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2025년 05월 01일 (목요일)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지구촌교회 담임목사에 김우준 목사 청빙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명성교회에서               빗속에서도 울려 퍼진 부활의 기쁨 / 지구촌교회 제4대 담임 후보에 한인 목회자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 '무장공비→ 목사' 김신조 별세 / 이재명 지지율 1위               헌재 전원일치로 윤석열 대통령 파면 /교회 건물 명의만 소유했던 목사…법원               산불 피해 한국교회 지원 총력 / 고령 교인 10명 중 6명               기독교인 수, 감소 멈추고 안정세 /일제 침략으로 예수 믿었으니 '수고했다'고 말해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이마에 십자가 인터뷰 출연               사순절에 대한 흥미로운 5가지 사실/ 트럼프 2기 첫 내각 회의, 목사·장관인 터너의 기도로 시작               국회 앞 25만 인파 “3.1정신으로 체제 전쟁 승리” /인사만 잘 해도 좋은 일이 생깁니다               수십만 시민들 모여 “탄핵 반대” “자유 수호/ 이만희 교주로부터 수년간 성폭행 피해              

  홈     강대식     강문호     계강현     고신일     곽선희     곽창대     권오선     권오진     김경진     김광일     김기석     김도완     김명혁     김병삼     김삼환     김상복     김상수     김성광     김성수     김승규     김양인     김영훈     김용혁     김원효     김은호     김의식     김재곤     김정호     김진수     김진흥     김창규     김창진     김형익     김홍도     남수연     노창영     노환영     류영모     명설교(A)     명설교(B)     명설교(C)     문기태     박병은     박봉수     박신진     박요한     박일우     박진호     박한응     박형근     배영진     배의신     배진기     배혁     서명성     서진규     손재호     송기성     스데반황     신만교     신현식     안두익     안효관     양인국     양향모     염두철     오주철     오창우     옥한흠     원영대     유기성     유민용     유은호     유장춘     유평교회     이강웅     이건기     이국진     이규현     이기복     이대성     이동원     이동희     이백민     이삼규     이상호     이성우     이성희     이양덕     이영길     이영무     이우수     이윤재     이은규     이익환     이일기     이재철.박영선     이재훈     이정원     이정익     이종철     이준원     이지원     이하준     이한배     이호준     임현수     장부완     전승문     정근두     정오영     정준모     조봉희     조상호     조성노     조영식     조용기     조학환     조향록     주준태     지성래     지용수     차용철     채수일     최동규     최인근     피영민     피종진     하용조     한경직     허창수     홍문수     홍정길.임영수     홍종일     외국목사님     .     괄사(왕)     기도문     (1)새벽     새벽.금언     인물설교     상식/주일     장례,추도.심방     가정설교     영문설교     목회자료/이단     교회규약     예화     성구자료     강해설교     절기설교     창립,전도,헌신,세례.주례사     어린이.중고등부     << 창세기>>     출     레     민     신     수     삿     룻     삼상     삼하     왕상     왕하     대상     대하     스     느     에     욥     시     잠     전도     아     사     렘     애     겔     단     호     욜     암     옵     욘     미     나     합     습     학     슥     말     <<마태복음>>     막     눅     요     행     롬     고전     고후     갈     엡     빌     골     살전     살후     딤전     딤후     딛     몬     히     약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유     <<요한계시록>>     말씀별설교     제목별설교     A)행사,심방     B)행사심방     예수님행적설교     성구단어찾기     이야기성경     설교(틀)구성하기     자주사용하는본문     구약사건     신약사건     구약삽화     신약삽화  

:: 로그인 ::
 ID   
 PASS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설교작성법(여기누르면 다나옴)
  설교잘하는 방법(여기누르면 다나옴)
  김기홍 설교학
  동영상.간증자료(여기누르면 다나옴)
  교계 뉴스 ------- (전체보기)
  생활전도(여기누르면 다나옴)
  전도편지
  참고 설교(성구)
  장례식 설교(내부에 많이있음)
  웃음치유와 영업
  기타

설교내용검색

성경 찾기

네이버.다음.구글


검색



Daum


(방송)설교 교회

해외교회사이트

예배와 찬양


목회자 컬럼
  • 교회와신앙칼럼
  • 뉴스미션칼럼
  • 뉴스엔조이칼럼
  • 당당칼럼
  • 기독공보칼럼
  • 기독목회칼럼
  • 크리스천칼럼
  • 타임즈칼럼
  • 김명혁목사
  • 김형준목사
  • 양인순목사
  • 이동원목사
  • 조현삼목사
  • 밤중소리

  • Home

    귀한 일에 쓰임받는 좋은 그릇이 되자
    2002-09-04 16:20:15   read : 3286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 4. 14
    디모데후서2:20-21
    조만식 장로님에 관한 일화입니다.
    조장로님이 평양 산정현 교회에서 시무하던 그때 담임목사인 주기철 목사님은 그 당시 조만식 장로님의 오산중학교 제자였는데, 어느 주일날 예배시간 중간쯤 조만식 장로님이 허겁지겁 하면서 들어오는 모습을 보게 된 주기철목사님은“조장로! 거기 서시요”하고 호령을 했고, 조만식장로님은 그대로 예배가 끝날때까지 서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제자가 스승에게 하는 행동에 대하여 의아해 하며 예배후에 큰 날 리가 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반대로 예배가 끝난 뒤 조만식 장로님은 단 앞으로 나가 자신의 나태함을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다고 합니다. 이를 본 교우들도 모두 따라 울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조만식 장로님은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회개의 열매를 맺은 깨끗한 그릇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그런 훌륭한 장로님 때문에 주기철목사님과 같은 훌륭한 목회자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때로 우리가 사람을 평가할 때 이런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그 사람 그릇이 크네’라든지‘ 그 사람 그릇이 작네’라는 말입니다. 세상에 일없이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인간의 존재 목적은 바로 일하는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스스로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야겠다고 자의적으로 태어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나의 생각과는 아무런 관계도없이 어떤 분에 의해서 된 것입니다. 이를 실존 철학자‘하이데커’는 ‘던짐을 받은 존재’라고 표현했습니다.

    이세상 사람들 모두는 자기 스스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태어나게 하셔서 이 세상에 출생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말씀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왜 태어났는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 땅에 있게 하시고 지금도 살게 하시는가?. 하나님이 나를 이 세상에 보내셨으면 나에 대하여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런 사실을 명백하게 알아야 합니다.

    내가 왜 사느냐? 왜 나를 불러가시지 않고 지금도 호홉하게 하시는가에 대하여 아는 것이 곧 사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모르고는 인생의 고귀한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공자는 50에 지천명하였다고 합니다. 50세에 하늘의 뜻 즉 자기 사명을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사도행전20장24절에“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이후로 자신에게 주어진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고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귀한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바쳤던 것입니다.

    인생의 참 가치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인생의 참 가치를 아는 것은 곧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사명을 위하여 전심전력하는 일입니다.
    여기에 인생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이 사명을 위하여 태어났고,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가 말하기를 인간을 가리켜 사명적 존재라고 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일생을 바쳐 선교 사역을 감당한‘리빙스턴’은 “사람이 자기 사명이 다 끝나지 않는 한 죽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그 사명을 이루게 하기 위하여 그 사람을 이 세상에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 사명을 깨달을 때 그 일에 전심전력을 다할 뿐만 아니라,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 있는 것이며, 그 생애가 위대하고 가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의 위대한 사람은 모두가 자기 사명에 불타 자기 몸을 아깝게 여기지 않고 분연히 던진 사람들임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자기 사명을 알고 일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도와주시고, 그런 사람을 능력의 손으로 붙드셔서 한 세대에 큰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잘 쓰여지는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영도자 모세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았을 뿐만 아니라, 참으로 귀한 그릇이 되어 위대하게 쓰임받았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편지하실 때“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쓰는 그릇이 되어”라고 권고하셨습니다.

    본문은 성도를 큰 집에 있는 그릇에 비유합니다. 큰 집에는 다양한 그릇이 있습니다.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 등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 안에도 많은 종류의 사란들이 있습니다.

    큰 일에 합당한 역량 있는 사람도 있고, 특별한 일을 잘하는 독특한 재능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특출한 역량이나 독특한 재능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필요 조건은 될 수 있어도 충분 조건은 되지 못합니다.
    본문에서는 충분 조건으로서 몇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즉 아무리 소중한 금그릇이라도 깨끗이 닦여 있어야 쓰임받을 수 있듯이 사람도 개끗하고 정결한 성품을 소유할 때 비로서 하나님으로부터 귀한 일에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본문의 내용을 보다 깊이 있게 살펴 봄으로 함게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먼저 교회는 큰 집과 같다고 했습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T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습나니”(20절).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의 모임인 교회는 실로 다양함을 그 특징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성도들 중에는 경건한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신앙의 훈련을 잘 받은 사람도 있고,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제 멋대로 살다가 주님을 만나 회심하여 성도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교인들 가운데는 서로의 힘을 잘 규합하고 뜻을 집결시키는 일에 탁월한 지도자의 역량을 지닌 사람도 있고, 비천하여 사람들이 외면하는 일만을 찾아 봉사의 재능을 지닌 사람도 있고, 전도를 잘 하는 사람, 기도를 잘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사람들이 한 형제와 자매로 한데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따라서 교인간에 우월감을 갖는다거나 직분의 단순 비교를 통해 열등감을 갖는 일은 크게 잘못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자신의 몸의 약한 부분에 대하여 더욱 신경을 쓰고 관리 하듯이 주님께서도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자들, 혹은 천대받는 자들을 더욱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릇에는 여러 종류의 그릇이 있는데 크고 작은 모양이 있고, 용도에 따라 쓰임새도 다릅니다. 그런데 어떤 그릇은 귀히 쓰이고 어떤 그릇은 귀하게 쓰이지 못하고 천하게 쓰인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집인 옥포교회의 그릇입니다.
    그러면 나는 어디에 소용되는 그릇인가?
    나는 과연 옥포교회에서 귀하게 쓰여지고 있는 그릇인가 그렇지 못한 그릇인가 한번 깊이 생각해 봄이 좋을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한번 태어나서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살다가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하나님의 집에서 무엇인가 유용한 그릇의 역할을 다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귀한 일들을 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그릇이 귀히 쓰는 그릇이 될 수 있을까요?


    2. 귀히 쓰임받는 그릇은 재료가 좋아야 합니다.
    어떤 재료를 가지고 제품을 만들었느냐 하는 것은 그 제품의 품질을 좌우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선 재료가 불량품이면 제품이 좋을 리가 없습니다. 불량품 재료로 사용하게 되면 수명이 오래가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서 훌륭한 도자기의 재료는 거칠고 모래가 섞인 보통 흙이 아니라고 합니다. 아주 곱고, 색감이 훌륭한 진흙을 먼저 채취합니다. 그리고 그 흙으로 그냥 도자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흙을 물에 담가서 고운 앙금만을 골라서 선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도 하나의 만들어진 도자기라면 이러한 선별된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귀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하나님을 진실되게 믿고 사는 사람을 귀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런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3:12절-13절에“사람은 모두 건축자와 같아서 자기 인생의 집을 짓는다”고 했습니다. 건축하는데 재료가 있듯이 사람도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신분과 질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옛말에 왕대 밭에서 왕대가 나다”는 말은 옳은 말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질이 좋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자리에 앉혀 놓아도 감당하지 못하고 일을 그르치고 맙니다. 언제나 문제를 야기 시킵니다. 어느 사회나 명석한 머리, 준수한 인품, 원만한 덕성을 가진 사람은 늘 존경받고 귀하게 쓰임을 받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고 더 많이 충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선천적으로 좋은 재질이 되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들은 생을 포기하거나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아무렇게나 살아야 하는냐,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으로 질좋은 인간으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장27-3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뿌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마암아 우리가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말입니다. 가치없던 사람이 가치 있는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던 사람이 이제는 대접받는 사람으로 바뀌어 진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질이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맹물같이 심심하고 가치 없는 인간이 값있는 포도주와 같은 사람으로 변화된다는 말입니다. 미움받던 사람이 칭찬받는 사람으로, 버림받아야 할 사람이 이제는 필요한 사람으로 변화된다는 말씀입니다. 질 좋은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질 좋은 사람이 귀하게 쓰임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질 좋은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교회나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은 질이 좋지 못한 교인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질이 좋지 못한 사람이 많으면 아름다운 사회, 정의 사회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 모두는 날마다 질 좋은 신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날마다 거듭나야 합니다. 중생하지 못한 사람은 어떤 직분이든지 잘 감당할 수 없습니다. 중생의 체험과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중책을 맡아 일하면 시끄럽습니다. 문제가 자꾸 일어납니다.

    오늘 여기에 앉아 계시는 여러분들은 적어도 하나님께서 좋은 그릇! 깨끗하고 영롱한 그릇으로 만드시기 위하여 세상 사람들 중에서 뽑으셔서 선별하여 이 자리에 오도록 하신 분들인 줄 믿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그릇의 재료가 되도록 기도와 봉사와 헌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자기를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이라고 했습니다. 그릇이 타고난 자기의 재질을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토기장이에 의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깨끗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도 타고난 재주와 재능을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깨끗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 자신의 더러운 성품을 눈물의 회개와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딤전1:5).

    더러운 그릇에 맛있고 값진 음식을 담을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정성드려 만든 값진 음식은 아름답고 깨끗한 그릇에 담아야 보기도 좋고 먹음직 하게 느껴집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그릇은 우선 깨끗한 그릇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입니다.
    학식도 많고, 인물도 준수하고 성품도 좋다 할지라도, 언행이나 품행이 깨끗하지 못하면 존경 받지 못하고 귀하게 쓰임을 받지도 못합니다. 언행에 진실성이 없다거나 생활이 비도덕적이라면 귀하게 쓰임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가끔 높은 지위에 올라갔다가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사람들을 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깨끗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항상 깨끗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험난하고 답답하고 괴롬이 더한 이 풍진 세상에 살면서 깨끗하고 양심적인 사람이 되어서 사람들러부터 존경을 받고 대접받으며 살길은 없는 것입니까?

    우선은 회개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좌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사1:8)고 약속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흘리신 보혈이 우리를 깨끗하게 씻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믿고 의지할 때 그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의 유혹에서 이기게 하시며 우리를 지키시사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진실한 마음, 깨끗한 양심, 건전한 생활, 거짓 없는 믿음을 가지게 되며 그런 사람을 귀히 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는 이런 사람이 귀한 일에 쓰임받게 됩니다. 세상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혼탁하고 불의가 만연하고 불법이 성행해도 깨끗한 사람을 사람을 귀히 여기는 법입니다.

    4. 귀하게 쓰임받는 그릇이 되려면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만물의 아름다움은 모두가 제 자리에 바르게 있을 때입니다. 그릇도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필여할 때 즉시 쓰임받게 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입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가치있는 인간이 됩니다.

    인간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의 자리에서 이탈하지 말아야 합니다. 밥알이 밥그릇에 있을 때 아름답고 귀한 것이지. 밥알이 땅 바닥에 떨어져 있다든지, 사람의 얼굴에 묻어 있으면 아름답지 못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악인과 함께 죄인의 자리에 있으면 오만한 자가 되어 복을 받지 못합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은 소돔과 고모라와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기에 재앙을 만나지 아니했지만 롯과 그의 가족은 소돔과 고모라에 있었기에 재앙을 만난 것입니다.

    우리는 마땅이 내가 서 있는 자리, 내가 앉아 있는 자리가 괜찮은 자리인가 아닌가를 반드시 살펴보고 있어야 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안지도 아니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되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반드시 알려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원하시는 자리에 있어야 귀히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에 갔었기 때문에 히브리 민족의 조상이 되었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이 가 있으라고 지시한 그릿 시냇가에 있었기 때문에 까마귀가 아침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날다 주어 살았습니다. 자기가 있고 싶은 곳, 아무데나 있어도 까마귀가 먹을 것을 갖다 주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곳,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 우리가 필요로 하는 곳에 있을 때 귀한 일에 아름답게 쓰입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과연 옥포교회에서 필요한 존재인가?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사명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귀한 일에 귀하게 아름답게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사람은 때가 되면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붙잡혀 귀한 일에 쓰임받게 됩니다.

    5. 귀한 그릇은 언제나 주인의 손에 의하여 쓰입닫게 된 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값비싼 그릇이라 할지라도 쓰임받지 못하면 귀한 그릇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훌륭한 학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귀한 학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일생을 무의도식 하면서 지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비록 배운 것은 짧아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귀한 일에 언제나 아름답게 쓰임받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도 귀한 일에 쓰임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문과 학벌, 인간적인 금 그릇이라고 그것만 자랑하지 마십시요. 남보다 뛰어난 재주와 재능을 가졌다고 교만하지 마십시요. 비록 가진 것도 없고 모자라도 언제나 주님의 손에 들여서 쓰임받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사람이 세상에 한번 태어나서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어디서나 귀찮은 존재가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어찌하든지 귀히 쓰임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질 좋은 사람, 질 좋은 신자가 되십시요. 그 길은 거듭나는 길입니다. 그리고 마음과 몸, 말과 행실이 깨끗해야 합니다. 그 길은 회개하고 말씀으로 무장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있어야 할 자리에 가 있어야 합니다. 쓸데없는 자리에 가 있으면 우리를 찾아 오시는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요, 우리는 진흙이라”
    아직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좋은 그릇으로 만들려고 연단하시고 깨뜨리시는 과정에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눈을 가지십시요. 지금 힘들고 어렵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날마다 깨어지고 부서지는 순종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쓰시기에 좋은 그릇이 되고자 애쓰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곳, 그 자리가 힘들고 어려운 자리라고 할지라도 그곳에 있어야 필요할 때 즉시 쓰임받게 됩니다. 우리 모두 한 세대에 귀히 쓰임받는 성도가 됩시다. 진심으로 교회에서나 이 사회속에서 하나님의 손에 들려 귀한 일에 쓰임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독자 설교

    설교작성하기 (3년 후에는 자동삭제됩니다.)
    이 름 E-mail
    제 목



    프린트하기 기사메일보내기 독자설교


    이전으로
    풍성한 삶을 사는 비결을 소개합니다
    나의 믿음이 하락세인가, 상종가인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왜들, 그토록 불안하게 생각하십니까?
    죽음의 운명에서 새로운 축복의 운명으로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베다니에 오셔서 역사하신 예수님
    받는 자 보다 베푸는 자가 행복 합니다
    인생 풍랑은 누구에게나 어디든지 있습니다
    기적의 역사는 믿음으로 이루어 집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하나님은 상한 심령의 제사를 원하십니다
    나의 가는 길을 여호와께 맡기자
    “우리의 여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 Home | 사이트맵 | 설교검색 | 설교전체보기 | 설교쓰기 |___ |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 김효자 /사업자번호831-29-0156/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 /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4394-4414 /E-mail:v919@naver.com   Contact Web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