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2002-09-04 16:06:02 read : 2740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시편96:1-9절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특한 심성중에 한(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 맺힌 삶" "원한" "이별의 한" 그리움에지친 "그리움의 한" 이와 같이 한에 대한 단어들이 우리 민족에게는 오히려 친숙하게 들려지고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한(恨)을 연구한 사람들에 의하면 한이 생기는 원인은"억울함" 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야 할 일들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억울하게 풀려나갈 때 생기는 감정이 한(恨)으로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恨)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억울한 일이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억울한 일, 불행한 일을 당할 때 감사하는 마음을 품기 보다는 한(恨을)을 품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입니다.(살전5:18).
"맹인인 나는 맹인이 아닌 당신에게 한 가지 힌트밖에 줄 수 없다/내일이면 장님이 될 사람처럼/당신의 눈을 사용하라/다른 감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마치 내일이면/귀머거리가 될 사람처럼/그렇게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도록 하라/ 마치 내일이며/다시는 아무것도 못 만지게 될 사람처럼/모든 것을 만지며 그 촉감을 즐기도록 하라/마치 내일이며/아무 냄새도 맞지 못하게 될 사람처럼/그렇게 꽃의 향내를 맡고/음식의 냄새를 맡도록 하자".
3중고(三重苦)의 성녀 헬렌 켈러(Helen A. Keller.-)
의 참 행복과 감사를 위한 애절한 충고입니다.
일제 때 박용철 시인은"떠나가는 배"에서 망국의 한(恨)을 품고 정든 고향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울며 떠날 때"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사랑하는 사람들"이라 표현했습니다.
아! 벌써 가을이 왔다. 사랑하는 아내, 남편, 부모 스승, 목사의 얼굴을 그윽히 바라보자, 양털구름을 바라보고, 홍시감처럼 붉게 타는 가을의 황혼에 눈도장을 찍어 보라, 성도들의 찬양을 귀담아 들어 보라, 귀여운 손자의 옹알이도, 새들의 아침 노래도 귀담아 들어 보라, 부부는 다정하게 포옹하자, 아이는 따스하게 안아 주어라, 그 옛날 은은하게 풍기던 엄마의 분냄새 그리고 진하디진한 국화의 향내를 폐부에 가득 담아, 아! 그대야말로 눈물겹게 감사해야 할 축복의 주인공이 아닌가.
금년에도 어김없이 추수감사절 절기를 지킬 수 있도록 도우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돌려드립니다.
옛날 이스라엘의 절기를 보면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유월절, 광야 생활을 기념하는 장막절, 추수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오순절과 초실절, 하만의 계락에서 구출받은 날을 기념하는 부림절, 곡식을 거두어 저장하는 수장절.
한국 교회는 1년 중 가장 중간에 들어 있는 보리 농사와 풍성한 과실 농사를 거두는 계절을 감사하는 맥추절의 절기가 있고 11월 셋째주일은 추수감사절기로 지키고 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 못지 않게 우리 나라도 좋은 여건을 많이 가진 나라라고 말합니다. 나무가 무성한 산, 맑은 물, 푸른 하늘, 사철의 변화가 뚜렸하게 나타나는 계절과 비가 많이 내려 어떠한 땅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것 등 이것은 모두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주신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땅이 작은 것과 아직도 통일이 되지 못한 문제도 있지만 그래도 희망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언젠가는 남북이 통일이 되어 우리 땅은 배로 넓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민으로 삼으신 이스라엘은 기구한 운명과 역사를 지닌 민족이며 그 땅은 경상도 보다 좁은 땅을 가지고 있음을 생각하면 우리 민족은 참으로 좋은 땅을 유산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좋은 땅을 주시고 훌륭한 조상들을 주시고 지난 날 그토록 어려움 가운데서도 인도하시고 지켜주셨으며 앞으로도 우리의 미래를 축복할 것인데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까요?.
골로새서3:15절에 보면"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란 곧 감사의 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감사하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선행조건이 있습니다.
1) 매사에 감사의 조건을 찾아야 합니다
어느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감사하는 마음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불평하는 마음에 마귀가 거한다. 축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왔다가 불평의 문으로 나가버린다, 감사하면 감사할 조건이 또 오고 불평하면 불평할 수 밖에 없는 조건이 또 오게될 것이다"라고! 그래서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2) 감사의 생활을 하려면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은혜 가운데 큰 은혜가 바로 감사할 줄 아는 은혜입니다.
성도들 가운데 구하는 이는 많지만 받은 바 은혜에 대하여 그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심히 적습니다.
다윗은"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송하여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감사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3) 감사하는 생활을 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1장에서 불신세계의 특색을 말할 때 두가지로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한다'고 믿지 않는 사람이 감사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그냥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고 이기적인 마음으로만 살아가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감사하지 않습니다.
사실 감사하는 조건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습니다. 수량의 기준이 아니라 마음의 기준입니다. 여유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
그는 바로 어느 경우에도 감사를 잃지 않는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긍정적인 마음이요, 찬송하는 마음이요, 축복을 가져오는 비결입니다.
4) 난관과 역경 가운데도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않고
사는 사람만이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난관과 역경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느껴지는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더니, 일을 잘 해 보려는 가운데도 올무가 있고 난관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仁慈)는 영원합니다.
난관과 역경 가운데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숨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그 가운데서도 아직도 감사할 조건이 있다는 말입니다.
현재에는 우리가 그 난관과 역경의 의미를 다 알 수 없지만 그것도 결국은 우리에게 유익이며, 우리가 그것을 실감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알 수 있는 느낄 수 있는 감사의 조건이 거기에도 숨어 있더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그 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매튜헨리라는 유명한 주석가가 한 번은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 강도가 그의 돈지갑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때에 매튜헨리는 감사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가 강도가 되지 않은 것을 감사했다고 합니다.
그는 감사하면 복받는 줄 알기 때문에 감사했습니다.
감사하면 은혜를 받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순교자"부래드 포드"는 영국 여왕 메리에게 핍박을 받으면서도 말하기를 "왕이 나를 놓아 주어도 감사하겠고 나를 불에 태워 죽여도 감사하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래도 감사요 저래도 감사란 말입니다. 참으로 '부래드 포드'는 모든 역경 가운데서도 감사한 성도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해야 할까요?
1. 새 노래로 감사해야 합니다.
여기'새 노래'라는 말은 새롭게 작곡된 노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찬양 드리는 자의 마음가짐과 관련된 말입니다. 즉 이는 습관적으로 노래 부르는 것이 아니라 늘 하나님께 대한 새로운 인식과 새로운 이해, 새로운 믿음에 입각해서 부르는 노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새 노래로 감사하라고 하는 것은 새로운 마음으로 감사하고 변화된 입술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입술은 마음의 표현이며 마음의 표현은 입술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것은 걸어다닌다는 것과 말을 사용하여 서로의 뜻을 전하는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감정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자유로운 감정과 의지를 주시고 그외 모든 필요한 것을 주셨는데 그러한 좋은 조건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제자가 스승에게 감사하고 자녀가 부모에게 감사하고 성도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우선 순위의 일입니다. 기도의 순서에도 감사의 기도, 자복하는 기도, 간구하는 기도의 순서로 하게 되듯이 마음과 입술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다는 말처럼 한마디의 말이 참으로 중요합니다.'실레합니다''제가 잘못했습니다''용서하십시오''미안합니다'등, 이런 말들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말들이며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결코 바보가 아님니다.
어떤 부인이 결혼생활 12년이 지났는데도 가정이 안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남편은 일정한 직업도 없이 주정뱅이 생활로 허송세월만 보내고 부인이 남의 집일을 하여 벌어온 수입으로 겨우 생활을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는 동안 부인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참는 것도 한도가 있는 법이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이제는 이혼하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그런 때에 어떤 권찰이 그 부인에게 당장에 이혼하지 말고 온 가족과 함께 마지막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그 후에 결정하라고 권했습니다.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고 이제 헤어져야 되겠다고 결심하고 예배에 참석하여 예배를 드리는 중에 성령님이 역사했습니다.
부인이 울면서 기도합니다'하나님 아버지 나에게 술주정뱅이 남편이라도 있게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남편이 없는 과부가 많고 사고를 당하여 불구자도 많은데 제발로 걸어 다니는 남편을 주시고 술에 취했어도 밤중만 되면 제 집 찾아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며 남편을 위해 눈물로 간구하였습니다. 얼마 후에 그 남편이 부인과 함께 교회에 나가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감사의 말, 감사의 기도는 놀라운 기적을 가져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나서2:9에"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목소리로 입술로 감사하고 새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날마다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을 감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여호와의 궁정에 나아가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든지 은혜를 입었으면 적당한 기회에 그를 찾아가 감사의 예를 표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감사의 표시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은 우리가 예배드리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모이는 교회, 흩어지는 교회, 보이는 교회, 보이지 않는 교회, 네가지 유형의 교회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보이는 교회인 지상의 교회에 주일마다 모이고 예배드리고 성도의 교제를 나누며 흩어져 일심히 일하고 복음을 증거합니다.
성도는 모일 때 예배드리고, 모일 때 은혜받고, 모일 때 새롭게 결심하고, 새롭게 사는 지혜와 용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릴 때에도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물론 감사를 드려야 하겠지만 성경은 "그의 궁전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100:4)라고 말했습니다.
옛날 예루살렘은 신앙의 요람이요 말씀과 축복의 산실이였으며 저들의 영적인 고향이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당부하시를"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신앙의 요람지이며 육체와 영혼의 안식처이며 구원의 방주요 친교와 봉사를 배우는 곳입니다.
시대가 변해도 교회는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고, 찬송하고, 때로는 울고 소리치고, 피곤하면 엎드려 잠들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분주하고 복잡하게 살던 사람이라도 여기에만 오면 평안합니다. 행복을 느끼고 사는 의미를 배우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계신 내 아버지 집이기 때문입니다.
한 주간 동안의 지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함을 받고 새로운 영혼의 만나를 얻고 새 힘을 얻어 세상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게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리하여 성경은 감사를 드리되 세상에서 드리지 말고 여호와의 전에서 여호와의 궁전인 예배당에서 감사를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감사가 진정한 감사가 되며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주님의 전을 찾으십시오, 거기서 주님을 만나시기 랍니다.
어떤 총각이 교회에 나와서 예배들 드리는 중에 그 날 특송을 한 처녀의 목소리가 너무나 아름답고 좋아서 거기에 반하여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내의 얼굴은 너무나 못생겨서 얼굴만 쳐다보면 기분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얼굴보다는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살아야 되겠다고 결심하고는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아내의 얼굴은 보지 않고 팔을 뻗어 아내를 흔들어 깨우면서
"여보! 노래를 시작해"라고 하고, 아내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그 아름다운 목소리에 반하여 아내에 대한 사랑이 솟아나서 못생긴 아내의 얼굴을 탓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난 날 하나님의 집에서 듣던 노래, 하나님의 전에서 만났던 아름다운 추억도 인간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합니다. 여호와의 집에 들어가 여호와께 감사드리고 여호와를 찬양하는 일은 대단히 귀한 일입니다.
3. 예물을 드리면서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으로 감사하는 사람은 입으로도 감사하게 되고, 입으로 감사하는 사람은 예물을 가지고 감사하게 됩니다. 대체로 감사라고 하는 것은 생각만으로는 흡족하게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그에게 합당해야 되는 것인데, 그에게 합당한 최상의 예물은 최대의 정성이 들어가야 합니다.
출23:15에"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최대의 정성이 들어간 아름다운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이것이 귀한 것입니다.
엣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가 번제의 향기를 드릴 때 흠이 없는 짐승을 드렸습니다. 소나 양을 드렸으며 그것이 없어 못 드리는 사람은 비둘기 같은 새 종류를 드렸습니다.
또 추수 때는 모든 곡식 중에 맏물의 곡식 중 십일조에 해당하는 것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고 그 인간을 죄에서 구속하시기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는데 그러한 하나님께 드리는 인간의 정성도 제일 귀하고 좋은 것을, 제일 정성이 들어간 것을 드려야 하며 하나님은 그러한 것을 기뻐하십니다.
창4:4-5절에"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였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
아벨의 제물에는 정성과 헌신이 깃들어 가장 좋은 것, 구별된 것을 드렸지만 가인의 제물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장중에 있습니다.
학개서2:8절에"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모든 물질, 모든 재산은 모두가 하나님의 것인데, 그 중에 하나님의 몫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감사도 중요하고 입술의 감사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물질이 따르는 감사는 말할 수 없이 귀중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마틴 루터'가 어느날 저녁 무렵 작은 새 한 마리가 나무 가지에서 자고 있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이 작은 새는 이미 저녁 먹이를 먹고 자려는 중인데 참으로 저 새의 자리는 안전하구나!
저 새는 내일 아침 먹을 것에 대해서도 걱정하는 것이 없고 내일 밤 잠자리에 대해서도 염려가 없구나, 하물며 저 새도 전능하신 자의 보호 아래서 그 몸을 맡기고 아무 두려움 없이 작은 가지에서 자는 것으로 만족하는데 우리는 어떤가? 고 하였다고 합니다.
저 금수마저도 그 몸을 하나님께 위탁하고 안전하거든 하물며 인간으로서 각자의 지위에 만족하고 만사를 하나님게 맡기고 헌신적인 생활을 한다면 태평한 생활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지옥은 은혜를 알지 못하는 자로서 찼다'라고 영국 격언은 말하였고 '세상에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보다도 악한 것은 없다'라고 "안소니아스"는 말하였습니다
스펼젼 목사님의 말씀을 소개합니다
"일어나서 주님의 사랑을 찬송함이 없이 자기의 길만 가는 자는 뱀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머리를 들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송해야 할 인생들이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볼 일만 본다는 말입니다.
자기의 길만 간다는 말입니다. 자기 먹을 것만 생각하고.
자기 입을 생각, 자기 욕심만 채울 생각, 이런 것들만 생각합니다. 자기의 길만 가는 자는 뱀과 같다고 했습니다.
뱀은 일어서지 못하고 배로 다닙니다. 부끄러운 걸음을 합니다. 그와 같이 자기만 아는 자는 배로 다니는 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는 엎드린 자요 머리를 들고 감사할 줄 모르는 자입니다. 뱀과 같이 반역하는 자입니다.
감사가 없는 생활은 일어서서 주님의 은혜를 찬송함이 없이 자기의 길만 가는 뱀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영원히 계십니다. 그러므로 평생에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가 충만한 생활을 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과 같이 감사가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지금부터 우리의 감사는 찬양으로 드리는 감사요. 마음으로 드리는 감사이며 주님의 전을 찾아와서 드리는 감사의 행위이며 마음과 더불어 물질로 감사드립시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다가 하나님께서 예비한 신령과 은혜와 축복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