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고와 최선과 최후의 가치는 헌신입니다" 2002-09-04 16:14:01 read : 3156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마태복음26:6-13절
한 임금에게 외동딸이 있었다. 그런데 공주는 중병에 걸려 죽을것만 같았다. 의사는 기사희생의 묘약을 복용하지 않는 한 절망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임금은 자기 딸의 병을 고쳐주는 사람에게는 공주를 주어 사위를 삼을 것이며 자기의 대를 이어 임금을 삼겠다고 포교령을 내렸다.
그런데 먼 지방에 세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망원경으로 그 포고령을 보았다. 그녀를 동정하고는 셋이서 공주의 병을 낫게 해 주자고 의논했다.
한 사람은 마법의 양탄자를 가지고 있었고, 한 사람은 마법의 사과를 가지고 있었다.
이 마법의 사과는 먹기만 하면 어떤 병이든 낫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세 형제는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왕궁을 향하여 날라갔다. 공주에게 사과를 먹였더니 과연 공주의 병이 씻은 듯이 낳았다. 모두들 굉장히 기뻐했고 임금은 연회를 베풀고 공주와 결혼할 사람을 발표하기로 했다.
그런데 맨 위의 형은"내가 망원경으로 보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공주님의 아픈 사실조차 모를 것이 아닌가"라고 주장하며 자기가 임금의 사위가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 형은"마법의 양탄자가 없었으면 도저히 이렇게 먼데까지 올 수 없었소" 라고 주장합니다. 셋째는"만일 사과가 없었다면 병은 낫지 않았을 것입니다"고 자기 주장을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임금님이라면 이 셋 중에 누구를 사위로 삼겠습니까?
그 답은 이렇습니다"사과를 가지고 있었던 셋 째입니다"
양탄자를 가지고 있었던 둘째는 지금도 양탄자를 가지고 있고. 망원경을 가지고 있던 첫 째도 아직도 망원경을 가지고 있는데, 사과를 가지고 있던 셋 째는 사과를 주고 말았으므로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공주를 위해 주고 말았습니다. 탈무드에 따르면"무엇을 해줄 때에는 모든 것을 거기에 거는 자가 가장 존귀하다는 것이다"
세계 역사엔 분수령이 있습니다. 그 분수령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중심으로 해서 인류 역사를 주전과 주후로 구분하여 계산합니다. 서력 기원은 바로 그리스도를 분수령으로 삼고 계산하는 역사계산 방법으로 전 세계 모든 나라가 거의 다 이 연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개인생활에도 분수령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나의 인생의 분수령으로 삼았다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에서 주님을 만났던 순간이 그의 인생의 방향이 바뀌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나 완전히 달라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갈리리 호수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첫 번째 부름도 갈리리 호수였습니다. 첫 번째 부름에서 주님은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3년간의 생활을 돌이켜 보면 실패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갈리리 호수로 돌아갔습니다.
두 번째 만남에서 주님은"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사랑한다면 "네 양을 먹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길이 양떼를 먹이는 길임을 알려주었습니다.
사실 양떼를 먹이는 것은 베드로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원치 않는 일이라도 해야 함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베드로의 진정한 인생의 분수령이 나타나게 됩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헌신입니다. 십자가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셨기에 믿음의 선배들을 그 길을 가셨습니다.
헌신을 자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 바로 헌신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헌신해야 한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일생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중요한 일은 세상에 태어나서 무엇을 했으며 어떻게 생을 마쳤느냐에 따라 그 삶이 평가됩니다. 지금 우리가 살면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한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사람다운 삶을 살아야 되겠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이 되었으니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야 되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곧 참된 것, 아름다운 것을 창조해 나아가는 생활입니다.
벨기에의 시인'메테르링크'는 말하기를 '인생은 한권의 책이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매일 한 페이지 한 페이지마다 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름답게 쓰고 있으나 어떤 사람은 지저분하게 써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착하고 선하게 써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하고 더럽게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이 알아주거나 말거나 성실하고 참되게 기록하는 자도 있고, 위선적으로 거짓되게 쓰기도 합니다.
우리가 써 내려가는 인생의 책은 잘못되었다고 지을 수도 없고 다시 쓸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루 하루를 살아갈 때 나와 남에게 그리고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야 합니다.
하루는 주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가셨을 때 마리아는 매우 값진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께 바쳤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분내어 시비했습니다.
세상에는 좋은 일 하고도 무시를 당하고 욕을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비싼 향유를 허비했다고 책망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책망했는데 예수님은 그 일을 칭찬하셨습니다"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온천하 어디든서든지 이 여자의 행한 일을 기념하리라"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최고와 최선 그리고 최후의 헌신자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처음도 중요하지만 나중은 더 중요합니다. 만남도 중요하지만 이별은 더 중요합니다. 마리아의 위대한 헌신이 주님의 크나큰 은혜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신다면 무엇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나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찾아드려야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쁘게 받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최고 최선 최후의 아름다운 헌신은 어떻게 이루어 지는 것입니까?.
1. 마음을 깨뜨리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7절에"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라고 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것을 드렸습니다.
제자들은 겉으로 나타난 옥합의 금액만을 가지고 그를 책망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주저하지 않고 그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의 마음을 보시고 그 마음의 자세를 살피십니다. 얼마나 많이 드리고 봉사했느냐 보다는 얼마나 희생적으로 드리며 봉사하느냐 그것을 보시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낭비가 없습니다. 참된 신앙에는 계산이 없습니다. 즐거움과 감사의 헌신에는 피곤함이 없습니다. 위대한 소망에는 자발적인 봉사가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금세기의 위대한 성자 '슈바이처'는 "세계 역사상 위대한 사람이란 이땅에 그만큼 많이 주고간 사람들이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 가지는 일이 가장 중요한 거래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헌신은 예수님 생애의 마지막에 최선을 다하여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입니다.
그는 주님 발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옥합을 깨뜨려 부었습니다. 그 마음에부터 우러나는 예수님에게 대한 감사와 감격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눈물이란 마음의 작용에 의해 흐르는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이런 뜨거운 눈물이 있었기 때문에 향유 옥합을 아낌없이 깨뜨렸습니다.
6.25동란이 터진 후 한국 고아들의 비참한 모습을 영화 필림에 담아서 미국에 다니면서 이들을 돕자고 호소하던 분이 과거 선명회 총재 '밥 피엘스'박사입니다. 피엘스 박사의 영화를 보고 오래곤주에 사는 한 농부 내외가 마음 속에 감동하여.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사랑하자.
부모없는 아이들에게 부모 역할을 하자.
우리의 것을 저들에게 주자!
이렇게 하여 자신이 여덟명의 고아를 요청하여 기르고 그 후로 더 큰 관심을 가지고 많은 고아를 데려 갔는데 그가 바로 홀트씨 내외분입니다(홀트 아동복지회) 마음의 옥합을 개뜨린 그곳에서 아름다운 향기가 가득하듯 '밥 피얼스'박사와. 홀트씨 내외의 사랑의 옥합은 온 세계에 향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다 허물어져 가는 오두막집에서 홀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자가 그를 찾아와 그 오두막집을 사겠다는 것입니다.
서로 사고 팔기로 약속하고 오두막 집 주인은 부자가 자기 집을 갖고 싶어한다는 생각에 우쭐해져 가지고는 망가진 지붕을 정성을 다하여 수리하였습니다. 집 값을 치르고 난 부자는 즉시 오두막을 헐어내기 시작합니다. 이에 놀란 전 주인이 소리쳤습니다.
"내 집을 그냥 놔두시오, 내가 얼마나 정성 들여 완벽하게 수리 해놓았는지 알기나 하오?"
그러자 그 오두막을 산 부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내가 원하는 것은 당신 집이 아니오, 나는 단지 집터가 필요할 뿐이요, 이 땅 밑에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바로 이런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거짓과 고집으로 얽히고 설켜 가득 채워진 우리의 욕심과 헛된 마음이 아니라, 자아가 깨어지고 완전히 버려진 자신을 주님께 바쳐 그 속으로 주님께서 들어와 거할실 수 있기 전까지는 주님께서 우리를 들어 쓰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을 드리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2. 가장 소중한 내 몸의 옥합을 깨뜨려 헌신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사랑은 받는 것 보다 주는 것이 가치가 있습니다. 사랑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는 입술의 종교가 아니라 몸의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로만 복음을 외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십자가를 목전에 두고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었습니다.
자신의 귀한 생명과 육체가 온 인류을 위한 희생제물로 드려지기를 각오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그 소중한 몸의 옥합을 깨뜨려서 이땅에 널리 피의 향기를 풍겼습니다. 자신의 몸을 깨뜨려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영국의 선교사 '리빙스턴'은 아프리카 지역에 가서 선교하던 중에 토인들에게 습격을 당하였습니다. 맹수에게 물리기도 하며 질병에 시달리고 때로는 더위와 싸워야 했습니다. 그런 고난 중에도 몸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리빙스턴은 몸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육체적인 수 많은 고생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그리고는 척박하고 버림받은 아프리카 그 땅에서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누구나 그 몸을 찢어 피를 바치는 일은 가장 귀한 헌신입니다.
자신의 몸을 드리는 헌신이 없이는 교회 부흥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마음을 바치고 피와 땀을 흘린 애국자들 때문에 오늘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2천년의 역사는 피의 발자국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도 순교자의 몸을 찢는 피 흘림의 역사를 통하여 성장해 왔습니다.
3. 진리의 옥합을 개뜨릴 때입니다.
성도들은 설교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 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설교를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말씀을 어떻게 실천하느냐 하는 것이 언제나 문제입니다.
마음속에 진리의 말씀을 감싸서 묻어두고 있다면 그 진리는 가치가 없습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귀하다고 보자기에 싸서 농속에 넣어두고만 있다면 그 믿음이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마치 값비싼 보석 반지를 함속에 담아서 깊은 장롱속에 감추어둔 것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벨기에의 성직자 다미엔 신부는 하와이 몰로이카 섬에 있는 버림받은 나환자들을 찾아가 동거하면서 전도하다가 감염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의 죽음의 순간이 가까워 오자 급한 모든 사무를 정리하고 조용히 자리에 드러누운 후,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전부 다 바친 나는 참으로 행복하다, 지금은 완전히 가난한 그대로 죽고자 한다, 내 자신의 것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니라'(고전15:58).
다미엔 신부는 불행을 당한 자들에게 자기의 전부를 투자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음 속에 담겨진 귀한 진리를 소외된 자, 병든 자,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문둥이 촌에서 그의 고귀한 일생을 마쳤습니다.
4.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나 하나님께 헌신하는 일도
때가 있습니다. 기회란 항상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때를 놓쳐버리면 후회하게 됩니다.
교회를 건축할 때가 있으며, 선교사업에 동참할 때가 있으며.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며 봉사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를 놓치게 되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때에 맞는 말 한 마디가 귀한 것입니다.
때에 맞는 봉사가 귀한 것입니다.
때에 맞는 위로가 귀한 것입니다.
때에 맞는 희생이 귀한 것입니다.
전도서3:1절에"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를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만사에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가장 적절한 때에 예수님을 대접했습니다.
5. 영원히 지속되는 아름다운 행위의 향기가 있는 헌신이 되어야 합니다.
13절에"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일은 그 수가 많지 않고 적기 때문에 그만큼 어두움의 세상에서 별빛처럼 빛이 나는 것입니다. 에수님의 생애가 끝날 무렵에는 그에 대하여 반역이나 모반이 너무 나 심하였기 때문에 마리아와 같은 행동은 광야의 생수처럼 아름답게 여겨졌습니다.
옛날 속담에'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봉사, 아름다운 헌신, 아름다운 충성, 아름다운 순종은 한 폭의 그림처럼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흐믓한 감정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어떤 단체나, 교회에 있어서 이렇게 선행과 아름다운 신앙생활에 덕이 되며 본이 되는 사람이 있다면 놀라운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옥포교회 성도 여러분!
먼 훗날 아무개 권사, 아무개 집사, 아무개 교인---아,
그 사람 그렇게 봉사 잘했다지요! 그렇게 전도 잘했다지요! 그렇게도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했다지요! 이런 찬사를 듣는 다면 본인에게도 영광이며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귀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도 이러한 미담의 주인공들이 많이 나타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선행은 영원한 것입니다. 아름답게 기록되는 일입니다.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토마스 목사는 진리의 옥합인 성경을 들고 한국에 왔습니다. 세상은 그를 죽였지만 그가 들고 들어온 진리의 말씀인 성서는 수천만권이 보급되었습니다. 진리는 영원하다.
세상에는 위대한 사람이 따로 있고 기념될만한 인물이 본래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일 평생 살아가면서 그 사람의 마음이나 행동이나 가치관에 따라 위대한 인물로 추앙을 받기도 하고 또한 멸시와 천대를 받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특정한 사람을 골라 그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기 옥합을 드린 이 여인의 행위만은 영원히 기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 행동이었으면 예수님께서 직접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선한일에 대하여 시비를 걸었던 유다의 행위는 영원히 경계하고 비판받아야 할 인물이 되었으나, 선한 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한 마리아는 영원히 기념될만 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그 마음으로 옥합을 깨뜨려 뜨거운 눈물과 결단으로 헌신자가 되었습니다. 그 몸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남에게 모범이 되는 실천자가 되어 헌신했습니다.
그는 평소 주님에게 듣고 배운 진리의 말씀을 따라 예수님의 죽음을 예비하는 최후의 아름다운 헌신자가 되었습니다, 최후까지 최선을 다하여 헌신한 사람은 영원히 기념될만 합니다.
사랑하는 옥포 교회 성도 여러분!
마리아처럼 최후까지 최선을 다하여 헌신한 성도가 되어서 주께 인정받고 사랑받으며 축복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