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성별란에 'X'라고 표기된 여권이 처음 발급됐다./ 백신 접종 완료자만 모일 경우 대면예배 제한 없어 2021-11-01 12:50:43 read : 3476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美 국무부, X성별 표시된 여권 발행
의사 소견 없이도 성별 선택 가능
미국에서 성별란에 'X'라고 표기된 여권이 처음 발급됐다.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27일 성명을 통해 성별을 여성이나 남성이 아닌 'X'로 표시한 여권을 처음으로 발급했다고 밝혔다.
자신의 성별을 규정하지 않은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그들에게 공식 신분증을 발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같은 여권을 처음으로 발급받은 성소수자의 신상은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밝히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신분증에 표시된 성별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의료진의 '전환 증명서'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제 의사의 특별한 소견이 없이도 자신이 성별을 선택해 표시할 수 있게 됐다.
국무부는 "성 정체성에 상관 없이 모든 여권 소지자가 가능한 한 원활한 여행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미국의 다른 정부 기관과 긴밀히 협력 중"이라며 "내년에는 성별 표기와 관련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 9월 발표된 라스무센 리포트의 여론조사 결과, 새로운 성 정체성을 반영한 여권 정책에 미국 성인의 54%가 반대했고 35%가 찬성했다.
현재 미국 외에 캐나다, 독일, 아르헨티나, 인도, 네팔, 파키스탄 등 최소 11개국에서 'X' 성별로 표기된 여권을 발행하고 있다.
==========================================
노태우 전 대통령, 예수님 영접하고 모든 삶 회개”
국가장서 기독교 장례 진행… 소강석 목사 설교
▲30일 영결식에서 기독교 장례가 진행되고 있다. 소강석 목사(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설교하고 있다.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장에서 기독교 영결식이 열렸다.
영결식은 3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거행됐다. 올림픽공원은 노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치러진 88서울올림픽을 상징하는 무대다.
기독교 영결식은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가 집전했다. 테너인 박주옥 교수가 ‘인애하신 구세주여’를 불렀고 이철신 영락교회 원로목사가 기도를 했다.
불교 신자였던 노 전 대통령은 1995년 비자금 사건으로 수감된 뒤 성경을 읽으며 예수님을 영접하고 기독교인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대표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가 10월 30일 故 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장 기독교 장례 예전을 집례했다.
박주옥 교수(백석대)가 ‘인애하신 구세주여’ 1절을 부르고, 이철신 영락교회 원로목사의 기도, 소강석 목사의 설교, NCCK 총무 이홍정 목사의 ‘용서와 화해의 기도’, 기침 총회장 고명진 목사(수원중앙침례교회)의 축도 순으로 예전이 진행됐다.
소강석 목사는 설교에서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해서”라며 “그 일을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다. 이 세상에는 의인이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고 말씀한다”고 전했다.
소 목사는 “그러나 오늘 이 시대는 의인이 너무 많아서, 자신의 의로움으로 오히려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며 “고 노태우 대통령님께서도 자신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 아니라 죄인이심을 아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하셨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노소영 관장님께서 노 대통령님께 예수님을 소개시켜 드렸고, 대통령님께서는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지나온 모든 삶을 회개하셨다”며 “성경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떠났다가 돌아온 탕자를 무조건 품에 안아주신 ‘탕부의 하나님’이셨다”고 소개했다.
▲30일 영결식에서 기독교 장례가 진행되고 있다.
소강석 목사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개하신, 또한 역사와 민족 앞에 참회의 마음을 표현하신 노 대통령님께서는 이제 하나님의 품으로 가셨다”며 “하나님의 따뜻하신 품에서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누리실 것”이라고 밝혔다.
소 목사는 “기독교는 영생의 종교일뿐 아니라, 사랑과 용서, 평화의 종교이다. 동시에 정의의 종교”라며 “모쪼록 고인의 장례 예전을 기점으로, 성경 시편 85편 10절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과 정의가 입 맞추고 춤을 추는 화해와 통합의 새 역사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아니, 사랑과 정의의 새 역사가 강물처럼 흘러넘치기를 소망한다. 유족들과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하나님의 평화와 신령한 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한다”고 했다.
장례 뒤에는 SNS에 후일담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이홍정 NCC 총무님이 안 오신 줄 알고 이철신 목사님께 기도하시게 하고 축도로 마치려 했는데, 가장자리에 이홍정 총무님이 서 계셔서 깜짝 놀랐다”며 “그러잖아도 어려운 자리인데 큰 실수를 할 뻔했다. 다행히 다시 이홍정 총무님께 기도를 하시게 하고 축도로 마쳤다”고 전했다.
소 목사는 “이홍정 총무님은 용서와 화해의 기도문을 차분하게 읽어 가셨다”며 “원래 큐시트대로 성경을 봉독한 후 총무님께서 기도하셨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총무님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이야기했다.
끝으로 “저는 좌우의 진영 논리에 매이지 않고, 순수하게 기독교적이고 복음적인 내용의 설교를 하였다고 본다”고 말했다.
소강석 목사는 지난 10월 27일 노태우 전 대통령 조문 사실을 SNS를 통해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광주에서 신학교를 다녔고 5.18 민주화운동을 그곳에서 경험하였지만, 한 사람의 국민이자 한교총 대표회장으로서 조문을 다녀왔다”고 말했다.
소 목사는 “노태우 대통령께서는 어머니께서 팔공산에서 불공을 드리고 낳으셔서, 원래 태어날 때부터 불교신자이셨다”며 “하지만 노소영 관장님의 신앙이 워낙 독실해서, 노태우 대통령을 회심하게 하셨다. 그렇기에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사이트를 봐도 그분은 개신교인로 검색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저는 그런 사실을 떠나, 누구와 의논할 것도 없이 한국교회 목회자로서는 가장 먼저 조문을 간 것 같다”며 “그곳에서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님, TV조선 김민배 사장님, 청와대에서 5년간 노 대통령을 모신 김재철 장로님, 손인춘·지상욱 전 의원님을 비롯해 몇몇 국회의원들을 뵙고 왔다. 참 인생이 덧없고 무상하다”는 소감을 남겼다.
그는 “노소영 관장님의 독실한 믿음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께서 회심을 하셨다는 점에서, 노소영 관장님께 한 사람의 기독교인이요 목사로서 정말 감사를 드린다”며 “조문을 마치고 나오면서 노재헌 회장님도 직접 뵈었다. 다시 한 번 유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천국 소망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한다”고 전했다.
오늘부터 위드 코로나… 바뀐 규제 보니
접종 완료자엔 예배 인원 제한 없어
미접종자 성가대 포함 땐 독창만
기도·수련회 등 행사 499명까지
위드 코로나 전환에 맞춰 한국교회도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1일부터 정규예배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완료자만 참석한다면 수용인원 제한이 사라진다. 수련회 등 행사와 소모임도 방역수칙에 따라 가능해진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29일 이 같은 내용의 ‘단계적 일상회복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종교시설의 일상회복 전환은 마스크 상시 착용, 거리두기 등 방역수칙 준수를 전제로 한다. 주일예배 수요예배 새벽예배 등 정규 종교활동 운영은 백신 접종 여부에 따라 구분했다. 백신 접종에 상관없이 예배당 수용인원의 50%까지 참석할 수 있다. 좌석이 없는 종교시설은 2m(최소 1m)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 접종완료자만 참석할 때는 인원 제한이 없다.
교회 내부 공간이 분리됐다면 운영 기준을 각각 적용할 수 있다. 가령 대예배당에선 미접종자와 접종자가 50% 인원에 맞춰 함께 예배드리고, 소예배당에선 접종완료자만 인원수 상관없이 예배할 수 있다. 실내 취식이나 통성기도 등은 할 수 없다.
성가대나 찬양팀은 미접종자가 포함되면 독창만 할 수 있다. 접종완료자로만 구성하면 사적 모임 숫자에 맞춰 수도권 10명, 비수도권 12명까지 합창할 수 있다. 성경공부와 구역예배 등 소모임은 접종완료자로만 구성할 수 있다. 인원은 사적 모임과 같이 적용하고 교회 등 종교시설 안에서만 만날 수 있다.
수련회 기도회 부흥회 등 종교 행사도 99명까지 가능하다. 접종완료자로만 구성하면 499명까지 참석할 수 있다. 식사나 숙박도 방역수칙을 지키며 제한적으로 할 수 있다.
설교자는 기존과 동일하게 마스크를 써야 한다. 다만 방송 사업자(지상파, 케이블, IPTV 등)를 통해 송출되는 방송이라면 설교자에 한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 성도를 위한 자체 방송(유튜브 등)은 해당하지 않는다.
교회에서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의 행사를 열면 방역수칙 기준은 종교시설이 아니라 ‘결혼식장’ ‘장례식장’ ‘공연장’으로 적용된다. 식사도 일반 ‘식당’ 방역수칙을 따른다.
복지부 관계자는 “종교행사를 할 때 수요예배나 새벽예배를 병행하는 등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만큼 교회가 자발적으로 방역수칙을 준수하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지역교회들도 예배 회복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이영훈 목사)는 7일을 ‘예배 회복을 위한 총동원 주일’로 정하고 전 성도가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교회는 1~3부 예배는 접종완료자 중심으로 예배드리고, 4~7부 예배는 미완료자 포함 50% 규모로 예배하기로 했다. 서울 영락교회(김운성 목사)는 6일 전 세대 교인이 참석하는 ‘영락 가족 특별새벽기도회’를 열고 7일 찬양예배 때는 성찬식을 거행한다. 이인선 서울 열림교회 목사는 “위드 코로나로 전환되어도 방역수칙은 잘 지켜야 한다”며 “예배 참석시 마스크를 꼭 착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
백신 접종 완료자만 모일 경우 대면예배 제한 없어
접종 완료자의 경우 사적모임 범위 안에서 소모임 가능
성가대도 접종 완료자로만 구성...식사는 여전히 금지
한교총, "단계적 일상회복 환영...방역에 만전 기해야"
11월 7일 주일부터 백신 접종 완료자만 모일 경우 대면예배 인원 제한이 없어진다.
[앵커]
방역당국이 29일 단계적 일상회복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백신 접종 완료자만 예배에 참석할 경우 인원제한 없이 대면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종교시설 단계적 일상회복 어떻게 바뀌나 [일문일답]
정부가 지난 29일 위드 코로나에 맞춘 ‘단계적 일상회복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정규예배는 1일부터 코로나19 백신 접종 완료자만 참석한다면 예배당 수용인원 제한이 사라진다. 미접종자와 접종자를 구분하지 않는다면 예배당 수용인원 50%까지 참석할 수 있다. 접종 완료자로만 성가대와 소모임도 할 수 있다.
아래는 일문일답.
-방역수칙 의무화 대상은?
=종교인, 종교단체 등 종교시설
-종교시설 주관 종교활동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사항은?
=마스크 상시 착용 등 기본방역수칙과 2m(최소 1m) 거리두기 등 종교시설 방역수칙 준수
=실내 취식이나 통성기도 등 큰 소리로 함께 기도·암송하는 행위 금지
=매주 정기적으로 종교시설에서 정규 종교활동한 뒤 성도 등에게 식사 등을 제공하는 것도 금지
=다만 종교시설 책임자·종사자는 방역수칙 준수하면서 식사 가능
-종교시설의 정규 종교활동은 무엇이며 얼마나 참석할 수 있나?
-정규 종교활동이란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종교시설(종교인, 종교단체 등)의 주관 하에 행해지는 정기적인 종교활동. 예배는 주일 예배, 수요 예배, 새벽 예배 등.
=정규 종교활동을 할 때는 마스크 상시 착용 및 거리두기 기준 등 기본방역수칙을 준수
=①접종 여부 관계없이 참여자를 구성하는 경우, 수용인원의 50%까지 가능. 좌석이 없는 종교시설은 2m(최소 1m) 거리두기가 가능하도록 허가면적 4㎡ 당 1인으로 산정
=②접종완료자 등으로만 운영할 경우 인원 제한 없이 가능. 접종 완료자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완료자와 PCR 음성확인자(48시간 내), 18세 이하, 완치자, 건강사유 등 불가피한 접종불가자
-같은 교회 안 종교활동 공간이 여러 개인 경우에는?
=같은 시간대 공간별로 1개의 운영기준을 선택해아 함. 동일 공간 내에 구획을 달리하는 등의 방법으로 2가지 기준을 동시에 적용할 수 없음
-정규 종교활동에서 성가대나 찬양팀 운영할 수 있나? 개인이 마스크 착용해 자기 자리에서 찬송하는 것도 가능한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거리두기 기준을 준수해 지정된 자리에서 찬송하는 것은 가능
=성가대·찬양팀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독창으로만 가능. 접종완료자로만 구성할 경우 성가대·찬양팀을 운영하고 사적모임 숫자에 맞춰 수도권은 10명, 비수도권은 12명까지 합창 가능. 접종완료자로만 구성하는 경우에도 마스크 착용, 취식 금지 등은 준수
-종교시설 주관으로 종교활동을 위한 소모임은 가능한가?
=정규 예배 외에, 성경공부, 구역예배, 선교나 행사를 위한 준비모임 등 소모임은 접종완료자로만 구성해 사적모임과 동일하게 수도권 10명, 비수도권 12명까지 종교시설 내에서만 가능
-종교시설 주관으로 ‘종교행사’는 할 수 있나?
=수련회, 기도회, 부흥회 등 종교행사는 100명 미만으로(99명까지) 허용되며, 백신접종완료자로만 구성하는 경우 500명 미만으로(499명까지) 운영 가능
-종교시설 주관의 ‘종교행사’에서 식사나 숙박이 허용되나?
=식사나 숙박을 동반하는 행사는 오랜 시간 체류해 다수의 이용자가 밀집한 가운데 밀접한 접촉이 많아질 수밖에 없으므로 가능한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
=행사의 특성이나 필요성을 고려해 식사나 숙박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 제한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권고
=불가피하게 종교시설 주관 종교행사에 식사나 숙박을 포함하는 경우, 마스크 착용 및 거리두기 등 종교시설 방역수칙을 준수하되 접종완료자로만 구성하는 경우에도 실·내외 마스크 상시 착용, 유증상자 증상확인 및 출입제한, 큰소리로 함께 기도·암송하는 행위 등 금지 포함 종교시설 방역수칙 준수
=식사는 종교시설 내 식당·카페 등 음식물 섭취가 가능한 별도의 장소가 있는 경우, 식사 시 대화 자제 등 식당·카페의 방역수칙을 적용하여 운영 가능
=숙박이 동반되는 경우 종교시설 내 숙박목적의 별도 시설이나 외부의 숙박시설에서 숙박시설 방역수칙을 준수해 운영할 수 있음
-수련원, 기도원, 선교시설 등 종교시설도 방역수칙을 의무화해야 하나?
=기도원이나 수련원, 선교시설 등의 종교시설도 방역수칙 의무화 대상이며 실내 취식 금지 등 종교시설 방역수칙을 준수
-정규 종교활동을 할 때 진행자와 설교자(강사)도 마스크 착용 의무화 대상?
=정규 종교활동을 할 때 참여자 전원 마스크 착용이 원칙
=다만 방송법,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에 의거한 방송 사업자(지상파, 케이블, IPTV 등)를 통해 송출되는 방송인 경우에는 ‘방송 출연’에 해당해 설교자에 한해 마스크 착용 예외상황으로 인정
=성도를 위한 자체 방송(유튜브 등) 등은 사적 방송에 해당돼 ‘방송출연’ 적용 곤란
=이때 사적 공간(별도의 분리된 공간)에서 영상송출 인력 없이 혼자 촬영하는 경우에는 마스크 착용 예외상황으로 인정
-개별 종교시설이나 종교단체(연합단체) 주관의 기관운영을 위한 필수적인 회의도 운영 가능한가?
=종교시설의 재정(회계), 시설관리 등 기관 및 단체 운영을 위해 불가피하게 개최가 필요한 경우에 한해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주기적 환기소독, 음식섭취 금지, 출입자 증상 확인 및 유증상자 등 출입 제한, 출입자 명단관리 등 방역수칙 준수하에 모임·행사 방역 기준에 따라 가능
-종교단체 주관이 아닌 종교시설(장소)을 빌려서 결혼식, 장례식 등 행사 개최는 허용이 되는지?
=종교시설을 빌려서 운영하는 경우 결혼식은 ‘결혼식장’, 장례식은 ‘장례식장’, 공연은 ‘공연장’ 등 해당 활동을 위한 고유목적시설 기준에 따라 방역수칙 준수하에 가능
=교회에서 예배 형식으로 결혼식을 올려도 예배가 아니라 결혼식이라는 뜻.
=결혼식 후 별도 공간에서의 식사 역시 일반 ‘식당’ 방역수칙 적용
========================================================
머슴 목사-지주 장로의 동역… 현대교회에 던지는 큰 울림
재조명 되는 100년전 금산교회의 ‘위대한 섬김’
김제 금산교회 전경. ㄱ자 교회로 유명한 금산교회는 116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김OO와 김OO모친은 가정불화에 관하여 권면하고, 김OO댁 김OO은 부모 불효와 주일 범하므로 회개할 동안 성찬 불참케 하다. 김OO는 주일 범하므로 권면하고, 이OO은 도박한 일로 출교하고, 박OO는 귀신 공경하므로 출교하고, 조OO는 신행을 심사키 위하여 호출하기로 가결하다"
위 내용은 ㄱ자교회로 유명한 올해 116년 역사를 가진 김제 금산교회 1921년 10월 1일 제17회 당회록에 기록된 결의 내용이다. 당시 금산교회 당회가 하나님이 세워준 권위를 가지고 성도들에게 얼마나 본을 보이며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 당회원들이 하나님앞에서 바르게 살지 않고서는 이런 결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금산교회 당회록.
필자가 교회사를 배울 때에 교수님으로부터 김제 금산교회의 머슴 마부 출신 목사(이자익 목사)와 지주 출신 장로(조덕삼 장로)가 보여준 섬김과 헌신 이야기를 듣고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단순히 전해져 내려오는 한국교회사로 듣고 지나치기에는 너무도 귀한 신앙고백이기에 최근 필자는 김제 금산교회를 찾아 담임 김종원 목사님을 만나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현재 금산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김종원목사(오른쪽)와 공균장로.
김종원 목사님에게 금산교회 설립에 대해 묻자 긴 답변이 돌아왔다.
“금산교회의 설립은 데이트(L.B.Tate. 최의덕)선교사와 조덕삼 장로와의 만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데이트 선교사는 전주를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었는데, 옛날 김제군 금산리 용화마을은 전주로 가는 길목과 금산사 절간으로 가는 길목, 정읍과 김제읍으로 나가는 길목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당시 조덕삼은 지역에서 최고 부자로 마방을 운영했고 대대로 유교를 믿는 보수적인 가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방 손님인 데이트 선교사에게 접근하여 ‘당신은 평안히 살 수있는 당신네 나라를 두고 여기까지 온 이유와 목적은 무엇입니까?’ 물음에 데이트 선교사는 ‘복음을 가진 자로 이 땅에 복음을 전하러 왔다’고 소개합니다. 그러자 ‘당신이 전하고자 하는 복음이 무엇인가요?’라는 말에 데이트 선교사가 열심히 복음을 전해 급기야 조덕삼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후 조덕삼의 사랑채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여 지금의 금산교회(옛 이름 두정리교회)가 시작되었고, 1905년 10월 11일 조덕삼, 이자익, 박화서가 최초 학습교인이 되었습니다”
이번엔 한국교회에 널리 알려진 조덕삼과 이자익의 장로 피택 중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청했다
금산교회 부흥 주역들. 왼쪽부터 이자익 목사 조덕삼 장로 최의덕(데이트)선교사.
“1906년 6월 30일 데이트 선교사는 조덕삼, 이자익, 박화서를 최초 집사로 임명합니다. 이후1907년 1월 새해에 조덕삼 집사와 이자익 집사는 영수로 임명됩니다. 당시 영수는 목사와 장로가 세워질 때까지 교회 행정과 살림을 도맡아 하는 중요한 직분이었습니다. 1907년 6월 20일 제1회 독노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한국인 최초 목사 7명(길선주,방기창,서경조,송인서,이기풍,양전백,한석진)이 안수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금산교회 장로 2명 청원도 허락을 받게 되어 공동의회를 거쳐 장로투표를 실시하게 됩니다. 이때 모두가 조덕삼 영수가 당연히 장로가 될 줄 알았는데 아쉽게도 떨어지고 이자익 영수가 선출됩니다. 이자익은 당시 조덕삼 영수의 머슴 마부이고 나이도 12살이나 아래였습니다. 이때 지주 조덕삼 영수는 발언권을 얻어 앞에 나와 성도들에게 인사하고 ‘우리 금산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고 있는 이자익 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단합니다.’라고 인사하며 축복했습니다. 이후 조덕삼 영수도 장로가 되고 이자익 장로는 은혜 받고 신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조덕삼 장로가 신학생 이자익 장로의 학업을 마치도록 열심히 도왔으며 이후 목사 안수를 받자 담임목사로 청빙하여 머슴 마부 출신 담임목사를 충성되이 헌신하며 섬겼습니다. 이후 이자익 목사는 교회 앞에 겸손하였고, 복음에 사로잡혀 한국교회에 크게 쓰임받았습니다. 전라도와 경상도, 충청도에서 50여년을 사역하였고, 총회장을 세 번씩이나 역임했습니다”
교회가 직분자를 뽑기 위한 투표를 한 후에는 종종 후유증을 앓는다. 투표에 임했던 분들이 교회를 떠나거나 마음에 상처를 입고 봉사와 헌신의 동력을 잃고 한동안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금산교회의 지주 출신 조덕삼 장로님과 마부 출신 이자익 목사님의 겸손은 한국교회에 큰 울림과 도전이 되고 있다.
김 목사님은 “지주였던 조덕삼 장로님은 사회적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귀한 자로 여기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그리스도를 본받아 고난의 삶을 산 자로서 귀감이 됩니다. 조덕삼 장로님은 이자익 목사님보다 연장자이고 사회적 지위도 높으나 개의치 않고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가치를 더욱 귀히 여겨 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종의 자리를 마다하지 않았고, 섬김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신앙을 보였습니다. 이런 장로님의 섬김 덕분에 이자익 목사님이 한국교회를 위해 크게 쓰임받을 수 있었습니다”고 했다.
김 목사님에게 금산교회의 앞으로의 사역 비전을 물었더니 “교회가 위치한 김제 금산면은 수많은 종교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입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종교 테마파크’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아주 특수한 곳입니다. 영적 싸움이 극심한 지역입니다. 종교다원주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으로 영적 싸움의 최전선이 아닌가 생각되는 지역입니다. 무엇보다 주님의 사랑과 복음으로 철저하게 무장되어 그리스도의 편지요, 그리스도의 향기로 쓰여지는 교회를 이루도록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고 했다.
금산교회는 한국교회 목사님들과 성도들이 단체로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는 서울 모 교회 담임목사님께서 주일예배 설교 중에 조덕삼 장로님과 이자익 목사님의 이야기를 예화로 들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한 집사님 부부가 은혜를 받고 다음날 월요일에 금산교회를 방문했다고 한다. 이 부부는 김종원 목사님으로부터 금산교회 설립과 조덕삼 장로님과 이자익 목사님의 아름다운 동역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듣고 연신 눈물을 흘리며 돌아갔다고 한다. 지금도 금산교회는 곳곳에서 방문자들이 교회를 탐방하고 은혜받고 돌아간다.
필자는 금산교회를 방문하고 돌아오면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처럼 지키고 순종하려고 몸부림쳤던 것을 보면서 한없이 부끄럽고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필자 역시 한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로서 당회를 구성하고 성도들을 섬기고 있어 교회는 어떻게 세워져 가는가에 대한 모델을 본 것 같아 희망이 생겼다. 금산교회가 물려준 귀한 선배들의 신앙을 잘 계승해서 아름답고 은혜가 넘치는 한국교회로 세워지기를 소망해 본다.
==========================================
기관·신학교, 이름에서 기독교 색채 빼고 ‘세상 속으로’
기드온협회, 성경 보급에 방점
‘셰어 워드 글로벌’로 단체명 변경
‘비블리컬신학교’도 보낸다·선교
의미 지닌 ‘미시오’로 교명 바꿔
미국 필라델피아 미시오 세미너리 전경. 1971년 비블리컬 신학교로 시작한 학교는 2018년 교명을 바꿨다. 미시오 세미너리 홈페이지 캡처
오랜 전통의 국제 기독교 단체와 신학교가 단체명에서 기독교 색채를 감추고 대중에 다가갈 수 있는 이름으로 변경하는 새로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고립에서 벗어나 세상을 향해 다가가기 위해서다.
미국 크리스채너티투데이(CT)는 최근 캐나다기드온협회가 단체 이름을 ‘셰어 워드 글로벌(Share Word Global)’로 변경했다고 보도했다. 구약시대 사사인 기드온의 이름 대신 성경을 보급하는 단체의 정체성에 방점을 찍은 새 이름을 선택했다.
애런 앤더슨 셰어 워드 글로벌 대표는 CT와의 인터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확산하기 위해 단체명을 변경했다”며 “가서 제자 삼으라는 지상 명령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셰어 워드 글로벌은 코로나19 중에도 200만부의 성경을 나눌 예정이며 스마트폰으로도 복음을 소개하기 위해 ‘뉴라이프’라는 애플리케이션 보급에 나섰다. 1899년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시작된 국제기드온협회는 전 세계 호텔 학교 병원 군대 교도소 등에 성경을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한국에는 1963년 지부가 설립됐다.
1971년 설립된 미국 필라델피아의 ‘비블리컬신학교’도 최근 ‘성서의’라는 뜻을 지닌 형용사 ‘비블리컬(Biblical)’ 대신 ‘미시오(missio) 세미너리(seminary)’로 교명을 바꿨다. 미시오는 ‘선교’라는 의미의 라틴어다.
근래 이 학교를 방문했던 송태근 삼일교회 목사는 “세상으로 들어가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신학교의 정체성을 구체화하기 위해 교명을 변경했다”며 “‘보낸다’, ‘선교’라는 의미를 지닌 미시오라는 교명을 통해 세상 속에서 사명을 감당하는 신학교가 되겠다는 정체성을 담은 것”이라고 소개했다. 학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캠퍼스를 노숙인과 쉽게 만날 수 있는 시내 중심으로 이전했다. 복음을 전해야 하는 전도 대상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다.
이 같은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다. 2011년 미국 대학생선교회(CCC·Campus Crusade for Christ)는 단체명을 ‘크루(Cru)’로 바꿨다. 미국CCC는 오랜 논란 끝에 크루라는 이름을 최종 선택했다. 십자군을 뜻하는 ‘크루세이드(Crusade)’가 단체명에 포함되면서 생길 수 있는 여러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CCC는 당시 홈페이지를 통해 “크루는 90년대 중반부터 암암리에 쓰였던 약칭으로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다”며 “크루란 이름이 복음과 함께 세계로 나가는 우리의 목표를 잘 설명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
몽골서 교수로 일하며 교회 3곳 개척, 탈북자 등과 함께 북한선교 위한 기도
원우현 교수의 삶과 신앙
항상 기도에 힘쓰고 있는 원우현 교수.
원우현 교수는 크리스천이다. 모태신앙으로 온누리교회 (사역)장로이기도 하다. 1·4 후퇴 때 할머니가 피난 길에서 인근 마을에 폭격이 시작돼 모두 산으로 기겁하면서 피신하는데도 권사인 할머니는 집안에서 그대로 찬송과 기도하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권사님이 믿는 예수님이 누구신데 위급한 상황에서도 저렇게 평안을 누릴 수 있는지 바로 그 예수님을 나도 의지하기로 결심했다.
피난 생활은 힘들지만 일용한 양식을 기도하며 예배를 잊지 않는 어른들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다. 철학과 종교서적을 많이 읽었다. 미국 유학생활 중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교회를 다녔다. 유학 중 만난 신앙 좋은 아내 이방숙(전 연세대 음대 학장)권사와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좋아하는 성경 말씀은 요한일서 5장 4~5절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이다.
몽골서 교회를 개척하고 세례후 감사 찬송을 드리는 원우현 교수(오른쪽).
교회에서 장로 은퇴 후 탈북자들과 함께 북한 선교를 위해 기도한다. 몽골에서 교수생활을 하면서 개척(게르)교회 3곳을 설립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몽골 교회를 방문하지 못하지만 구호 요청이 올 때마다 기금과 물품을 전달하고 있다. ‘순철 기프트 어브 러브(Soonchurl gift of Love)’ 기금을 통해서다.
그에게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묻자, “교권이나 인간 존엄을 침해하는 사회적 이슈를 피하지 말고 기도하면서, 대처하는 기민성과 온전한 책임의식이 절실하다. 물론 최근 사회헌신과 봉사 활동이 늘고 있는 추세이긴 하다”고 했다.
“맡겨진 작은 일에 충성하는 크리스천이 됐으면 해요. 십자가 보혈의 능력을 믿고 즉시 생각나는 사역 현장을 품으십시요. 바로 거기 예수님이 계시고 넘치는 은혜를 누릴수 있을 겁니다”
==========================================
가톨릭의 나라 브라질에 ‘박동주 목사 도로’ 생긴다
31년 선교 헌신… 오르톨란지아에 복음의 탄탄대로
인구 23만4000명의 브라질 상파울루주 오르톨란지아(Hortolandia)시에 한국인 이름의 도로가 생긴다. 평범한 한국인 이름이 아니다. 10명 중 7명이 로마 가톨릭 교인인 브라질 사회에서 ‘목사’라는 수식어까지 붙은 도로명이다.
오르톨란지아시는 시의회가 지난달 17일 제랄도코스타카마르고 공공도로 사이에 위치한 길을 ‘루아 박동주 목사(Rua pastor Dong Joo Park)’로 명명하는 내용을 승인했다며 호세 나사레노 제제 고메스 시장 대행 명의로 관보에 게재했다.
이 길에 붙여진 이름, 박동주(사진) 목사는 1990년 2월 인천제2교회 부목사로 부임해 9개월 뒤인 11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세계선교회(GMS) 소속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브라질에 도착했다. 이후 31년간 브라질에서 사역하다가 지난 6월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뒤 별세했다. 65세의 나이였다.
지난 26일 서울 동작구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박 목사의 아내 이금숙(63) 선교사는 “남편 이름으로 도로명이 생겼다는 걸 관보를 보고 알았다”는 말과 함께, 남편이 30여년간 브라질에 닦아놓은 ‘복음의 길’을 풀어냈다.
원래 박 목사가 선교지로 마음에 품은 곳은 아프리카였다고 한다. 10년간 아프리카 선교를 위해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방향을 브라질로 돌렸다.
“서운했고 하나님께 확인받고 싶었어요. 남편은 금식하며 산에서 기도했고 저는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기도했어요. 목사님은 산에서 응답받았는데 저는 못 받았죠. 금식으로 기운이 없는 남편 곁에서 성경을 읽었는데 하나님은 전도서를 통해 저에게 ‘네가 하려고 한 걸 내가 이미 받았다’고 하셨어요.”
박 목사 부부는 자녀와 함께 90년 11월 29일 브라질에 도착했다. 인구 1000만명 넘는 남아메리카 최대 도시 상파울루주의 상파울루시 부근 20여개 위성도시를 선교 사역지로 삼았다. 그리고 빈민가를 찾아 교회를 세웠다.
박 목사의 아들인 형우(37)씨는 “아버지는 못사는 동네만 찾아다니셨다. 일주일에 한 번씩 살인 사건이 발생할 정도로 험악한 지역이었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지역에 8개 교회를 개척하고 현지인 목회자를 세웠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첫 번째, 두 번째 교회는 한국식 사역을 도입했는데 실패했어요. 가령 부교역자에게 월급을 줬더니 우리만 지나치게 의지했어요. 세 번째 교회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바닥으로 끌어내리셨어요. 오르톨란지아시 산타에즈메라우다에 세운 개혁장로 산타에즈메라우다교회인데 양육하던 사역자가 교인을 전부 데리고 나갔고 매주 300여명의 성도들이 채우던 예배당엔 6명만 남아 있었어요.”
박동주 목사가 브라질 오르톨란지아시 오르토공원에 네 번째로 세운 CPI오르토공원교회에서 설교하고 있다. 인천제2교회 제공
부부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 선교사는 “성도가 늘어나는 게 우리가 잘해서 된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하나님이 알려 주신 것”이라며 “하나님께 엎드려 회개하면서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교회 이름은 CPI(국제장로교공동체)로 바꿨다. 이후 새로 개척한 교회 이름은 CPI에 지역명을 붙여 만들었다. 아픔을 준 교회가 교회 개척의 본부가 된 셈이다.
박 목사는 현지인을 향한 교육에 관심과 열정을 갖고 있었다. “남편은 못사는 사람들이 잘살려면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도록 도와줬어요.”
박 목사(앞줄 오른쪽 다섯 번째)가 CPI콩세이성교회에서 미국에서 온 단기선교팀과 전도사역을 마치고 기념 촬영한 모습. 인천제2교회 제공
상파울루 지역과 아마존 신학교에서 강의와 신학 영성 훈련을 하며 현지인 지도자 양성에도 힘썼다. 세 번째 교회를 끝까지 지킨 6명은 박 목사를 통해 신학교에 입학해 목사 안수를 받거나 교사가 되는 등 사회적 리더로 성장했다. 이들 중 한 명은 지난해 ‘박동주 목사 도로’ 인근 아만다 지역의 CPI아만다교회 담임목사로 위임받았다.
실업과 마약·알코올 중독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 회복에도 힘을 쏟았다. “목사님은 무조건 도움을 주지 않았어요. 실업자에게 쌀과 생필품 등이 담긴 키트를 전달했지만 6개월 이상 지속하지 않았죠. 계속 도와주면 자립 의지가 약해진다고 생각했거든요. 도움을 주면서 전달한 메시지도 있어요. 일자리를 구해 돈을 벌게 되면 자신처럼 어려운 이들을 도우라고 하셨어요.”
그의 꾸준한 헌신에 지역 주민들은 크게 감동했다. 이번 별세 소식을 듣고는 함께 슬퍼했다고 한다.
형우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브라질은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할 때라 장례식은 고사하고 사망하면 바로 묘지로 가야 했다”며 “그런데 시 의장이 ‘모른 척하겠다’며 유일하게 아버지의 장례식을 허용했다”고 설명했다.
장례식은 CPI아만다교회에서 열렸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았다. 형우씨는 “아마도 장례식 때 아버지의 삶을 기리자는 이야기가 나왔던 듯싶다”고 전했다. 가족들도 모르게 지역 주민들은 박 목사의 이름이 붙은 도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형우씨는 “도로에 아버지 이름이 붙게 됐다는 얘기를 듣고 아버지 선교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박 목사가 양육하고 세운 현지 동역자들도 그의 사역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 선교사는 “저도 그들이 남편의 사역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주고, 기도해 달라 하면 기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
당신 늙어봤어? 난 젊어 봤어
지나간 생은 너무나 유한하고, 남은 생은 너무나 무한하다
[김형태 칼럼] 짧은 글, 긴 여운
9월 단풍 경치 가을
고담준론(高談峻論)이나 긴 학술논문을 통해서도 배움이 가능하지만, 단 한 마디의 촌철활인(寸鐵活人)으로 감동과 깨달음을 얻을 때도 있다.
사람에 따라 긴 소설보다는 짧은 수필, 수필보다는 더 짧은 시나 시조 한 구절에서 깊은 진리를 얻기도 한다. 특히 현대인들은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다니며 짧은 카톡방의 한마디로 울고 웃기도 한다. 그런 신세대의 지적 양식을 위해 다음과 같은 글귀들이 소용될 수 있겠다.
영어에서는 정관사(the)가 붙으면 특별한 것이고, 부정관사(a/an)가 붙으면 일반적인 것으로 여긴다. 특별한 것과 평범한 것의 차이는 한 뼘도 안 된다.
조금만 이렇게 보면 ‘나만의 일’이고, 조금만 저렇게 보면 ‘우리 모두의 일’이다. 생각을 조금만 더 유연하게 하고 보면 모든 것이 재미있고 언제 어디서든 배울 수 있다.
①뜨거웠던 아이는 어른이 되며 점점 식어서 자신의 온도를 찾아간다. 내가 나에게 바라는 한 가지 소원은 계속 나로 남아있는 것이다.
②누구나 자기만의 그릇을 갖고 있다. 욕심을 부리면 넘치고, 소심하게 굴면 놓친다. 하지만 넘쳐보지도, 놓쳐보지도 않으면 그릇의 크기조차 알 방법이 없다. 비로소 알게 된 그릇이 생각보다 작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더 쉽게 행복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③결정이란, 어떤 방향으로 가기 위한 화살표에 불과하다. 너무 두려워하지 마라. 결정을 내리기 위해 필요한 건 자신이 세운 기준 같은 게 아니라 어떤 선택을 해도 스스로를 믿어주는 마음이다.
④상상과 고집으로 키운 두려움에서 도망쳐라. 결국, 마주치면 생각보다 별 것 아니다. 불가능할 것만 같던 일들이 시작만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변하고, 쉽게 새로워진다. 나는 아직 나의 힘(잠재력)을 잘 모른다.
⑤나는 아직 대리만족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직접 느끼지 않으면 만족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슬픔도, 아픔도, 기쁨도, 사랑도.
⑥더 강하고, 더 영리하기를 원하는 세상에서 그저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나를 발견한다. 강하다는 건, 세상에 맞춰 영악해지는 게 아니라, 약한 나를 인정하고 내 모습 이대로 단단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도 부술 수 없는 내가 될 수 있다.
⑦남을 흠모하면서 다르고 싶다니, 될 리가 없다. 부러우면 대놓고 부러워하고, 걱정되면 끝까지 걱정하고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기로 한다. 눈치 보는 감정은 잠재워지기보다 몰래 커지기만 할 테니까.
⑧시작과 끝이라는 화려한 순간 사이에는 ‘유지’라는 무겁고 더디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아무나 버텨낼 수 없는 시간이 숨어있다. 산다는 것에는 시작과 끝이 아닌 단 하나의 ‘이어짐’이 있다. 우리는 아직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⑨계획은 오늘, 내년, 10년 뒤에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게 아니라, 지금 나의 태도와 마음을 정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나를 만들 때 눈치를 너무 많이 넣었다. ‘예민’이라든지 ‘민감’이라든지 하는 것들은 귀도 잘 안 들리고 눈도 나쁜데, 왜 굳이 촉(촉감)만 좋게 했는지 덕분에 엄청 피곤하다. 그러나 잘 활용만 하면 달란트가 될 수도 있다. 나는 나의 가장 미숙하고 취약한 부분까지도 좋아하기로 결정한다.
⑩나는 누군가 내게 ‘허당’이라고 말하면 좋아진다. 잘하려고만 발버둥치는 나의 ‘틈’을 발견해준 것 같아서다. 그래도 충분히 예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다.
⑪주변에 끊임없이 축하할 일이 생긴다는 건 분명히 감사한 일이지만, 가끔은 나도 축하를 받고 싶어지는 건 어린(유치한) 욕심일까? 내 안에는 아직도 다섯 살짜리 꼬마가 살고 있다.
⑫인간의 손은 두 개뿐이다. 이미 무언가를 쥔 손으로 다른 것을 쥐려면 이미 쥐고 있던 것을 놓거나 놓쳐야 한다. 아주 가끔 서너 가지를 쥘 수 있게 되었다 해도 곧 놓거나 놓치게 될 것이다. 칠월을 맞이할 때 일 년이 절반으로 꺾이는 날, 기회와 선택이 서로 스치고 지나가기 좋은 때이다.
⑬나이 든 사람들이 부럽다. 빈 그릇처럼 주어진 시간을 백발이 되도록 그득 채울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작은 글씨는 잘 안 보이지만 세상만사를 멀리서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는 것은 멋있다. 나이 듦은 재빠르면서도 까마득하다. 지나간 생은 너무나 유한하고 남은 생은 너무나 무한하다.
나는 젊었을 때 한 원로 장로님이 “당신 늙어봤어? 난 젊어 봤어!”라고 농담하시던 말을 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