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세명의 대학생들이 아파트의 24층에 세를 들어 함께 지냈습니다. 어느 주일에 외출을 하고 돌아와보니 마침 정전으로 인해 엘리베이터가 작동되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걸어서 올라갈 도리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때 철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말하기를, 슬슬 이야기나 하면서 올라가면 쉽게 갈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전공과목인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정도 층계를 올라왔을 때 법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들이 깔깔거리고 웃는 사이에 어느새 24층에 도달해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현관 앞에 섰을 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무도 경비실에 맡겨놓았던 현관 열쇠를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서로 너무 믿다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일평생 천국을 향해 계단을 오르듯이 힘들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문에 이르렀을 때 [믿음의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결단코 천국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믿음으로 천국문을 통과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있어서 믿음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 23을 보면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라고 말씀했습니다. 즉 무엇을 하든지 무엇을 먹든지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 시간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헌금을 해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찬양을 해도 믿음으로 드려야 하며, 여러 가지 봉사를 해도 믿음 가운데 해야 합니다. 구제를 해도 믿음으로 해야 하며, 전도를 해도 믿음의 확신 가운데 해야 합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을 대접할 때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로마교회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대대로 음식을 가려먹는 전통이 있어왔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유대인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을 수 없는 부정한 음식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모세의 시대로부터 내려오던 전통을 따라 모든 음식을 가려 먹었습니다. 특히 목매 죽은 것이나 돼지고기 또 동물의 피같은 것은 절대로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은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잘 먹었습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유대인들과 예수 믿는 이방인들 사이에 큰 갈등을 초래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이방인들을 향하여 경건치 못한 자들이라고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을 향하여 율법적이고 바리새적인 사람들이라고 지적하며 서로 판단하고 비난했습니다.
로마서 14:1-3을 보면, 사도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하여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처럼 똑같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면서도 고기를 먹어도 된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절대로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개인의 기호나 식습관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로 인해 교회에 파벌이 생기고 분쟁이 일어나고 갈라지게 되었으니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크고 작은 문제들로 인해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어떤 교회는 성전을 정성으로 열심히 건축하고 나서 둘로 갈라졌다고 합니다. 원인은 강단의 커튼을 무슨 색으로 하느냐 하는 것이 분쟁의 발단이 되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예전에 미국의 어떤 교회는 한국에 파송한 선교사가 귀국하여 사역보고를 할 때 보신탕을 먹은 이야기를 하자 이를 문제삼아 선교사를 계속 후원해야 하느냐, 지원을 중단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로 심한 논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14-15에서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고 단호히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전서 4:3-5에서도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 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만물은 먹으라고 주신 것으로 모든 만물에는 속된 것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만 속될 뿐 속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로 인해 형제들을 고민하게 만들고 근심하게 만든다면 이는 명백히 그들 안에 사랑이 없는 증거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이 그 영혼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죽어주셨는데 그 귀한 형제를 먹는 문제로 망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 목회자들의 수양회에 갔을 때, 저를 포함하여 몇 분들은 먹지 않지만 다른 목사님들이 어찌나 개고기를 맛있게 잡수시든지 대단히 맛이 있나 봅니다.
사실 보신탕을 먹는다고 해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신탕을 먹어도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다”는 것이 기독교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보신탕을 먹고 안 먹고 하는 문제는 진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가지고 지나치게 자기 주장만 내세우며 상대편을 정죄하고 판단하므로 해서 교회 안에 혼란을 가져와서는 안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특별히 두 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마음에 거리끼는 데도 불구하고 먹는 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마음에 거리끼면 하지 않아야 하고 먹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죄가 된다는 생각이 들면 결단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음식을 앞에 놓고 어쩐지 죄가 되는 것 같고 양심에 가책이 되고 마음에 거림직하다면 먹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도 먹는다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고기를 먹어도 괜찮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먹어도 됩니다.
그러나 고기를 먹는 것이 죄라고 여기는 사람들 앞에서 그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마음대로 먹는다면 그들을 실족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얼마든지 먹을 수 있지만 먹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내 주장만 내세우지 말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나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을 위해 절제해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도 문제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1. 술을 먹어도 되느냐, 먹으면 안 되느냐 .
2. 주일에 돈을 써도 되는가 안 되는가.
심지어 어떤 사람은 주일에는 버스비를 내도 안되고 차량에 주유하기 위해 돈을 내도 안되며, 음식을 사먹어도 안되고 음료수를 먹기 위해 자판기를 이용하는 것도 안되며, 손님접대를 위해 식당에 가서 돈을 써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놓고 교인들 사이에 토론이 벌어지게 되면 분명히 두 그룹으로 갈라지게 될 것입니다. 술을 먹어도 된다는 사람과 안 된다는 사람, 주일에 돈을 써도 된다는 사람과 안 된다는 사람으로 나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것들은 진리의 문제가 아니며 더 더욱 구원의 문제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만 우리 자신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또 건강을 위해서도 가급적이면 술을 먹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신앙생활에도 문제가 많이 생기고 자신의 건강에도 매우 해롭습니다.
그러나 술을 먹는 사람도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다함을 받고 구원을 얻습니다. 그래서 저는 술을 먹는 사람도 교회에 나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말씀을 듣다보면 어느 순간에 믿음이 생기고 또 은혜를 받게 되면 술 때문에 신앙생활에 충실할 수 없고 건강에도 안 좋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주일에 돈을 쓰는 문제도 그렇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미리 그 전날부터 먹을 것을 준비하여 주일에는 돈을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저처럼 교회 가까이 집이 있으면 걸어오면 되지만 우리 성도들 중에는 저 멀리 울산이나 창원이나 포항에서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오기 위해 차에 기름도 넣어야 하고 통행료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에게 주일이니까 돈을 쓰지 말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이는 차라리 교회에 나오지 말라는 말과 다를 바 없습니다. 물론 주일에 가급적이면 돈을 쓰지 않는 것이 현명하지만 그래도 부득이한 일은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멀리서 갑자기 손님이 찾아오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슈퍼에서 장을 봐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세관에 앉아 있던 세리 마태를 부르시고 그를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그 당시 세리는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욕을 먹으며 매국노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세리 마태는 자신을 부르신 예수님에 감격하여 자신의 집에 예수님을 초대하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 자리에 자신의 동료인 세리들도 많이 초청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를 보고 깜짝 놀라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너희 선생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고 하면서 예수님을 비방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9:12-13).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 같은 죄인을 부르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내버려두면 지옥에 갈 영혼들을 불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놓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그 우편에 함께 있었던 강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평생 남의 물건을 강탈하고 해치고 못된 짓만 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믿음의 고백을 하자 예수님께서 그를 받아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당연히 강도와 같은 사람도 환영하고 받아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도 은혜를 받기만 하면 얼마든지 새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믿음으로 하지 아니하는 것은 모두 죄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무엇을 하든지 믿음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무엇을 하든지 목표와 목적이 주님을 위해서입니다.
로마서 14: 5-8을 보면 [혹은 이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 것이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것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먹는 문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먹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먹을 수 있지만 먹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와 예배드리는 성도들도 어떤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하며 헌금을 드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고, 봉사를 하고 구제를 하고 전도를 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가지고 행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31을 보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믿음을 좇아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를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