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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자리'실종된 예배
    2003-07-10 09:54:39   read : 3637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한 교회 원로는 '주일에 수 차례로 나누어 드리는 예배'를 한국교회의 근본적 문제 가운데 하나로 지적한 바 있다. 오늘날 웬만한 규모를 갖춘 교회라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2부, 3부 혹은 그 이상의 예배를 주일예배로 드리고 있다.

    이 제도는 성장기 교회를 증축하지 않고 교인들을 수용하며 예배당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뿐 아니라,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특정한 예배시간을 맞추기 힘든 교인, 외국인이나 청년 등 다양한 계층의 필요에 부응하면서 주일예배로서 권위를 갖춘 예배가 필요한 교회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좋은 해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예배의 시행으로 말미암아 파생된 문제들은 오늘날 교회들이 '긍정적 효과'라고 꼽는 것들 이상의 '부정적 영향'을 양산했다는 지적이다.

     우선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교회를 대형화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는 점이다. 오늘날과 같이 교회 성장이 교단의 주요한 정책이 되어 있는 시점에서 이를 문제 삼는 것이 부적절한 지적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교회가 예배당 규모 이상의 많은 교인들을 여러 차례의 예배를 통해 '교인'으로 관리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함으로써 건강한 교회의 분립을 외면하는 명분을 제공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여러 차례의 예배를 드리는 동안 그러한 교회들 내에서 같은 주일 예배라고 말하면서도 주일예배 가운데에도 마치 등급 개념이 파생되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다. 이는 참석하는 교우들의 의식에서 뿐 아니라 성가대나 예배 순서자, 심지어 설교자의 배정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11시를 전후한 예배를 중심점으로 삼아 모이는 예배와 달리 이른 시간의 예배와 늦은 시간의 예배는 '주일예배'라는 용어가 무색하게 심지어는 순서를 축소하여 드려지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지금은 전원으로 교회를 이전한 한 교회의 경우는 이와 극단적으로 대치되는 예라 할 수 있다. 주일 11시에 갖게 되는 예배는 '주일공동예배'라는 이름으로 성인에서부터 아동에 이르기까지 온 교우들이 함께 예배를 드린다. 이곳에서는 예배를 마치 신앙생활의 의무로 여기는 일부 현대 신앙인과 같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뿐 아니라 모든 공동체 식구들의 모습을 함께 나누는 것이고 참여함으로 참된 신앙공동체의 회복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예는 해외교회에서는 오히려 친숙한 모습이다굨 대부분의 서구교회는 교회 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가족구성원들이 한 자리에서 예배를 시작해 설교 직전에 아동들을 위한 간단한 메시지를 교육담당자 혹은 담임목회자가 들려준 뒤 예배실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굨
     여러 차례 드려지는 예배가 뿌리깊은 문제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면 눈부신 기술발달로 인한 예배의 위기는 비교적 새로운 교회의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만 하여도 교회 내에서는 앰프 시설을 갖춘 교회는 그리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반대로 80년대에 불어닥친 이른바 '봉고 열풍'에 이어 대부분의 교회들에서는 첨단 영상시스템 구축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한 여름에도 선풍기는 물론 부채질도 허용되지 않았던 예배 전통의 차원에서 보면 오늘날, 각종 편의시설과 장식 등으로 치장된 교회의 변화는 '예배당이 사라져 버렸다'는 탄식이 이해될 듯도 하다.

     최근 재연되고 있는 '지(枝)성전 논쟁'의 내용 중에도 빠지지 않는 것이 이른바 '위성 예배'의 문제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국내 한 대형교회에서 시행해 오고 있는 이 예배가 오늘날 우리 교단에 도입되기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비록 방법론과 규모에 차이가 있을 뿐 영상장비를 이용하여 예배당 외의 공간에서 예배를 '보고 들을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 장비도 벌써 교회의 장의자만큼이나 친숙한 시설이 되어가고 있다. 설교자의 속삭임까지도 잡아내는 음향장비나 늘 쾌적한 분위기를 유지해주는 설비들을 갖추어 가는 동안 예배의 엄숙함과 진지함 또한 담보될 수 있는 것일까.

     최근 들어 예배를 집례하는 목회자들 사이에 복장의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예복에 대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나타나는 호응으로 바람직한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예배 집례자 중에는 예배인도나 설교를 위해 강단에 오르면서 학위(學位) 가운을 입는 경우가 있다.

    이렇듯 하나님의 임재 앞에 두려움을 느끼는 예배라기보다는 인간의 권위와 편의만을 생각하는 자세로 예배가 훼손되는 현장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예배가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회중석에서 입구쪽을 향해 서서 뒤늦게 예배당에 들어서는 교인들을 자리로 인도하는 안내자들의 모습에서부터 예배를 마치 식전 행사와 같이 취급하여 사람을 위한 행사 자체에 거리낌 없이 '예배'라는 용어를 붙이거나 행사에 앞서 '1부는 예배'로 정하는 오랜 관행 또한 반드시 우리 교회가 재고해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예배는 다시금 교회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러나 구도자예배, 열린예배 등 이름과 형식이 무엇이냐를 떠나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그것은 마땅히 집회나 행사로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신자 개인뿐 아니라 교회의 가장 중심적 사건과 현장으로서 예배가 회복되고, 전 교회 공동체가 회복되는 예배,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 높이 받고 중심이 되는 예배, 이러한 것들이 바로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예배이다.


     성경은 발락과 발람, 엘리의 두 아들, 그리고 사울과 사무엘 등 수많은 예를 통하여 잘못된 예배를 통하여 심판의 자리에 들어섰던 지도자들의 사건들 뿐 아니라 예배를 갱신하고 말씀의 권위와 하나님의 자리를 회복하는데 노력했던 이들을 통해 온 민족이 함께 누린 복에 대해 오늘도 생생히 증거하고 있다.
     김보현 bhkim@kidokong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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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한 목자가 그립다
    요한복음 10:1-16…양을 위해 고난 당한 참 목자, 예수



    ▲양떼와 목자.
    성서에 나오는 목자상은, 부모와 같이 자상하고 헌신적인 목자상이다. 시편 기자는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고 노래한다(23:1-2). 여기서 우리는 목자의 인도를 받는 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공관복음서에도 예수를 목자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예수 자신이 잃은 양의 비유를 들어서 자신이 하는 일을 설명했다. 그는 양 하나하나를 사랑하는 목자이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99마리 양을 뒤에 두고 찾아 나서며, 찾으면 기뻐하면서 동네 사람들을 불러다가 잔치를 베푸는 이다. 실제로 예수는, 집도 직업도 없이 떠도는 갈릴리의 무리들을 “목자 없는 양같이” 불쌍하게 여겼으며, 그들을 영접하여 기쁨의 잔치를 베풀었다.

    요한복음은 이 예수를 선한 목자라고 부른다. ‘선한’(kalos)이라는 말은 ‘좋은’, ‘참’이라는 뜻이다. 이는 이미 그 당시에, 겉만 번드레한 거짓 목자들이 많이 나타났음을 의미한다. 요한 기자는 그들을 도둑, 강도, 또는 삯꾼이라고 부르면서 선한 목자와 대조한다. 그러나 겉으로 볼 때는 그들은 선한 목자와 구별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구별하는 기준을 몇 가지 제시한다.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 목자

    먼저, 선한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준다. 양들은 그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를 따라간다. 이는 그리스도와 신자 사이의 가장 친밀한 관계를 나타낸다. 그런데 이 친밀한 관계는 목자의 사랑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양들이 또한 있어야 한다. 요한 기자는 자신이 속한 요한 공동체가 바로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양들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요한 기자는 어찌하여 이렇게 목자의 목소리를 강조하는가? 선한 목자와 대조를 이루는 도둑이나 강도는, 예수께서 육으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영지주의자이거나, 바리새파와 같은 유대주의자들일 수 있다. 또한 요한 기자는, 이미 제도화되어가고 굳어져가고 있던 초기 공교회를 염두에 두었을 수도 있다. 교회가 제도화되면 될수록, 그 안에서는 교리, 의식, 위계질서 같은 것이 중요하게 되고, 개인이 예수를 친밀하게 느낄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게 된다. 예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예수의 제자들에게나 가능한 과거의 일이 되어버리고 지금은 그런 것보다는 예수에 관한 교리 같은 것이 더 중요하게 된다.

    비교적 소규모 공동체인 요한 공동체는, 밖으로는 유대주의자들과 영지주의자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안으로는 제도화된 공교회로부터 소외를 받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요한 기자는, 아무리 거짓 메시아들이 판을 쳐도 자신들은 절대로 속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 그들은 목자를 겉모습만 보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알아듣고 따르기 때문이다. 또 아무리 기성의 공교회가 화려한 모습을 갖추어도 선한 목자는 바로 자신들의 작은 공동체에 현존하심을 확신했다. 공교회에서는 목자의 목소리 따위에는 관심도 없고 들을 수도 없지만, 자신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만큼 목자와 친밀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양들의 이름이 사라진 현대교회

    오늘날 교회들은 이전에 비해 건물이나 시설이 더 좋아졌다. 신자들의 신앙생활은 이전보다 더 깔끔하고 세련되어졌다. 일주일에 몇 번 거의 정확하게 정해진 시간에 교회에 다녀온다. 세련되었다는 것은 매우 형식적이 되었다는 것과도 같다. 이런 생활은 신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편하게 해 준다. 하지만 이런 형식적인 신앙생활 속에서 신자들이 예수를 느낄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어디에서 나를 불러주는 목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인가. 오늘날 교회에서는 모방이 유행한다. 건물 모양도, 목회자의 목소리도, 찬양하는 방식도, 잘 되는 교회, 성공하는 교회에서 배워서 따라하는 것이 많다. 그러다 보니, 예배는 화려하고 요란하지만, 우리의 영의 감수성을 일깨워주고 목자의 목소리를 듣게 해 주는 진정한 예배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목자가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는 것은,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개별성을 존중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큰 교회에서 신자들은 하나의 집단이 될 뿐 개별성을 갖기 어렵다. 거기서 어떻게 신자들이 자기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는 목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겠는가. 그저 늘 집단 속에서 익명성을 즐기다가, 축도 끝나고 나서 음악이 흐르는 동안에 바쁘게 몇 마디 속으로 기도하는 정도로 만족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지. 예수를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요한 공동체처럼 그의 목소리를 듣고 아는 그런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절실하다.

    매일 드나드는 문 같은 목자

    다음으로, 예수는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얻고, 드나들면서 꼴을 얻을 것이다”고 한다. 우린 ‘문’ 하면 높은 대문이나 자물쇠와 보조키가 있는 철문, 아니면 시험에 합격해야 들어갈 수 있는 회사나 학교 정문 같은 것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예수는 그와는 전혀 다른 문을 얘기하고 있다. 자기 자신이 문이라고 한다. 이는 목자가 양을 치는 풍속을 보면 알 수 있는 말이다. 목자는 평소에는 일반 우리 안에 양들을 두지만, 따뜻한 계절에는 양들을 끌고 동리에까지 들어오지 않고 들에 약식 노천 우리를 만든다. 울타리를 간단히 둘렀기 때문에 문이 따로 없고 양의 출입구에 목자 자신이 앉아서 문 노릇을 한다. 그러면 양들은 그 목자를 문 삼아 드나든다. 선한 목자는 바로 이 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솟을대문도 철문도 아니요 양들이 드나들고 때로 등을 비비기도 하는 그런 문이다. 이미 기성의 공교회에서 예수의 상이 엄숙해지고 굳어져가고 있을 때, 요한 기자는 선한 목자는 그보다 훨씬 더 친근한 분임을 말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 가서 만나고 마는 어떤 분이 아니라, 매일 드나드는 문과 같이 늘 일상의 삶 속에서 만나고 의지할 수 있는 친근한 분이라는 것이다.


    ▲김재성/민들레성서마을지기
    끝으로, 삯꾼은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나지만,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친다. 이것은 분명히 예수의 수난을 언급하는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예수의 수난을 부정하였다. 유대주의자들도 십자가의 수난을 수치스런 것으로 여겼다. 그들이 내세운 메시아 상은 수난 받지 않는 메시아 상이다. 그들은 양들을 위해 자신들이 손해 보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며, 한 마리 잃은 양을 끝까지 찾는 예수, 무리들을 목자 없는 양같이 불쌍히 여기는 선한 목자 예수는 그 일로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기까지 하였다. 삯꾼은 목자인 척할 수는 있지만, 그것만은 절대로 따라할 수도 흉내를 낼 수도 없다. 그들이 선한 목자의 목소리를 절대로 흉내낼 수 없는 것처럼.

    김재성/ 민들레성서마을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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