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리더쉽 훈련을 어떻게 하십니까? 저는 새들백교회를 섬기며 가장 감사한 것 중의 하나는 교회가 의도적으로 1년에 수차례 교역자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지난 5년간 교회를 섬기면서 여러 가지 성격유형 테스트와 강점테스트를 했던 것 같습니다.
올해도 다르지 않게 얼마 전 교회에서 이메일 하나를 받았습니다. Strengths Finder 테스트를 다음 주까지 해오라는 말이었습니다. Strengths Finder는 한국에서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혁명』이라는 책으로 소개가 되어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책 소개가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왔다.
말을 잘 못 하는 사람은 화술 강좌에 등록하고,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프레젠테이션 강좌에 등록한다. 가장 성과가 약한 일에 자신의 가장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꼴이다. 그러나 약점을 보완하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발전적 과정이 아니라 피해나 손실을 줄이기 위한 소극적 수단일 뿐이다. 성공의 비밀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 강점에 있다. Strengths Finder는 약점을 보완하는 데에 집중되었던 모든 관심을 강점에 쏟는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이 테스트는 34가지의 강점을 담고 있고,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 Top 5 강점을 소개해줍니다. 저는 이 강점테스트를 교회 처음 들어갔던 2017년에 한 번 했었고, 이번에 다시 했습니다. 이번에 '내 강점이 많이 바뀌었을까? 아니면 그대로일까?'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시험을 봤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보니! 많이 바뀌어있었습니다.
먼저, 2017년도에 나타났던 5가지 강점은: 1번 Relator (사교성), 2번 Connectedness (연결성) 3번 Learner (배움) 4번 Maximizer (최상화) 5번 Analytical(분석)이었습니다. 2017년도의 결과를 보면 저의 가장 큰 강점은 친한 관계를 맺는 것에 있으며 절친한 관계를 통해 의미 있는 일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목양 사역을 하다보니 관계를 늘 중요시 여겼던 것 같고, 그 마음이 나타난 강점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됩니다.
자, 그런데 얼마 전 다시 본 똑같은 시험을 통해 굉장히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2021년에 나타난 5가지 강점은 1번 Intellection (지적 사고), 2번 Input(수집), 3번 Deliberative (심사숙고), 4번 Futuristic(미래지향), 5번 Strategic(전략)이었습니다. 2017년 결과와 비교해보면 겹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특별히 2위를 차지한 Input(수집)은 2017년도에는 21위에 있었던 강점이었고, 5위를 차지한 Strategic(전략)은 17위에 있었던 강점이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보면서, 아무래도 제가 지난 4년 동안 온라인 사역이라는 미래지향적인 사역을 하다보니, 이 분야가 많이 강화되었다는 생각이 되었습니다. 특히 수집이라는 강점은 이렇게 설명이 되었습니다. "정보와 아이디어를 수집하는 것을 좋아한다. 수집하는 것의 목적은 필요할 때에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고 하는 것이다." 이 내용을 보니 제가 이 채널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나누는 것을 즐겨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나의 5가지 강점을 가지고 저희 팀과 모인 것이었습니다. 3월 10일 야외에 모여 Strengths Finder 전문 코치를 초대해, 강점 하나하나에 대해서 이야기 듣고, 어떻게 저희 팀이 조화를 이루며 섬길 수 있을지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3시간 동안 이 훈련을 받으며 느낀 가장 중요한 점은, 나는 내가 없는 강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팀을 맺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보니까 저와 저의 선임 목사는 5개의 강점 중에 2개가 겹치고, 나머지 3개도 비슷한 강점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둘 다 정보에 관한 것, 미래지향적이고, 전략적인 것들이 강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에게 없던 강점이 너무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관계적인 부분과 상호작용하는 부분에 있어서 강점이 부족했습니다. 저희 팀은 앞으로 계속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이 깨달음은 너무 좋은 타이밍이었습니다. 우리가 없는 부분을 강점으로 갖고 있는 사람을 팀에 합류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선임 목사님과 나누었습니다. 그래야 우리 팀이 더욱더 다양하고 원활한 팀을 만들어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만약에 이런 시간이 없었다면 우리는 또 우리 같은 사람을 뽑았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사람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찾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이 시간을 통해 너무 귀중한 것을 깨달았으니 더욱더 좋은 팀이 될 수 있는 포텐셜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리더쉽 훈련을 하는 것이 처음에는 왜 필요한지 모르고 시간과 돈만 낭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 생각을 한 번에 바꿔준 담임목사님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교직원을 늘 훈련시키며 그들에게 투자하는 릭워렌 목사님을 보시고 누가 물었다고 합니다. "교직원에 그렇게 정성을 들이고, 자원을 투자해 좋은 리더로 양성했는데 그 사람이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어떡합니까?" 이 질문에 목사님께서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 때문에 훈련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그냥 그대로 우리 교회에 남아버리면 어떡합니까?"라고 되물으셨다고 합니다.
다른 데로 가버릴까 두려워서 훈련하지 않아, 훈련되지 않은 리더들과 함께 동역한다면 그만큼 힘들고 답답한 것이 없을것이다라는 의미를 내포한 말씀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후 리더쉽 훈련은 시간과 돈의 낭비가 아니고 좋은 교회, 좋은 공동체가 되기 위한 필수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저 또한 열심히 훈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도 교사 양성, 리더쉽 훈련, 교역자 트레이닝을 하고 계신가요? 혹시 너무 바빠서 안 하고 계신다면, 이 영상이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던 시간이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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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구 감소 올해도 지속… 1인 세대 40% 육박
행안부, 3월 말 기준 주민등록인구 발표
지난해 우리나라 인구가 사상 처음으로 감소한 이후 올해 들어서도 3개월 연속 태어난 사람보다 사망한 사람이 많은 '인구 자연 감소'가 이어졌다.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중은 2019년 아동(0~17세) 인구 비중을 추월한 데 이어 사상 처음으로 청소년(9~24세) 인구 비중마저 넘겼다.
1인 세대 비율은 40%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7일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올해 3월 31일 기준 우리나라 주민등록인구는 5천170만5905명으로 지난해 말(5천182만9023명)보다 12만3118명(0.24%) 줄었다.
지난해 연간 기준으로 처음 주민등록 인구가 감소한 이후 올해 들어서도 3개월 연속 인구가 감소했다.
올해 1분기에는 지난 2∼3월 5년 이상 장기 거주불명자에 관한 사실조사를 벌인 결과 11만6177명의 주민등록이 직권말소돼 주민등록 인구통계 집계에서 제외되면서 감소 폭이 커졌다.
출생·사망 등 순수 자연적 요인에 의한 감소는 1만370명으로 집계됐다.
1분기 출생자는 6만8099명, 사망자는 7만80469명이었다. 출생자는 작년 동기보다 5614명(7.6%), 10년 전 동기보다는 5만7410명(45.7%) 각각 감소했다. 사망자 수는 작년 동기 대비로는 2824명(3.5%) 줄었으나 10년 전 동기와 비교해서는 1만525명(15.5%) 증가했다.
성별 인구는 여자가 2591만8515명(50.1%), 남자는 2578만7390명(49.9%)이었다.
작년 말 대비 여자 인구는 6만9479명(0.27%), 남자 인구는 5만3639명(0.21%) 각각 감소했다. 자연적 요인에 의한 감소 인원은 여자가 3195명, 남자는 7175명이었다.
고령화 지속... 세대수 최다, 세대원 수는 최저
아동·청소년·청년 인구는 계속 줄고 고령인구는 증가세를 이어갔다.
1분기 말 아동(0∼17세) 인구는 765만명, 청소년(9∼24세) 인구는 846만명, 청년(19∼34세) 인구는 1045만명으로 모두 작년 말보다 감소했다. 작년 3월 말과 비교하면 각각 2.8%, 2.7%, 1.1% 줄었다.
10년 전인 2011년 동월 대비로는 아동은 244만명(24.2%)이나 줄었고 청소년은 202만명(19.3%), 청년은 103만명(9.0%) 감소했다.
반면 고령인구는 계속 늘었다. 1분기 말 기준으로 65세 이상 인구는 857만4588명, 70세 이상은 571만5548만명으로 작년 동월 대비 4.7%와 2.9%, 10년 전 동월 대비로는 54.6%, 56.5% 각각 증가했다.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5세 이상이 16.6%, 70세 이상은 11.0%다.
2011년 말과 올해 1분기 연령계층별 인구 비율을 비교하면 아동(19.6%→14.8%)·청소년(20.5%→16.4%)·청년(22.6%→20.2%)은 계속 떨어지고, 65세 이상 고령 인구(11.2%→16.6%)는 큰 폭으로 올랐다.
유엔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인 경우 고령화사회, 15% 이상은 고령사회, 20% 이상은 초고령사회로 구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7년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세대 수는 1인 가구가 늘어난 영향으로 증가세를 이었다.1분기 말 전체 세대수는 2315만7385세대로 작년 말(2309만3108세대)보다 6만4277세대(0.28%) 늘어나며 역대 최다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에 비해 평균 세대원 수는 2.23명으로 작년 말 2.24명에서 더 줄어들며 역대 최저치를 보였다.
세대원 수별로는 1인 세대가 913만9287세대로 전체의 39.5%를 차지하며 최고치를 기록했다.
4인 세대 이상은 454만7368세대(19.6%)로 처음으로 20% 아래로 떨어졌다. 2인 세대는 23.6%, 3인 세대는 17.3%를 차지했다.
1·2인 세대 비율은 전체의 63.1%로 작년 말 62.6%보다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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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후 10년간 북한에 5천개 교회 세워야”
숭실대 기독교통일지도자훈련센터 ‘북한교회 세우기 세미나’ 개최
향후 통일시대를 맞아 북한교회 회복을 위한 '북한교회 세우기 세미나'가 1일 오전 숭실대학교 벤처관에서 열렸다. 숭실대 기독교통일지도자훈련센터(센터장 하충엽 교수, 이하 기통아)가 주최하고, 통일소망선교회(대표 이빌립), 북한기독교총연합회(회장 김권능)가 공동주관했다.
이날 북한교회세우기 세미나 발제자로 나선 이철신 원로목사(영락교회)는 '북한에 교회를 세우기 위한 신학적 기초, 정책, 준비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목사는 "북한 동포들의 정신을 새롭게 할 능력은 오직 복음 이외에 없다는 신앙적 기초 위에서 북한에 교회 세우는 작업이 철저하고도 구체적으로 준비되어야 한다"며 "북한 주민 2,000명 당 100명의 성도가 있는 교회 하나씩 세워져야 한다. 향후 1만2,500개의 교회가 북한에 세워질 때에 북한 주민들의 정신이 복음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무너진 3,000개의 북한교회를 재건하면서, 새롭게 개척되어야 할 교회의 수는 9,500개"라며 주최 측은 한국기독교의 통일선교역사에서 이러한 구체적인 교회의 수에 대한 제시가 최초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이 목사는 북한교회 12,500개의 교회를 세우기 위한 상세한 마스터 플랜을 제시했다. 그는 "통일 전에는 한국교회와 한인교회가 1) 교회 위치와 규모를 감안해서 담당 교회 약정, 목회자, 사역자 약정해야 하는 부분 2) D-1년. 27개 도시 선교센터와 교회 설립을 약정해야 한다"며 "나아가 통일 후에는 27개 도시 선교센터를 중심으로 북한동포 현지 지도자를 양성해야 한다는 점과 이를 위한 단계별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통일 후 10년간 5천 개의 교회를 세우고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 우선적으로 교회를 세워야 한다며 "단기간에 많은 교회를 세워야 하는 이유로 북한 복음화의 수용성이 가장 높은 시기(golden time)를 놓쳐서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통일 후 20년 안에 4천 개의 교회, 30년 안에 3천 개의 교회가 세워져야 한다"며 "북한에 세워지는 교회들의 간격이 최소 500m 이상이어야 한다"고 했다.
발제에 대한 논찬으로 나선 하충엽 교수(숭실대 기독교통일지도자훈련센터장)와 이빌립 목사(통일소망선교회 대표)는 "오직 복음만이 북한 주민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발제자의 강조점에 깊이 공감하였고, 복음통일의 구체적인 방법이 교회를 세우는 것이라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특별히 북한교회 세우기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수치를 포함한 마스터플랜을 제시한 부분에 대하여 높게 평가한다. 아울러 교회 세우기를 위하여 북한의 도시에 대한 연구가 구체적으로 진척돼야 한다"고 했다.
주최 측은 "이철신 원로목사는 오래 전 미국 유학 시절부터 북한선교에 대한 연구를 했으며, 오랜 세월 동안 북한을 연구하며 영락교회에서 20년을 목회하면서 축적한 내용을 금번 세미나를 통해 발표했다"며 "이번 이철신 원로목사의 발표 내용은 앞으로도 계속 구체화되어 한국교회와 한인교회가 향후 북한교회를 세우는 정책의 근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현재 이철신 원로목사는 영락교회를 은퇴한 이후에 민간인통제구역인 해마루 마을에 기도처를 마련하여 일주일에 3-4일은 북한 땅 근처에서 통일과 북한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앞서 이번 세미나는 숭실대학교 장범식 총장의 환영사와 성락성결교회 지형은 담임목사의 축사로 시작했다. 좌장은 북한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인 김권능 목사가 맡았다.
한편, 숭실대학교 기독교통일지도자훈련센터는 2014년 10월 초교파 한국교회가 연합하여 복음통일의 비전을 품고 세워졌다. 초대 실행이사회 의장으로 이철신 목사(영락교회 원로)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섬겼으며, 이후 2019년에 김지철 목사(소망교회 은퇴)를 거쳐, 2020년 현재 이규현 목사(수영로교회 담임)가 의장으로 섬기고 있다. 현재 실행이사로는 김경진 목사(소망교회 담임), 김운성 목사(영락교회 담임), 이재훈 목사(온누리교회 담임), 지형은 목사(성락성결교회 담임), 최이우 목사(종교교회 담임), 장범식 총장(숭실대학교)이 섬기고 있다. 운영이사는 각 교단별로 10명의 목사가 구성되어 있다.
기독교통일지도자훈련센터는 올해 6월부터 내년 5월까지 국내와 해외의 20개 주요 도시별로 통일리더십포럼을 기획하며 준비하고 있다. 또한 숭실대 기독교통일지도자학과의 석·박사 과정에는 125명의 재적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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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개신교인 86% “대유행 기간 교회의 대응방식 자랑스러워”
올해 2월5일부터 18일까지 1,000명의 미국 개신교 신자들이 참여한 조사에서 대부분의 교인들이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중 그들의 교회 지도자들이 보여준 대처에 긍정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27일 기독일보 영문판은 라이프웨이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미국 개신교 교인들의 86%가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병 기간 동안, 자신들의 교회가 대응한 방식에 대해 “자랑스럽다”고 응답했으며, 12%가 “부끄럽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조사에 따르면, 18세에서 19세 사이의 젊은 청년층이 자신들의 교회가 국가 보건 비상사태에 대처한 방식에 가장 비판적일 가능성이 높았다.
대면 예배의 경우, 교인의 절반 이상(51%)은 올해 1월 이후로 교회 현장 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팬데믹 선포 이후 현장 예배를 재개한 곳은 개신교 교회 10곳 중 1곳이 안되었다가 3월 말과 4월, 6~9월 사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지만, 올해 들어서는 다시 이 수치가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라이프웨이 리서치의 스콧 매코넬 이사는 이번 조사 배경과 관련, “목회자들이 코로나19 동안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한 그들의 의견을 들었다”며 “대다수의 교회 신자들은 교회의 다양한 대응에 동의하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비판적인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메코넬은 또한 그들이 다니는 교회가 팬데믹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교인들의 경험이 다양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론 조사에서 대부분의 교회들은 보건 지침에 따라, 실시간 중계(85%), 사전 녹화 영상(76%), 온라인 성경 공부(52%)와 같은 기술지원 접근 방식 외에도, 개방된 공간에서 드리는 야외예배(39%), 드라이브인 예배(30%) 등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특히 야외 예배를 드린 교회는 교인의 절반 이상(58%)이 참여했으며, 드라이브인 예배도 56%가 참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참석자의 연령대는 주로 18~19세의 젊은 층이었다. 반면 50세 이상의 교인들은 온라인 예배를 더 선호했다.
이에 대해 매코넬은 “교인 대부분이 ‘항상 행복했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다양한 접근 방식과 기술이 동원되면서 대다수 교인들이 어느 순간 자신들의 교회가 제공하는 것에 참여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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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목사인가?
― 그러나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하며 삽니다 ―
임종석 | seok9448@daum.net
안수를 받는다고 다 목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저는 목사안수를 받았으니 당연히 목사입니다. 그러나 목사가 아닙니다. 자격이 미달이기 때문이지요. 무엇 하나 목사다운 데가 없습니다. 목사는 누가 뭐래도 신앙의 지도자인데, 저에게는 그럴만한 신앙이 없습니다. 인격도 성정도 지도자가 되기에는 한창 부족하고 알맞지 못합니다. 지식도 부족합니다. 학문을 했던 사람이니 전공 면의 지식이라면 일반인들보다는 조금 나을지 모르나 그도 같은 전공자 대열에서라면 말단을 면하지 못할 정도일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목사라면 성경지식이 많아야 하는데, 저는 그렇지를 못합니다. 많기는커녕 속된 말로 젬병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목사 됨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목사라 스스로 말하는 것을 그만 두었습니다. 글로도 쓰지 않습니다. 남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이야 막을 수 없지만, 다른 호칭으로 불러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제가 성경에 얼마나 무식한가를 하나의 사례를 들어 고백하고자 해서입니다. 아니지요, 아닙니다. 아무런들 무식을 폭로하여 그렇지 않아도 바닥인 존재를 더욱 찌그러뜨리고 싶어서이겠습니까. 드리고 싶은 말씀이 따로 있는 것이지요.
어떻든 저는 지금 그 이야기를 좀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근년에 들어 이런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를 하나님 아버지의 그 귀하고 거룩한 길로 인도해 주옵소서. 성삼위 하나님의 길, 아버지의 뜻, 그러니까 말씀의 길, 진리의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새 생명의 복음의 길, 아버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사랑의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이에 이어 이런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이러한 은혜의 길로 가는 것을 방해 하는 저 악한 마귀, 사탄이 틈타지 못하도록 지켜 보호해 주옵소서. 이미 틈타 있거든 물리쳐 주옵소서. 그리고 더 이상 죄악이 접근치 못하도록 지켜 주옵소서. 이미 지은 죄는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어 그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회개하여 사함 받게 하옵소서. 그리고 또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그런데요, 문제가 되는 것은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하는 내용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주기도문)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마6:13)가 있지 않습니까. 그에 따른 것이지요.
무슨 말이냐고요? 웃지 말고 들어 주세요. 아, 글쎄 이를 시험에 처하지 않게 하여 주시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기도를 드린 것이에요. 시험을 당치 않게, 만나지 않게 해 주시라는 것으로 이해한 겁니다. 그런데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일입니까.
여기에서 ‘시험’에 해당되는 헬라어는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인데요,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시험’으로 ‘test’를 말하는 것과, 악한 세력, 그러니까 마귀사탄과 같은 것들로부터 오는 ‘시험’으로 ‘temptation’을 말하는 것의 두 개의 의미가 있지요. 그러니 후자는 ‘시험’이라기보다 ‘유혹’인 것이지요. 그러기에 공동번역 성경도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의 이 말씀을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고 옮기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마6:13의 이 말씀을 우리는 거의 그대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라 기도해 오고 있는데요, 이를 새번역에서는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 옮기고 있습니다. 말씀인즉슨 제가 이 새번역의 ‘주기도문’에 한번 눈길을 돌려보기라도 했더라면 이를 시험을 만나지 않게 해 주시라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 같은 바보짓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능력이 없으면 성실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이도저도 아니니 이 또한 목사일 수가 없다는 증거의 하나인 것이지요.
목사라면, 더욱이 학문을 했던 목사라면 당연히 헬라어 원문을 찾아보는 것이 당연한데, 그러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의 ‘말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무엇일까요. ‘에이세넹케스(εἰσενέγκῃς)’로 ‘안으로 들어가다, 데리고 들어가다’와 같은 의미이지요. 그러니까 이를 우리말로 직역하면 우리를 ‘시험 안으로 들어가지 않게 하소서’가 되는 것입니다. 새번역의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가 더 이해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 옮긴 공동번역이 본래의 뜻에 더 부합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시험’을 만나지 않게 해 주시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기도를 드렸으니 그 기도가 순조롭게 나갈 수 있겠어요. 이 복잡하고 다난한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셨는데 말이에요. 꼬일 수밖에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그러한 기도라 해도 무익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가르침에는 무엇인가 제가 모르는 내용을 내포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며 기도드렸는데요, 피할 수 없는 시험이 있다는 것이 기정사실이니 그 시험을 통해 인내로 연단을 쌓아 영적 성장을 이루게 하여 주시라고 기도드렸거든요.
마귀·사탄의 힘은 얼마나 셀까
제가 아는 어느 장로님께서는 구역예배라든가 어떤 소모임의 예배를 인도하고 마칠 때면 ‘주기도문을 암송함으로 예배를 마치겠습니다’라 하는데, 아니지요. 암송이 뭣입니까. 글을 보지 않고 외우는 것 아닙니까. 기도는 무엇인가를 암송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령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온 자신의 생각을 온 몸과 마음을 다해 드리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냥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는 생각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가 아니면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그대로 다 알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도움을 청하며 기도드리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러분, 이 장로님뿐 아니라 우리 중에도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를 ‘주기도文’이라고 하는 하나의 문장을 외우는 것으로 끝내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요, 주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이 기도를 ‘새번역’에서 옮겨 오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는 말로 시작되는데요,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라는 말에는 따로 ‘“아버지께서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소서’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같은 것들이 우리가 이루어 가고자 하는, 하나님의 인도와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이루어 가고자하는 소망의 핵심이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신 말씀의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가 바로 이런 것이지요. 여기에서의 ‘먼저’란 우리가 소망하는 그 ‘핵심’이라는 뜻도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런데요, 우리가 세상에서 이 같은 가장 값진 소망을 이뤄 가고자 할 때 반드시 마주치게 되는 것이 있는데, 고난과 환난 같은 시련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것들은 많은 부분 ‘시험(πειρασμός)’ 중의 ‘유혹(temptation)’에 의한 것들입니다. 마귀·사탄에 의한 것들이라는 말입니다.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다 해도, 적어도 그 악하고 추한 것들이 기뻐하는 일임은 틀림없습니다.
마귀, 사탄은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서 그분과 가까워지려는 우리를 멀어지게 하려는 존재입니다. 하나님를 영화롭게,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우리의,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그런 우리에게 올가미를 씌우려고 안간힘을 쓰는 존재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이들 마귀·사탄의 궤계(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혹자는 그까짓 마귀사탄이 뭐라고 그러느냐 하기도 하는데요, 아닙니다. 그것들은 그렇게 만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그 힘이 막강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나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기도가 필요한 것이지요.
물론 우리는 그런 마귀·사탄에 초점을 맞추고 살며 무서워 벌벌 떨 것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나를 안아 보호해 주시고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니까요. 그러나요, 아무리 사랑의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당신을 개-무시하는 자들까지 보호해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시험에 들지 않게,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주시라고 깨어 기도해야 하는 것이고요.
기도는 하나님과 나와의 영적 만남인데, 만남이 없이는 그분과 가까워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가까워짐을, 진짜로 가까워짐을 우리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물론 하나님과 그렇게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으로 기도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서도…, 아니 말씀 없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지요. 어떻든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믿습니다.
맷집을 길러라
그런데 말씀을 지식적으로 안다 해서 그것이 믿음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모르지 않습니다. 성경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였으니 그 말씀을 대할 때에도 성령이 도와주심으로 그것이 믿음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정도만으로는 많이 부족합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만날 때, 더욱 친밀하게 만날 때 말씀은 말씀이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지근거리에서 만나도록 도와주시는 성령님께서 말씀 또한 말씀되게 해 주시는 것이지요.
이에 어떤 사람은 그렇다면 말씀이 말씀이 아니면 뭐냐고 하기도 하는데요, 아니지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알기는 하는데, 사랑하기는커녕 미워한다면 이는 말씀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지식에 불과한 것이지요. 실제로 사랑할 때, 그러니까 말씀이 말씀으로서 기능할 때 그 말씀은 말씀이 되는 것이지요.
말씀이 말씀이 되는 것을 우리는 믿음이라고 하는데요, 내가 철저하게 종이 되어 하나님을, 성삼위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죽도록 사랑함으로 섬기는 것을 가리켜 믿음이 좋다고 하지요. 그리고 그렇게 되는 것은 말씀이 말씀이 된 결과인데요, 그 과정을, 나를 주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씀의 사람이 되어, 다시 말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감으로 하여 믿음으로 굳게 서게 되면 그 막강한 마귀·사탄도 우리에게 범접하기 어렵게 됩니다. 만약 공격해 온다 해도 맷집이 생겨 끄떡없게 되지요. 그 공격이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하나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시험(test)이 됐건 마귀사탄으로부터 오는 유혹(temptation)이 됐건 모두가 다 하나님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당신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당신의 자녀들은 저들의 공격으로부터 지켜 주신다는 것이지요. 문제가 생기는 것은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손을 놓아 버릴 때이지요.
그리고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격투기시합에서 선수가 상대방의 가장 약한 데를 노려 공격하듯이 마귀사탄도 우리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찾아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성미가 급한 사람은 그것을 파고들어 공격하고, 돈이나 성 같은 것에 약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취약점이 많은 사람은 저들의 공격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무너지기 일쑤이기도 하지요.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칭찬하시고 얼마 안 있어 당신께서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 하자, 베드로는 그리 말라 했고, 예수께서는 그런 그를 향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했습니다. 물론 베드로 자체가 사탄이라는 말은 아니지요. 그리스도의 구속의 대업을 방해하는 사탄의 궤계가 숨어 있음을 보신 것입니다. 적극적인 것까지는 좋은데 표현이 좀 그렇습니다만 덜렁거리는 데가 있는 그의 약점이 화를 부른 셈이지요. 그래도 그 정도로 끝난 게 천만다행이기는 합니다만.
그런데 정말 일을 낸 것은 예수를 판 가룟 유다였습니다. 요한복음은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13:2)라고 기록하고 있는데요, 이 또한 그의 취약점을 사탄은 이용한 것이지요. 그는 돈에 약한 사람이었고, 여러 가지 면에서 스승 예수를 팔만한 인격의 소유자였던 것이지요.
이처럼 마귀사탄은 인간들의 취약한 부분을 찾아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저들 악한 세력뿐 아니라 성령께서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맞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사람에게 역사하시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마귀·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고, 성령을 충만하게 받을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철저한 종이 되어 그분을 주인으로 모시고 죽도록 사랑함으로 섬기는 것이지요. 그 말이 그 말 아니냐고요? 그렇지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것이지요.
그대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
그런데요,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엡6:11)라고 말합니다. 전신갑주요? 그건요, 오늘날로 말하면 군인의 완전무장과 같은 것이지요.
여기에서 바울은 이런 의미의 말을 합니다. <진리=허리띠(탄띠), 의=호심경(가슴받이, breastplate), 복음=신(군화), 믿음=방패, 구원=투구>라는. 그런데 이런 것들로 마귀·사탄의 공격을 무력화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일한 공격무기로 성령을 들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이를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하고 있지요. (엡6:11-17 참조)
그런데 바울은 이를 위하여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6:18)라고 권면합니다.
저는 지금 전신갑주는 오늘날의 완전무장과 같은 것이라 했는데요, 전신갑주가 됐건 완전무장이 됐건 전쟁을 위해 군인들에게 필요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같은 것들이 평화로울 때는 어떤 것이 될까요. 이를 사도 요한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계19:8)이라 표현하고 있는데,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19:9)이 입는 옷이지요. 그리고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19:8)이고요.
마22:1-14은 예수께서 왕의 아들 혼인잔치를 들어 비유로 말씀하시는 장면인데요, 왕은 하나님,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가리키고 있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님이신 임금은 사환들에게 성도로서의 ‘옳은 행실’로 지어진 세마포 예복을 입지 않은 하객들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라고 명령합니다.
그렇다면 ‘어린양의 혼인 잔치’란 어떤 것일까요. 그건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영접한 성도들이 그분과 연합함으로 하나가 되어 그분과 영원토록 진정한 기쁨을 누리는 것을 비유한 것이지요. 천국의 시민이 된다는 말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신 말씀의 그의 나라의 국민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요, 그러려는 우리의 발을 걸어 실족케 하는 악한 세력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무서워 벌벌 떨 것은 없어도 방심하는 것도 금물입니다. 전신갑주를 입고, 세마포 예복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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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과 목사들의 위선
최재석 | jschoi4111@gmail.com
이번 서울과 부산 시장 보궐선거는 우리를 놀라게 했다. 지난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이긴 민주당이 이번에는 압도적으로 패했기 때문이다. 민심이 이렇게 바뀔 수 있는지 눈과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사람들은 그 패인을 부동산 정책의 실패로 보지만, 나는 문 대통령의 위선에 주목하고자 한다.
문 대통령 정부에서는 그동안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정책을 내놓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들이 최선을 다했지만, 그들의 역량이 부족해서 집값을 잡지 못했다. 머리가 나쁘면 열심히 공부해도 일류대학에 가지 못한다. 어떤 경우에는 대학에 가지 못하는 수도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해도 머리가 좋지 않아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자식을 질책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최선을 다했으니 그것으로 참아주어야 한다.
그러나 위선은 다른 문제이다. 문 대통령은 연설할 때마다 공정과 정의가 바로 서는 나라를 세우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그의 말과는 달리 그는 편파적으로, 정의롭지 못하게 행동했다. 그는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임명하면서 ‘살아 있는 권력에도 칼을 대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그가 그렇게 하자 그를 쳐내고 싶어 했다. 그의 말과 행동이 달랐으니 그를 위선자라고 말할 만하다.
문 대통령이 임명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무리하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윤 총장을 몰아내려고 했다. 그런데 판사가 그를 정직시키려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했을 때, 추 장관의 처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문대통령은 추 장관이 하는 처사를 지켜보기만 할 뿐 만류하지 않았다. 그것은 추 장관이 하는 일을 응원한 것에 다름 아니다. 문 대통령과 추 장관이 독대한 후에도 추 장관은 계속 윤 총장을 구석으로 몰았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윤 총장에 대한 일을 추 장관에게 맡기고 구경만 했다.
더구나 윤 총장이 그의 정직에 관한 재판에서 두 번이나 승소한 후에 문 대통령은 ‘윤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역겨울 정도의 위선적인 발언이다. 모든 국민이 그가 추 장관을 시켜서 윤 총장을 몰아내려고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일국의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그런 위선적인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그런 말을 국민이 믿으리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국민이 대선에서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주고 총선에서 그의 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하자 그는 오만해져서 방자하게 행동했다. 그는 그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국민이 그를 무조건 지지해줄 것으로 착각했던 모양이다. 그는 선민 신드롬에 빠졌었다.
그러나 어느 누가 그런 위선적인 말을 받아들이겠는가? 추미애 장관을 비롯해서 국무위원들도, 청와대 비서들도, 여당 국회의원들도, 열성 여당 지지자들도 대통령이 위선적인 말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안하무인이었다. 그의 눈에는 국민이 바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분별력을 잃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국민이 그것을 믿을 것으로 착각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는 그의 언행이 다른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말끝마다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었다. 그가 그것을 알았더라면 국민 앞에서 어떻게 그런 말을 공공연하게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국민은 그의 위선적인 말에 속지 않았다. 오히려 분노했다. 그동안 그의 정부에서 박해받은 윤 총장이 차기 대통령 후보로 1위를 달리면서 고공행진을 한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번 보궐선거에서 국민이 야당에 몰표를 몰아준 것은 그가 위선적인 행동을 한 것에 대한 응징이었다. 그리고 선거를 통해서 여당을 응징하고 나자 차기 대통령 후보에 대한 여론 조사에서 윤석열의 선호도가 대폭 하락한 데서도 국민이 문 대통령을 싫어했었다는 것이 나타난다.
교회 지도자들은 문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들 대부분이 위선에 빠져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은 이웃 사랑을 강조하고, 화평을 말하고, 선을 행하라고,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너희도 거룩하라’라고 강단에서 열변을 토한다. 그런데 그들의 교회에서는 사랑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의 신학대학은 분쟁에 휘말려 있다. 그들이 속한 교단의 총회에서는 고소 고발이 그치지 않는다.
벌써 여러 해 전의 일이다. 남장로교회에서 세운 H대학교에서 총장 선거가 있었다. 그 대학에서는 관례대로 교직원들이 투표를 해서 득표 순으로 두 명을 뽑아 이사회에 추천했다. 그들은 이사회에서 1위 득표자를 총장으로 임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엉뚱하게 5위가 발령을 받았다. 그때 1위가 낙점을 받지 못한 것은 장로교의 장로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말이 돌았다.
그런 일이 일어나자 그 대학의 교직원들과 학생들이 들고일어났다. 곳곳에 이사회를 규탄하는 방이 붙고 교내의 거리 여기저기에 플래카드가 걸렸다. 교수들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보다 비상식적인 총장 임명을 반대하는 시위에 열을 올렸다. 교직원들과 학생들도 기독교대학에서 이런 편법적인 총장 임명이 자행된 데에 실망해서 날마다 이사장을 규탄하는 집회를 가졌다. 그들은 이사장을 방문하여 항의했을 뿐 아니라 총장실을 점거했다. 결국 학교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목사로 구성된 이 대학교의 이사회에서는 관례와 상식을 무시했다. 관례와 상식을 무시했다는 것은 그 대학의 구성원들을 무시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기독교 재단에서 그 대학을 세운 것이 사실이지만, 교수를 임명할 때 어느 교단의 사람이든 세례 증명서를 제출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 대학의 교수에게는 어느 누구라도 총장에 출마할 수 있는 피선거권이 있다.
그런데 자기 교단의 장로만이 총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독선과 아집의 결과물이다. 그것은 대학의 화평을 저해하는, 갈등과 분쟁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그런 편법으로 인해서 그 대학이 아수라장이 되었으니 화평을 노래하는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회의 목사들이 위선자들임이 드러났다.
성인이 된 그 대학의 교직원들이 실망한 것은 접어둔다 하더라도, 이사들은 그 아비규환을 바라보는 1만 명이 넘는 젊은 학생들의 목사에 대한 실망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기독교 교육을 위해서 세워진 학교에서 목사들이 학생들에게 미칠 악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그런 일을 벌였으니 한심한 일이다.
대통령의 위선적인 행동을 보고 2030 세대가 분노하고 여당을 외면한 것처럼, 목사들의 이런 행태를 보면서 진리를 추구하려고 모여든 그 대학의 젊은이들도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진의 행태에 분노했다. 아마도 학생 중에서 상당한 수가 결국 교회를 외면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비슷한 일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기 때문에, 교회를 등지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실망스러운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4년이 지난 후에 다시 총장을 임명할 때, 이번에는 한술 더 떠서 이사회에서 교직원들이 투표를 해서 추천한 총장 후보자 중에서 총장을 임명하지 않고, 총장입후보자로 출마하지도 않은 사람을 총장으로 임명했다.
이번에야 말로 대학 구성원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해도해도 너무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총장 취임식장 앞에서는 교직원들이 총장 취임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고 건장한 청년들이 식장으로 진입하려는 시위대원들을 저지했다. 식장 밖에서의 아우성이 들리는 가운데 취임식이 진행되었고 식이 끝나자 이사진과 총장은 뒷문으로 빠져나가 종적을 감추었다. 그 대학은 총장 취임 후 2년 동안 총장실이 점거당하는 등 시끄러웠는데 그 후유증은 오래 갔다.
이렇게 한 대학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사람이 바로 대학의 이사를 맡은 목사들이다. 그들의 눈에는 사람만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보이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는 그들의 귀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다. 이 위선자들의 행태는 참으로 가관이었다.
그런데 그런 목사를 우상화하는 사람이 많다. 목사가 교회에서 어떤 비리를 저질러도 그가 무능해도 목사는 하나님을 대변하는 신령한 사람이라고 그들을 감싸는 교인이 많다. 교인들은 정치판을 비판하기 전에 먼저 교회를 바로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