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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사람에게 오신 예수님
    2002-07-22 15:47:37   read : 3541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07-14 // 눅4:16-21

    오늘은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드릴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무엇을 위해 오셨으며 누구를 사랑하시는지 이것에 대해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회당에 가셔서 말씀을 읽으시고 설교하신 것과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회당에서의 설교 사건은 예수님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신 것으로 성서학자들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요약한 것이다.` 이렇게도 말씀하고 있는 중요한 귀절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읽으신 성경말씀은 이사야 61장1-2절 말씀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런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보시고 난 다음에 아마 여러 말씀도 하셨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해석하였습니다.
    "이 글이 오늘날 너희에게 응하였느니라."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라는 겁니다. 아닌게 아니라 예수님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고`와 `눈먼 자에게 눈을 뜨게 하시고 눌린 자에게 소망 주시는 일`을 하셨는데 예수님은 자신이 이사야가 예언한 구원자임을 당당하게 증거하고 계십니다.
    그랬더니, 22절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하신 내용에 대해서 두가지 반응을 보이는데
    첫째는 예수님의 설교 말씀에 은혜를 받고 놀랐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할 때에 증언이라고 하는 말은 칭찬의 의미가 있습니다. 믿을만 하다.. 그런 뜻입니다. 여러분 재판정에 가면 증언을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이 증언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진실하고 믿을만한 사람이 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증언했다 하는 것은 칭찬하다 믿을만 하다 그런 뜻입니다.
    이런 내용에 대해서는 14-15절에도 나오는데,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당시의 랍비들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의 은혜를 주셨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칭찬과 칭송을 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둘째는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하는 것은 적대적인 태도를 의미합니다. 말씀의 은혜를 받고 칭찬을 하던 이들이 갑자기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 중에 나타난 메시야가 바로 나다" 라고 하자 "목수 요셉의 아들"을 말하는 이유는 바로 내 생각과 다르다는 뜻이다. 그리고는 이내 적대의식을 나타내고 받아들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28-30절을 보니까.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쫒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으면서도 예수님이 메시야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으면서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기생각... 즉 선입견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선입견과 편견을 버려야 우리는 새것을 받아들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말씀을 보면서 한 가지 깨닫게 되는 것은 신앙이란 과거와의 단절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경기장을 달리는 경주자가 평소의
    옷을 벗고 가벼운 옷을 입고 달려야 경기에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에도 신앙에 걸맞는 생각과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거와의 단절이 필요합니다.

    1. 신앙은 과거와의 단절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 자기의 고향과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난 것처럼 뒤엣 것은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부르신 부르심을 향하여 달려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조크 한마디합니다!
    한 여행자가 미국 그랜드캐니언.. 높은 절벽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 갔다가 그만 가장자리에서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벼랑 아래로 굴렀습니다. 그러다가 가까
    스로 천행 중에 다행으로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꽉 붙잡고는 간신히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겁에 질려 소리를 질렀습니다. "거기 위에 누구 없소? 누가 날 좀 구
    해줘요." 그러자 어떤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여기 있다. 나는 주 너의 하나님
    이다." 그러니 얼마나 반갑겠습니까?
    "당신이 거기 계신다니 정말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나 좀 구해 주십시요"
    "내가 구해 주마. 그런데 그 전에 한 가지 물어보겠다. 넌 나를 믿느냐?"
    "주님, 제가 확실히 믿습니다. 주님, 저는 매주일 교회에 나갈 뿐 아니라 새벽기도회에도 나갑니다. 헌금도 몇 달러씩 합니다." 주님이 다시 물으셨다. "네가 정말로 날 믿느냐?"
    "제가 얼마나 하나님을 많이 믿는지 모르실 거예요. 저는 하나님을 믿어요."
    하고 계속해서 강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좋아! 그렇다면 네가 붙들고 있는 그 나뭇가지에서 이제 손을 떼거라."
    그러나 그는 한참 동안 조용히 있더니, 그러다가 이렇게 절규하며 부르짖었다.
    "거기 위에 하나님 말고 다른 이 없소!"

    믿음-신앙이란 결단이다. 유한한 인간의 시간이 끝나는 데서 무한영생의 세계가 열리고, 일상적인 경험과 재고 튕기는 계산기를 던져버려야 하늘 창고의 문이 활짝 열린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예/新 경영마인드 365‘ 中에서 (윤은기 저)
    어떤 사람이 몇 마리의 벌과 파리를 투명한 병 속에 함께 집어넣고 어떻게 하는가를 시험해 보았다.
    병의 마개를 막지 않고 병의 바닥을 빛이 비추는 밝은 창쪽으로 해서 병을 뉘어 놓았다. 한쪽으로는 열려 있고 한쪽으로는 닫혀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랬더니 벌은 바닥, 밝은 방향에서만 출구를 찾다가 끝내는 지쳐서 죽었다.
    그러나 파리는 이곳 저곳을 막 돌더니, 2분도 되지 않아서 반대쪽의 주둥이로 나가버렸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
    벌은 파리보다 머리가 좋습니다. 그래서 벌은 판단을 합니다. 가장 밝은 곳에 출구가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경험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것대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논리적인 행동을 고집하기 때문에 결국은 밝은 곳만을 고집하다가 병 바닥에 부딪쳐 죽고 만 것입니다. 반면에 파리는 머리가 나쁘기 때문에 빛의 방향 같은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출구를 발견하고 자유로운 날아가서 살게된 것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워터먼과 피터스가 공동으로 저술한 초일류기업의 조건에 나오는 이야기다.
    우리가 이 에피소드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어떤 것일까?
    첫째,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실험과 시행 착오를 지속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둘째, 경직된 사고나 엄격한 행동보다는 유연한 사고와 행동이 성과를 낸다는 점입니다.
    셋째, 과거의 관행이나 선례에 얽매이지 말고 전혀 새로운 행동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지금 일찍이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환경에서 경영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논리나 성공방식을 고집한다면 벌과 같은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기존의 논리와 관행을 뛰어넘는 시도를 통해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발상의 전환은 신앙생활에서 더욱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럼에도 우리 중에는 경직된 생각들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부족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들어야 되고 고쳐야 합니다.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야 신앙의 승리자가 되고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늘 겸손해야 합니다.

    당시 사람들의 생각 중에는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부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결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가난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오셨다라고 합니다.
    18절의 말씀을 보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라고 했다. 하나님의 성령은 예수님으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했다. 는 말씀입니다.
    또 19절에는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도 했습니다.
    여기의 은혜의 해라는 말은 50년에 한번 오는 해방절인 희년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성령의 역사, 하나님의 역사로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1)가난한 자에게도 하나님의 복음이 주어집니다.
    2)그러므로 가난한 자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3)그러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잘 살 수가 있다 는 것입니다.

    2. 가난한 사람을 위해 오신 예수님의 일은 무엇인가?
    1) 예수님은 나의 가난을 해결하십니다.
    그러므로 가난을 하나님의 은혜 받을 기회가 되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가난하다고 할 때 나 자신이나 남을 보고 어떤 생각을 갖습니까?
    불평을 하거나 낙심하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가난이 부끄럽지는 않지만 자랑스럽다! 이러지는 않잖아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가난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성경에는 가난한 자 라는 말을 헬라어 `아니윔`을 사용한다.
    아니윔이란 괴롭다. 천하다 의 의미이다. 즉 가난한 자는 삶을 살아가는데 괴로운 일을 당하며 무가치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가난이란 것이 돈에만 가난이 아니잖아요? 지식의 가난도 있고 인물의 가난도 있고 뚱뚱함의 가난도 있잖아요? 요즘 얼마나 이 가난의 범주가 넓은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길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가난한 장사꾼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은 방직공장에서 고생하며 틈틈이 공부하여
    미개한 나라 선교를 위해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아프리카 개척 선교사 리빙스턴입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렸을 때의 가난과 고생이 아프리카 선교에 큰 도움을 주었다.
    내가 죽어 만일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역시 가난한 집에 태어나 고생하며 자라고 싶다."
    가난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행이 가난의 낙점도 아닌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가난한 집 자녀로 살고 있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이 사랑하심을 믿으시기 바란다.

    어느 신문기자가 강철왕 카네기에게 성공의 비결이 무어냐고 물었습니다. 카네기는 서슴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성공의 첫번째 비결은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이오. 나는 항상 가난을 한탄하는 부모님의 한숨소리를 들으며 분발했소. 부모님을 근심시키는 가난이란 놈을 퇴치시키겠다고 다짐했소. 그래서 남보다 부지런히 일할 수 있었소."
    가난이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가난함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가난함 속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눅16장에 보면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가 나옵니다.
    부자는 평소에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부자의 상에 떨어지는 부스러기 먹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칙은 사람은 태어나면 죽는 다는 것입니다. 부자도 죽고 거지 나사로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지옥에 가고 거지 나사로는 천국에 갔습니다.
    조크입니다.... 주일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그러고는 누가 되고 싶은가를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누가 되고 싶습니까? 그러자, 한 아이의 대답이 "살아서는 부자요 죽어서는 거지 나사로입니다." 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가난을 원치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가난한 자도 천국에 갈 수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부자도 지옥에 갈 수 있다는 말씀은 당시로서는 충격입니다.
    그 이유는 부자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증거라고 하고 반대로 거지는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죄인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중요한 사실은 거지의 이름은 나사로입니다. 나사로는 하나님의 위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라는 뜻입니다. 즉 가난한 사람에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라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소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교회 빼먹지는 않습니까?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교회도.... 일도.... 직장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도 무시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 벌어야 된다..이런 생각.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가난한 자와도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중국이 공산화 되는 1950년에 그리스도인의 숫자가 300만명인데, 1982년 개방이후 32년 만에 그리스도인의 숫자는 자그마치 6,000만명입니다. 32년 만에 20배가 증가한 것입니다. 공산당의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증거 아닙니까? 가난은 절대 불행이 아닙니다. 가난은 하나님의 은혜받을 기회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가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와 함께 하십니다. 이 가난 때문에 주님께 나오는 사람은 복을 주시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입관이나 편견 때문에 하나님께 나오지 않는 어리석음을 주님은 책망하지 않습니까?
    오늘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책망을 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엘리야 시대의 사렙다 과부가 기적을 경험하고, 엘리사 시대에 문둥병을 고침받은 것은 나아만 장군밖에 없다. 왜? 아무리 이방인이고 하나님이 버렸다 할지라도 주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하나님이 은혜 주신다는 겁니다. 우리는 가난 속에서 더 은혜 받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하시는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 자신의 삶의 운명을 맡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누가 받을 수가 있는가?
    가난을 하나님의 은헤를 받을 기회가 되게 하는 것이 믿음이고 이런 사람에게 은헤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고 하신 것입니다.)

    미국 알라스카의 스티브라는 청년이 처음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날 목사는 마태복음 17장 20절의 말씀을 본문으로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올길 수 있다는 내용의 설교를 했습니다.
    그의 집 뒷산에는 겨울이면 눈사태가 나서 골치를 앓고 있던 차, 그 설교를 들은 스티브는 눈이 확 뜨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그런 일을 해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그 믿음을 얻기 위하여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 소식이 설교를 한 그 목사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목사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이라서 설교는 했으나 아직까지 산을 옮겼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스티브의 기도는 응답받지 못할 것은 뻔한 일이요, 그리고는 낙심할 것이 뻔한 일이므로 그 목사는 그의 뒷처리를 좀 잘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스티브의 기도는 열흘이 가도 스므날이 가도 후퇴하지 않았습니다.
    목사의 마음은 다급해졌습니다.
    40일째 되던 날 스티브는 벙글벙글 웃으며 목사실로 들어와서 하는말이 "목사님, 20세기는 산을 번쩍 들어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기계로 옮기시더군요"라고 하고는 새로 생긴 고속도로에 흙이 필요하다고 하며 큰 트럭들이 와서 그 흙을 계속 실어가 산이 거의 다 없어져 가는 것을 보고 왔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한남제일의 성도 여러분들이여! 이게 남의 말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시는가? 요10:10/ "내가 너희에게 온 것은 너희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를 믿으면 죽어 천국에 가는 것만을 생각하지 마세요. 이 땅에서도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가난한 나를 위해 오신 주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는 중에 하나님의 더 큰 은혜가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은 나를 존재를 변화시키십니다.
    유대 랍비가 제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네가 일생을 살면서 필요한게 무언지 적어와라.`
    막상 일생 살면서 필요한게 무엇인가? 고민을 하는데..
    제가 심방가서 `여러분, 기도제목이 뭡니까?` 이러면 뭘 대답하셨습니까? 똑같은 질문입니다.
    이 학생이 첫째는 명예, 둘째는 돈, 셋째는 건강입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칭찬할 줄 알았더니, 칭찬 한마디 안하고,
    `아무리 명예, 돈, 건강이 있어도 이것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랍비가 하는 말이 `그것은 화평이니라.`
    화평이 있어야 명예 돈 건강도 중요한 것 아닙니까?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나를 변화시키시는 내용은 3가지입니다.
    첫째,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둘째,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셋째, 눌린 자를 자유케 함을

    1)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은 유대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을 의미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온 인류를 죄와 사망의 그늘에서 해방시킬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포로된 자는 전쟁의 포로만이 아니라 구속당하여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런 포로들의 삶은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와 사탄의 포로가 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눅4:31에 보면 귀신들린 사람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이라고 배척을 하는데, 이 귀신 들린 사람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인 것을 알고 고백합니다.
    그 귀신은 귀신 같이 예수님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 지식은 그 사람이 깨달아 아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에게 들어간 귀신이 그 사람의 입을 벌려 말하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마귀의 지배를 받아 말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귀신을 내 쫒으십니다.
    마귀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결코 잘 살 수가 없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하였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나타나 시험을 합니다.
    네가 사는 길은 돈에 있다. 권력에 있다. 명예에 있다. 하면서 사람들을 돈의 포로, 권력의 포로, 명예의 포로가 되게 한다. 결국은 사람을 죽게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그렇다.
    돈 없으면 못산다. 이것은 마귀의 포로가 된 사람들의 증거입니다.
    자유함이 없습니다. 사람이 하루에 한끼 먹을 수 있는 것이 어느정도입니까? 그런데도, 수백년 먹을 것을 쌓아놓고도 더 욕심을 부리는 것이 사람이라.. 이것이 무엇입니까? 마귀의 포로요, 죄의 포로 된 자라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받기만 하면 이런 포로된 삶에서 자유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돈이 없이도 살수 있습니다. 권력없이도 살 수 있습니다. 명예없이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죄와 마귀와 돈과 명예와 권력의 포로가 된 사람들은 이것 없이는 못 사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늘 그것이 기준이 되고, 그것이 판단이 되서 남을 정죄하기도 하고, 자기를 비하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 진정한 자유를 위해 오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엡2:1에 보면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쫒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을 따랐더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가치기준을 따라가면 안됩니다. 그것은 다 마귀의 포로된 자의 모습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이 사람을 평가할 때 어떻게 합니까? 얼마만큼 배웠느냐? 얼마만큼 생겼느냐? 얼마나 가졌느냐?
    요즘 미국에 사는 우리 재미교포 청년들 사이에 배우자를 선택하는데, 어떻게 선택하느냐? 돈키호테를 선택한다고 합니다.
    돈 - 돈많고
    키 - 키크고
    호 - 호탕하게 활발하고
    테 - 21세기의 테크놀러지에 강한 사람
    그런 사람을 원한다 그런 것입니다.
    성경에 고린도서가 있습니다. 고린도라는 말은 타락한, 방탕한의 의미입니다.
    돈에 타락한 사람들, 권력에 타락한 사람들, 성에 타락한 사람들이 바로 고린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고린도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도저히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사람들이 죄와 사탄의 포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나누어 주는 전도지를 하나 보았습니다.
    거기에 "삶을 위한 정지" 라는 글이 실려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칼라하리 사막에는 스프링 밧크라는 양떼가 살고 있답니다. 이 양들은 떼를 지어 풀을 뜯어 먹다가 무리가 많아지면 더 넓은 풀밭을 찾아 집단 이동을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한 놈이 뛰게 되면 다른 놈들은 뭣도 모르고 뛴다는 거죠. 그러다가는 가속이 붙어 낭떠러지에서도 멈추지 못해 굴러 떨어져 집단자살을 하고 만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글은 이렇게 결론을 맺고 있다.
    "저 사람이 대학을 가니까 나도, 저 사람이 돈을 버니까 나도, 저 사람이 차를 사니까 나도…."
    우리들이 몸담고 살고 있는 이 세대를 군더더기 없이 분명하게 풍자하고 있는 얘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그저 달려가고 있지는 않은가?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른 채, 세상 가치와 욕망들만을 좇고 있지는 않은가? 그것이 안되면 속상하고 괴로워 하고 망한것처럼 생각을 한단 말입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마귀와 죄의 포로들의 모습이란 말입니다. 그 결과는 망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 그 자리에 멈춰서서 우리를 향해 안타까이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 : 2)
    여러분,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를때에 진정한 자유인이 될 줄로 믿습니다.

    2) 눈 먼자에게 다시 보게함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개안수술을 해 주신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이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눈 먼자에게 시력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가리킨다.
    육적인 눈이 현실쪽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세상 살아 갈 때에 영적인 눈이 더 필요한 것입니다.
    찬송가 405장 1절에,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밝은 빛이 보이는 것입니다.
    이 405장은 존 뉴턴 목사가 지은 것이다.
    존 뉴턴은 본래 11살에 고기잡는 어부에서 시작해서 그 당시에 돈벌이가 잘 되는 노예상인이 되었다. 노예선을 가지고 아프리카에 가서 흑인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다가 파는 인신매매범이었다. 그러다가 1748년 23살이 되던 해에 토마스 아 켐퍼스가 지은 그리스도를 본 받아 라는 책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의 영혼이 흔들린다. 그러다가 노예를 실고 오던 배가 풍랑을 만나게 되었다. 다 죽게 된 상황에서 자신을 위해 기도하시던 어머니가 생각이 났고 그 때 자신의 일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회개의 기도를 한다. 모든 것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종으로 일생을 살면서 여태까지는 돈 가지고 인생 사는 줄 알았더니, 돈 가지고 되지 않는 새로운 기쁨의 세계가 있구나.
    그 찬송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한 비극적인 청년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조셉 스크리븐.그는 사람들을 만나면 시비를 걸고 싸웠다.
    난폭하고 흉악한 청년을 가까이 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늘 혼자였다. 그러나 스크리븐은 원래 문학을 사랑하는 유순한 사람이었다.
    그가 난폭하게 변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가 매우 사랑했던 한 여인이 결혼식 전날, 수영을 하다가 익사한 것이다. 그는 그때부터 하늘을 원망했다. 결국 그는 조국 아일랜드를 떠나 캐나다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스크리븐은 신앙에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을 학대하며 살아온 것이 큰 죄악임을 깨닫고 찬송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 만든 노래가 바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찬송가 487장 `죄짐맡은 우리 구주`다. 복음은 `저주의 사람`을 `찬양의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돈과 명예과 권력,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나는 부자입니다.
    첫째, 나에게는 영생(요3:16)이 있습니다.
    둘째, 크고 아름다운 집(요14:2)이 천국에 있습니다.
    세째, 다른 사람들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평화(빌4:7)를 소유 하고 있습니다.
    네째, 말로 다 할 수 없는 즐거움(벧전1:8)이 있습니다.
    다섯째,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고전13:8)을 받았습니다.
    여섯째, 현숙하고 신실한 아내(잠언31:10)가 있습니다.
    일곱째, 건강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출20:12)들이 있습니다.
    여덟째, 진실하고 변함없는 친구(잠18:24)들이 있습니다.
    아홉째, 캄캄한 밤중에도 찬송(시42:8)을 부르는 기쁨이 있습니다.
    열째, 생명의 면류관(약1:12)이 있습니다.
    열한째, 내게 필요한 모든것을 충족하게 채워주시는 나의 구세주 예 수 그리스도(빌4:19)를 모시고 사는 것.
    이것이 나의 참된 기쁨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이런 영적인 눈을 뜨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될줄로 믿습니다.

    3) 눌린 자에게 자유케 함이라는 말은 눌린 자는 사회적, 정치적, 혹은 종교적으로 억압을 당하는 사람들로 불안과 공포, 근심과 염려 등으로 자유하지 못한 영혼들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이 세상 살면 눌리게 되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내가 아무리 바르게 해도 막 눌르거든요.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 얼마나 무시해요?
    사도 바울이 그런 눌림을 당한 대표적인 인물 아닙니까?
    주의 복음 증거하는데, 왜 그가 고난을 받아야 합니까? 엄청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힙니다. 여러분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감옥에서 이 사도바울을 그냥 넣어둔 것이 아니고, 손발에 착고를 채어 놓았습니다.
    매맞았지요? 고통스럽지요? 거기다가 붙잡아 놓았지요?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그런데, 그 안에서 찬송하는 겁니다. 기도하는 겁니다. 세상이 우리를 아무리 잡아 놓아도 우리 속에는 사도바울과 같은 기쁨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 기쁨이 예수 믿는 사람들 속에는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난해도 찬송할 수 있습니다. 병들어도 감사할수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이 평화를 우리에게 주시기를 위해서 오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가득한 저주와 고통과 불행 가운데로 들어오셔서 그것들을 물리치시고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저주가 변하여 복이 되고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변화의 특징은 나의 존재의 변화입니다.
    시대가 변해서도 원수가 죽어서도 아닙니다. 내가 변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의 은혜를 받기만 하면 새로운 삶이 시작이 됩니다.
    또한 남을 위해 기도를 할 때에도 그 자신이 변화되기를 기도하십시요.
    예/세계적으로 유명한 설교가인 밥 피얼스박사가 한국에 와서 특별집회를 하고 있는 동안에 13세의 딸이 오토바이 사고로 왼쪽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버지의 고통은 무엇보다 딸이 어려움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위로를 해야 좋을까? 하며 고민을 하다가 22시간의 비행시간에 잠도 자지 못했다고 한다. 병원에 도착을 하니 그 의 아내가 울고 있다. 박사는 그래도 하나님을 찬미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하면서 억지로 할렐루야, 주님 영광을 받으소서 하면서 병실문을 들어 섰다.
    딸이 어떻게 아버지를 맞이했을까요? 딸아이는 놀랍게도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아빠, 나는 내가 왜 이렇게 사고로 다리를 자르게 된 이유를 알았어요. 아빠 하나님은 나와 같이 불구가 된 장애인들을 위해서 일을 하게 하시려는 특별한 뜻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예요."
    어린아이지만 마음의 변화를 통해 어려움 중에도 감사를 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탁을 드리는 것인데,
    가난한 자를 위해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더 이상 가난하게 사는 여러분 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부자같이 이 상을 승리하면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과거와의 단절입니다. 선입견, 편견 이것을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가난한 자를 위해서 오신 주님, 그 주님께서 우리를 가난 속에서 살게 하시는 은혜도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변화, 인격의 변화, 신앙의 변화, 존재의 변화를 주셔서 우리가 이 세상을 승리하게 하는 믿음과 이 은혜가 이 한 주간도 승리케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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