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은 현대인을 가리켜 "교제는 있으나 우정은 없고, 직업
은 있으나 사명감은 없고, 결혼은 있으나 사랑은 없다" 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만남은 있으나 정이 없습니다. 디모데후서3장에 보면 주님
이 재림하실 날이 가까워오면 무정해진다고 했습니다. 교회의 4대
기능은 예배, 교육, 선교, 봉사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하여 5
대 기능이라고 할 때는 교제가 들어갑니다. 일명 코이노이아라고도 합
니다. 아무리 훌륭한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라도 선수들이 한 마음으
로 하나가 되지 않으면 훌륭한 경기를 할 수 없습니다. 선수들이 하나
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선수들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서로 모르
고 서로가 경쟁하듯이 하면 결단코 좋은 실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사실은 교회가 힘있는 교회, 제 기능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는 성도간의 교제가 아름답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산업사회가 인간사회에 가져다 준 유익도 많지만 큰 해악이 있
다면 바로 인간과 인간,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벌여놓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차피 사회가 이런 모습으로 변해간다면 예수님을 중심
으로 살아가는 공동체인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믿
는 믿음은 하나님도 한 분이요, 예수님도 한 분이요, 성령님도 한 분
이요. 세례도 하나요, 부활도 하나요, 구원도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동질성을 가장 정확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할 수 있는 것이 교회공동체
입니다. 여기에는 각 지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
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입니다. 성령님입니다. 그러므로 사회
를 통합하는 기능을 감당해야 할 사명은 바로 교회가 가져야 합니다.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시키는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
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능 중에 다섯 번째 기능인 교제의
기능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시편133편에도 보면 "형제들이 함께 모여 사는 것이 아름답고 좋
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히브리10:25절에 마지막 날이 가까워 올수록
모이기를 더욱 힘쓰라고 했습니다. 모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자주
모일 수만 있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2월 한 달 동안은 각 전도회와 남선교회와 교사들이 부지런히 만
나고 모이고 교제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물론 많은
성도들이 참여하지 못한 아쉬움도 많았습니다. 해마다 이런 교제의
프로그램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만나면 알게 되고 알면 아름다운 교
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친목회를 곁에
서 지켜보면서 성도간에 교제가 제대로 되고 있는가를 물어 보지 않
을 수 없었습니다.
남선교회나 여전도회나 친교의 프로그램이 대동소이합니다. 맨
먼저 경건회를 가집니다. 다음에는 준비한 음식을 나누고, 윷놀이하
고 선물 한가지씩 나누어 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진정한 교제가 되었는
지를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친교회에 참석한 후에 여러분
들은 성도간에 회원간에 교제가 있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간
에 이루어지는 교제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며 참된 성도의 교제가 이
루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성도의 교제가 아름다워지려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교제가 있습
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잘 안
되면서 인간의 교제가 넘치면 그것은 바로 세상적인 삶에 치우쳐버린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얼마나 교제를 잘하는지 모릅니다. 우리 보
다 많은 만남이 있고 더 잘 모입니다. 그 모임들 때문에 우리가 그리
스도 안에서 만남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를 봅니다. 우리는 하나
님의 자녀들로서 성도의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교제는 하나님과
의 교제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예배입니다. 기도입니다.
찬송입니다. 봉사입니다. 헌금을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잘 안 드리
면서 사람끼리 모이는데 열심을 낸다면 이 교제는 잘못된 교제입니
다. 우선은 하나님과 교제를 잘해야 합니다.
이런 성도의 교제, 즉 하나님과 교제, 성도간에 발생하는 교제가
이루어지는 장소가 크게 세 곳입니다. 첫째는 교회요, 둘째는 가정입
니다. 셋째는 이웃입니다. 본문 46절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
에 모이기를 힘쓰고" 라고 했습니다. 교회에 자주 모이는 것을 싫어하
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현대인들의 삶을 미화시키려고
하는 말이 '주일 하루만 교회에 나오고 다음에는 세상에서 열심히 사
랑을 나누어 예수님의 사랑을 드러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하기 위해 모이지 못합니까? 정말로 사
랑을 나누기 위하여 어려운 이웃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입니까? 그렇
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들끼리의 교제가 잘 이루어지려면 우선적으로
교회에 잘 모여야 합니다. 교회에 자주 모인다는 것은 예배중심의 삶
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의 교제는 예배를 통해서 이루어집
니다. 예배 때문에 우리가 만납니다. 예배를 통해서의 만남은 인간과
의 만남이 먼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먼저요 우선 입니다. 교
회가 교제를 해야하지만 인간의 교제만을 위한 장소가 되어서는 안됩
니다. 먼저 하나님과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잘 되어야 성도
와의 교제도 잘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잘하는 사람은 어떤 모습인가를 사도행전 2장 42
절에 보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라고 했
습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잘 하는 사람은 목회자의 가르침을 잘 받습
니다. 말씀을 잘 순종합니다. 가르침에 거역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예배를 잘 드렸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가 잘 이루어지려면 예배가 소홀히 되면 안됩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지금 누구를 생각하고 있습니까? 특히 이 시간 유아실에서 예배 드리
는 성도 여러분 정신차립시오. 아이와 교제하다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소홀히 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예배가 진정한 예배가 되고 있
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
이 지금 어딘가에 빼앗겨 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린 자녀들과 씨
름하다가, 옆사람 하고 대화하다가, 집안걱정 세상 걱정 하다가 하나
님과의 교제를 잘 되지 못하면 우리의 예배 드림이 무슨 의미가 있겠
습니까? 그러므로 예배를 똑 바로 드리세요.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
오. 아무렇게나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을 집중하십시오.
찬송을 부를 때에는 찬송에 집중하시고 기도할 때는 기도에 집중하시
고 설교를 들을 때는 설교듣는 데에 집중하십시오. 예배의 자리에만
나왔다고 다 예배가 드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라기 1:6에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
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 이
렇게 물었더니 그들이 대답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
였나이까" 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다시 백성들에게 말씀
하십니다. 7절에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더러운 떡이 무엇입
니까? 8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
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
를 기뻐하겠느냐 ? 너를 가납하겠느냐 ? " 깨끗하고 정결한 헌물을
드려야 합니다. 오늘의 헌물은 우리가 드리는 헌금과 우리 자신들의
마음이 곧 예물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들이 내게
드린 헌물을 세상 왕들에게 드려 보라. 그들이 그것을 기뻐하며 받아
줄지 드려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왕들도 받기에 기분 나쁜 제물을
하나님 앞에 드렸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도자들에게도 실례가 되는
모습으로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의 모습으로 이 나라 대통령 앞에 설 수 있는 모
습입니까? 부모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실 때에 듣는 자세로 지금 말씀
을 듣고 계십니까?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태도가, 말
씀 듣는 마음가짐이 집중하지 않고 산만하게 하고서야 어찌 우리가 하
나님과 교제를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
각해 봅시다. 정말로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태도, 여러분이 드리는 예
배의 태도가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것인지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
나님과의 아름다운 교제가 늘 이루어지는 예배의 모습이 예배의 정신
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만 있고 이웃과 성도의 교제가 없으면 진
정한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십자가 신앙입니다. 십자가
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이웃과의 교제가 나타남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과 직접 만나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
나님이 보내신 이웃과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도록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도간에 아름다운 교제가
되려면 우선,
1. 상대방을 알아야 합니다.
서로를 모르면 교제를 할 수 없습니다. 직업을 알고 가정을 알고
신상명세를 알고 현재의 삶에 대한 환경을 알아야 합니다. 그 가슴속
에 담고 있는 것까지도 알아야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삶의 의식과 목표, 추구하는 가치 등도 알아야 합니다. 상대
방을 모르면 마음을 열지 않고 마음을 열지 않으면 마주 앉아 있더라
도 두터운 콘크리트 벽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여러분들, 진정으로 성
도의 삶을 다 알고 있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구역식구들은 다
압니까? 전도회 회원들만이라도 다 압니까?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도
너무 피상적인 것만 알 뿐입니다. 성도간에 너무 모르고 지냅니다. 그
러니 얼굴만 알고 이름은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얼굴 알고 이름은
알고 성은 알지만 그분이 무엇을 하는 분인지, 지금 어떤 형편에 처
해 있는지, 자녀는 몇 사람인지, 기도의 제목이 무엇인지를 모릅니
다. 이렇게 해서는 교제가 안 이루어집니다. 모이기는 하는데 힘이 없
습니다. 결속이 안됩니다. 모르기 때문에 마치 모래알처럼 모여있는
것입니다. 누가 밟으면 무너지고 바람만 조금 불어도 흩어집니다. 우
리가 좀 더 잘 알기 위해서는 교회에 모여 하나님과 교제를 중점으로
나누는 예배 외에 자주 모이는 일을 가져야 합니다. 그 중에 제일 좋
은 것이 구역예배입니다. 그래서 금년에는 남성 구역을 만들이 시행하
려고 준비중에 있습니다. 여성도들은 그래도 교제가 잘 이루어지는데
남자 성도들은 좀처럼 모이지를 못합니다. 정말로 잘 아는 사람이 별
로 없습니다. 그래서 늘 만날 때마다 서먹서먹 합니다. 늘 와도 남의
집에 온 것처럼 느껴집니다. 누구와 만나도 인사를 정답게 나눌 사람
이 없습니다. 사실은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하고 기도할 수 있는 교
제의 만남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먹기도 하고 기도도 했다고 했습니다. 그냥 모
인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모였습니다. 영적으로 모였습니다. 자신들
의 기도제목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교회는 자고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교제에는 예배가 증요하
다고 했는데 예배 속에도 다 들어 있지만 보통으로 하나님과 교제하
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기도입니다. 특히 중보 기도는 하나님과
도 교제하지만 성도간에도 교제가 됩니다. "중보 기도는 우리를 깨끗
하게 하는 욕조와 같아서 개개인이 날마다 들어가야 하는 곳이며 교제
가 날마다 이루어져야 할 곳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우
리는 서로를 알도록 합시다. 옆 사람의 이름이라도 한번 알아 둘까
요.
2. 교제는 자기를 드러내어야 합니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만 드러내기를 원하면 안됩니
다. 자기를 드러낼 때 비로소 상대방도 자신을 드러내게 됩니다. 본문
에 보면 '마음을 같이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음을 같이했다는 것
은 자신들의 속마음을 다 드러내었다는 것입니다. 뜻을 같이했다는 것
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들어내어야 합니다.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지 않으면 절대로 참된 교제가 안됩니다. 미워했던 이야
기도 털어놓아야 합니다. 자신의 자존심 상한 이야기라도 내어놓아야
합니다. 좋은 일뿐만 아니라 나쁜 일도, 다른 사람이 알아서 좋지 않
는 일까지도 다 드러내어 놓을 때 비로소 아름다운 교제가 이루어집니
다. 제일 친한 사람이라 할 때에 어떤 관계입니까? 숨겨놓은 비밀이
많은 사람입니까? 비밀이 없는 사람이 가장 친한 사람입니다. 싫으면
싫다고 하고 좋으면 좋다고 할 수 있는 마음까지도 털어놓을 수 있는
교제여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훤히 내려다 보시며, 우리속 마음까지
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과의 교제요, 그 하나님 앞에서의 교제이기
때문에 속이는 자세로 앉아 있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이 지금 무엇까
지 털어놓을 수 있습니까? 가정 이야기를 드러낼 수 있을 때 우리는
성도간의 기도가 가능하고 예배가 이루어지고 교제가 됩니다. 여러분
의 삶을 성도들 앞에 드러내셔서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
다.
3. 교제는 목적이 한 방향이어야 합니다.
부부가 나란히 가면 싸울 일이 별로 없습니다. 방향이 다르면 문
제가 생깁니다. 부부라도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면 좋은 부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나 사회는 소그룹 운동이 활발합니다.
자기들의 관심사항과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입니다. 그래
야 교제가 아름답게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모일 때 보면 유유상종입니다. 끼리끼리 모입니다. 이것
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남자들이 어디를 가든지 잘 사귈 수
있는 요소가 하나있습니다. 출신지방이나 학교에 상관없이 아름다운
교제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군대에 관한 동질성입니다. 그래서 남자들
은 모이면 군대이야기입니다. 특히 특수병과 출신이나 특수훈련부대
제대자들은 제대후에도 얼마나 견교한지 모릅니다.
성도들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같습니다. 섬기는 대상이
같습니다.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 자매들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소망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지 못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교제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원
수처럼 생각하고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처럼 지내며, 흉보고 비판하
고 헐뜯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결국 교제가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하
나님을 위하여 모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들의 안일한
삶만을 위해 모인 것이 됩니다.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할지
몰라도 신앙은 열매를 보고 안다고 했으니까 드러난 일들을 보면 그들
이 추구하는 신앙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모인 자들입니다.
천국가기 위해 모인 자들입니다. 비전 2004를 향하여 가는 대구칠곡교
회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름다운 만남이 이루어지도록 합
시다. 같은 방향을 가는 자들이기 때문에 모이면 나누고 같은 목적을
가지고 기도합시다.
4. 교제는 희생이 따라야 합니다.
인간의 만남을 대표적으로 든 다면 1)만나고 싶은 만남이 있습
니다. 만나면 덕이 되고 유익이 되는 만남이 있습니다. 2)만나도 되
고 안만나도 되는 만남이 있습니다. 3)만나지 말았으면 하는 사람과
의 만남이 있습니다. 적어도 덕이 되는 만남은 반드시 자신의 것을 내
어놓는 희생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재하기 위하여 그리스도
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에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후 일어난 교회의 모습은 아름다운 천국이었
습니다. 거기에 보면 가진 자들은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 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소유를 팔아다가 사도들 앞에 내어놓았습니다. 떡
을 가져다가 같이 나누었습니다. 자기 것을 다 내어놓았습니다. 그러
니까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힘있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핍박이 있어도 견디어 낼 수 있었습니다. 복음이 전파될 수 있었습니
다.
아름다운 교제는 서로가 자기 것을 내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희생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어놓도록 기다리다가는 아무런 관
계도 가질 수 없습니다. 만나도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희생이 있는 교제가 일어나는 성도의 만남 속에서 천국을 볼 수 있습
니다. 이것이 교회 안에서도 이루어졌고 가정에서도 이루어졌습니다.
소유를 팔아서 나누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집에서 떡을 나누었다고 했
습니다. 애찬을 했다는 것입니다. 서울 온누리 교회의 한 성도가 교
회 가까이 이사를 와서 예배를 드리는데 목사님이 심방을 가서 "왜 교
회 가까이로 이사를 오셨는냐?"고 물었더니 성도들을 초청해서 서로
음식을 나누고 대접하며 살기 위해 이사를 왔다는 대답을 듣고 기뻤다
고 했습니다.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사실은 교회안에 두 주장이 있습니다. 교회가 무슨 먹기 위해 존
재하는냐? 다른 한 주장은 그래도 먹어가면서 일을 해야 하지 않느
냐? 두 주장이 다 맞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있은 후
의 교회의 모습을 보면 분명히 먹으면서 만났고 만나면 먹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쓸 때에 보면 고린도교회에
는 애찬이 먹자판이었습니다. 마치 먹기 위해서 모인 것처럼 되어 버
렸습니다. 거기에 가진 자들이 자기들이 해 온 음식을 가난한 사람
들, 반드시 먹어야 할 사람들이 다 오지 않았는데도 자기들이 먼저 먹
어버리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교회에서 먹는 일은
하지 말자. 뭐 그래 자꾸만 물질적으로 가는가. 기도하고 말씀듣고 가
난한 자 도우면 되지. 그렇게 먹기나 하는 모임은 이제 그만 두자'고
하면서 모임을 삭막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희생이 없이는 아름다운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내것을 내어 놓을 때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인간이 사는 사회
에는 어디를 가든지 만나면 제일 먼저 내어놓는 것이 다과 과일 음료
등입니다. 외식문화가 발전하는 것도 만남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입니
다. 그러므로 교회가 이웃과 교통하기 위해서는 많이 내어놓아야 합니
다. 그러기 위해 성도 한분 한분이 자신들의 희생이 따라야 합니다.
마치 그리스도가 자신의 생명을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놓았을
때 온 인류가 구원받았고 내가 구원받았듯이 우리들이 가진 것을 내어
놓을 때에 아름다운 교제가 일어납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
음이 있다고 했습니다. 내가 투자한 것이 있을 때 관심을 갖게 됩니
다. 우리 하나님이 그토록 우리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는 이유는 독생
자 예수님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낳은 자식에게는 자신의 생명까
지도 내어놓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무엇으로 보
여 드릴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가진 것으로 내어놓은 것
이 무엇인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한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교제가 교회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물론 예수님과의 교제는 반
드시 있어야 하지만 인간과의 교제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로막는다
면 그것은 우리가 재고해야 할 문제입니다. 교제를 하는 궁극적인 목
적은 예배요 기도요 역시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
므로 교회가 계모임 같은 것은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오늘 본
문에도 보면 교제하며 나누어주고 서로 아름다운 모습의 삶을 살 때
의 최종적인 결과는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
라 "입니다. 초대교회의 교제는 생명을 구원하는 일로 드러났습니다.
이것을 바울은 빌1:5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고 했습니
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서로 서로 아름다운 교제를 통해서
사랑의 공동체가 되도록 합시다. 그래서 매 주일마다 주를 믿겠다고
등록하는 자가 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