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9. 1
로마서12:2-8절
당나라 태종(太宗)이 새로 궁전(宮殿)을 지을 때 연못도 새로 만들었다. 처음으로 그곳을 들러본 태종이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여기 반딧불이라도 있다면 더 아름답겠군.”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약삭빠른 신하가 온 장안사람을 동원하여 반디를 잡아오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수집한 반디가 우차(牛車)로 5대나 되었다. 며칠 후에 태종은 또다시 연못을 둘러보았다. 수없는 반디불에 놀라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신하는 자랑스레 자초지종을 말했다. 태종은 한탄하기를“임금이란 말 한마디라도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가 보군” 그 후로부터 태종은 총애하던 그 신하를 멀리했다. 그리고는 그토록 아름다워 보이던 연못도 두 번 다시 둘러볼 마음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태종처럼 현명한 임금은 그 이후에도 드물었다고 합니다.
오늘처럼 복잡하고 험한 세상을 살아 간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역사란 어지러운 문제의 연속입니다. 태평무사한 시대, 걱정과 근심이 없는 세상을 살아간다는 일은 어찌보면 장마철에 잠시 햇빛을 보는 정도밖에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지금도 전쟁과 빈곤, 인간학대, 인권유린, 부정과 부패, 모략과 질투, 분냄과 다툼, 미움과 조롱, 거짓과 이간, 교만과 불만, 불평 등으로 살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이때를 사는 우리들은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방법인가를 고민하고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라고 보내면서 마태복음10:16-17절에 말씀하시기를“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너희를 법정에 넘겨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예수님의 이 교훈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지혜입니다.
옛날 유대인들에게 몇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에게는 천사가 전해 준 613개의 계율이 있어서 그대로 지키면 되지만 사회 생활은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므로 그들의 생활을 전혀 무시할 수 없는데 유대인은 이방인들을 위하여 선교사를 파송하거나 전도하거나 율법을 강요하는 일은 절대로 없기 때문에 고민하던 끝에 다음과 같은“7가지 계명”을 주었다고 합니다.
1. 동물을 죽여 즉시 날고기로 먹지 말라.
2. 다른 사람을 욕하지 말라.
3. 도덕질 하지 말라.
4. 법을 어기지 말라.
5. 살인하지 말라.
6. 근친상간을 하지 말라.
7. 불륜한 관계를 가지지 말라.
이런 내용의 규례를 주었는데 이는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 내용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는 것이요, 사는데 중요한 것은 바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은 산다는 것 자체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한데 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똑바로 생각해야 합니다.
동물들은 본능대로 살지만 인간은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람이 생각없이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고 반면에 생각하면서 사는 것은 인생을 더욱 고상하게 하고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입니다.
현대를 일컬어 흔히 정보화의 시대, 불확실성의 시대, 풍요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모든 지식이 전문화, 조직화, 정보화되어 가는 지식의 홍수 속에서 미래에 대한 전망은 낙관적이지만 어느덧 경제는 소비지향적인 생활로 변모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전 사람들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생활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이제는 무질서로 보이고,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종교 등 사회의 각 분야는 겉잡을 수 없을 만큼 혼란하고 험악해 지는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오늘을 살아가기가 더욱 힘듭니다.
그러기에 현대는 너무 분주하고 복잡하므로 깊이 생각하려 하지 않고, 조용히 생각하거나 차분하게 명상에 잠기는 일은 하려고 하지 않으며 그때 그때 그 순간의 감정대로 살아가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현대의 병폐는 정신적인 빈곤으로 인하여 자기의 뚜렷한 주관이 없고, 생각에 깊이가 없고, 결심이 약하여 아무렇게나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 일본 사람들의 독서 열기가 대단하여 출판업계가 호황을 누렸고 서점들도 톡톡한 재미를 보았는데 근래에는 성인용 만화가 제일 많이 팔리며 독서 인구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눈을 뜨면서 신문을 읽음으로 하루가 시작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신문이 생활의 일부분을 차지 했는데 최근 몇 년 동안 신문 구독율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모두가 바쁘게 살다보니 신문을 정독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일들을 통하여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이 어떤지를 알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것은 올바른 행동에서 오며, 올바른 행동은 옳고 바른 판단에서 오며, 올바른 생각에서 오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일은 모든 일을 똑바로 보고 올바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옛날 독일의 어느 마을에 바보라고 불리우는 소년이 있었다. 동네 아이들이 이 바보 소년을 놀려주기 위해서 5원짜리 동전과 10원짜리 동전을 놓고서 마음대로 집어 가라고 하면 이 소년은 항상 5원짜리 동전만 집어 갔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그를 바보라고 놀리는 것이다. 어느날 인자스런 아주머니가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애야! 5원짜리 보다는 10원짜리 가 더크단다. 다음부터는 10원 짜리를 잡으려므나”하고 친절하게 일러주자 이 바보소년은 싱긋 웃으면서“아주머니 그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제가 10원짜리를 집으면 싱거워서 다시는 그런 장난을 안할 거예요, 그럼 저는 돈을 못 벌지 않겠어요?”누가 지혜로운 사람일까요? 바로라고 치급하던 사람들 입니까? 이 소년입니까?
오늘 본문 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그러면“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했는데그 방법이 무엇일까요?
1. 내가 누구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하여 자신이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먼저 자기 문제입니다. “내가 어떻게 사느냐, 어떻게 돈을 모을 것이냐,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성공하는가”하는 등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일은“내가 누구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모 앞에서, 친구들 앞에서, 교인들 앞에서, 세상 속에서의 자기의 모습을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지식인이라고 칭호를 받던 헬라 사람들은 일찍이“너 자신을 알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과연 나 답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엄한 인격을 소유한 나로서 조금도 허트럼짐 없이 자신의 개성을 살리면서 자존의 주체로서 진실된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죠지 헐버트"(George Herbert)라는 사람이 쓴
"인간"(Man)이라는 시의 한 구절을 소개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바람은 불고
지구는 돌며
하늘은 움지기고
샘들은 솟는다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의 즐거움과
우리의 보화로서
우리를 유익케 하는
방법 뿐이다.
전체는
우리의 찬장이 아니면
우리의 쾌락의
진열실이다.
이것은 마치 물에 불어오른 콩알 모양으로 자아가 확대된 현대의 교만한 우주관 내지 인생관을 말해주는 하나의 예입니다.
이 세상이 모두 자기를 위해서만 있는 거처럼 망상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제잘난 맛에 산다고 말합니다.
달려가는 수례바퀴에 붙어 있던 쇠파리 한 마리가 먼지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이것이 자기의 힘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알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는 우스운 애기가 이솝의 우화중에 나옵니다. 세상에는 이처럼 제 잘난 맛에 즉 자기과대증(自己誇大症)에 걸려 살아가는 인간이 부지기수 입니다.
물론 인간이란 모름지기 다른 사람의 생활을 간섭할 권리는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고립하여서는 살 수 없는 세게입니다. “옷 소매 하나를 부비고 지나쳐도 타생의 연(他生의 緣)”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평화의 노래”(Song of Prace)중에
“우리가 우리의 조국에 대해서 심장이 뛰면, 다른 나라 사람들은 또한 자기 나라의 조국애 때문에 가슴이 뛸것이다, 내나라의 하늘이 푸르고 햇빛이 따뜻하며 수목이 늘 푸른 것처럼, 다른 나라에도 하늘은 푸르고 햇빛이 따뜻하며, 수목도 늘 푸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민족의 하나남이시어 우리는 내 나라와 또한 세계의 평화를 위한 노래를 부릅니다”라는 가사야 말로 자신을 아는 사람의 노래가 아닙니까?.
나의 조국이 중요하면 남의 나라도 중요합니다. 나도 중요하지만 내가 중요한 만큼 남도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내가 귀한 만큼 남도 귀하다는 말입니다.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아는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어느날 석가가 숲속을 거닐고 있을 때 갑자기 어떤 젊은 여인 하나가 미처 옷도 다 입지 못하고 쫓기는 모습으로 허겁지겁 달려오더니 숲 속에 몸을 감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뒤에 남자들이 뒤따라 오더니 석가에게 말하기를“이리로 방금 어떤 여자 하나가 달려오는 것을 보셨습니까? 우리는 지금 그 여자를 찾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석가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합니다“당신들이 그 여자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자기 자신을 찾으시오”라고 대답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의 범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자신을 잃어버리고 사단이 속삭이는 말을 듣고 하나님 앞에서 자아를 잃어버리고 수풀 속에 숨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모습을 바로 알고 자기 분수를 알게 되는 것이 곧 신앙의 바른 길입니다.
2. 무슨 일이든지 적당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적당히 생각하라는 말은 대충생각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은 말합니다“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원래 의미는“자기 스스로를 교만하게 하거나 자랑하는 존재로 생각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생각해야 할 정도 그 이상으로 높이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한계를 넘는 것이 죄입니다. 도를 넘는 것이 죄입니다.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에 보면
“하나님이여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에 대하여는 그것을 받아 들일 수 있는 평정을 주시고 내 힘으로 고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그리고 이 두 가지 차이를 깨달아 알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사람이 자기 정도 이상으로 자기가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도 잘못이며, 그렇다고 자기가 능히 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못한다고 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성도님들이 기도하면서도 저지르는 실수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이 가능하게 하신 일을 내가 겁을 내고는 못한다고 포기하는 일이나, 또는 하나님이 안 된다는 일을 해달라고 억지를 쓰는 일이 있습니다. 믿음의 분량만큼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하는 것은 자신을 받아 들이고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못났으면 못난대로, 잘낫으면 잘난대로,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른는대로, 더도 말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가끔 지나치게 겸손하려 하는데 지나친 겸손은 자기 부정이며 더 나아가 교만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지나치게 나서는 것은 교만입니다.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 행위입니다.
3. 신령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데 언제나 한가지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내용이 있습니다. 이것 저것 생각하면서 산다는 말입니다.
지난 일을 생각하는 것을 가리켜 상기한다고 말합니다.
6,25를 상기하자 라고 말합니다. 뼈아픈 과거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을 가리켜 추억이라고 말하며(연애시절. 학창시절), 친구나 가족들을 보고싶어 생각하는 것은 그리움입니다.
어떤 사물을 구별하면서 생각하는 것을 판단이라고 말하며, 옳고 그릇된 것을 구별하는 것도 판단이라 말합니다.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를 생각하는 것은 분석이고,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을 예측이라고 말합니다. 미루어 생각하는 것을 추리라고 하며, 해야 할 일을 미리 생각하는 일을 구상이라 말하며 세상에 속한 생각은 허무한 것이고 하늘에 관한 생각은 신령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신령한 생각이란 무엇일까요?
1) 시대를 분별하여 주의 뜻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철저히 영적인 삶을 위주로 해야하기 때문에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그 속에 어룰려서 살지도 말고 거슬러 올라가는 역동적인 삶이 요구됩니다.
로마서12:2절에“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하셨으며 이 세대가 악하니 지혜롭게 대처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지혜는 어떻게 얻어지는 것입니까?
그것은 절대로 세상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늘의 것이며, 믿고 구하는 자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십시요. 하나님의 지혜가 없이는 결코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면 신령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2) 세상에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령한 생각을 해야 하는 사람이 세상의 속된 생각을 한다면 어떻게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세상 일에 취하다 보면 신앙으로 살아가야 하는 모든 시간들을 다 빼앗겨 버리면서 살게 됩니다.
세상일에 취하다 보니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참된 진리에서 벗어나 제맘대로 살아가는 어리석은 성도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참된 진리에서 벗어난 일에 취하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에베소서5:15-21절에 보면. 이 세상의 육신적인 세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원래 죄된 성품을 지니고 사는 우리들이기에 배후에서 공급하시는 능력이 없이는 우리는 영적인 삶을 바르게 지탱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4. 창조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생각이 없어도 곤란하지만 잡다한 생각이 너무 많아도 걱정입니다. 생각이 많은 사람은 원래 속이 복잡합니다. 망설이기 잘하고, 어떤 일이 있으면 요리저리 재기만 하다가 시간을 낭비하고 맙니다.
‘윌리암 제임스’는 “지옥은 사람들의 좋은 결심으로 길이 깔렸더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는 어떤 좋은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지 실천하지 않았으니 지옥에 가서야 뒤늦게 후회한다는 말입니다.
영국의 철학자‘프랜시스 베이컨’은 학문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수집할 줄 아는 경험파의 개미가 되어도 안되고,
자기 뱃속에서 실을 뽑아내는 이론파의 거미가 되어도 안되고 수집하는 동시에 새것을 창조해 내는 꿀벌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생각이란 마치 흐르는 물과 같아서 자기 생각만 고집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앙, 지식, 사상이 완전하고 정상적인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의 옹졸한 생각을 고수하고 있으면 고집불통인 사람이 됩니다. 어제까지 옳던 일이 오늘에 와서는 달라질 수도 있고 어제까지는 새로운 생각이 오늘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알고 있는 그것만 진리인줄 알거나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만 옳다고 주장하는 입장이 되어서는 안되고 매일매일 새로운 구상에 살고 매일매일 새로운 사랑의 열매를 거두기 위해 선의의 노력을 한다면 밝은 생활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새 것은 받아 드리고 용기있게 자기 것을 만들어 내는 생각이 지혜로운 생각입니다.
성도의 삶은 창조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어두운 곳을 밝히고, 불의를 추방하고, 잘못된 환경을 개선하여 좋게 하며,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려는 노력은 하되 그것은 곧“내가 한다”는 사명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윌리암 4세가 죽은 이틑날 궁중에 있던 한 처녀가 왕으로 간택을 받았다. 그녀가 바로 빅토리아 여왕이었다. 그녀는 64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영국의 번영을 이룩함.
그녀는 여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로 무릎을 꿇고 성경을 폈다. 잠시도 자신의 품에서 떠나지 않았던 성경을 놓고“주여! 내가 여왕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하게 해 주십시요”라고 기도를 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해결했고, 기도로 정치를 했다.
어느땐가 인도의 왕자 한 사람이 여왕에게 “그렇게 정치를 잘 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성경을 펴들고“바로 이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습니다. 성경에는 지혜롭게 생각하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비결이 있습니다.
한 주간도 험한 세상 속에서 살지만 잠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스스로 교만하지 말고 자기 자랑하지 말아야 하며, 세상것을 생각하다가 망신 당하지 말고 신령한 것을 생각하며, 창조적인 생각을 하되 말씀을 통하여 지혜롭게 생각하고 지혜롭게 살다가 축복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