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을 확산시키라! 2002-10-16 11:45:34 read : 4513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마태복음 4:18-22 // 2002-09-29
미국의 제 34 대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Dwight David Eisenhower,1890-1969)는 그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국가 경제가 활발하지 못해 '지금 사라'(buy now)라는 구매 캠페인을 벌린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미국 국민들은 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저마다 물건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물건이 필요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물건이 좋든 나쁘든 간에 관계없이 물건을 사드렸습니다. 그 당시 미국 국민으로써는 그것이 애국하는 길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60년대 말이 되자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했습니다. 전례 없는 인플레 현상이 나타났고 이로 인해 분별없는 구매 행위가 과연 국가 경제를 위해 바람직한 일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1973년 OPEC의 금수 조처로 유류파동이 계속될 때는 연료를 많이 소비하는 차를 모는 행위는 비애국적인 행위처럼 보이게 되어버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가치 기준이 될 만 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제는 물건을 사야 했다면, 오늘은 사지 말아야 할 때가 있으며, 내일은 산 것을 버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시간과 상황, 환경이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하며, 환경이 급진전하게 바뀐다 할지라도 변하지 말아야 할 유일한 가치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부흥을 확산시키는 일"입니다. 물론, "부흥을 확산시키는 일" 역시 우리 힘만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흥이 좀더 빠르게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할 수는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부흥이 여러분에게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십니까? 그 변화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부흥을 통해서 경험하게 되는 변화는 우선순위의 변화입니다. 이것은 경제회복을 위해서 물건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가 시대가 바뀌면 무분별한 구매행위를 자제하자는 그런 변화가 아닙니다. 부흥을 통해서 경험되는 우선순위의 변화는 "내가 가지고 있던 우선순위"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우선순위"로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저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우선순위는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하면, 우리가 예수님의 우선순위를 나의 우선순위의 자리에 올려놓을 수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성장에 대한 재평가를 실시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우선순위의 변화로써의 부흥을 말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부흥이 단순한 성장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계속해서 말씀드리지만, 부흥은 양적인 성장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와 성도가 어떻습니까? "부흥"을 말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양적인 성장으로써의 부흥을 말하지 않습니까? 설사, 부흥의 결과가 양적인 성장으로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요즘 교회와 성도들이 "부흥"에 대해서 생각하는 여러 가지 모습은 잘못되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성장에 대한 재평가를 실시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우선순위를 바로 잡을 수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부흥을 통해서 성장을 이루고 싶다면, 그 성장은 어떠한 성장이어야 하겠습니까? 다른 곳에서 살던 성도가 이사를 와서 우리 교회에 정착하게 되는 사례가 많다고 해서 교회가 부흥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전입해 오는 성도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교회가 안정적이며, 그들의 욕구를 채워준다는 점에서, 교회가 바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부흥은 그러한 부흥이 아닙니다. 다른 교회에서 전입해 오는 성도들이 아무리 우리교회에 많이 등록한다 하더라도 주님께서는 그 일로 인해서는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절대로 오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권리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상당히 미묘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죄인 된 한 영혼이 회개하고 주님 앞에 돌아오는 것을 주님께서 천국에 있는 아흔 아홉 명의 의인을 바라 볼 때보다도 더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예수님께서 시몬, 안드레, 야고보, 요한, 이 네 명의 제자를 부르실 때, 그 모습을 보세요. 제자로 부름 받은 네 명의 공통된 특징이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말씀드릴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소유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인생의 목적하던 바가 바뀌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시몬, 안드레, 야고보, 요한, 이 네 사람은 어부였습니다. 어쩌면 이들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꿈을 간직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래 평생 내가 어부로써 살아왔지만, 그래도 꼭 돈을 모아 정말 떵떵거리며 살아야지." 이런 목적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실 때, 바로 따르기로 결심했다는 것은 그들이 인생에 있어서 성공이라고 여겼던 것이 본질적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성공에 대한 가치관을 바꾸시기를 바랍니다. 성장에 대한 가치관을 바꾸시기를 바랍니다. 성도의 성공은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요, 명예를 얻는 것도 아니요, 권력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자식을 훌륭하게 키우는 것도 아닙니다. 성도의 성공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맞춰 이루어 가는 삶을 살아갈 때, 비로써 성공했다 할 수 있습니다. 또 그것이 본인에게는 가장 행복한 일입니다.
왜 요즘, 한국 교회의 성도가 변화된 삶을 살지 못합니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성공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을 성장시키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왜 교회가 변화되지 못합니까? 예수님 알지 못하는 영혼을 찾아다니기보다, 그냥 교회 안에 앉아서 전입해 들어오는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앉아 있으면 변할 수 없습니다. 앉아 있으면 성숙해질 수 없습니다. 세상에 나가 부딪혀야 합니다. 정말, 우리 한국교회는 성장에 대한 재평가를 해야 할 때입니다.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성도가 옮겨졌다고 해서 교회가 성장했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가슴 아파하시겠습니까? 아직도 이 땅에는 죽어가는 영혼이 도처에 수없이 많이 있는데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이미 예수님이 구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아다니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으로 나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으로 나가 외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는 구원받은 사람을 찾아다녀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찾아 다녀야 합니다. 물론, 믿지 않는 한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회심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반드시 믿지 않는 한 영혼, 믿다가 낙심하여 쉬고 있는 영혼을 찾아다녀야 합니다. 우리가 그러한 한 영혼을 주님 앞으로 인도할 때 비로써 나의 신앙이, 그리고 우리교회가 성장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한 영혼을 회심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세상을 다 얻는 것임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명하신 구원 사역을 완수해 감해 있어서 부족한 것은 무엇이며, 반드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2. 열정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실 때, 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20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물을 버렸습니다. 자신들의 생계수단이 되어왔던 그물을 버렸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어떻게 했습니까? 22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야고보와 요한은 한 수 위였습니다. 그들은 배를 버렸습니다. 부친을 버려두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평생 자신이 해오던 일을 버려두고 또 다른 일을 시작한다는 것 쉬운 일입니까? 어려운 일입니까? 어려운 일입니다. 더군다나 자신이 하지 않던 일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상당한 모험입니다. 그런데도,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그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의 열정이 회복됩니다. 이 네 명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그들의 열정이 회복되었습니다. 물고기만을 잡아 하루하루 살기에 급급했던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써 "사람 낚는 어부"로 살겠다고 결단했습니다. 열정이 바뀐 것입니다. 부흥은 우리의 열정을 회복시킵니다.
성도 여러분, 열정이 무엇입니까?
열정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는, passion인데, 이것은 강렬함, 뜨거운 감정, 잃어버린 것을 찾고자 하는 무거운 부담감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passion이라는 단어에 또 다른 뜻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바로, "수난"이라는 뜻입니다. 수난-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사건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까?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바로, 여기에 그분의 사명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 오직 한 가지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열정은 사명을 낳습니다. 여호수아는 열정이 있었기에 아낙 자손을 보면서도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담대히 말할 수 있었습니다. 갈렙은 열정이 있었기에,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이미 정착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담대히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뿐입니까? 사도 바울을 보세요. 그에게는 어떠한 열정이 있었으며, 그 열정이 낳은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에게는 온 세상이 다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바 되기를 소원하는 열정이 있었으며, 그 일을 위해 지중해 연안을 다니며 평생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성도 여러분,
열정 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영혼구원을 열정을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18세기 영국과 미국에서 영적 부흥을 일으키는데 큰일을 감당했던 죠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는 영혼 구원을 위해 어떻게 기도했는지 아십니까? "제게 영혼들을 주소서. 아니면, 저는 죽겠나이다." 성도 여러분, 죠지 휫필드는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데, 지금 우리의 열정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영혼구원보다는 다른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느 교회는 피아노를 어디에 둘 것인가?" 때문에 갑론을박하며 수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또, 어느 교회는 교회 안에 방을 몇 개나 만들어서 어떻게 사용할까 하는 문제에 오랜 시간을 매달립니다. 성도 여러분, 이러한 일들은 정말 사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교회가 여전히 구태의연하게 이러한 일에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후안 카를로스 오르띠즈(Fuan Carlos Ortiz) 목사님이 한번은 시카고에서 30명의 부호(富豪)가 함께 한 회의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는 30명의 부호들이 자신들의 돈으로 하나님의 사업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한 사업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세 개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모두 전국적인 지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사회가 한번 열리면 우리는 15분 내에 어떠 어떠한 사업에 100만 달러를 투자할 것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또 10분 내에 남아프리카에 지사를 개설할 것을 결정합니다. 그 다음 10분 안에는 독일에 있던 지사를 철폐하고 스위스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내용의 안건을 통과시킵니다. 이렇게 하여 35분 내에 우리는 엄청난 양의 사업을 구상하여 결정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나는 조그만 교회에서 집사 직분을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화장실 구조를 하나 바꾸는 데만도 6개월이 넘도록 회의를 거듭해야만 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교회가 둘로 양분되고 말았습니다.." 오르띠즈 목사님은 이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과 도전을 받았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여기서 또 다른 토를 달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들 아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열정이 헛된 곳에 쓰인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우리의 열정은 한 영혼 구원하는 데 쓰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재물도, 우리의 재능도, 모두가 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데 사용되어야 할 줄로 확신합니다.
교회가 영혼구원을 위해 열정을 쏟는다는 것-그것은 단순히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직접 찾아가는 것입니다. 교회를 채우는 것이 주된 목표가 아니라, 한 영혼에게라도 더 복음을 전하여 그로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해 찾아가는 것입니다. 후안 카를로스 오르띠즈 목사님의 가정은 끈질긴 여 선교사의 전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고, 다섯 명의 형제 모두가 목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주님은 여러분들을 통해 죄인들을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죄인들을 만나고 싶어 하시는 그분의 바람대로 살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에서의 각종 모임에 바빠 그들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며, 설혹 시간이 남는다 해도 그들과 만나는 것을 꺼려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는 구원받지 못한 모든 사람들, 복음을 한번도 들어 보지 못한 모든 사람들, 들어 보기는 했으나 아직 결단을 내리지 못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이 열정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특별히 부흥의 시기에는 당연히 일어나야 합니다. 부흥을 갈망한다면, 부흥을 경험했다면, 당연히 일어나야 합니다. 사도 바울만 온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바 되기를 위해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열정을 쏟으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도 그런 열정을 품을 수 있지 않습니까? 1800년대 중반부터 1900년대 초까지 활동했던 스코틀랜드의 목회자 알렉산더 화이트(Alexander Whyte)는 "그렇다. 당신이 하려고만 든다면, 당신 자신이 바울의 마음처럼 뜨거운 마음을 가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고, 그렇게 이해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도록 기도할 수 있다. 그리스도에게 그리고 바울에게 뜨거운 마음을 주셨던 바로 그 성령이 당신에게도 주어지기 때문이다"라고 우리도 영혼구원을 향한 열정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열정이 넘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영혼 구원을 향한 열정을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세요. "주님, 내게도 영혼 구원을 향한 열정을 가지게 하옵소서" 간절히 기도함으로, 부흥도 경험하고 열정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3. 그리스도의 정신을 심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뭐라 하며 부르셨습니까?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 말씀 속에 나타나는 두 가지 낱말, "사람"이라는 단어와 "어부"라는 단어 중 어느 것에 더 비중을 두십니까? 어부가 중요한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이 중요한 것입니까? 저는 "사람"이라는 말에 더 비중을 둡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사람 낚는"이라는 말에 더 많은 비중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여기에, 바로 예수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정신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9장에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려고 하자 제자들이 이를 반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심지어 제자 중에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라고 우리가 명령하면 어떻겠습니까?"라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을 꾸짖는 모습이 나옵니다. 우리가 읽는 한글 개역 성경은 단순히 여기까지 표현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영어 성경과 다른 번역본을 보면, 정말 중요한 예수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뭐라고 되어 있는지 아십니까?
King James Version에 의하면, "For the Son of man is not come to destroy men's lives, but to save [them]. And they went to another village."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천사들로 하여금 이 세상의 악한 세력을 멸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래셨다구요? 구원하시기에 위해서-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이입니다. 그뿐입니까? 요한복음 3장 17절을 보세요.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성경 도처에는 하나님의 이러한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딱 한 구절만 더 보겠습니다. 에스겔서 18장 32절 말씀입니다. 제가 표준 새번역 개정판으로 읽어드립니다. "32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그가 죽는 것을 나는 절대로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 나주 하나님의 말이다." 성도 여러분, 굳이 해석을 해드려야겠습니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말로 표현해 드려야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아실 수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춘천 중앙 교회 성도 여러분,
죽어가는 한 영혼을 살리는 것-그것이 우리 주님의 마음입니다. 실로 주님은 이 일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한 영혼을 살리시는데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이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서이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영혼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서이지 않겠습니까? 깨달으세요. 깨달아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고 계신지 깨달아야만 합니다. 때로 이 일을 감당하다 보면, 스데반처럼 핍박을 받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바울처럼 순교자의 길을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영혼구원을 위해 힘쓰는 성도를 향해 하나님께서 환한 미소로 맞이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복되게 해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으세요. 지금도 죽어가는 영혼을 바라보며 애통해 하시고 계신 주님의 마음이 여러분의 마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 리
성도 여러분, 부흥은 확산되어야만 합니다. 내 안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을 향해 흘러넘쳐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한 사람의 불신자라도 주님 앞에 나와 회개하고 주님을 구주로 모시고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교인의 수평이동이 아닙니다. 죽은 한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일을 위해서 당신의 모든 열정을 쏟으셨습니다. 그럼으로,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한 영혼을 구원하는데 열정을 쏟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남으로 얻어진 부흥의 경험을 세상을 향해 쏟아내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향해 외쳐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세요. 죽어야 할 죄인까지도 죽지 않기를 바라시고 계신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바라기는 춘천 중앙의 사랑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음으로써 하나님과 화목하며, 또한 믿지 않는 자들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일에 귀하게 쓰임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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