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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받는 자 보다 베푸는 자가 행복 합니다
    2002-09-24 10:52:04   read : 4395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 9. 25 // 사도행전20:31-35절

    육군 사관학교에 가보면 교정에 동상을 세우고 기념하는 한 인물이 있습니다. 계급이 높아서 기념하는 것이 아니요, 참모 총장을 지냈기 때문에 기념하는 것도 아니랍니다. 여러분, 군인이라면 저마다 별을 흠모하고 그 별을 자신의 어깨에 달아는 보는 것을 목표로 삼고 노력하지만 훗날 그 별을 기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번쩍이는 별을 단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육군 사관학교 교정에 세워진 동상은 육군 소령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입니다, 거기에는 그의 숭고한 정신을 우러러 보는 강재구 소령입니다. 계급이 높아서 기념하는 것이 아니요, 인물이 잘나서 기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의 인격이 위대하고 영원히 남을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고 강재구 소령 그는 자신의 귀한 몸.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그 귀한 한 몸을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발에 부었던 마리아 같이, 그의 몸이라는 옥합을 깨뜨려 피를 쏟아 많은 부하들의 생명을 살렸기 때문입니다. 월남 파병 직전 훈련 중 부하가 수류탄을 오발하여 폭발이 되면 전 중대가 완전히 못살될 것을 생각해서 자기 몸을 덮쳐 자기 하나가 죽어 온 부하를 살렸으니 그의 생이 위대하여 후대에까지 그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옛 조상들로부터 함께 즐거워하는 명절중에 추석이 있습니다. 하늘은 그 없이 맑고 시원한 바람이 불고 곡식이 있어 향기롭고 풍요하며 밤에는 하늘높이 둥근달이 떠 있어 가난과 고생, 아픔과 설음, 타향 살이의 시름을 달래면서 야릇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명절이 바로 추석입니다.

    그 즐거운 명절에 조상의 무덤을 찾아 갑니다. 즐거운 명절에 무덤을 찾는다! 참으로 의미깊은 전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추석명절은 우리에게 두 가지 깊은 감회를 던져 줍니다. 조상의 무덤을 찾을 때 인생의 무상함과 허무를 느끼게 합니다. 또 하나는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참으로 인생은 무상하고 허무합니다. 그토록 한 많은 세월이 가노라면 잘난 사람 못난 사람 할 것 없이 인생은 무덤을 남긴 채 인생의 무대에서 사라집니다. 그 어떤 사람도 흘러 가는 세월속에서 인생의 죽음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도 갑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여러분의 무덤을 찾아 왔을 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자기의 것을 주면서 사는 부자가 있고, 남의 것을 얻어 먹고 사는 거지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것을 아무에게도 주지 않고 움켜 쥐고만 살아가는 부자도 있고,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강도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모름지기 부자란 많이 가졌다고 해서 부자는 아닙니다.
    반면에 가진 것이 없다고 해서 가난한 것만도 아닙니다.
    가진 것은 많은데 일생 동안 남에게 준 것이 없는 가난한 자가 있고, 가난하게 살면서도 많이 주고 간 부자가 있습니다. 부자란 소유한 것이 많아서 부자가 아니라 줄 것이 있어야 부자입니다.

    거지도 먹을 것이 없어서 얻어 먹으려는 거지와 마음 속에 항상 만족이 없어서 남의 것을 가지려는 마음의 거지가 있습니다. 무조건 하고 받아 먹기를 바라는 사람. 그것으로 만족하게 살다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추성명절에 훗날 여러분의 후손들이 무덤을 찾아와 조상을 그리는 마음으로 성묘하며 기도들릴 때 그들의 마음 속에 어떤 모습의 조상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십니까?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이 있다하여, 받는 것 보다 베푸는 자가 행복하다는 성서의 말씀을 따라 저 세상 살때에 언제나 아름답게 베풀면서 살았던 믿음의 조상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까? 아니면 베풀지도 못하고 받는 것으로일생을 살았던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까?.

    1931년 남궁억 선생이 연희 전문하교 졸업식에서 축사로 남긴 말입니다.“오늘 아침 내가 여러분을 보려고‘놀미재’라는 높은 고개를 넘어왔습니다. 간밤의 많은 눈으로 길이 모두 없어져 앞서 간 발자국만 따라 가다가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본래의 길을 찾아내어 눈을 옆으로 치우며 걸어왔습니다. 그래야 내 뒤에 오는 사람도 내 발자국을 따라 바른 길을 찾아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간 발자국이라고 생각없이 따라서도 안되고, 그보다도 내 발자국을 따라오는 사람이 내 뒤에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문을 나서는 여러분의 발길의 방향은 어디입니까?. 교육의 혜택도, 문화의 혜택도 못받고 헐벋고 굶주린 동족을 구원하러 내 고장의 농촌으로 발길을 재촉하지 않으렵니까?. 우리는 강한 자에게 붙어서 부스러기 권세에 만족할 것이 아니요, 약한 자를 도와 같이 강해지는 것이 우리의 과업이요,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 또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내가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20:35).

    바울은 예수님께 직접 부름받은 위대한 사도입니다.
    그는 평소 소원인 로마 전도를 위하여 서둘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의 갈길이 바빠 그가 개척하여 설립한 에베소 교회에 들릴만한 시간이 없어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밀레도로 청하여 고별설교를 한 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분문입니다. 먼 훗날 저와 여러분들도 자녀들에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는 복이 있고 행복임을 전해줄 수 있는 조상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영국의 문호 세익스피어는 그의 명작‘베니스의 상인’중에서“주고 받는 일은 동시에 축복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받는 일에는 익숙해 있고 주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고 응당 받는 것이 제일인 줄 알고 살아왔습니다.

    ‘주는 자는 어리석고 받는 자는 행운아 이다’
    이런 생각은 매우 잘못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생각으로 가득차 있으면 평생 거지가 됩니다.
    훗날 자녀들에게 거지 인생을 살았던 조상으로 기억되기 바랍니까?. 인생은 서로가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습니다.
    있는 것을 주고 훗날에 없는 것을 받습니다. 남는 것을 주고 모자라는 것을 받습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받고 주는 것은 동시에 축복이 됩니다.
    예수님께서“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참으로 아름답고 귀한 교훈입니다. 우리 모두 훗날 우리의 자녀들에게 주는 자로서의 행복이 어떤 것인가를 기억되게 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왜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이 됩니까?
    우리는 받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결코 끊을 수 없는 부모님의 크나큰 정과 피를 이어 받았습니다. 그래서 부정모혈이라 합니다. 양육과 사랑과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웃과 사회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넓고 높고 깊은 그 크신 사랑의 은혜를 받았습니다.우리가 받지 않고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지고 태어난 것은 없습니다. 빈손들고 온 자들이 아닙니까? 내가 오늘 누리고 있는 것 중에 선인들로부터 물려받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두가 물려받은 것들입니다.

    “여자들은 울면서도 거울을 쳐다본다”고 합니다.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것은 비단 여자들만의 마음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모든 여성들이 이정도의 고운 얼굴을 지닌 수 있었던 것은‘제너가’종두법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가 종두법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우리 홍역으로 우리의 얼굴이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우리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아크라이트라는 사람 덕분 이라고 합니다. 그가 무엇인가 연구하다가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동안 그의 부인은 장래가 보이지 않는다면 이혼하고 가버렸습니다. 그는 인생의 파산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아내를 보내고 쓸쓸함을 이겨야 했습니다. 그는 혼자서 찬바람이 부는 가정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는 추위를 이기기 위해 연구하다가 기어코 방적기계를 발명하여 오늘 우리에게 좋은 옷을 입을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라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받은 자가 그 은혜를 갚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복된 일입니다.
    2. 이제“준다”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준다’는 말의 의미는 구제금을 낸다는 정도의 좁은 의미의 말만은 아닙니다. 억지로 내는 수해의연금이나 기부금은 피차에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마지 못하여 내는 자선금은 오히려 복이 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혹히 체면 때문에 내는 헌금이라면 그것은 정성스런 헌금과는 구별되어야 마땅합니다.

    성경에서 ‘주다’는 말에는 몇가지 뜻이 깊은 뜻이 있다
    (1) 자기 희생이 전제된 의미의 말입니다.
    정성스럽게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 드리기 위해 자기가 누려야 할 것은 누리지 못하고 정성을 다하여 드립니다. 주님께 더 많이 바치기 위해 아낍니다.그러기에 주는 자가 더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2) 영향력을 끼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언행심사가 중요합니다. 진실한 성도는 무언의 전도자입니다. 변화받은 성도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 됩니다. 그러나 이름만의 성도는 거치는 돌이 되며. 거짓된 신자는 오히려 주님을 욕되게 합니다.

    마음씨 착한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이웃의 전도로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어느날 새 신을 신고 교회에 갔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치고 나와보니 신장에 넣어둔 자기의 새 신은 없어지고 헌신이 남아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다음 주일 날 잘못 신고 간 사람이 가지고 오겠지 기대하고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새 신은 몇주일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의 기대가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거짓 말 하지 않고 다 착하고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양심이 나쁜 사람도 있구나”생각하면서 교회출석을 그치고 말았답니다.

    (3) 남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남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크게는 위대한 이름과 업적을 남기고. 작게는 발자국을 남깁니다. 후세의 사람들은 선인들이 무엇을 남겼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을 평가합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무엇을 남기고 갔느냐, 무엇을 주고 갔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일상의 삶은 무엇인가 남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프로 가운데 옛 친구나 스승을 찾아 주는 프로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보니 주로 학적부를 찾아 추적하고 동사무소에 가서 동적부 통해 찾고자 하는 사람을 찾는 것을 보았습니다.

    학생들은 학적부를 남깁니다, 거기에는 출석과 성적이 기록되고, 주소및 기타 여러 가지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사무소에는 주민등록부가 있습니다.
    인생인란 무엇인가를 남기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주고 받으며 사는 것, 이것이 인생입니다. 무엇인가를 뿌렸다가 때가 되면 거두는 것 이것이 인생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대로 거둡니다(갈6:7)

    남기는 것도 주는 것이며 영향을 끼치는 것도 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짧은 생애를 살면서도 이런 저런 모양으로 많은 것을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주면서, 즉 남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먼 훗날 여러분의 자녀들이 추성명절에 무덤에 찾아 와서 나의 아버지 어머니는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남겨주셨는가를 분명하게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3. 받은 자임을 알아야 주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는 받아 본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생각하기를 받는 것은 적고 주는 것은 많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시면 받은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받은 것과 준 것을 비교해보면 어느 것이 많습니까? 사실은 누구든지 받아 온 것이 더 큽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사랑 긴 자리 마른자리 길러준 사랑은 그 무엇으로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받은 것을 받아야 감사가 따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아침 우리에게 조용한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너는 얼마나 받았고 얼마나 주면서 살고 있느냐 말입니다. 우리는 받은 것이 너무나 많고,너무나 큽니다. 나의 평생에 다 갚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받은 것에 대하여 감사할 줄 알아야 주고자 하는 마음도 생겨납니다. 아직도 받은 것이 없습니까? 더 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까? 어느만큼 받아야 만족하시렵니까? 죽는 날까지 복복 하면서 죽어야 할 일입니까?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는 주는 자로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조상의 무덤을 찾는 후손들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슈바이처 박사는“이 지구상에서 찬란한 영광을 받는 사람은 그만치 역사에 많이 주고 간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주고 가는 사람만이 남는 것이요, 그리고 참으로 행복을 누리는 자입니다.

    5. 받은 것을 깨닫고 주는 자가 될 때 비로서 부자가 된 것입니다.
    물질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해서 부자가 아닙니다. 좋은 일에 많이 쓰는 자가 부자입니다. 아무리 가졌어도 좋은 일에 쓰지 못하고 가는 자는 자기의 것이 아니요 그는 결코 부자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드릴 것이 없고 이웃을 위해 쓸 것이 없다면 이는 가난한 자일 뿐입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물질을 다스리면 가장 신실한 충복이 되지만 물질을 다스리지 못하면 가장 잔인한 폭군이 된다”줄 수 있는 자유가 없는 사람은 물질을 갖는 것 자체가 불행입니다. 사람이 움켜쥐고만 살면 그것 때문에 명대로 못살고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울게 합니다. 그런 사람은 차라리 안가졌으면 좋았을 것을 가진 것이 도리어 그에게 불행입니다.

    5. 무엇을 주고 가시렵니까?(남기고 갈 것이 무엇인가)
    인류의 시조 아담은 우리에게 불순종과 죄만 남겨주고 갔습니다. 고통과 슬픔과 죽음을 남겨주었습니다. 가인은 우리에게 믿음 없는 형식적인 예배와 첫 살인자라는 이름만 남기고 갔습니다. 가룻 유다는 영원히 저주받을 배은망덕자란 이름을 남기고 갔습니다.

    (1) 물질을 남기고 가는 자들도 있습니다.
    미국의 기업가 굴드(Jay Gouldj)는 가난하게 자란 것이 한이 되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았습니다. 매점매석, 부정주식발행, 돈을 벌기 위해 친구까지 네 명을 자살케 하였고 이 회사 저 회사를 끌여들여 결국은 다른 회사를 넘어지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가 모은 재산이 4천만불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평생 자선사업을 위하여 돈뭉치 한번 써보지 못하고 그 는 돈을 모아놓고 죽었습니다.
    반면에‘지라드’(Stephen Girad)는 자녀도 없었고 아내도 일찍 죽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낙은 없었으나 소원이 있었습니다.“세계에서 제일 큰 고아원을 세우고 싶다” 이것이 그의 낙이요 보람이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일하여 200백만불을 모았습니다. 그 돈으로 사람들이 눈여겨 보지않던 ‘펜실베니아 주’에 땅을 사놓았습니다.

    그가 죽으면서 유언하기를“이 돈으로 두개의 고아원을 세워라 하나는 나를 퀴워준 ‘뉴올라언즈’에 세우고, 다른 하나는 내가 살던‘펜실베니아’에 세우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 놓은 산이 후에 석탄과 철이 나는 광산이 되어, 세게에서 제일 큰 고아원은 몇천먼불의 재산이 되어 아무리 사업을 확충해도 돈이 모자라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 다 돈을 남기고 갔으나 그 가치는 달랐습니다.

    (2) 정신이나 사상을 주고간 사람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위대한 믿음과 순종의 모습을 남겼으며. 모세는 조국에 대한 깊은 사랑을 남기고 갔으며, 스데반은 순교의 정신을 남기고 갔습니다. 죠지 위싱턴은 위대한 미국의 정신을. 레오날드 다빈치는 불후의 명화를 남겼으며, 헨델은 명곡을 남기고 갔습니다. 헬렌켈러는 삼중고의 고통을 이겨내는 불굴의 정신을 남겼다.

    (3) 자신의 몸을 주고 간 사람도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난미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롬12:1)고 하였습니다.

    스코트랜드의 어느 교회에서 낮 예배 시간에 선교사업을 위하여 헌금을 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간절했습니다.“아직도 아프리카에는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곳은 미개한 곳입니다. 심지어는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종들도 있습니다. 이들도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도 복음이 증거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일을 위해서 세가지를 할 수 있습니다.
    1) 내가 가는 길입니다
    2) 다른 사람을 보낼 수 있습니다.
    3) 간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가지 중에 무엇을 하겠습니까? 많은 성도님들이 목사님의 설교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모두가 정성스럽게 선교헌금을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맨 뒤에 서 있던 한 소년이 헌금궤 위에 올라가 앉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소년을 꾸짖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소년은 눈을 깜박이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에게 바칠 돈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 자신을 아프리카를 위하여 몽땅 바치겠습니다”
    ‘목사님은 눈물을 흘리는 서년을 만났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예, 저는 리빙스턴입니다”“지금 몇 살이냐?”“네 열두살입니다”
    그가 바로“검은 대륙의 아버지”로 불리웠던 바로‘리빙스턴’입니다. 그는 약속대로 아프리카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바친 후 죽은 유해로 고국에 돌아와 ‘웨스트민스터’ 교회당 묘지에 안장된 것입니다. 그는 운명하기 직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나의 예수님, 나의 왕, 나의 생명, 나의 전체시여, 나는 다시 한번 내 생애를 당신께 드리나이다”

    얼마나 감동적인 이야기입니까? 우리는 그를 위대한 사람이라고 흠모합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지금도 빛나고 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은 옳은 말입니다. 사람이 죽어 무덤에 묻히면. 성도(직분) 아무개라는 이름으로 비석을 세웁니다. 저는 그 비석에는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의 살았던 흔적도 새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흔적을 남기시기를 원하십니까?. 훗날 자녀들이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십니까?

    6. 주는 것은 풍요로운 삶의 비결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주라, 그러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

    사랑이 있는 곳에 행복이 있고 즐거움이 있습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주고 또 주어도 주고 싶은 마음이 사랑입니다.
    주려고 하는 자에게 기쁨이 있습니다. 받으려만 하기에 불평이 있고 원망이 있습니다. 받기만 하면 자유가 없습니다. 주려는 자들이 모인 곳이 천국입니다. 서로 받으려고 하는 곳은 지옥입니다.

    주다가 망하는 자가 없어도 받다가 망한 자는 많습니다.
    때로는 알면서 받고 모르고 받았는데 뇌물이 되어 쇠고랑차기도 합니다. 그러니 받는 것만이 좋은 것 아닙니다. 주어야 복입니다. 주님 말씀을 기억합시다“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실 재산을 물려주는 일을 아무나 못합니다. 사업을 물려주는 것도 큰 일입니다. 그러나 정신을 주고 가는 것은 더 큰 일입니다. 몸을 바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들 보다 더 중요하고 더 절실하고 더 축복스러운 것은 믿음을 전해주고 복음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돈이 귀하지만 생명 보다는 못합니다. 사업이 귀하지만 구원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예수믿고 구원받는 일은 이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입니다. 주님은 이 일 때문에 오셨다가 그 일을 이루시고 가셨습니다.

    머지 않는 날에 우리도 가야 합니다. 우리가 부름받은 것은 이 일을 위하여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옥포교회가 이땅 위에 세워진 것도 이 일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헌신과 선교를 다짐하는 결의가 새롭기를 당부합니다.

    주고 주어도 아쉬울 것 없는 사랑, 후회도 실망도 없는 보람있는 일은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무수히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받을려고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어리석은 인생으로 살지 말고 베풀다가 가는 성숙한 신앙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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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믿음이 하락세인가, 상종가인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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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운명에서 새로운 축복의 운명으로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베다니에 오셔서 역사하신 예수님
    받는 자 보다 베푸는 자가 행복 합니다
    인생 풍랑은 누구에게나 어디든지 있습니다
    기적의 역사는 믿음으로 이루어 집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하나님은 상한 심령의 제사를 원하십니다
    나의 가는 길을 여호와께 맡기자
    “우리의 여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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