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 - 기쁨 2002-07-29 19:00:21 read : 2951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본문 : 요17:13 2001.4.29
인간의 뇌에는 열 여덟 가지 신기한 성분을 생성해 내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 둘을 든다면 하나는 엔돌
핀이고 다른 하나는 아드레날린이라는 것입니다. 엔돌핀은 인간이 많
이 웃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감사한 마음
이나 기쁜 마음이 가득할 때 생성되어 흘러나오는 성분입니다. 엔돌핀
은 암균이나 결핵균 같은 것들을 잡아
먹을 뿐 아니라 마취효과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엔돌핀이 많이 나
오면 심한 고통으로 고생할 때 무통효과
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아드레날린은 그와는 반대로 인간이 슬퍼하거
나 괴로워하며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히
고 남을 원망하고 저주하고 시기하며 질투할 때 생성되는 것으로 이
는 암을 유발하고 소화불량이나 기능장애
를 일으키고 기타 해로운 요소들이 나타나 건강상에 매우 해롭습니
다. 이런 면에서 보면 우리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따라 우리의 무거운 짐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주
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뜻이
여러 가지이지만 바울을 통하여 주신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는 사람이
야말로 육신적 건강을 유지하게 됩니다. 항상 기뻐하면 엔돌핀이 생성
되어 모든 병원균을 물리칠 수 있기 때
문입니다. 기쁨과 화를 내는 삶의 차이는 어느 정도나 될까요?
화가나서 씩씩거리며 호흡을 할 때 나오는 공기를 시험관에 담아
서 영하 120도로 온도를 낮추면 액체공기
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분노의 액을 쥐에 주사하면 즉사해 버린
다고 합니다. 우리가 흥분하면 맥박수가
늘어나고 신장의 기능이 저하되고 생체기능도 떨어집니다. 심리적인
불안한 상태가 부신피질 호르몬의 분비
량을 늘려서 그 불안한 상태를 해소하려고 하지만 그러한 흥분, 불
안, 긴장, 스트레스가 면역방어 기능을 저하
시키고 몸의 균형을 깨어 몸과 마음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할수만 있으면 우리가 기쁨으
로 살아야 합니다.
영국의 의사 아벨네티에게 환자가 한 명 찾아왔습니다. 의사는 환
자를 진찰한 후 극도의 신경쇠약 증상이
니 정신적 휴양이 필요하다고 하며 "약을 쓰기전에 먼저 런던 극장에
가서 그리말디의 희극을 관람하며 실
컷 웃어서 마음을 즐겁게 하고 와서 치료를 받도록 하시오"라고 했습
니다. 당시 그리말디는 이상하 몸짓
과 우스운 말로 관객들을 매혹시키는 재주꾼으로 런던에서 크게 명성
을 얻고 있는 희극배우였습니다. 그
런데 환자는 계속 슬픈 표정을 지으며 약부터 먼저 달라고 고집을 부
렸습니다. 의사는 그 혼자를 달래며
자기의 말대로 하라고 간곡히 부탁을 했습니다. 이때 환자는 쑥스럽다
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선생님 죄
송합니다 제가 바로 그리말디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깜짝 놀란 의사
는 어안이 벙벙하여 할 말을 잊고 있었습
니다. 수천 수만의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기쁨을 주던 배우가
자신은 심한 우울증에 걸려 있다는 사실
은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습니다. 세상의 기쁨은
잠시입니다. 세상에는 그리말디처럼 겉으
로는 웃고 즐겁고 행복해 보이나 그 곳에는 슬픔과 우울증으로 가득하
여 몸부림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끓는
냄비처럼 잠시 기쁘고 즐거우나 곧 그 기쁨이 사라지고 슬픔과 걱정
이 가득찬 삶으로 되돌아가는 사람이 많습
니다. 이유는 마음속에 기쁨의 샘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주는 기
쁨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즐거운
것도 오래하면 싫증이 납니다.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이라도 오랫동안
하면 기쁨이 줄어듭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 기쁨의 샘이 마련되어 있으면 항상 솟아납니다. 샘물은 퍼면 또
솟아나고 퍼면 또 그만큼 솟아납니다.
시16: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
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
움이 있나이다 " 하나님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합니다. 하나님 우편에
는 영원한 즐거움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없는 세상은 슬픔뿐이요, 분노함이요, 웃음이 없습니다. 그
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마음은 기
쁨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기쁨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서
기쁨이 없으면 이것은 우리가 심각하게
반문해 보아야 합니다. 기쁨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데
도 왜 내게는 기쁨이 없을까?
우리 성도가운데도 정말 칭찬 들을만한 기쁨으로 사시는 분이 계
십니다. 어제 오후에 보화구역 김영환 집
사님의 어머님 김송자 성도님의 회갑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거기에
친구로서 찾아온 분 중에 저를 아는 다른
교회에 다니시는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이 집사님이 하시는 말씀 중
에 '목사님을 뵙지는 못해도 칠곡교회 박경
식 집사님으로부터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제 이야기보다
는 박집사님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습
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우리 집사님을 만난 것은 운동을 하다가
만났는데 사우나 실에서 찬송을 부르면
싱글벙글 웃으면서 다니는데 처음에 다른 일행들과 함께 '정신적으로
좀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했습니
다. 그런데 사귀어 보니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
이요, 믿음이 충만한 집사님이요, 예수님
때문에 기뻐하는 집사님이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교회가 지향해야 할 가장 중요한 특징은 다름 아닌 기
쁨의 교회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주님과 더불어 함께하면서 형제간
에 기쁨을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신약성
경은 기쁨의 책이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헬라어로 기뻐한다는 동사
를 체어레인(chairein), 명사를 차라
(chara)라고 합니다. 체어레인은 72회, 차라는 60회 이상 신약에서 사
용되었습니다.
사실은 우리가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찾아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러 오셨다고 했습니다.
눅2:10절에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
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
노라 "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 자체가 기쁨이었습니다. 그래서 예
수님이 탄생하신다는 소식은 곧 기쁨의
소식이었습니다. 이봉주가 보스톤 마라톤에서 우승했다는 소식도 기
쁜 소식입니다. 박세리가 골프에서 2승을
거두었다는 소식도 기쁜 소식입니다. 박찬호가 완투승을 했다는 소식
도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가 이탈리아와
축구경기를 해서 2:1로 승리했다는 소식도 기쁜 소식입니다. 자녀가
출가해서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도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쁨은 극히 제한적인 기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오심은 온 백성에게 기쁨이 되었
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11절에서 "내 기쁨이 너희 안에서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
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이 예수님의 기도
내용입니다. 1-5절은 주님 자신을 위한 기도이고, 6-19절은 제자들을
위한 기도이며, 20-26절은 온 교회를 위
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말씀하실 때에 이제 아버지께로
가기전에 여러 가지 말로 제자들에게 이
야기한 것은 제자들에게 기쁨을 충만히 가지게 하려고 그렇게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우리가
기쁨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할 때도 보면 우울하
거나 괴롭거나 고통스러울 때 우울해하지
말고 고통으로 짜증부리지 말고 괴로울 때 낙심하지 말고 오직 기뻐하
라고 했습니다.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그러면서 6-7절에서는 "아
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 그리하
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데살로니가
교회성도들에게도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여기 기뻐하라는 단어
는 모두 동사인데 복수형입니다. 한 사람
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함께 모인 회중 즉 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 교회들이 기쁨을 회복해야 합니까? 기뻐할 일이
많고 늘 기뻐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을
때라면 이런 말씀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잘 웃고 있는 자에게 '웃으
면서 삽시다'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건
강하게 사는 사람에게 '건강하게 삽시다'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공
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에게 '공부 열심히
해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싱글벙글 하면서 사는 사람에게 '기뻐하
며 삽시다'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렇다면 성경에서 기뻐하라고 하는 것은 기뻐하지 못할 이유가 많다는
것입니다. 특히 마땅히 기뻐해야 할 성
도들은 기쁨으로 살고 있는가? 우리가 모일때마다 기뻐하고 기쁨이 차
고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는가? 슬픔과
고통속에서 웃음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할
때 지금 우리의 상황은 기뻐할 때입니
까? 울때입니까?
그런데 슬퍼한다고 슬퍼할 일이 없어집니까? 운다고 울 일이 없
어집니까? 울어도 없어지지 않고 슬퍼하
여도 슬픈 일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궂이 울어야 할 이유가 있
습니까? 궂이 슬퍼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
까? 오늘날 예수를 믿어도 기쁨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믿어도 기쁨
이 없다면 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세계
적인 트럼펫 연주가 루이 암스토롱이 이런 말을 말했습니다.
"당신 속에 음악이 있다면 음악에 대한 정의가 필요없습니다. 그러
나 당신속에 음악이 없다면 아무리
음악에 대한 훌륭한 정의를 내린다 하더라도 당신에겐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음악이 무엇인지를 알고
자 한다면 내속에 음악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현대인들이 기쁨
이 없다면, 기쁨을 모른다면 기쁨에 대한
정의를 몰라서가 아니라 기쁨을 다 빼앗기고 남아 있는 것이 없기 때
문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기쁨을 무엇이
빼앗아 갑니까?
첫째는 환경이고, 두 번째는 사람이며, 세 번째는 실존의 문제입
니다. 환경 때문에 기쁨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꼬인 인간관계 때문에, 혹 질병과 죽음의 문제 때문
에 기쁨을 잃고 갑자기 사람이 우울해집
니다. 갑자기 울음이 나옵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무리들, 즉 사람
들 때문에도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하는 일
은 기쁜데 가족들만 생각하면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완고한 어른들 때
문에, 말썽 피우는 자식들 때문에, 시집
살이 시키는 시누이 때문에, 나를 시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남편의 핍
박 때문에, 이외에도 기쁨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위기는 기쁨을 빼앗아 갑
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환경이 당신의 기쁨을 빼앗아 갔습니까?
사람 중에 누가 당신의 기쁨을 빼앗아
가고 있습니까? 죽음이 당신의 기쁨을 위협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믿
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모든 기쁨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하더라
도 그것을 뒤집어엎고 기쁨을 가져야 합
니다. 빌리보서는 옥중서신입니다. 바울에 옥에 있을 때 빌립보 교회
에 보낸 편지입니다. 그렇다면 울 수밖에
없고 웃음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 할지라도 바울은 그것
을 뒤집어 기쁨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기쁨으로 삽시다. 기뻐하는 모습속에서 우리는 주님의 모습을 발
견할 수 있습니다. 기뻐하는 삶속에서 진
정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표정이나 다
른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세요. 웃을 때의
표정과 우울할 때의 표정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의 얼굴표정은 마음
의 표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곳이 바로 얼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적어도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서양속담에 "악마도 기뻐하고 있을 때는 선량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쁨은 선합니다. 인간은 기쁨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기쁨이 의무입니다. 기
쁨은 영광이며 온전함이며 영혼의 햇빛이
며 모든 것을 선하게 계획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최선
의 찬양입니다. 시68:3절에 "의인은 기
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지어다 " 성도는 하나
님 안에서 뛰놀아야 하며 기쁨으로 살아
야 합니다. 그 이유를 가장 장 설명해 주는 말씀이 스바냐3:14-15절
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
워할지어다 ! /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 내
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기뻐해야 할 궁극적인 이유는 우리가 죄
로 말미암아 받아야 십자가의 형벌, 즉
죽음의 형벌을 면제해 주셨고 우리의 대적들을 물리쳐주셨으며, 전능
하신 하나님, 만왕의 왕이 되시는 여호와
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여러분 주위의 환경이 위태롭고
불안하고 염려가 된다 할지라도 여러분
들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마시고 여러분 가운데 거하시는 주님을 통해
여러분에게 충만하신 기쁨을 가지고 사
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결단코 기쁨을 잃지 않았습
니다. 사실 바울은 감옥에서 잃은 것이
많지마는 잃은 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다른 사람이 얻은
것을 기뻐했습니다. 바울은 누구를 통해서
라도 복음만 증거되면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너
희가 귀신을 좇아내었다고 기뻐하지
말고 오히려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환란속에서도 기뻐하는 삶
이 되려면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고 크리소스톰이 말했습니다. 그러
나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기쁨으
로 살지 못하고 교회에 예배를 드려도 기쁨이 없다면 그 이유를 더욱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기쁨을 저희안
에 충만히 가지게 함이라고 한 것에서
기쁨의 근저에는 건전한 교리가 있음을 가르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
씀을 아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
입니다. 시19: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
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
기쁨은 하나님의 성품과 계명들을 아는데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그리스도와 교제속에서 성도간의 교제속에서 기쁨을 얻
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내 기쁨"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기쁨이란 무엇인가? 십자가상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키는 일에 초점을 맞춘 미래의 기쁨입니다. 히
12:2"앞에 잇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쁨은 아버지와의 만남에서 얻
는 기쁨을 말합니다.
요일1:3-4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
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
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4) 우리가 이것
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
이로라 " 그러므로 우리에게 기쁨이 없다면 하나님과도 이웃과도 교제
가 끊어졌다는 말입니다. 다른 형제와
교제가 없으면 하나님과의 교제도 온전치 못하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기쁨의 삶은 거룩한 삶에서 비롯됩니다. 롬14:17절에 보면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기쁨은
육신의 즐거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성
령안에서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얻어진 하나님의 평강이 있어야 참된
기쁨의 나라를 얻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이 하는 일이 즐겁습니까? 여러분
예배드리는 것이 기쁩니까? 봉사하
는 것이 즐겁습니까? 성경읽고 기도하는 생활이 기쁩니까? 남이 나보
다 잘되는 것이 기쁩니까? 성도를
만나면 기쁩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여러분의 삶이 기쁨의 살이 되려
면 기쁨의 근원되시는 주님을 마음에 온
전히 모십시오.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우리 교회는 죄로인해 절망과 좌절과
공포와 죽음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기쁨, 하나님과 이읏과
의 교제하는 기쁨, 의로운 기쁨을 체
험하고 감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기쁨의 주가 되신 예수님을
모셔서 예수님의 충만하신 기쁨이 여러
분의 마음속에서 넘쳐서 날마다 힘든 환경을 극복하시고 항상 기뻐하
는 삶으로 천국같은 교회가 되어 민족에
게 기쁨을 주고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