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참된 길을 찾아서 2002-10-23 10:46:44 read : 4874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로마서 3장 9-18절 // 2002-10-20
어느 젊은 벤처회사 사장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너무나 가난한 환경서 자랐습니다. 10세 때 아버지가 아무 것도 남겨놓지 않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공부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자연히 학벌 배경도 없습니다. 낮에는 직장에 다니고 겨우 밤에 야간 공고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니 무슨 공부가 제대로 되었겠습니까. 그렇게 3년을 직장생활 하다가 퇴직을 했습니다. 그때 퇴직금 50만원을 받아서 그것으로 가게를 얻었습니다. 그때부터 사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10여 년 만에 사업이 대성해서 정부가 인정하는 벤처기업인으로 선정되었고 올해는 코스닥시장에 등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10여 년 만에 사업규모가 1천억 규모의 사업으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이분에게 "왜 사업을 시작했는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의외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주일을 내 마음대로 지키고 교회학교 교사를 마음껏 하기 위해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까 주일날도 출근해서 예배에 출석을 못하고 그때마다 아이들을 교회에 맡기고 출근하는데 생각해 보니까 안되겠다 싶어서 자유롭게 예배드리고 교회학교 교사를 마음껏 하기 위해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할 때 그 동기가 참 중요합니다. "왜 이 일을 하게 되었는가" 하고 물었을 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동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 동기가 분명하고 자신이 있으면 이미 반은 성공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참 길을 찾는 다는 것은 쉽게 찾아질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서 사십니까라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살기는 살되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를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아가는 삶의 동기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참되게 사는 인생 길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참된 길을 찾으려면,
첫째로 소망을 잃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미국에서 1861년부터 1865년까지 약 4년 동안 남북전쟁이 있었습니다. 전쟁이 휩쓸고 간 뒤 버지니아 마을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학교들도 모두 폐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윌리엄 대학교도 폐교가 되었습니다. 학생도 떠나고 교수도 떠나고, 학교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전 9시만 되면 이 학교에서 "덩그렁 덩그렁" 하는 종소리가 났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학교의 교장인 이웰이 남아서 공부하는 시간을 알리는 종을 쳤던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습니다. 학생도 선생도 없는 폐교된 학교에서 마치 학교가 운영되고 있는 것처럼 왜 종을 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웰은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어려울 때일수록 교육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끝까지 학교에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텅 비어 있던 학교에 학생이 한 명 두 명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학교는 어느덧 학생들로 가득 차고 좋은 선생들도 오게 되었습니다. 전후 7년 동안이나 종만 울리던 학교가 나중에는 좋은 대학이 되었습니다. 한 교장의 믿음과 소망이 결국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한 것입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말하기를, '성공의 비결은 전 생애를 통해서 소망을 잃지 않는 데에 있다'고 했습니다. 절망하지 않고 반드시 소망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끝까지 소망을 붙든 사람은 성공하지만, 도중에 소망을 놓친 사람은 실패하는 것입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소망을 "에스페라(esperar)"라고 합니다. 그 뜻은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마야족들은 소망을 "무엇에 걸려 있다"라고 말합니다. 즉 소망은 하나님을 기다리고 하나님께 나의 생명을 걸어 놓고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사는 사람은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임종을 앞둔 인디언 추장이 세 아들을 불러 놓고 "이제 내 후계자를 결정해야겠다. 너희들은 저 산 위로 올라가 가장 멋진 선물을 한 가지씩 구해 오도록 해라. 가장 훌륭한 선물을 가져온 자를 나의 후계자로 삼겠다."라고 했습니다. 며칠 후 첫째 아들은 산 정상 바위틈에서 자란 희귀한 꽃을 가져 왔습니다. 둘째 아들은 비바람에 깎인 희귀한 돌을 가져 왔습니다. 그런데 셋째는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셋째가 하는 말이 "저는 산꼭대기에서 산 너머에 펼쳐진 마을을 보았습니다. 푸른 초장, 수정 같은 호수, 저는 그 마을을 아버지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추장은 "네가 바로 우리 부족의 추장이야"라며 덥석 손을 잡았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힘든 일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지친 일이 있습니까? 사방이 꽉 막힌 것 같은 일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소망은 기쁨을 주고 힘을 주고 용기를 줍니다. 큰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사업도, 인생도, 교회도, 가정도 소망을 가지고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헛된 세상의 소망을 부여잡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시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둘째로 자기를 부인하는 자에게 참 길이 열립니다
경상도 할머니 한 분이 미국에 놀러 갔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오랫동안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미국 할머니 한 분이 옆에 왔습니다. 이때 버스가 멀리서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경상도 할머니는'왔데이~'하면서 버스가 오는 것을 알렸습니다. 이에 미국 할머니는'What day? 음 무슨 요일이냐구?' 라고 알아들으면서'Monday!'라고 대답했습니다. 경상도 할머니는'아니 버스도 모르나?'하면서'뻐스데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또 미국 할머니는'Birthday!아 오늘이 생일이라구. 축하해 줘야지'하면서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말을 많이 한다고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말이 아니라 행함입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행할 것을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좇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명예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력이나, 자신이 지닌 사회적 위치 등을 부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아가야 합니다.
서울에 명성교회라는 큰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에는 사회 각계 각층 인사들이 많이 출석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주일날 남들보다 일찍 나와 주차요원 완장을 차고 교회 주차장을 관리하며 지도하는 사람이 있답니다. 그런데 바로 그분이 군대에서 아주 계급이 높은 장군이랍니다. 장군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기를 부인하고 주일날 아침 일찍이 나와 성도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참으로 보기에 좋고 많은 성도들에게 본이 되고 있답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자기 중심의 생활을 청산하고 철저히 하나님 중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즉 삶의 순간 순간에 자기를 부정하고 하나님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베스트셀러였던 가시고기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조창연씨가 쓴 소설인데, 아버지가 아들을 희생적으로 사랑하는 부성애를 그린 소설입니다. 가시고기는 조그만 민물고기인데, 특이한 점은 암놈이 알을 낳을 때에 바위틈에 알을 낳고는 그냥 가버린다고 합니다. 보통 짐승들은 암놈이 새끼를 낳은 다음에 잘 보살피는데, 가시고기는 알을 놓고는 그냥 가버린답니다. 그러면 숫놈이 그것을 돌보고 보호합니다. 적이 와서 자기의 새끼를 침공하면 목숨을 걸고 자기의 새끼를 보호합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 새끼들을 정성스레 키웁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자기 새끼들을 키우면, 새끼들이 모두 자라 자기의 갈 길을 가버립니다. 그러면 아빠 가시고기는 힘이 다 빠져서 돌 틈에 머리를 박고 죽어버리고 만다고 합니다. 가시고기는 이렇게 자기 새끼들을 위해서 전적으로 희생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렇듯 자기를 부정하고 희생할 때 구원받을 수 있고, 십자가를 질 때에 남의 생명을 구원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예전에는 소아마비 병이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숄크 박사가 소아마비 걸린 아이들을 위해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이 이렇게 불행해서 되겠는가 라고 밤을 새워가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연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만들어낸 것이 ‘숄크 백신’인데 소아마비 퇴치약 입니다. 숄크박사의 기도와 희생으로 참된 길이 열려진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자기를 부인하고 교만과 우월감을 제거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갈 때 참된 길이 열려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회사 신우회의 초청을 받아 설교를 하러 갔답니다. 설교를 다 끝마치고 회장에게 그 회사에 다니는 자기 교회 장로님에 대하여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신우회 회장이 하시는 말이 "그 부장님도 교회 다녀요"라고 반문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장로님이었지만 회사에서는 자신이 교회에 다니는 것 자체도 알리지 않았고 그런 냄새를 풍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가끔 보면 교회에 다니기는 다니되 예수 믿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오면서 성경을 노란 봉투에 넣고 옵니다. 성경 들고 가는 것이 다른 사람이 보면 부끄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것은 조금은 발전된 것입니다. 부끄러워 아예 성경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사는 것이 부끄러운 일입니까? 사람이 부끄러워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옷을 입고 갑니다. 다른 사람에 비하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자랑합니다. 금이빨을 하면 이를 들어내 놓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손에 귀한 반지를 끼고 있으면 반지 낀 손가락으로 지시하고 싶은 것입니다. 좋은 집을 사면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부끄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막 9:26절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주님을 부끄러워하면 주님도 오실 때 외면하신다고 했습니다. 예수 이름을 앞세우고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 이름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이름을 부끄러워한다면 주님도 나를 부끄러워 할 것입니다. 시편 91:14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예수 이름을 부끄러워 아니하고 자랑스럽게 내세울 때 하나님께서 인생의 참된 길을 열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참 길을 찾는 사람은 소망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하며,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야하며, 예수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