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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의 영광을 맛보는 시대를 소망합시다
    2002-10-22 11:01:18   read : 5032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김운용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과 설교학)

    ● 홍순석(「목회와신학」 기자)

    ● 사진 : 안유선 기자



    설교는 목회자에게 있어 가장 관심 있는 주제라고 생각됩니다. 모든 목회자는 나름대로 설교관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교수님께서는 설교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설교의 정의는 대개 신학적 이해와 관계 있다고 봅니다. 저 같은 경우, 설교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부르시고 자기를 드러내시는 사건이 바로 설교라고 생각합니다.



    설교의 역사는 어쩌면 기독교의 역사와 같이 간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 지금 이 시대의 설교는 어떤 역사성을 가지고 변화되고 있습니까?

    현대 설교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대부분 70년대 이후의 설교를 지칭할 때입니다. 기독교 설교의 수 천년 역사와 오늘날 현대 설교와의 가장 큰 차이점을 지적한다면 강조점이 어디에 있는가라고 생각됩니다. 그전까지, 전통적인 설교는 무엇보다도 설교의 내용(Contents)을 강조했습니다. 청중이 어떻게 반응하는가, 어떻게 응답하는가는 그렇게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고 본문을 그대로 전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마치 탱크의 물을 이어 주는 수도 파이프처럼 성경의 내용을 그대로 이어 주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대부분을 차지한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 설교에서는 그 내용과 함께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좋은 내용도 결국 전달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단코 포기될 수 없는 부분은 내용이긴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전해질 수 있는가가 간과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리고 가깝게는 17세기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이뤄진 기독교적인 설교는 개신교 설교의 틀을 형성하게 됩니다. 계몽주의가 인간의 이성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설교 역시 명제적으로 설교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연히 교리적인 설교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논리적 설교, 이성에 고착된 설교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에 초기 선교사들 역시 그 영향권 아래 있었기 때문에 한국교회의 설교도 명제적, 교리적인 설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구권은 300년, 한국교회는 100년 동안 설교의 역사는 전형적인 틀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데이빗 버트릭 같은 사람은 이같은 설교에 대해 ‘붙잡힌 음성’(Captive Voice)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논의가 70년대 이후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학자가 크래독(F. B. Craddock), 라우리(E. Lowry) 등 입니다. 그 중 크래독 같은 학자는 귀납법적인 설교를 강조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설교는 연역법적인 설교의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수사 드라마를 할 때, 주인공이 먼저 범인을 지적하는 형태입니다. 그리고 나서 왜 그가 범인인지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제시하는 형태가 연역법적인 설교입니다. 그런데 이런 설교는 청중에게 충분히 관심을 주지 못했습니다.

    연역적인 구조는 현대인들에게 흥미를 반감시키고 본문을 전달하는 데 심각한 장애를 안고 있었습니다. 또 대표적인 학자로 버트릭(D.Buttrick)이라는 학자가 있는데 그는 현상학적 전개식 설교 방법론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청중들이 어떻게 듣는가를 고민했습니다. 피아노 건반에 A코드를 치면 A코드의 소리가 나는 것처럼 청중들의 의식 속에 어떤 언어의 모드를 사용할 때, 의식의 변화가 일어나는가를 연구했던 것입니다.

    그는 청중들이 어떻게 메시지를 듣는가를 고려하여 설교를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일어나야 하는가라는 측면에서는 현상학적인 부분을 강조했고, 내용 전달면에서는 드라마와 같이 그 본문을 전개해야 한다는 면을 강조해서 결국 ‘현상학적 전개’라는 말을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실제 목회현장에서도 그런 학문적인 연구가 접목될 수 있을까요?

    한국교회에서는 조금 생소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최근에 설교학을 연구하고 돌아오신 분들이 새롭게 이런 연구에 접근하고 있고, 새로운 설교학의 틀을 어떻게 한국교회에 접목시킬 수 있을지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설교 클리닉이라고 하는 형태의 세미나를 통해 설교를 창조적으로 계발하는 데 구체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구교회는 설교학을 자기들의 상황에 맞게 오랜 시절 동안 정립해 왔지만, 우리가 사역하는 곳인 한국교회는 어차피 한글로 설교해야 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서구교회의 이론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의 역사에서 볼 때 전통적으로 가져온 설교의 형식 가운데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세계 어느 교회 설교자라도 설교를 잘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한국교회를 보면 세계 어느 교회 목회자와 비교할 수 없는 뜨거운 설교의 열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한국교회의 설교 형태를 보면 주로 주제설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70년대 시작된 강해설교가 80년대 이후 꽃을 피웠어요. 주제설교, 대지설교 등에는 설교의 열망, 설교자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었던 시대의 방식이었습니다. 설교자에 대해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분이라는 인식이 저변에 확보됐던 과거에는 주제설교라는 특징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설교에 대한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열망은 크고 놀라왔고, 설교의 영광을 맛본 시대였다고도 말할 수 있는데 사회는 이제 다양화되고 놀랍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설교가 교양과 지식의 통로로 사람들에게 인식됐지만 이제는 목사님의 설교가 인터넷과 방송등의 정보매체를 통해 비교되기 때문에 교인들은 분별하면서 듣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청중들이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는 설교를 만족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선교 2세기를 지나면서 이제 논리적 설교에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설교가 성경과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전해는 방식으로 이어 왔다면 이제는 말씀을 내가 경험하는 구조로 변화를 이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금이야말로 목회자들이 설교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설교에 대한 연구라는 말을 하면 대개 이번 주 설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일 경우가 많은데, 지금은 매주일을 위한 설교 준비가 아니라 설교함 자체를 좀더 깊이 있게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한국교회에서 가장 시급한 설교의 과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우선적으로 목회자들이 설교의 신학적인 측면에 있어서 좀더 튼튼한 기초를 다져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리츨(D. Ritschl)이라는 학자가 말했듯 오늘날 설교의 문제점은 ‘설교의 주체와 객체가 혼돈’된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을 말씀하게 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설교자의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주체인 하나님을 객체로 바꾸고 설교자가 주체가 되어 말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지만 실제 목회에서는 이런 것에 대한 혼돈을 종종 경험합니다.

    본문을 정확하게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가 좋아하는 한 절을 읽고서 본문과 관계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목회자 자신의 관심을 이야기하면서 성경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설교에서의 본문성(Textuality)을 회복하는 관점에서 성경해석학 등의 연구가 활발해지고 성숙해져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성경대로 설교하고자 결심은 했지만, 막상 말씀 자체를 설교하려고 하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 하는 목회자들이 주위에 있습니다. 그런 분들의 경우 어떻게 설교를 준비하면 좋겠습니까?

    일단 우리에게 설교 회수가 너무 많습니다. 설교를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 적으니까 설교준비를 많이 할 수 없습니다. 짧은 시간에 설교 준비를 하다보니 자기의 생각을 향해 먼저 달려가게 되고 성경의 본문에는 집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생명을 걸고 확보해야 하는 것은 설교의 준비를 위한 시간이라고 봅니다. 물론 목사님들이 심방과 상담과 다른 일들도 합니다만 목회사역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설교 사역이라고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점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의 투자라고 봅니다.

    그리고 신학교에서 배운대로 설교하면 교회가 부흥이 안 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신학교에서 배운 것은 그대로 써먹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 원리를 자기의 목회에 지속적으로 적용하라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설교학을 공부할 때였는데 학기 마지막 시간에 교수님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앞으로 졸업을 하고 나서도 설교학 개론서를 일년에 세 권은 꼭 읽으시기 바랍니다.” 무엇이든지 마찬가지이겠지만 설교의 기초에 충실하자라는 말씀이겠지요. 목사님들이 예화만 찾아 헤맬 것이 아니라 설교학의 원론적인 부분에 있어 많이 생각하고 본문을 파악하는 데 시간을 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성경연구 시간을 늘리자라고 이야기하면 성경 주해작업 시간을 늘린다는 의식보다는 정보나 예화 찾기에 시간을 늘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데 설교를 준비한다라고 했을 때 시간의 배분을 어떻게 하는 게 건강한 설교 준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설교의 구성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설교의 본문성(Textuality)이고 다른 하나는 준비된 내용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Orality or Communication)라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을 보면 이 두 가지 모두가 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본문성이 약하면 전달성이 약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설교준비한다고 하면서 자료 찾고, 예화 찾는 것을 설교준비라고 오해한다면 큰 문제입니다. 결국 본문성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면 설교는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성이 약해질 때 설교는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전달될 수 밖에 없고 말씀의 깊은 맛은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설교의 본문성을 확보하는 데 시간을 기울이고 그리고 난 다음 적절한 예화를 찾는데 나머지 시간을 기울인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목회자들이 설교를 잘 해야 겠다는 열망만 가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어떻게 잘 드러낼 것인가에 대한 열망도 함께 있어야 한다라고 봅니다.



    현대적인 이슈들을 어떻게 복음 안에서 정리해 주고 해답을 줄 것인가는 상당한 숙제라고 생각되는데 오늘날의 현대적 주제에 대해 과거의 말씀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낙태, 동성애, 환경 등의 문제들을 다루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우선은 이런 부분을 설명하는 기독교 윤리학 등의 교육을 통해 건강한 기독교 문화관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삶의 모든 분야를 기독교적으로 이해하고 어떻게 성경적으로 답변해야 하는가는 신학적인 기초에서만이 나온다고 봅니다.

    또한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라는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오늘날의 많은 문제에 대해서도 성경이 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의 내용을 정확하게 해석해 줄 수 있는 해석자의 모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점에서 설교자는 성경에 대한 해석자여야 할 뿐만 아니라 문화와 상황에 대한 해석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 사람의 목회자가 많은 설교를 하지만 그 주제는 10가지 이내로 줄어든다고 주장하기도합니다. 설교와 설교의 주제라는 것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한국교회가 대내적으로는 강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상당히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내적으로는 치유나 축복 같은 개인적인 차원이 많이 포함됩니다.

    개교회적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대외적으로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번 태풍으로 인한 수해가 심각한데 이것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맡기신 자연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하는 환경에 대한 관심이 나타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모습으로 볼 때 설교의 주제는 다양화되고 다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설교의 주제는 궁극적으로는 한 가지로 모아져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주제를 다루고 환경과 사회이슈를 다룬다고 해도 결국 모아져야 하는 주제는 복음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속에 최종적으로 남아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입니다. 한국 목회자들이 다뤄야 하는 주제의 영역은 더 넓어져야 하겠지만 이런 넓어진 주제가 또 하나의 센터로 모아져야 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중심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모든 설교는 그리스도 중심이어야 한다라고 말하면 어떤 목회자들은 상당한 부담감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힘든 본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더 큰 강박관념을 가지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가 적용될까요?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교회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선포(케리그마)적인 설교를 통해 교회에 모인 사람들을 교육하게 되었는데 모인 사람들에게는 바로 이 교육(디다케)적인 설교가 중요해졌습니다. 그런데 선포적인 설교는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예수님의 설교가 하나님나라에 대한 선포에 강조점을 두었다면, 제자들의 설교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초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복음적인 선포를 하는 듯하면서도 복음과 그리스도가 빠진 설교가 많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기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나라 선포라는 측면이 약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몇 문장을 말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음으로 새로워지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것을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복음적 설교,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의 모습이라고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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