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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월하는 진리의 능력
    2002-09-24 10:58:52   read : 4520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년 9월 15일 // 로마서 4 : 18-22

    롬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롬 4:19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롬 4: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롬 4: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롬 4:22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간암에 걸려 사형선고를 받은 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250명된 교회에 부임하여 2000명으로 성장하도록 하기까지 열심히 기도하고 성도를 섬기느라 정신 없이 자신의 몸을 살필 겨를도 없었던 탓이었습니다. 암세포가 너무 퍼져 수술도 불가능하다고 하시면서 의사 선생님은 환자가 듣지 못하는 줄 알고 사모님에게 임종을 준비하라고 말을 합니다. 이제 삼일을 넘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기막힌 선고를 받고 난 후 목사님의 뇌리 속에 먼저 두 딸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평소에 여유를 가지고 한번도 제대로 놀아주지 못한 아빠가 이렇게 떠나게 되다니 눈물겹도록 두 딸이 보고 싶어하는데 마침 두 딸들이 병실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 아빠 죽으면 안 돼, 아빠가 죽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 아빠 꼭 살아야 해."
    두 딸은 울기만 했고,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도 울고 본인도 울기만 하였습니다.

    이렇게 죽는 것은 너무 허무하였습니다. 너무 젊기에 아직은 해야 할 일도 많고 이제 막 성장하는 교회를 더 성장하게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니까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갑자기 솟구치기 시작합니다. '나는 살아야만 한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다짐합니다. '하나님 기적을 베풀어주옵소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만인이 알게 하셔서 능력 있게 복음이 전파되게 하소서.'

    그러나 한편으로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 도저히 회복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또 다시 절망하고, 슬픔이 저미어 옵니다. 죽음과 생명 사이에서, 지금 당면한 죽음이라는 사실과 그 사실을 뛰어넘어 역사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사이에 절망과 소망이 교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임종을 준비할 수밖에 없도록 초라해진 자신, 의사 선생님은 치료를 포기하고 하얀 까운을 덮어 버렸습니다. 그것이 그가 당한 현실이었습니다. 그가 당한 사실은 간암이라는 것, 더 이상 수술 할 수 없을 정도로 암세포가 퍼져 버렸다는 것, 사흘후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 이것이 그 목사님이 직면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이 그에게 전부가 아님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뛰어넘는 생명 적 진리를 붙들었습니다. 갑자기 그의 심령 속에 새겨진 진리의 말씀이 확실하고 분명하게 떠오릅니다. "예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도다." 그 말씀이 믿어졌습니다. 그래서 큰 소리로 그 진리의 말씀을 고백해 봅니다. 그런데 아무리 큰 소리로 고백을 하고 또 고백을 해도 입은 열리지 않습니다. 큰 소리로 소리내어 부르짖고자 하나 누군가가 입을 막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 안에 역사 하시는 성령께서는 고백하도록 돕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입을 붙들고 꼼짝을 못하게 합니다. 한 동안 영적인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동안 사투를 벌인 끝에 드디어 입술이 벌어지고 그가 확신하고 믿는 진리가 소리되어 선포됩니다. "예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도다." "내 질병은 예수님께서 가져가셨다." 수십 번, 수백 번을 선포하고 선포하였더니 거짓말 같이 그는 병에서 놓임을 받게 되고 깨끗하게 고침을 받았습니다. 사실을 뛰어넘는 진리를 믿음으로 얻은 놀라운 기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분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섬기는 교회를 세계 10 대 교회로 성장시키셨고 한국의 복음화를 위해서 열정을 가지고 헌신하시고 계시는 목사님이십니다.

    간암에 걸려 있는 것, 더 이상 수술 할 수 없을 정도로 암세포가 확산되어진 것, 사흘후면 이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삶 속에서 언제나 사실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사실을 초월하여 역사 하는 진리가 있음을 믿었습니다. 바로 그 진리는 "예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나의 병을 짊어지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바로 기막힌 죽음의 현실 속에서, 사실을 초월하는 진리를 붙들었습니다. 진리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믿음이 무엇일까?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이 무엇일까요? 누구든지 보이는 것, 바랄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이 믿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 이성과 내 상식과 내 경험과 내가 직면한 사실을 초월한 신실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니" (히11:1-2)

    사실을 사실대로 고백하는 것, 현실을 현실대로 인식하는 것, 상황을 상황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하나의 이성적 판단은 될 수 있지만 믿음의 결단은 아닙니다. 무엇이 믿음입니까?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지만 우리의 이성과 사실과 상식을 뛰어넘어 분명히 실재하는 영원한 말씀, 진리를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은 만져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무형적 존재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실재하는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러기에 그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 진리를 믿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

    평범한 사람들과 믿음의 사람들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보통 사람들은 사실만을 봅니다. 사실의 범주 안에서 생각하고 결정하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사실 저 뒤편에 있는 진리를 믿습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일상적 삶 속에서 항상 사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러한 사실들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경우에는 여러분의 결혼생활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상황일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지금 재정적으로 파산 상태를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여러분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일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여러분의 자녀들이 여러분의 가르침에 반기를 들고 등을 돌려버린 것일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실업 상태가 오래 지속되어서 어느 직장에서도 여러분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살아가면서 맞닥뜨려 처리해야 할 어렵고 도전적인 사실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시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항상 사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만이 우리에게 전부가 아니라 진리가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실은 우리에게 엄청난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은 여러분의 삶, 자녀, 직장, 건강 사역등이 절망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는 불가능이 없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너를 치료할 수 있다, 나는 너를 회복할 수 있다. 나는 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며, 네 절망이 소망이 되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성경-진리를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

    1. 진리는 현실을 초월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읽고 묵상하는 성경은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한 다음, 그 이면에 있는 능력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어떤 상황 환경보다 더 위대하신 하나님을 바라본 사람들의 사건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무엘 상 17장을 보시면 다윗은 일찌기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으나 사울에게 죽임을 당하는 상황을 맞이하여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살지 못하여 적국의 땅에서 미치광이를 흉내내며 살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다윗이 당한 현실은 쫓기는 삶입니다. 사울에게 죽임을 당하는 상황입니다. 적국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자기를 숨기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속에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과거에 사자의 발톱에서 건져내신 하나님께서 능히 이 기막힌 위경에서도 건져내실 것을 믿고 나아갔습니다. 그 믿음이 결국은 다윗으로 하여금 통일된 이스라엘의 성군이 되게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시면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훈련되고 정예화된 간수가 그를 지키고 있습니다. 착고에 매여서 꼼짝을 못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당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에 지배를 받지 않고 사실 뒤에서 역사 하시는 진리,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옥중에서 그는 기도하고 옥중에서 기뻐하고 옥중에서 찬송을 합니다. 밤새도록 찬송을 합니다. 그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옥문이 열렸습니다. 간수가 벌벌 떨고 바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다 구원을 받아 빌립보 교회의 개척 멤버가 되는 역사가 벌어졌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우리의 최고의 지도자의 모델, 느헤미야가 당한 사실이 무엇입니까? 성문이 훼파되고 소화된 것입니다. 비전과 꿈을 잃어버리고 노예가 되어 비굴하게 살아가는 조국의 모습 이것이 느헤미야가 직면한 조국 이스라엘의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그 사실 저편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께 붙들렸습니다. 이 기막힌 사실 이면에 역사 하는 진리를 믿었습니다. 성전을 건축하여 주시고 이스라엘을 회복하여 주실 진리이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고 믿음으로 나아갔을 때 그는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성전은 건축되고 이스라엘은 회복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맹인 박사 강영우 박사가 직면한 사실은 그가 맹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처럼 좋은 조건에서 공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5년 늦게 중학교에 입학하여, 그것도 정상인의 학교가 아닌 맹인학교에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실에 갇혀서 생을 비관하거나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을 초월하여 역사 하시는 진리이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주어진 달란트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반드시 축복하리라 하시는 진리이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의 신실하심에 응답하시고 그를 선하게 인도하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소개하면서 우리에게 참된 믿음이 무엇인가를 깨우치고 있습니다. 무엇이 참된 믿음입니까? 1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 이 참된 믿음입니다. 충분히 이루어지는 것을 믿는 것,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믿는 것, 상식을 믿는 것 그것은 누구든지 믿을 수 있는 것이기에 참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인간의 상식과 경험과 이성으로는 믿을 수 없고,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이 참된 믿음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백세에 아들을 주리라 한 그 약속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100세에 아들을 낳는 것은 지극히 비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비현실적이요 비이성적입니다. 그것은 바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었기에 바랄 수 없는 중에 믿었습니다. 어떻게 백세에 아들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이신 하나님의 약속이기에 그는 확신을 가지고 소원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바로 하나님은 이와 같은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2. 진리는 상식을 초월합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쓰시기 어려운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상식을 내세우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늘 하는 말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래서 모험을 싫어합니다. 어떤 일을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서 전혀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상식주의자들이 많은 교회의 특징이 한가지 있는데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상식을 초월합니다. 상식에 제한을 받지 않는 진리를 믿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 안에는 항상 믿음의 역사가 가득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십니까? 상식의 사람이십니까? 교회는 상식의 공동체가 아니라 진리를 믿는 믿음의 공동체요, 그 믿음 속에 기적을 낳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 보시면 베드로를 부르시는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의 일등 어부 베드로 몇 시에 어느 지점에 어떤 고기가 있는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베드로, 그런데 하루는 그 탁월한 어부 베드로가 밤이 맞도록 그물을 내려고 한 마리의 고기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한계에 부딪힌 베드로에게 주님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말씀합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운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만큼 고기가 많이 잡힌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상식을 뛰어넘는 기적이었습니다.
    사실 고기가 많이 잡히려면 밤에 그물을 내려야 합니다. 새벽녘에는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새벽녘에 그물을 내리라고 하였습니다. 또 고기를 많이 잡으려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면 안 잡힙니다. 플랑크톤이 많이 있는 얕은 곳에 고기가 많이 있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한 것도 상식에 맞지 않는 명령입니다. 또 한가지 베드로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 가장 수용하기 힘든 부분은 지금 명령하는 예수는 목수였고 자기는 갈릴리 바닷가에서 일등어부였습니다. 고기잡이에 대해서 전혀 무식한 나사렛 예수가 일등 어부인 베드로에게 고기잡이를 명령하는 것이 전혀 상식에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날 한계에 부딪힌 베드로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그 상식을 뛰어넘어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결과가 나왔습니까?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진리는 상식을 초월하여 역사 하십니다.

    여러분! 어떤 사역을 할 때,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상식보다는 진리를 믿는 믿음으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공, 하늘 나라 책들에 기록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겠습니까? 가히 짐작 컨데 거기에는 오직 믿음의 사람들만이 기록되었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 장 히브리서 11장을 보십시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전부다 인간의 이성과 상식을 초월하여 진리를 믿는 믿음의 사람들임을 보면서 하늘나라의 책 속에도 믿음의 사람들만이 기록될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왜 위대합니까? 바로의 궁전에서 살기를 거부하고 고난받는 길을 택한 모세가 왜 위대합니까? 사람들의 조롱과 비웃음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산 위에서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든 노아가 왜 위대합니까? 그들에게 세상지식이 높아서 위대합니까? 권력이 있어서 위대합니까? 오직 사실을 초월한 진리, 상식을 초월한 진리를 믿는 믿음의 사람이기에 저들이 위대하고, 저들이 상식을 초월한 진리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한 사람들이기에 성경에 기록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생애가 풍성하기를 원하십니까? 차고 넘치는 삶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상식보다는 진리를 믿는 믿음에 귀를 기울이고 진리를 믿고 순종하십시오. 거기에 놀라운 기적과 축복의 삶이 있을 것입니다.

    3. 진리는 경험을 초월합니다.

    또 무슨 일을 하려면 경험을 들고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해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언제 해본 적 있는 일을 하라고 하십니까? 전혀 해보지 않은 일을, 미지의 땅을 믿음으로 나아가서 그 모든 것을 개척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경험을 중시하면 나도 모르게 형식 주의자가 됩니다. 주어진 순간을 경이롭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습니다. 진지하지 못합니다. 경험 우상주의에 빠지면 하나님의 말씀보다 경험을 더 중시하게 됩니다. 그래서 진리의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얼마 전에 재미있는 통계가 나와서 읽어보았습니다. 살아보고 결혼하겠다 해서 결혼 전에 젊은 남녀가 함께 얼마동안 계약을 하고 살았답니다. 그리고 나서 검증을 거치고 피차에 청문회를 다 거치고 이만하면 되었다. 판단되었을 때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살아본 경험을 가진 채 결혼해서 사는 사람이 전혀 살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보다 행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가 미국 여성 1만 천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보면 혼전 동거 부부가 동거경험이 없이 결혼한 부부보다 이혼율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5년 이상 동거한 커플의 70%는 결혼에 골인하지만 그 중 40%는 10년 내 이혼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동거한 적이 없는 부부의 경우 31%만 이혼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한복판에서 살아갈 때 상식과 경험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것을 무시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우리의 경험이나 상식은 오히려 위대한 믿음의 결단을 방해합니다. 우리가 직면한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 그리고 우리가 과거에 경험한 경험을 뛰어넘어 역사 하시는 생명 적 진리의 말씀을 믿을 때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뱃새다 들녘에 수 만 명이 저녁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게 주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이 빌립에게 말합니다. 빌립아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주님은 빌립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서 일부러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 때 빌립은 아주 합리적인 대답을 합니다. "이 많은 사람을 먹이기 위해서는 오백 데나리온의 떡을 가져도 모자라니 각 사람들로 하여금 동네에 들어가 해결하도록 합시다." 일 데나리온은 그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니까 5백 데나리온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지요? 약 2천만원 정도 되겠습니다. 그 돈이 있어야만 이 많은 무리들을 먹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빌립의 대답이 틀렸습니까? 아닙니다. 아주 합리적이고,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대답입니다. 어디하나 나무랄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아주 정확한 대답이었지만 그러나 주님이 요구하는 대답은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요구하는 대답은 무엇입니까? 정확한 대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답을 요구하십니다. 합리적인 대답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도 다 압니다. 제자들의 형편을 다 압니다. 호주머니 사정을 다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사실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들을 가리켜 성경은 교회 즉 믿음의 공동체라고 합니다. 믿음의 권속이라고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 믿음의 공동체에게 주님은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떤 보이는 사실에 대한 우리들의 의견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과 이성과 경험을 초월하여 역사 하는 진리를 믿는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사실은 무엇입니까? 너무나 명백하게 아브라함과 사라 모두 자녀를 출산 할 수 있을 만한 나이가 지났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육신은 '죽은 것'과 다름없었고, 사라의 태 역시 '죽은 것' 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래서 19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이것이 그들의 인생에 사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사실을 직시하였고, 그 사실의 정확성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사실이 그의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사실을 뛰어넘어,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어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믿었습니다. 무엇을 믿었다는 말입니까? 진리를 믿었습니다. 어떤 진리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말씀입니다. '그의 몸에서 난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번성할 것' 이라고 말씀한 말씀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본 것은 '사실' 이지만 그가 믿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진리'를 믿었습니다.
    우리는 수 없는 사실에 쌓여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을 가지고 사실 뒤편에 있는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사실만 본다면 우리는 절망과 좌절로 끝나 버릴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문둥병자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문둥병을 천형의 벌로 여기고 그를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지 않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사람으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완전히 고립되어 짐승처럼 살아야만 했습니다. 어쩌다가 사람 사는 곳에 나가면 사람들은 그를 돌로 쳤습니다. 문둥병자의 이 같은 현실은 그가 직면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 사실만 보았다면 어찌 그가 고침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는 진리를 믿었습니다. 사람들이 외면하고 침 밷고 저주하는 이 문둥 병자를 예수님은 사랑하시고, 예수님만큼은 틀림없이 고쳐주실 것이다. 하는 진리에 대한 믿음으로 그는 조롱하고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뚫고 마침내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무릎을 꿇고 외칩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게 하실 수 있나이다." "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문둥병자는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어 깨끗해졌습니다. 문둥병이라는 사실만 보고 있었다면 한 평생을 절망과 좌절가운데 비참하게 보내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에 기적과 능력이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진리이신 하나님, 그분은 결코 나의 생각과 상식과 경험의 범주에 갇혀 있을 때는 역사하지 않습니다. 기적을 베풀지 않습니다. 언제 우리의 삶에 기적과 축복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진리이신 하나님 앞에 나의 생각과 상식과 경험을 내려놓고, 내가 지금 직면한 기막힌 현실, 사실 이면에 역사 하시는 진리의 말씀을 믿을 때 놀라운 기적과 축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지금 내가 직면한 이 기막힌 사실 때문에 절망하지 말고 그 사실이면에 역사 하는 진리를 믿음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경험하는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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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월하는 진리의 능력
    믿음은 지식이 아니라 삶입니다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입니다
    질 그릇안에 담긴 보배
    기적을 낳는 감사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길
    기도와 금식외에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나의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뜻
    상 받는 신앙이 됩시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버리시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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