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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를 이루는 주님의 마음을 품자”
    2002-09-04 16:29:58   read : 3289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7.28
    빌립보서2:5-11절
    김구 선생은 원래 상놈의 집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어릴 때 그는 과거에 합격하면 출세하리란 생각을 하고는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돈으로 과거시험을 결정하는 등 부정이 판치는 때라 김구 선생은 번번히 과거에 낙방하고 말았다. 실망한 그에게 아버지가 풍수장이나 관상쟁이가 되어 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관상쟁이가 되려고 관상에 관한 책을 열심히 보았다.

    그리고 얼마후 자신의 관상을 보았는데, 가난과 살인, 풍파, 비명횡사, 감옥살이 등 천하에 흉측한 상이었다. 그는 관상책을 집어 던지고는“내 관상이 이 모양인데 누구 관상을 보아준단 말인가?”하며 한탄을 하였다. 그런데 다시 집어든 관상책의 맨 마지막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얼굴 잘 생긴 관상은 몸이 튼튼한 신(身)상만 못하고 몸이 좋은 것은 마음씨 좋은 심(心)상만 못하다, 심상이 좋으면 관상이나 신상이 좋은 것보다 더 낫다” 그는 이 말에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이 나라에 태어났으니 나라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자 결심하였다고 한다.

    빌립보 교회는 허다한 장점을 가지 교회입니다. 그러기에이 교회에 보낸 바울의 편지는 다른 편지에서 보듯이 변박이나 혹은 책망의 내용은 별로 없고 그가 옥중에서 기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감사와 기쁨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의 유일한 단점이라면“음성적인 불일치”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교회생활에서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하나’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바울의 평생소원이“교회의 일치”였으며 이는 또한 주님의 간절한 소원이기도 합니다.(요17:11).

    에베소서4장3절에“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이는 성령이 주시는 은사이므로 이러한 은사를 소멸치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본래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육을 따라 주님 안에서 살게될 때 일치가 주어지는 것이다. 반면에 다툼과 허영으로 하는 것은 육체의 소욕대로 사는 행동이요 거기서 불일치의 비극이 일어납니다.

    혹이“단점을 찾아 사람을 평하면 천하에 완전한 사람은 없을 것이요 장점을 들어 사람을 칭찬해 보면 천하에 폐인은 었으리라”하였습니다. 실상은 누구에게든지 단점은 있고 또 누구에게든지 배울만한 장점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의 결점을 보지말고 자신의 부족을 찾아 겸손하고 자기의 장점을 마음에 두지 말고 다른 이의 장점을 배워 그를 나보다 낫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듯 겸손한 자는 자기의 주장을 강요하지 않고 자기를 부정하는 희생의 정신으로 살기 때문에 일치가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전생애는 그의 요람에서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부활 승천, 재림 이 모든 경험이“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신 그의 가르침의 실례가 되는 것입니다.

    잠언4:23절에“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마음에 있습니다. 마음이 그 사람의 주인입니다. 마음이 그 사람의 주체요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격이, 사람됨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 따라 그의 말과 행동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악하면 악한 사람이 되는 것이요, 마음이 선하면 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법구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마음은 모든 일의 근본이니, 마음이 주가 되어 모든 일을 시키나니 마음속에 착한 일을 생각하면 그 말과 행동 또한 그리하리라, 그 때문에 즐거움이 따르리니 마음속에 악한 일을 생각하면 그 말과 행동 또한 그리하리라, 그 때문에 괴로움이 그를 따르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보십니다. 외모와 신장을 보시지 않고 그 마음을 보시기에 마음이 좋은 다윗을 왕으로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제물에 문제가 있음이 아니라 마음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을 좌우하는 것은 언제나 나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마음 먹기 달렸다는 말은 옳은 말입니다.
    대학에 보면“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생을 지배하는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천당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마음에 천국을 먼저 이루어야만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중용에 보면“길고 짧은 것은 한 사람의 한 생각에 달려 있고, 넓고 좁은 것은 아! 한치 마음에 매여 있다, 그러므로 뜻이 없고 한가로운 사람은 하루도 오랜 세월처럼 지루하게 느끼고 뜻이 넓고 꿈이 있는 사람은 좁은 방도 천지와 같이 넓게 보인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마음만 있으면 모든 일이 형통하다 하는데 그 마음을 어디에서 찾을것인가? 아! 모든 일이 한 치 마음에 달렸다니---
    우리 나라 속담에“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치밖에 안 되는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다”“사람의 마음은 하루에도 열두 번 변한다”“사람의 마음처럼 간사한게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을 빼앗기면 아무것도 못 본다”는
    영국 속담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모든 일은 마음에서 시작되고 마음에서 끝이 납니다. 평화의 마음을 먹으면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그 평화의 마음은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오! 모든 것이 마음이로다.
    오직 마음 하나로다.
    즐겁다 하는 것도 마음이요.
    괴롭다 하는 것도 마음이다.
    생사도 필경은 마음 하나로구나!
    극락과 지옥이 어디 따로 있으랴.
    오, 모든 것이 마음 하나로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 되어야 할 것인가?.
    이는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지녀야 할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본문 5절에“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요 그 마음에 하늘 나라가 이루어진 사람이요, 그리스도인 답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품어야 할 그리스도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1.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빌립보서4장2절에“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말씀을 보면 그들에게 서로 협조를 당부하고 있는 있는데, 그들은 서로 마음이 상해서 돕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다툼이나 서로 반목하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스위스이 철학자 ‘힐티’(Hilty Carl)는 이렇게 말했습니다.“인류 최대의 불행은 우리 개인 개인이 서로 화목하지 못하는데서 발생한다”

    부부가 불목하면 가정이 어지럽습니다.
    중국 격언에“무너진 둥우리에 온전한 달걀이 없다”고 말합니다. 화목하지 못하면 온 가정이 파국을 면치 못한다는 말입니다. 국론이 분열되고, 뜻이 여럿이면, 나라에 위기가 닥쳐옵니다. 다툼이란 비극의 씨가 됩니다. 도대체 이같은 불행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1) 교만 때문입니다(잠13:10)
    “교만은 다툼만 일어날 뿐이다”고 했습니다.
    (2) 서로 미워하기 때문입니다(잠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움”
    (3) 이권 때문에 다툼이 일어납니다(창13:7-11)
    (4) 다툼의 원인 시비입니다(잠17:14)
    (5) 다툼은 정욕이나 욕심 때문입니다(약4:1-2)
    (6) 말쟁이 때문에 다툼이 일어납니다.(잠26:20)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장이 없어지면 다툼 이 쉬느니라”

    하여튼 다툼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다툼은 발전을 저해 합니다. 힘을 약화시킵니다. 더 큰 불행의 원인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툼이나 불화는 배격해야 합니다. 이것들을 극복해야 평화가 이루어 집니다.

    특히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말 때문에 다투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지만, 말은 할수록 거칠어 진다”고 합니다. 개는 잘 짓는다고 해서 좋은 개가 아닌 것처럼 말을 잘한다고 해서 현명한 사람은 아닙니다.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잔인한 말 한마디가 증오의 씨를 뿌리고.
    쓰디쓴 말 한마디가 삶을 파괴합니다.
    무례한 말 한마디가 사랑의 불을 끕니다.
    은혜스러운 말 한마디가 길을 평탄케 하고.
    즐거운 말 한마디가 하루를 빛나게 합니다.
    때에 맞는 말 한마디가 긴장을 풀어주고.
    사랑의 말 한마디가 병을 낫게 하고 축복을 줍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중요한 권면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비극은 하나되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부부간에 하나 되어야 합니다. 온 가정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부부간에도 가는 길이 다릅니다. 자녀들이 부모님의 생각을 따라 주지 않습니다. 모두가 각기 자기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구역이 하나 되지 못합니다. 기관이 하나 되지 못합니다.
    교회도 하나 되지 못합니다. 나라도 하나 되지 못합니다.정말로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기 위하여 힘써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해야 됩니다.“마음을 같이 하여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으라”(2절).

    사람이 사는 곳은 그 어디나 문제가 있고, 문제가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싸워서야 되겠습니까? .

    에덴 동산에도 사탄의 도구인 뱀이 있었고, 주님의 제자 중에도‘ 가롯 유다’가 있었으며,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에도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있었고, 가장 은혜롭다고 칭찬받았던 빌립보 교회에도 문제가 있었으니 이 세상 어디라도 사람 사는 것은 다 문제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그런 문제를 어떻게 은혜롭게 덕스럽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만이 문제입니다.

    문제가 부딪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문제를 대할 때 화가 나니까 화를 내고 속이 상하니까 혈기를 내면서 감정을 가지고, 미움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니까 감정에 감정, 혈기에 혈기, 대결에는 대결로 그러다 보니 미움과 감정이 격화되어 마침내 화해나 평화란 찾아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상대방이 미움과 감정과 혈기와 악의찬 비방과 심지어는 폭력을 동원할지라도 모세처럼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감정은 감정으로, 비방은 비방으로가 아닌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을 돌려대고, 5리를 가자 하면 10리를 동행하여, 미움은 사랑으로, 비방은 칭찬으로, 악은 선으로 이겨 나가서 마침내는 사랑이 싹이 트고 선이 열매 맺어 사랑과 선이 내 마음을 차지하고 지배하는 사랑의 승리자가 되어야 비로서 나로 인해 참된 평화가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내 마음 속에서부터 미움을 몰아내고, 감정과 혈기를 몰아내고 오직 사랑만이 지배하도록, 사랑의 승리자가 되도록, 사랑의 천국을 심령과 마음 밭에 건설하도 힘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낮아짐이 없이는 결코 하나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없이 다른 사람의 위에 오르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대접 받고자 하고, 서로 높아지고자 하니 다툼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허영입니다. 그 결과는 불화와 반목과 시기와 질투일 뿐입니다.

    만일 모든 사람이 끊임없이 자기만을 생각한다면, 모두가 자기 중심이 되고 말 것입니다. 자기 중심은 곧 이기주의 입니다. 영적인 장님이며, 그가 곧 이기주의 자입니다.

    고슴도치는 제 새끼를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권면합니다.“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 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이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하루는 두 산양이 외나무 다리에서 만났습니다. 되돌아 설 수도 없고, 서로 비켜갈 수도 없습니다. 만일 서로 밀친다면 둘다 물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가능한 방법은 있습니다. 하나가 다리 위에 납작 엎드리면 다른 하나가 그 위를 밟고 넘어가면 됩니다.

    서로가 지지 않으려고 다투는 것 보다는 엎디어 밟힘으로 조용한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주님은 하늘나라에서 그를 높이고 위로하실 것입니다.

    어느날 벤자민 프랭크린이 이웃 집에 갔었습니다. 그 집에서 나오는 길에 나즈막한 들보 하나가 있었습니다. 주인은“머리를 숙여요, 머리를 숙이세요”라고 일러주었다
    그러나 프랭크린은 그냥 나오다가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아파서 어루만지고 있는 ‘프랭크린’에게 노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젊은이 자네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머리를 자주 숙이면 숙일수록, 그만큼 부딪치는 일이 없을 걸세” 그는 언제나 이 말을 명심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겸손하신 분이시기에 일생을 겸손하게 사셨습니다. 그의 말씨가 온유하고 겸손하였고, 그의 태도가 온유하고 겸손하였습니다. 사지에 끌려 가시면서도 입을 열지 않고, 매를 맞고 모욕을 당하고 뺨을 맞고 침뱉음을 당하였으나 입을 열지 아니하였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온유하고 겸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찾습니다. 겸손한 자를 높이 들어 세우십니다.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하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셨습니다.

    유대 속담에 “물과 은혜는 낮은 곳으로 임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처럼 겸손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은혜와 복을 더하시고 그를 높이 들어 쓰십니다. 겸손한 사람이 주님을 제일 많이 닮은 사람이며 주님의 제자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겸손한 마음을 품어 주님으로부터 높임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주님의 마음은 복종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말에는 순종과 복종이 있습니다.
    순종은 어떤 말과 일에 자기도 합당하게 여기고 동의하여 순순히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강퍅한 사람은 자기 마음에 들어도 순종하지 않습니다만 복종은 자기에게 합당하지 않고 또 따르기가 대단히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따른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는“아니오”가 없었습니다, 항상“예”만 되셨습니다. 고린도후서1장19절에“예수 그리스도는 예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아무 것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하셨고, 행동하셨습니다. 주님의 복종은 십자가를 통하여 그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사람이라면 죽음이 두렵지 않고 죽음을 달게 받을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더구나 그 죽음이 십자가의 형벌이라는 사실을 아시는 주님이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는 일입니다. 주님은 그 십자가를 앞에 놓고 밤새워 피땀을 흘리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결론은“아버지여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주님처럼 복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복종은 고사하고 순종하기조차 꺼리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합당한 일이요 당연히 할 일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도 아닌데 순종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목이 굳어있습니다. 목소리가 높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성도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불순종도 죄라고 하였습니다.

    마귀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천사장의 하나가 마귀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반기를 든 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쫓겨났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귀의 자식들을 가리켜 불순종의 자식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순종의 자녀들입니다.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게 된 것입니다.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며, 순종함으로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순종의 사람 아브라함과 이삭은 믿음의 표본입니다.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아브라함은 두말하지 않고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종입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들 이삭도 아버지의 순종을 본 받은 사람입니다.

    나무 위에 제물로 묶여서 아버지가 칼을 들고 그의 목을 찌르려고 해도 그는 입을 열지 아니하였습니다. 이삭 역시 순종을 뛰어 넘는 복종의 아들이었습니다.

    참다운 성도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일까요?.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입니다. 죽기까지 복종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신자를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그의 말씀에, 교회에 복종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예수님의 마음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참 평화는 아만(我慢)을 벗어 버릴 때 가능합니다.
    내가 제일이라는 생각, 내가 제일 잘났고, 제일 훌륭하고. 내 하는 일은 다 옳고 내 생각과 판단은 다 옳고, 혹 내 생각이나 판단과 다르거나 차이 나는 사람은 다 잘못된 것이라고 여기는 데서는 평화가 오지 않습니다.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내 생각보다는 저 사람의 생각이 옳고, 나 보다는 상대가 더 훌륭하고, 나 보다는 저 사람이 더 잘났고, 나 보다는 저 사람이 더 착하고, 더 덕스럽고, 더 잘 믿고, 더 아는 것이 많다고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는 마음이 참 평화를 이룰수 있습니다. 우리는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사람의 자세가 평화와 화해, 화목의 초석이 됨을 알아야 합니다.

    여름의 계절이라 휴가를 떠나게 됩니다. 이번 여름 휴가는 서로의 마음을 열고 가족끼리 하나가 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교회에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우리 주님의 마음은 대접받는 일, 영광받는 일, 칭송받는 일, 남 앞장서는 일은 뒤로 보류하고 수고하는 일, 힘든 일, 욕얻어 먹을 일부터 우선하고 보자는 마음과 태도입니다.

    영광은 남에게, 수고는 내가, 대접받는 일은 남에게, 욕먹을 일은 내가 짊어지는 그런 분이 예수님이시며 이런 예수의 정신으로 모이는 곳에 평화가 이루어지고야 말 것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고생할 때 갈렙의 일가는 영광받는 일은 남을 앞세우고 수고하는 일은 자기들이 앞장서서 열심히 감당했습니다. 갈렙은 여호수아와 같이 똑같이 수고했으나 언제나 여호수아를 앞세웠으며 그의 아들 홀도 아론과 똑같이 수고했으나 항상 아론을 앞세웠고 항상 저들은 뒷전에 가리워져 있었습니다.

    음덕(陰德)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음덕이란 그늘 속에서 일을 잘한다는 뜻입니다. 갈렙과 그의 아들 홀이 바로 음덕의 사람이었습니다.

    큰 복을 받을 사람은 그늘에서 덕을 쌓는 사람, 남 모르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복을 쌓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복이 쌓이고 쌓여 큰 복이 되는 것이니 이는 가나안 정착 후에 다윗 왕가를 통해 천년이나 내려왔고 마침내는 인류를 구원하실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실 때에 여호수아나 아론의 혈통에서 난 것이 아니라 언제나 뒤에서 그늘에서 덕을 쌓았던 갈렙의 후손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미 영광이나 복을 다받아 써버린 사람에게는 더받을 영광이나 복이 없으니 받을 복을 뒤로 미루고 뒤로 보류하면서 묵묵히 자기 할 일만을 잘하는 사람은 복이 쌓이고 쌓여 대복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진정한 화해와 평화와 화목을 이루는 사랑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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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적의 역사는 믿음으로 이루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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