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것들 2002-07-29 19:03:10 read : 2815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본문 : 시41:1-13 2001.5.27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삶은 고통입니다.
삶은 고통입니다. 그러나 삶은 아름답습
니다. 즉 삶은 아름다움인 동시에 고통이 있습니다. 푸시킨의 유명한
시가 생각납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있는 것,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버리고,
지나가 버린 것은 그리움이 되리니
이 시를 보면 삶속에는 슬픔이 있는데 그 슬픔을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현재는 언제나 슬
픈 삶이라고 했습니다. 스페인의 겪언에 "나는 세상에 태어날 때 울었
지만 지금 매일 그 까닭을 내 눈으로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세상이 울 수밖에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태어날 때 울었던 울음
의 소리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울면서 태어나는 것이 바로 고통 때문
의 울음이요, 그 울음이 현실적인 삶속에
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통해서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과연 어떤 삶입니까? 즐거움의 삶입니까? 슬픔의 삶
입니까? 아니면 고통의 삶입니까?
그러나 우리가 성경에 보면 세상이 그렇게 고통스럽거나 슬픈 세상은
아닙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
서 6일 동안 만물을 창조하실 때 매일 매일 창조하신 것마다 "보시기
에 좋았더라"고 했고 사람을 만드신 후
에는 최종적인 종합평가에서는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
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세상에 살면서 왜 우리는 좋은 것을 누릴 수 없으면 누리
지 못합니까? 왜 세상이 좋게 보이지 않
고 왜 세상이 그렇게도 슬프게 보이고 고통스럽게 보이며 울 수밖에
없습니까?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
다움을 점점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우리
가 생각할 때는 인간이 만든 환경이 더 아름다워 보이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이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그
리고 그 아름다움은 실정이 나지 않습니다. 인간이 만든 아름다움은
조금 지나면 실정이 납니다. 이것은 인간
의 죄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 때문에 찾아온 슬픔과 고통은 구체적으
로 무엇입니까? 무엇이 우리의 삶을 힘들
게 합니까?
오늘 본문 시편 41편1-4절입니다만 사실은 41편 전체가 본문입니
다. 이 시편은 다윗의 고백이라고 기록하
고 있습니다. 시편을 분류할 때 여러 유형으로 분류합니다. 찬양시
편, 감사시편, 탄원시편, 제왕시편, 지혜시
편등 여러 가지로 분류하는데 본문은 탄원시에 속합니다. 시편의 내용
을 보면 힘든 삶을 하나님께 기도를
통해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윗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도 힘
이 들었는가? 아마도 이 시편의 기도를 드
릴 때는 다윗이 병들어 심은할 때 그 약점을 타서 못된 자식 압살롭
에 의해 반역을 당했을 때 상황을 두고서
탄식했던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이런 고백 속에 나타난 내용을 가지고 현재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을 힘들게 하는 일들은
무엇인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에 여러분의 힘들
고 고통스럽고 슬픈 사연이 있는 자는
놀랍게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1.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은 경제적 빈곤함입니다.
1절에 보면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라고 했습니
다. 여기서 "빈약한 자"란 재물에 있어
궁핍하고 육체적인 건강에 있어 연약하며, 명성에 있어 경멸 당하며,
또한 영적으로 낙심한 자를 말합니다. 사
실은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돈이 다가 아닌데 하면서도 돈이 없으
면 여러 가지로 곤란을 당합니다. 흔히들
하기 좋은 말로 '가난한 것은 조금 불편할 뿐'이라고 하지만 그 불편
을 극복할 자신이 없을 때는 그것이 곧 우
리의 삶을 비굴하게 하고 하고 비참해지도록 하여 급기야 자살까지 하
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잠14:20 "가
난한 자는 그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
니라 " 우리 사회 현상은 온통 돈입니다.
그래서 서점에 가서 경제 코너에 가보면 전부 돈버는 이야기들로 쓰여
진 책들입니다. 예를 들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부자아빠 자녀교육법" "생각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
라" "내안에 부자가 숨어있다" "부자
나라의 부자아이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아이" "부자가 되려면 공인중
개사와 친해라" "대한민국여자가 평
생부자로 사는 법" 이런 책이 많이 출판된다는 것은 사회가 그만큼
돈 중심의 사회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근의 세계의 투자자로서, 큰손으로 유명한 미국의 소로
시 같은 사람이 한번 움직이면 세계 경제가
흔들흔들 합니다. 그래서 21세기는 경제인이 국가를 다스리게 될 것이
라고 합니다.
오늘 현대국가들의 목표는 복지국가입니다. 복지국가를 강조하는 이
유가 무엇입니까? 복지가 안되고 있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고루 잘사는 국가를 지탱하고자 하는 것이 정
치인들의 슬로건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국
가들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우리 현대국가
들은 대부분 자본주의 사회를 표방합니
다. 똑같이 잘살아 보겠다고 주장하며 국가를 경영했던 사회주의 국가
는 결국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빈익빈
부익부의 차별을 없애고 가진 자나 못 가진 노동자나 함께 잘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같이 일하고 동등한 분배
를 한다고 했던 그들의 사회는 오히려 불의가 더욱 심했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사람이 비
굴해집니다. 비참해집니다. 인간대접 못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형제간에도 부모와 자식간에도, 친구간
에도, 아니 성도간에도 이런 현상이 발생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돈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
중에는 항상 부자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
니고 가난한 자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치 가난한 자를 두둔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이런 약한 경제를 가지고 사는 자들을 위하여 밭에는 곡식을 다 추수
하지 말고, 추수한 것 중에서 그들을 돕
도록 하라고 했고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하나님보다도 더 강력한 말
씀을 했습니다. "부자가 천국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보다 더 어렵다" 부자들이 들었으면 맞아
죽을 말을 예수님은 서슴없이 했습니다.
그만큼 부자들은 영적인 삶을 살기 힘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신구약 성경에서 많은 말씀에 가난한 자들에 대해 언급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난하다는
것 이유 하나만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태어난 인간이 사람대접
못 받고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주
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데도 불구하
고 인간 사회는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
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을 아시고 강력하게
주장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사회에서
대접 못받고 괴로움 당하고 무시당하고 업신여김을 받고 인간대우를
못받는 자들을 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보면,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
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저를 건지시리
로다 / 여호와께서 저를 보호하사 살게 하시리니 저가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
리 주위에 경제적 빈곤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고 힘들게 사는 백성이
있다면 저들을 도와야 합니다.
잠22:2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
니라 "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분리되
어 사는 것이 아니라 섞여 산다고 했습니다. 섞여 살면서 서도 도우
며 살아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인간 세상에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곁에 가난한 사
람이 있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구별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
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사항이 무
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습니다.
돈이 여러분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까? 돈 때문에 힘들어 하
는 분 계십니까? 돈 때문에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다스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령의 충
만함으로 이기십시오. 돈에 구애됨이 없
이 사는 분 계십니까? 돈 때문에 힘들게 사는 백성들을 도우십시오.
그러면 세상에서 복을 받습니다. 재앙의
날에도 하나님이 건져주신다고 했습니다. 지혜있는 자의 삶은 내가 가
진 것을 가지고 가지지 못한 자들의 애
환을 돌보아 주는 삶입니다.
2.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은 질병입니다.
인류역사 이래로 인간과 함께 하는 것이 질병입니다. 질병이 우리
의 삶을 힘들게 합니다. 질병도 시대에 따
라 달라집니다. 질병도 발전합니다. 과학의 발전만큼이나 질병도 발전
해 왔습니다. 점점 강해집니다. 사실은 인
간의 질병에 대한 치료약이 많지 않습니다. 하나 해결하면 또 다른 질
병이 발생합니다. 지난 1000년동안 베대
전염병이 발병했습니다. 1)지난 12세기의 나병은 11세기 십자군 전
쟁 때 중동에서 유럽으로 들어와 13세기
까지 급속히 번졌습니다. 2)14세기에는 흑사병입니다. 유럽의 3분의 1
을 숨지게 한 페트는 1348년에 유럽에 상
륙하였습니다. 이는 인도와 아시아 남부에 살고 있는 곰쥐의 벼룩을
통해 옮겨지는 것으로 14세기 몽골군에
의해 유럽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3)16세기는 매독입니다. 1494년 프랑
스왕 샤를8세가 독일 스페인 스위스 연합
군을 편성 이탈리아를 침공하다가 병사들이 나폴리에서 병사들이 나병
보다 더 무서운 매독이 번졌습니다.
1509년 베네치아 인구 30만명 중 1만 1천명이 매춘부였고 볼테르는 매
독을 "사랑의 꽃다발"이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4)다음으로 발병한 것이 발진티푸스입니다. 키프러스 섬에
서 전투에 참여했던 병사들을 통해 스페인
에 들어왔습니다. 1차전쟁때 200-300만명이나 죽었다고 합니다. 5) 18
세기는 천연두는 신대륙 아메리카 90%이
상이 숨졌습니다. 6)19세기에는 결핵으로서 최근 200년동안 10억명이
이 병으로 죽었습니다. 아직도 우리나라
에 남아 있는 질병입니다. 7)스페인 독감입니다. 1918년부터 2년동안
2500-4000만명이나 죽었습니다. 1차전쟁
때 미군 병사에서 제일 먼저 발병되었는데 우리도 일제시대에 10만명
이 죽은 사실이 있다고 합니다. 8)유럽의
식민지 정책이 퍼뜨린 병이 콜레라입니다. 인도의 벵골지방에 유행하
던 풍토병인데 1817년 영국군의 베를 통
해 켈커타로 옮겨지고 1826년 벵골지방에 다시 유행하여 러시아 남부
까지 퍼졌습니다. 9)1493년 남미를 초토
화시킨 무서운 질병입니다. 세계보건기구는 이병으로 생명을 위협받
고 있는 인구가 24억명, 하루 23명이 죽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10)에이즈입니다. 이것은 결국 동성애를 통하여
나타난 인간들의 성적인 문란한 삶에서
발병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 병이 확산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외에
도 현대인들에게 가장 큰 공포로 다가오
는 질병은 바로 각종 암입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이런 질병에 걸
리면 온 가족이 비상사태입니다.
위와같이 살펴본 대로하면 전염병은 주로 전쟁을 통해서 나타난 것
을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은 전쟁으로만
이 문제가 아니라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질병만큼 공평한 것은 없습니다. 질병은 돈
많다고 없고 가난하다고 해서 질병에 걸
리는 것은 아닙니다. 지식이 풍부하다고 질병에 걸리지 않고 무식하다
고 질병에 더 많이 걸리는 것은 아닙니
다. 물론 노인성 질병이나 성인이 되어야 나타나는 병도 있습니다. 그
런데 현대사회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어
른들에게만 나타나는 병이라고 생각하고 붙여놓은 노인성 질병이나 성
인병이 어린아이들에게도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에게도 치매가 걸리고 어린 아이에게도 각종 암이
발병하고 있습니다. 질병이 우리를 얼마
나 힘들게 하는지 모릅니다. 질병은 걸린 자도 고통이지만 가족들에게
도 힘이 듭니다. 어떤 사람은 고치기 힘
든 질병에 걸려서 결국 자신이 벌어놓은 재산을 다 쓰고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족의 질병 때문에 회사 출가족의 질병 때문에 회사 출근
도 하지 못하고 장사도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적 빈곤
이 가중됩니다. 이중고를 겪게 됩니다.
본문 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쇠약한 병상에서 저를 붙드시고 저
의 병중 그 자리를 다 고쳐 펴시나이다"
"쇠약한 병상에서"라고 한 것은 보면 중한 병에 걸렸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질병에 걸려 고생할
때 약점을 이용하여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를 배반했으니 얼마나 마음
이 아팠겠습니까? 질병으로 인한 것보다
도 더 큰 고통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우
리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같이 있어줄 수 있습니다.
둘째는 기도해 줄 수 있습니다.
환자를 허락하신 것은 우리를 기도훈련 시키기 위함인지도 모릅니
다. 우리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
이 바로 아플 때입니다. 병문안 가면 안좋아할 사람 없습니다. 예수
를 안 믿어도 좋아합니다. 약5장5-6절에 보
면 병든 자가 있느냐. 장로를 불러다가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라고 했
습니다. 내기 비록 치료비를 보태드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기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습니다. 의사가 존재하
는 이유가 환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면 성도가 왜 존재하느냐? 환자에게 기도해주기 위함입니다. 지난 금
요일에도 삼성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성도
를 찾아 갔습니다. 예수 믿지 않는 남편이 함께 입원을 하고 계셨습니
다. 마침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두 분이
나란히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인사를
드리니 반갑게 맞이하면서 성도의 남편인
할아버지가 저에게 하시는 말이 병문안 오신 것은 감사한데 얼마 전
에 교회에서 두 팀이 다녀간 후로 오히려
아내가 더 나빠졌다고 하면서 안 믿는 가족들이 왔을 때는 괜찮았는
데 이상하게도 교회에서 왔다간 후에 더
안되었다는 것을 말씀하면서 자신은 안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
도해드리니 좋아하셨습니다.
구역에나 아니면 성도중에 환자가 발생하면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
서 내게 기도하라는 신호인줄 믿고 더욱
기도하십시오. 사실은 이 목사를 기도하게 하는 것은 환자들입니다.
저희들이 금요기도회 때마다 새벽기도 때
도 환우들을 위해 기도하는 이유가 바로 그기에 있습니다. 사실은 구
약성경에도 보면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이 때 자신이 기도했습니다. 건강하신 성도 여러분 !
환자가 있는 가족들의 심정을 이해하십
니까? 아마 하기 힘들 것입니다. 목사지만 그 가족들의 마음을 우리
가 어떻게 헤아리겠습니까? 특히 자식이
아프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자신이 대신 아플 수만
있다면 대신 아팠으면 하는 것이 부모님
들의 심정입니다. 그 애절한 사랑의 가슴을 누가 무엇으로 위로하겠습
니까? 함께 있어드리고 함께 기도해드리
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바빠도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에밀 디킨스의 시 가운데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내가 만일 한 마음의 상처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의 삶은 헛되
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만일 한 생명의 고통을 덜게 할 수 있다면
내가 한 사람의 고뇌를 식힐 수 있다면
또는 내가 숨져가는 한 마리 물새를 그 보금자리에 다시 살게 한다면
나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한 마음의 상처를, 고통을 덜어주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결단코 헛
되지 않습니다.
3.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배신입니다.
흔히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할 때 참기 곤란합니
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두 종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어렵게 하는
사람도 가장 가까운 사람인 경우도 있고
원수도 있습니다. 5-8절에 보면 "나의 원수가 내게 대하여 악담하기
를 저가 어느 때에나 죽고 그 이름이 언
제나 멸망할꼬 하며 / 나를 보러 와서는 거짓을 말하고 그 중심에 간
악을 쌓았다가 나가서는 이를 광포하오며
/ 나를 미워하는 자가 다 내게 대하여 수군거리고 나를 해하려고 꾀하
며 / 이르기를 악한 병이 저에게 들었으
니 이제 저가 눕고 다시 일지 못하리라 하오며"
나의 원수, 그리고 나를 미워하는 자입니다. 이들이 사람이 아파
누워 있는데도 낫기를 기도해야 할 사람들
이 오히려 빨리 죽지 않나, 언제 죽나 하고 하면서 거짓말을 하고 악
한 마음으로 나가서는 온갖 비방과 소문
을 퍼뜨린다는 것입니다. 원수가 그렇게 하는 것은 또 어느정도 이해
가 될 수 있지만 사람들이 배신할 때 보
면 꼭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이 합니다. 9절 말씀에 보면 "나의 신뢰하
는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여기서 가까운 친구가 누굴
까요? 아들 압살롬이요, 부하요 친구인
아히도벨이 반역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 배신당한 분 계십니까? 사랑하는 자식이 여러
분에게 배신자로 나타난 경우는 없습
니까? 여러분을 싫어하는 사람이 여러분의 경쟁자가 여러분이 당한 곤
경을 보고는 앞으로는 위로하는 듯 하면
서도 뒤에서는 뒤통수치는 경우는 없습니까? 이런 경우에 여러분의 마
음이 어떻습니까?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배신당하면 얼마나 분한지 모릅니다. 아마도 증오심이 이럴 때에 생
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속에서 믿을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로마 병사들에게 붙잡혀 갈
때 가롯 유다가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던
골고다 언덕위로 올라와서 스승앞에서 "랍비여 평안하셨습니까?"라고
가증스럽게 입맞추는 가롯 유다를 바
라보고 있어야 했던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잠시 생각해 봅시다. 우리 예수님은 상처받
은 치유자입니다. 뭇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았습니다. 제자들의 배신으로 상처를 받았고, 십자가상에서 상처를
받았고, 살이 찢어지는 상처를 받았고, 하
나님으로부터도 그 상처받는 모습을 내버려둠을 당하는 상처를 받았습
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받았던
상처 때문에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았고, 불평하지 않았고, 자학하지
않았으며, 대신 상처받은 사람들을 가슴에
끌어안으시고 치유하시는 분이십니다. 온 인류의 상처를 홀로 담당하
신 그분이 온 인류의 상처를 치유하는 위
대한 치유자가 되셨습니다. 가난 때문에 힘이 듭니까? 질병 때문에 힘
이 든 분 계십니까? 배신 때문에 힘
든 분 계십니까? 그것이 여러분에게 있음으로 인해 여러분이 그런 사
람을 위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
십시오. 시어머니 사정은 시어머니가 잘 알 듯이 가져보지 못한 자가
없는 자의 사정을 잘 알고, 아파 본 사람
이라야 아픈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고, 배신을 당해본 사람이라야 배신
의 아픔이 얼마나 큰 가를 알 수 있습니
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오늘 말씀한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는 요소들
에 의해 이미 고난을 겪었다면 그것은 바
로 여러분에게 사명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고후1:4절에 "우리의 모든 환란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
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을 힘들게 하는 이런 세 가지
요소중에 한 가지라도 안고 계시는 분 있
습니까?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 승리할 수 있는 길
을 열어주십니다. 11절에 보면 원수가 승
리하지 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영원히 주의 앞에 서
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낙심하지 마십시
오. 오직 여러분 곁에는 주님이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