영감이 안 일어나도 설교자는 계속 기도로 준비해야 한다. 그냥 보통 설교 준비하는 식으로라도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기도는 쉴 수 없다.

    비록 일상적인 설교준비라도 하나님을 의식하고 한다면 상당한 영적 수준을 유지할 것이다. 기도하고 나면 하나님이 금방 주실지 모르지만 안그러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하나님은 준비하느라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설교자를 도우신다. 그래서 옆길로 나가지 않도록 힘을 제공하고 계신다.

    예수께서 주신 약속은 언제나 유효하다. 적어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말이다.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막 13:11)“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재와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눅 21:15)

    그러므로 비록 부족한 것 같아도 꾸준히 최선을 다해서 설교를 작성하자. 그리고 매 순간에 성령이 도우신다고 믿자. 많은 경우에 준비한 내용이 너무도 평범한 것 같다. 그러나 거기서 용기를 잃어서는 안된다. 최선을 다하라. 그리고는 청중들이 감동하는 모습을 믿음으로 그려보라.

    설교자는 자기 삶의 모든 상황을 믿음을 통해 보는 지혜를 얻는다. 그리하여 자신의 지혜보다 더 큰 하늘의 지혜를 쌓는다. 또한 그 모든 것이 때가 되면 다 설교를 통해서 나오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언제나 믿음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설교작성에 임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과정이다.

    3. 설교도중에 주어지는 능력

    설교하기 전에 원고를 들여다 본다. 때때로 자신이 없어진다. 너무도 내용이 뻔한 것 같다. 사람들이 재미 없어 할 것 같다. 늘 듣던 상투적인 설교 같은 느낌이다. 이렇게 되면 설교할 마음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의 갈등은 설교에 영향을 준다. 표정과 말에 자신도 힘도 다 없어진다.

    이러한 상태로 나가다 보면 점점 설교가 힘이 약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말한다. “아마도 나는 설교의 은사를 받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지혜도 없고 말도 잘하지 못한다.” 계속 이러면 안된다. 느낌만 믿고 하나님의 약속은 믿지 않는 설교자는 이미 자격이 없다.

    시카고의 한 교회의 강단으로 올라가는 문에 카드가 하나 붙어 있었다고 한다. 거기 적힌 구절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약속과 모세의 대답이다.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출 33:14, 15)

    이 말씀을 의지하고 믿음을 가지라. 내 설교에 감동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보라. 내 설교가 기막히게 잘 선포되는 것을 떠올리라. 그러한 생각으로 가슴을 뜨겁고 벅차게 하라. 심리전인가? 그렇다. 그러나 하나도 잘못된 게 없다.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믿는다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청중들의 입장에서부터 시작하라.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하시기에 오늘의 말씀은 큰 능력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설교에서 감동을 자신이 받을 준비를 하라. 청중들과 같이 느끼라. 하나님의 영감이 말씀하는 동안 흐르고 있음을 믿으라. 하나님은 나를 설교자로 지명하셨다!

    정말로 자신의 설교를 진지하게 생각하라. 내가 감동하지 않으면서 남을 감동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내 설교를 느끼라. 또한 비록 부족한 내용이라도 하나님은 감동시킴을 믿어야 한다. 성경 말씀도 그렇지 않은가! 부족한 인간의 말이지만 성령의 감동으로 무오하게 그리고 능력있게 하신다.

    내 설교를 나부터 재미있어 하라. 내가 재미없으면 청중은 더욱 재미없다. 단에 올라가면서부터 재미없게 억지로 하는 것처럼 보이면 안된다. 기쁨과 확신이 넘쳐서 올라가야 한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했다. 감동과 확신으로 나아가자.”

    이러한 믿음의 자세는 설교의 전달에 필수적이다. 청중에게 감화를 주기 전에 자신부터 감화시키라. 그러면 하나님은 설교 도중에 반드시 일하신다. 사람들은 설교자의 열정에 의해서 압도된다. 열심히 듣고 감동한다. 그들은 밝은 낯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설교자를 사랑한다.

    4. 설교의 주제가 하나님의 것이라면 반드시 도우신다.

    자동차를 파는 사람은 오로지 팔기 위해 모든 지식과 상황을 거기 맞춘다. 사람들이 흥미와 매력을 느끼게 만든다. 설교자는 그 정도가 아니다. 최상의 것을 사라고 호소한다. 차 파는 사람은 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설교자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사실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불신자라 하더라도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존경심을 갖는다. 그리고 성경에 대해서도 특별한 권위를 인정한다. 말씀과 그리스도에 대해서 설교하는 이는 스스로 자신에게서 기대하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을 말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신비한 삶에 자신을 던질 생각은 없는가?

    잘못된 동기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수가 있다. 심지어는 악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서 말하기도 한다.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전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억지로 말했다. 하지만 니느웨 사람들은 그의 그러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다. 하나님이 일하셨기 때문이다.

    바울은 말했다.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 하지만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빌 1:15,18)라는 것이다. 위선자라도 그리스도의 축복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이용하시기도 한다.

    그렇다고 거짓말하는 설교가 용납된다는 말은 아니다. 어떤 부흥사는 말한다. “거짓말과 공갈을 하더라도 은혜만 받으면 되지 않는가!” 물론 하나님은 그것을 이용하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특수한 경우로 일반화해서는 안된다. 순수한 복음이 전파되도록 진실한 강사를 초빙해야 한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설교하는 동안에는 더욱 크게 하시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설교자들은 설교하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믿어야 한다. 가능하면 그의 임재를 느끼도록 하라. 그 분이 나와 내 논리를 통해서 말하시게 하라.

    5. 하나님의 능력은 듣는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신다.

    청중들의 마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들여다본다면 놀라지 않을 설교자가 없다. 그들은 절대로 설교자를 그대로 다 따르지 않는다. 또한 설교의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그대로 전달되지도 않는다. 각자가 자기 삶 속에서 설교를 듣는다. 각자가 자기의 배경과 전제와 현재 생각이 있다.

    아무리 집중해도 설교자의 말이 모두가 관심을 끄는 것은 아니다. 말의 뉴앙스나 뜻도 다 다르다. 자기 입장에 맞추어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기 생각하다가 설교 듣다가 하면서 따라온다. 이것은 일반 생활 속에서도 알 수 있다.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도 자기 생각과 맞추어 대화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성령은 듣는 사람 속에서 일하신다. 설교의 내용이 각자의 사정에 맞도록 말이다. 청중은 내용이 좀 관계가 없어도 설교자의 말을 가능하면 자기와 관련시키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자신의 모습을 본다. 화를 내건, 감동을 하건 성령은 듣는 사람이 설교에 대해서 반응하게 만든다.

    우리나라에 오랫동안 선교사로 계시던 마펫 박사의 말이다. 유명한 미국 신학교 교수가 조정이 잘못되어 한 시골 교회로 설교하러 갔다. 이 교수의 말은 어려웠다. 그는 설교를 시작했다. “인류의 역사를 볼 때 귀납법과 연역법의 두 카테고리가 있습니다.” 난해한 내용이 막 펼쳐지고 있었다.

    통역자는 놀랐다. 자기가 듣기에도 너무 어려웠다. 그는 앉아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일에 찌든 아낙네, 코흘리는 아이들을 보았다. 통역을 시작했다. “이 시간 저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말하겠습니다.” 그렇게 설교는 진행되었다. 설교자는 자기 설교, 통역자는 자기 통역을 했다.

    이것이 매 주일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지나친 말이다. 설교자의 말은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는 청중들의 말이다. 그리고 누가 들어도 말의 내용은 같은 것이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에 맞추어서 들으려고 한다. 이때 성령이 설교자의 말을 해석해 적응시켜주는 것이다.

    설교자는 자기가 발견한 복음을 말한다. 성령은 동시에 듣는 사람들에게 맞추어 이해시켜 주신다. 설교자는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여전히 땅의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성령이 통역해 심어준다. 설교가 아주 실패했다고 느껴지는 날이 있다. 그때 가장 감동받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은 웬일일가.

    6. 설교가 마쳐진 뒤에도 하나님의 능력은 들은 사람 속에 남아있다.

    설교자들이 지칠 때가 있다. 아무리 외쳐도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교를 듣기 전이나 후나 아무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조금만 이상한 일이 생기면 옛날 기질이 모두다 그냥 들어나서 야단이다. 그럴 때 생각한다. “내가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가?”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고백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강한 힘이 있습니다.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도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 인상을 심어줍니다.” 어떤 경우에는 20년 30년 전 설교가 삶의 위기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한 번 변하면 확실한 주의 제자로 여생을 산다.

    영국의 프레드릭 로버트슨이 설교에 대해 오랫동안 회의를 느꼈었다. 그때 한 친구가 와서 보고를 하였다. 한 가게 주인이 가게 뒷방에 그 목사의 사진을 붙여놓았다고 한다. 장사하다 속이려는 생각이 날 때마다 그 사진 앞에 가서 마음을 돌렸다는 것이다. 설교는 반드시 영향을 준다.

    만약 설교를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권능이 사실이 아니라면 설교는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그것이 2천년이나 되는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물론 모든 사람을 다 바꾸지는 못했다. 하지만 사람의 영혼에서부터 변화를 주는 것으로 설교와 비교할 것이 있으랴!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평범한 설교가 주어진다. 대부흥사들의 화려한 설교는 절대로 아니다. 보통 설교자들은 어떤 면에서 볼 때 청중들보다 지적으로 많이 떨어지기도 한다. 학력이나 경력이나 모두 청중보다 못하다. 그러나 천국으로 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평범한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다.

    7. 위대한 능력

    “복음의 설교가 위대한 능력으로 주어지려면 특별한(extraordinary) 설교자에 의해 들려지든지, 아니면 특별한 능력을 입은 보통 사람들에 의해서 들려져야 한다.” 윌리엄 아더의 「불의 혀」란 책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 말하는 특별한 설교자란 누구인가? 유명한 부흥사가 아니다. 모세나 바울 정도 되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이제 세상에 없다. 그러므로 이제 보통 사람들이 능력을 받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그렇게 오랜 동안 설교를 통해 진행된 일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것 밖에 믿을 것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특별한 능력을 받을 것인가? 설교자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설교의 준비과정에 설교하는 동안 설교 후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의지해야 한다. 자신은 절대로 혼자 자기의 일을 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되 그분과 함께 하고 있음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항상 최선을 다하라. 준비도 전달도 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하라. 또한 능률있게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성령이 하신다고 전혀 또는 거의 준비를 안하는 목회자도 있다. 메모도 안한다. 이건 아주 잘못된 것이다. 격언도 있지 않은가! “영감은 90%가 피나는 노력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믿음으로 한다는 것이다. 비참한 마음으로 억지로 하지 말라. 같은 값이면 긍지와 감사로 하라. 청중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라. 자기 일에 대한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면서 하라. 교인들이 변화하는 것을 그리면서 설교를 준비하고 강단에 올라서면 불처럼 외치라.

    하나님의 도움을 요구하라. 언제나 기쁘게 기도하면서 일하라. 잊지말라. 설교의 모든 과정에 하나님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조잡한 것이라도 고뇌의 떡을 하나님께 드리자. 하나님은 그것을 먹을만한 것으로 바꾸신다. 그래서 은혜의 기적으로 주신다. 영원한 축복의 샘물로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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