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을 떠올리면 목사님을 언제나 승승장구 좋은 교회, 주위의 사랑을 많이 받고 목회를 해오신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말 다하시고 언제나 당당하신 것 같아서 한편으론 부럽고 한편으론 목사님 같은 분 또한 외롭고 힘들고 고난과 역경의 시절들을 지내온 적이 있는가! 궁금합니다.>
저는 그 질문 앞에서 이제 까지 제 자신의 목회를 한번 뒤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만 생각하면 거의 한해도 마음 편히 목회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제 목회의 결과만 볼 뿐 그 과정을 잘 보지 못합니다. 언제나 승승장구하여 주위의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 좋은 교회에서만 목회 한 것으로 압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결과는 값없이 그냥 공짜로 제게 주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와 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제게 허락하신 과정은 날마다 외롭고 날마다 힘들고 날마다 고난과 역경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개척한지 일년도 되지 않아 수 천명이 모이는 교회를 목회 하는 것을 보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결과만을 보고 사람들은 그냥 쉽게 쉽게 이런 일이 저에게 주어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잘못하면 오해받을 수 있는 위험한 생각과 말이 될 수 도 있지만 이와 같은 결과를 하나님으로부터 얻기까지 지금까지 살아온 제 삶의 과정들은 겉으로 보는 것처럼 그렇게 편안하지 만은 않았습니다. 편안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제 나름대로는 외롭고 힘든 고난과 역경의 나날이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목사만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 모두 다 똑같이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목회도 그에 못지 않고 힘들고 어렵다는 것입니다.
저는 저만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았다 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도 여러분 못지 않게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왔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세상과 불화'하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는 말씀을 한 마디로 정리하고 요약하면 '세상과 불화'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세상과 불화 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말씀입니다. 저는 요즘 설교를 하면서 마음으로 좀 불안합니다. 세상에서 지치고 피곤한 삶을 살다가 교회에 나오신 여러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는 설교를 좀 해야 할 터인데 거의 매 주일 전투적인 설교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제가 마태복음을 차례대로 설교하지 아니하고 제 마음대로 본문을 생각하여 설교를 하였다면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에 대한 설교를 하였을 것입니다. 저는 그와 같은 설교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가하는 설교의 순서는 예수님의 설교의 순서를 따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 예수님의 설교에 그와 같은 위로와 축복에 대한 말씀이 별로 없습니다. 물론 궁극적으로 위로와 축복에 대한 말씀이지만 그 축복을 위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언제나 십자가와 좁은 길이십니다.
이제 곧 설교하게 될 것입니다만 마태복음 11장에 나오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는 오랜만에 보는 위로와 축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에게로 오라 말씀하시면서 그냥 오라 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멍에를 메고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볼 때 하나님은 한번도 우리를 편하게 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십자가, 좁은 길, 검, 멍에, 피흘리기 까지 싸움과 같은 것들을 요구하십니다. 그와 같은 말씀은 듣는 여러분들도 힘드시지만 그와 같은 말씀을 설교해야하는 저는 더 힘듭니다. 그러나 저는 힘들어도 그냥 예수님의 순서와 식대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힘드시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식과 순서라고 생각하시고 받아들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온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과 화목하지 말고 세상과 불화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시면서 제일 힘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불화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불화가 제일 힘듭니다. 부부간의 불화, 부모와 자식간의 불화, 직장 동료간의 불화, 그것을 통하여 사람과 원수가 되는 것처럼 힘든 것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늘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그와 같은 요구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역설적이지만 '화평'을 위해서입니다. '화목'을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세상과 불화'하라고 말씀하시는 까닭과 목적은 '하나님과의 화목'입니다. 진정한 화평은 세상과의 화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화목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화목하려고 하는 자는 세상과 불화 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화목 하는 자는 하나님과 불화 하게 되고, 세상과 불화 하는 자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과 화목 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물론 언제나 성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과 화목 하려고 할 때마다 늘 세상 적으로는 힘들었습니다.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었고, 편하게 목회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 못지 않게 그와 같은 기회가 저에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대로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것이 성경에서 배울 수 있는 일관된 하나님의 말씀이요 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세상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세상 식이 있습니다. 세상에 세상이 없는 세상은 없습니다. 세상에도 세상이 있고, 교회 안에도 세상이 있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내 안에 세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세상과 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 안에 세상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세상 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때문에 저는 교회 안에 있는 세상과 싸우려고는 하지만 교회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라며 절망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교회 안에는 세상이 없는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잘못된 기대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실망할 수밖에 없는 잘못된 기대입니다. 그런 일이 있으면 그냥 싸우면 됩니다. 실망하거나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망하고 절망하는 것이 물론 힘들고 어렵지만 실망하고 절망하지 않아도 그냥 잘못된 교회 안의 세상과 싸우는 것만도 참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실제로 한 8-9년 전에는 너무 신경을 많이 쓰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정말 죽을 뻔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정신적으로가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오늘 밤에 내가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만큼 심각했었습니다. 급히 병원 응급실을 찾았었고 꽤 여러 날 병원에 입원을 하기도 하였었습니다. 사실은 지금도 그 후유증이 있어서 조금 상처를 받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제 머리 근육 한 쪽 부분이 마비가 되곤 합니다.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부족하지만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 목회를 해 온 흔적과 훈장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게는 나름대로 힘들고 어렵고 외로운 일을 당할 때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 몇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부끄럽지만 소개해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을 믿습니다.
둘째는 과거의 고난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고난을 기억하는 순간 그 과거의 고난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해결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과거의 고난이 해결이 되었기 때문에 현재의 고난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때 저는 오늘 현재의 고난이 내일에는 또 과거의 고난이 되겠구나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이 들면 견딜 수 있게 되고 참을 수 있게 됩니다.
셋째는 힘들 수록 도망가지 않고 싸우는 것입니다. 제 목회 철학 중에 "싸우면 7일 도망가면 40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싸웠더라면 일주일에 들어갔을 가나안을 무서워 두려워함으로(믿음이 없다는
뜻) 40년간 광야 생활을 하였고 결국에는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싸우면 힘들지만 안 싸우고 타협하면 더 힘듭니다. 제일 힘들고 어려운 것은 비겁하게 도망하는 것입니다. 편히 살겠다고 타협하는 것입니다. 싸우면 문제가 조금씩 해결되고 도망가면 문제가 점점 더 커집니다. 그래서 저는 싸웁니다.
반복하여 말씀을 드립니다만 교회 안에도 세상이 있습니다. 저는 목회 하면서 열심히 그 교회 안에 있는 세상과 싸우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과 싸우면 세상과 불화 하게 되고, 세상과 불화 하게 되면 사는 것이 참으로 힘들어지고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많은 손해들을 봐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들이 늘 있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대로 도망가지 아니하고 싸우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과 손해는 감수하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것이 제가 져야 할 구체적인 십자가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세상과 싸우면 많은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 동안 제가 당한 고난과 손해를 구체적으로 열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손해는 결과적으로 다 이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보고 있는 저의 편안해 보이고 승승장구하는 것만 같아 보이는 삶이 그와 같은 손해와 고난의 대가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그와 같은 삶을 약속하셨는데 그와 같은 약속의 성취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너무 건방진 말씀 같아 많이 불안하고 많이 캥깁니다. 그러나 저는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간증을 하고 싶습니다)
세상과의 불화는 하나님과의 화목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님과의 화목은 세상과의 불화라고 하는 십자가를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지만 일단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면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평안 그리고 진정한 삶의 승리가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승리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똑똑하고 힘있는 사람에게 그와 같은 삶의 승리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에게 그와 같은 삶의 승리를 주십니다.
저는 세상적으로 볼 때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 아닙니다. 거의 극복이 되었습니만 그러나 아직도 저에게는 그와 같은 것에 대한 열등의식이 남아 있습니다. 열등의식이 조금 남아 있는 것이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됩니다. 함부로 교만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만해 지려고 하는 마음이 있을 때마다 저는 저의 열등의식을 기억합니다. 그러면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였던 바울의 마음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저의 저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고백하고 싶은 것은 그 놀라운 은혜가 저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 속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개척한지 일년도 안 되는데 수 천명이 모이는 교회에서 목회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저는 그 은혜 중에 하나라고 믿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아멘 그 말씀을 뒤집으면 이런 말씀도 됩니다. "현재의 영광은 장차 받을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세상 무서운 줄만 알아 세상과 화목 하려는 사람들이 두려워해야 할 말씀인 것 같습니다.
너무 건방을 떠는 것 같아 죄송스럽습니다. 부족하지만, 완벽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지금 까지의 삶은 교회 안에 있는 세상과 불화 하려고 나름대로 힘써 싸워왔던 삶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때문에 많은 손해와 상처를 받았었는데 그와는 정말 비교도 되지 않게 하나님께서 갚아 주시고 채워 주셨습니다. 정말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모든 면에서 부족함 없이 채워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십자가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으면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면류관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좁은 길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힘들어도 좁은 길을 선택하여 걸으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길은 넓은 길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무거운 것 같아도 그 멍에를 메고 주를 따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게 됩니다. 진정한 자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우리를 부자유케 하는 멍에가 아니라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케 하는 참으로 역설적인 멍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세상과 불화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과 불화하는 것은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일이지만,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의 길을 자초하는 것이지만 순종하여 세상과 불화하며 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화목을 통한 진정한 화평의 축복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살려고 하지 말고 목숨을 버리는 삶을 살라 말씀하십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목숨을 버리는 삶을 살면 죽지 않고 삽니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살게 됩니다. 정말로 잘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여 십자가를 지지 아니하고 면류관을 쓰려고만 하면 결국은 십자가를 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여 좁은 길을 선택하지 아니하고 넓은 길을 선택하면 처음에 넓은 길이 갈수록 좁아지게 됩니다. 나중에는 좁은 길이 아니라 막힌 담이 됩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거부하고 편히 자유롭게 살려고 하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종이 되어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멍에를 메고 쓰러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세상과 불화하지 못하고 세상과 짝하여 살면 처음에는 편한 것 같고 처음에는 좋은 것 같으나 결국 하나님과 불화하게 되어 진정한 화평과 평안을 잃어버리고 실패와 좌절 그리고 불안과 초조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세상과 불화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검을 들고 세상과 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세상이 어디에 있든지를 불문하고 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세상이 교회 안에 있으면 그 교회 안에 있는 세상과 싸워야 하고, 그 세상이 자신 안에 있을 때는 자신 안에 있는 세상과 싸워야 합니다. 그 세상이 부모 안에 있으면 부모와 불화 하여야 한다고 까지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그만큼 악하고 무서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불화는 불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화목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야만 교회와 자신과 가정에 진정한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시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거짓된 평화에 속지 마십시오. 싸우려 은혜에 혹하지 마십시오. 세상에 평화 없습니다. 진정한 삶의 평화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과 화목 하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과 화목 하려고 하십시오. 진정한 삶의 행복은 세상에 없습니다. 진정한 삶의 승리와 행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과 화목 하려 하지 마시고 힘들어도 하나님과 화목 하려 하십시오.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하여 세상과 불화하며 살아가는 지혜롭고 용기 있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