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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쉴만한 물가
    2002-07-29 19:06:50   read : 2716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본문 : 시23:1-6 2001.7.15
    :
    산은 짙푸르고, 바다는 싱그러움으로 우리를 손짓하고 있고, 기
    승을 부리는 더위는 우리의 삶을 피곤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
    금 어디론가 도피해 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충동질 합니다. 이제 방학
    이 다가오고 휴가철이 다가옵니다. 천편일율적인 휴가일정이 전국의
    도로를 마비시키고 오히려 쉼보다는 피곤을 심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
    의 휴식 문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휴식이 필요함
    을 안식일을 통하여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무리 돈이 좋더라도 쉬어가
    면서 일해야 합니다. 그러면 육체만 쉰다고 안식이 되는가? 휴가, 휴
    식을 가지는 것은 쉼을 통해서 보다 나은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내일
    을 위한 것이지, 단순한 쉼이 아닙니다.
    오늘 현대인들에게 가장 큰 관심은 건강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
    지로 사회문제가 유발되고 있는 것은 육체적 건강에 지나치게 치중하
    다 보니 육체는 건장한데 정신적인 장애자가 많습니다. 사실은 건강
    을 이야기 할 때 우리처럼 육체적 건강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세
    계보건기구는 건강을 정의할 때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정서적)으로
    건강해야 건강하다고 합니다. 사실은 육체가 건강하지 못해도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신적 건강이 좋지 않는 사람이라도 육
    체는 건강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육체와 정신이 건강하고 사회
    적인 정서적 삶만 건강하면 건강하다고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
    다. 세계보건기구 헌장 전문(全文)은 ‘건강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으로 완전한 복지 상태로 단순히 질병이나 장애가 없는 상태만이 아니
    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전문가들은 WHO가 설립된지 50년만
    에 지난 1999년도에 이 전문에 ‘영적’건강개념이 추가되었습니다.
    영적 건강 개념에는 종교생활을 통한 영혼의 안식을 강조하는 것입니
    다. 이것은 미국의 유수한 대학에서 연구한 결과 신앙생활을 하는 사
    람들이 질병에서 치유되는 기간이 훨씬 빠르게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종교적인 삶을 함께 병행해
    야 하고, 육체적 건강도 중요하지만 영적건강을 위해서 우리가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영적인 건강이 유지되면 육체적, 정신적, 사
    회적 건강이 함께 건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
    실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도 때로는 깊은 영적 무력감에 빠지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아직 저는 그렇게 심한 영적침체를 겪지는 못했습
    니다만 유명한 목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두 번씩 깊은 영적
    무력감에 빠진 경험들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영적인
    무력감에 빠지면, 식욕도 떨어지고, 성취욕도 상실하고, 사람 만나는
    것도 싫어지고, 불면증까지 찾아옵니다. 쉬어도 안식이 없고, 눈을 감
    으면 두려움과 염려가 엄습해오고, 눈을 떠도 고통스럽고. 세상이 싫
    어지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이런 증세로 시달리는
    분 계십니까?
    육체적 쉼도 필요하고 정신적 안정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
    다 필요한 것은 영적인 안정입니다. 신앙생활의 안정입니다. 믿음이
    안정되어야 합니다. 은혜의 생활이 안정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안정됩니다. 우리는 가끔 기도할 때 지나치게 완벽한 삶을 요구
    할 때가 있습니다.
    로이 캄타넬라의 이런 詩가 있습니다.
    나는 신에게 나를 강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모든 일에 성공할
    수 있도록.
    그러나 신은 나를 약하게 만들었다. 겸허함을 배우도록.
    나는 건강을 부탁했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러나 나는 허약함을 선물 받았다. 더 가치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나는 부유함을 원했다. 행복할 수 있도록.
    그러나 나는 가난함을 받았다. 지혜를 가질 수 있도록.
    나는 힘을 달라고 부탁했다. 사람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도록.
    그러나 나는 열등함을 받았다. 신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나는 내가 부탁한 것을 받지 못했지만,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선물
    로 받았다.
    나는 하찮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신은 나의 기도를 다 들어주셨다.
    나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축복받은 자이다.
    로이 캄타넬라는 하나님으로부터 아무 것도 받지 못한 줄 알았는
    데, 결국 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겸손함을 받았습니다. 가난
    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았습니다. 열등함을 통해서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다 받았
    습니다. 그는 이제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금년에는 어디로 갈 것인가? 물론 산도 필요하고 바다도 필요하
    고 계속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건강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아무
    리 육체적 건강을 유지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유익
    이 되겠습니까? 육체적 건강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즐기는데만 사용한
    다면 그런 건강은 오히려 해가 됩니다. 그러면 우리 성도들은 여름의
    휴가를 어디에 가서 어떻게 보내는 것이 바람직 하겠습니까?

    시편 23편은 언제 읽어도 우리의 심령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여
    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왜 부족함이 없습
    니까?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성
    공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겸손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비록 가난할지라
    도 우리는 믿음의 지혜를 배웠습니다. 우리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
    바 없지만, 우리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
    들이 우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인정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에 우리가 강하기 때문에, 가진 것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약하기 때문에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
    라엘을 선택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7:7절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
    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시인의 말대로 우리가 비록 약할지라도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는 법
    을 이제 터득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시편23편
    은 마치 우리를 불러내는 하나님의 손짓과도 같습니다. “자기 이름
    을 위하여 의의길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나님께서 에녹과 300년 동안
    동행하셨던 그 모습이 우리 눈앞에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에녹을 300
    년 동안이나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300년 동안 에녹과 동행하
    신 것에서 목자와 양의 관계가 얼마나 깊은 관계인가를 알 수 있습니
    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나를 거
    두어가소서’라고 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야, 일어나라 내가 너와 함
    께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가 끊을 수 없는 사
    랑의 관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23편은 세상에서 방황하는 자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이정표와
    같습니다. 또한 시편 23편은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서 만나는 하나님
    제단과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
    이 없으리로다”라는 고백은 우리를 언제나 감동케 합니다. 시편 23편
    은 교회의 현장과 같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시편 23편이 하나 하나 나
    타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푸른초장입니다. 푸른초장은 하나님의 말
    씀입니다. 푸르다고 하는 것은 살아있다는 뜻입니다. 죽은 것은 누렇
    습니다. 푸르다고 하는 것은 생명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곳입니다. 교회에 말씀이 죽으면 결
    국 푸른초장이 아니라 누런 초장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교회는 쉴만한 물가입니다. 영의 안식처가 교회입니다. 그래
    서 교회는 내 영혼이 소생됩니다. 쉴만한 물가라고 하는 것은 “안식
    의 물들”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위험도 없고 오염도 되지 않은
    물입니다. 마시면 마실수록 좋은 물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
    이 풍성한 교회는 늘 평안하고 안락한 곳이 됩니다. 우리 하나님이 인
    도하시는 인생은 의식주로 걱정하고 염려하는 곳이 아닙니다. 왜요?
    푸른 초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먹을 양식이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쉴만한 물가가 있습니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같은 생명수가 흐르
    고 있기 때문입니다. 목마를 때 언제든지 마실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내 영혼을 소생시킵니다. 내 영혼이 소생하기에 내
    가 의의 길을 걷게 됩니다. 영혼을 소생시킨다는 것은 영혼을 돌이킨
    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돌이킵니다. 어떻게요?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로서 말입니다. 우리 영혼이 초장을 떠나 있고, 물
    이 없어 죽을 지경에 놓였을 때 하나님은 우리 앞에 초장을 허락하시
    고 물을 주셔서 죽어가던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회복시키신다는 말씀
    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하면서도 지쳐있을 때가 있습니다.
    나름대로 봉사도 하고 열심히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축 쳐
    져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믿음이 좋은 것 같은데 엘리야 선지자 처
    럼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하여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순
    간적으로 지치고 믿음이 약해져서 로뎀나무 아래 가서 하늘만 쳐다보
    는 경우도 있습니다.
    렘3:21 "소리가 자산 위에서 들리니 곧 이스라엘 자손의 애곡하
    며 간구하는 것이라 그들이 그 길을 굽게 하며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렸음이로다 " 이렇듯 여호와를 잊어버리거나 잊어가고 있는 자
    들을 하나님은 다시 부르십니다. 렘3:22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 여기서 소생한다는 것은 여호와를
    떠났거나 여호와를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 상태에서, 여호와의 부르심
    을 듣고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 반드시 푸른
    초장이 있어야 하고 쉴만한 물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
    로 결국 우리의 나태한 영적 삶이 회생되려면 우리가 말씀이 있는 곳
    으로 가야 합니다. 말씀이 있는 곳에 가서 뜯어먹어야 합니다. 아무
    리 초장에 데려다 놓아도 풀을 뜯어먹지 않으면 회생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금년 여름에는 무더위와 싸우면서 나태해진 우리의 영적인
    삶을 회생시키기 위해 수련회를 갖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의 자녀
    들만이 성경학교를 하고 수련회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수
    련회를 가져야 합니다. 어른들의 영적인 상태가 건강해야 아이를 건강
    하게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아프면 아이에게도 줄 수 있
    는 젖이 별로 나지 않습니다. 엄마가 건강할 때 젖도 많이 나오고 건
    강한 젖을 먹을 때 아이도 건강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자신의 영적 상태를 잘 살펴서 우리가 소생해야 합니다.

    사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복과 은혜의 잔이
    넘치고 있습니다. 시편 23편은 교회의 실제상황입니다. 시편 23편에
    보면 처음에는 “내가 복족함이 없으리로다”했고, 마지막에는 “내
    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처음과 마지막에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여호와의 집은 우리는 영원히
    떠날 수 없습니다. 만약 교회가 사랑이 없다고, 은혜가 없다고 말하
    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교회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
    게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점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에 대
    해서 말하지 말고 여러분 자신이 먼저 사랑의 메신저가 되어야 합니
    다. 내가 사랑을 하면 사랑이 나타나게 됩니다. 교회에 은혜가 없다
    고 말하지 말고 여러분 자신이 은혜의 사신이 되십시오. 왜냐하면, 여
    호와가 나의 목자이기에 여러분에게는 은혜와 사랑이 부족함이 없습니
    다.
    갓난 아이가 엄마의 눈과 마주치면 세상을 다 준다해도 엄마와는 바
    꿀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엄마와 함께 있으면 한번도 부족함을 느끼
    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주었고, 오줌사면 기저
    귀를 갈아주었고, 놀고 싶으면 놀이기구를 주었고, 안아달라고 보채
    면 안아주었습니다. 예수님과 눈이 마주친 성도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
    습니다.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고 한 말씀을 보면, 쉴만한 물가를 내가
    찾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쉴만한 물가는
    안식을 말합니다. 풀을 먹고는 한가하게 엎으려 쉴 수 있는 곳이 물가
    입니다. 굽이치며 세차게 흐르는 큰 강물이 아닙니다. 조용히 흐르는
    맑은 시냇물을 말합니다. 요즘같이 복잡한 세상에는 정말 쉴만한 물가
    가 필요합니다. 육신적인 쉼도 필요합니다. 어디가서 쉬는냐가 중요합
    니다. 육신적인 쉼을 위해서는 많은 준비를 합니다.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준비를 하거나 아니면 맛있게 요리할 수 있는 음식재료와 취
    사도구를 준비합니다. 우리가 쉰다고 하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먹거리
    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쉼의 자리를 초장으로 인도하셨고,
    거기에 마실 물이 흐르는 곳이었습니다. 육신의 안식이 없으면 사람
    은 죽게 되고, 영혼의 안식이 없으면 사람은 타락하게 됩니다. 그러므
    로 우리 영혼의 안식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먹거리를 준비하
    지 않으면 쉬로 갔다가 죽게 됩니다. 우리가 육적으로 영적으로 쉰다
    할지라도 반드시 먹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쉰다고 할 때 말
    씀의 자리로 들어가야 합니다.

    안식이 무엇입니까? 안식은 그냥 쉬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을 히브
    리어로 나하트입니다. 이것은 교제를 의미합니다. 방해받지 않는 교제
    입니다. 사람과의 복잡한 교제가 하나님과의 조용한 교제로 나아가는
    것이 안식입니다. 세상속에서의 복잡한 삶이 천국에서의 조용한 사람
    으로 나아가는 것이 안식입니다. 현대인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이 인간관계, 인간과 기계관계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쉼이 필요하
    고 쉼을 위해 우리는 조용한 곳을 찾습니다. 이유는 거기에 안식이 있
    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안식이 멈추어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
    을 의미합니다. 안식일에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안식일
    에 가게 물건도 사지 않고 아무데도 안가는 것은 율법적인 안식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안식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안식입니다. 사
    실은 무조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안식이 아닙니다. 가만
    히 노는 것이 더 고역이 될 수도 있습니다. 푸른 초장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셔서 쉬게 하시는데 이것은 곧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되 즐겁
    게 열심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참된 안식입니다. 학
    생들이 학교에 가서 비전을 가지고 재미있게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바
    로 하나님이 인도하신 쉴만한 물가입니다.
    여러 분, 우리가 예수를 아무리 잘 믿는다고 해도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해서 가난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성경을 열심히 보면서 '주
    여, 주여' 해도 우리 집 안에 있는 자녀의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바뀌지 않는 현실을 목전
    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날마다 일어나면 그 문제가 여전히 우리를 괴
    롭힐 수 있습니다. 날마다 눈을 뜨면 지겹게 반복되는 일을 계속해야
    됩니다. 직장에 가면 상황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주여, 주
    여'하고 의지하는 데도 진급에서는 누락이 됩니다. 우리는 현실을 그
    대로 받아들 여야 됩니다. 그러면 이럴 경우에 우 리는 죽지 못해 인
    생을 산다는 생각 을 가끔 하게 됩니다. '처자를 거느리고 있으니 어
    찌 할 수 없지 않은가? 가는 데까지 가봐야지.' 이런 식의 일 종의 체
    념적인 생각을 가지고 우리가 인생을 삽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수
    단, 방법 가리지 말고 '너 죽고 나 죽자 하는 식으로 인생을 한번 살
    아 봐야지.'라며 악한 마음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문제를 보는 우리의 눈이 달라집니다. 죽지 못해 사는 인
    생이 아니라 하나님 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인생임을 그 는 새롭게 발
    견합니다. 예수님이 눈을 뜨게 해주신 것입니다. 고린도전 서10장 31
    절에 중요한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날마다 아침에 똑같
    은 부엌에 들어가서 똑같은 음식 을 만들어 오면서 지겹게 하루에 3번
    씩 먹어야 되는 것, 주부들에게는 보통 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과거에
    는 ' 아이고, 내가 이 짐을 어떻게 벗을까?'하는 생각도 자주 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손에서 내가 다듬어 지고 보니 이렇게 먹고
    마시는 것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구나.' 아무리 내 생활
    이 평범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는 산 제사가 된다는 사실을 깨
    닫게 됩니다. 거지 나사로와 같이 실패자의 인생을 살아도 그 실패자
    의 인생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이 되고 하나님 앞에 산 제사가 된다는
    사실 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는 우리를 단순히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
    들어가고 피곤하고, 맥빠진 영혼을 소생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생
    된 영혼은 천성을 향하여 순례의 길을 힘차게 갈 수 있도록 하시는 것
    입니다. 성도들이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쉬는 것만이 아
    니라 영혼이 진리의 꼴과 은혜의 생수로 소생함을 입어서 천성을 향
    한 순례의 길을 힘차게 가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가 실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것은 회복시키기
    위함입니다. 쉴만한 물가는 회복의 장소입니다. 교회는 바로 여러분
    자신이 영적인 회복을 하는 장소입니다. 양도 말처럼 물가까지는 인도
    할 수 있으나 물을 억지로 먹일 수는 없습니다. 양이 스스로 물을 마
    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물가로 인도하셨지만 우리에게 은혜
    를 강제적으로 나누어주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소경의 눈에 진흙을
    발라주시면서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소경에게
    흙을 발라 실로암으로 인도하셨으나 눈에 바른 흙까지는 씻어주시지
    않았습니다. 연못에 가서 씻는 일은 소경이 해야 할 일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우리를 잔잔한 물가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셨지만 영적인
    안식을 얻는 것은 여러분이 해야 할 일입니다. 꼴이라 할 수 있는 말
    씀은 주의 종을 통해서 선포해 주시지만 먹는 것은 여러분들이 먹어
    야 합니다. 먹기만 하면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회복되어야 할 요소가 무엇입니까?
    물론 개인적으로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회복되어야 할 영적인 삶을
    몇 가지로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믿음이 회복
    되어야 합니다. 사회학자이지 신학자인 토니 캄폴로는 “모든 인간은
    죽을 때 자기가 못다 이룬 업적을 후회하면서 죽지 않는다. 바르게 살
    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죽는다”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 ‘내가 돈을 더 많이 벌어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워’ ‘내
    가 과장이 못 되보고 국회의원이 못 되보고 죽어서 후회스러워’ 이
    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랑해야 할 사람을 더 사랑하지 못하
    고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남에게 더 많이 도와주지 못하고 좀
    더 시간을 아껴쓰지 못한 것들을 후회하면서 숨을 거둡니다. 성도들
    이 세상을 떠날 때 묻는 말이 ‘목사님, 제가 하나님께 가서 부끄러워
    서 설 수 있을런지요’ 지나놓고 보니 믿음생활을 너무 게을리했어요
    ‘ 이런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 이것은 증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믿음
    의 실체를 우리는 남겨야 합니다. 믿음의 삶을 유산으로 남길 때 내
    가 남기는 모든 물건은 신앙의 증표로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도구로
    그 몫을 감당하게 됩니다. 개인 신앙의 사람이나 역사적 인물들의 기
    념관을 가보면 그분들의 작은 유품 하나가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값으로 따지만 아무 것도 아닙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편지나, 동생들
    의 편지나, 감사헌금 봉투 등 그것을 값을 매길 것이 못됩니다. 휴지
    통에 넣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믿음으로 사신 분의 물건이기에 그것
    이 그분의 믿음의 증표로 오늘 우리 앞에 값진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
    다. 내가 정말 바른 믿음의 삶을 살 때 내가 쓰던 볼펜 한 자루, 내
    가 읽던 성경책, 내가 전도하면서 신었던 신발이 그 어떤 설교보다도
    더 위대한 메시지로 남아 내 자녀들의 삶의 이정표가 길잡이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목자되셔서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고 우리를 쉴만
    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인도함을 받아 이번 여룸 수련회를 통하
    여 여러분의 믿음이 회복되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회복되어야 할 것은 성령충만한 믿음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산헤드린 의원이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 낮에 예
    수님을 찾지 못하고 아무도 보지 않는 밤중에 몰래 찾아갔습니다. 예
    수님은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
    를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어른이 어떻게 어머니 자궁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그때 예수님이 다시 니고데모에게 요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
    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 6절에서
    는 육은 육이고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내가 네게 거듭나야겠다고 말
    한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물이란 세례를 의미합니다.
    물로 맏는 세례의식만으로 안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
    나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결혼을 할 때 결혼식은 한번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결혼을 올릴 때의
    사랑의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결혼생활입니다. 마찬가
    지로 우리가 성령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우
    리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충만
    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요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
    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 바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있다
    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다른 물체들이 흔들림입니다. 우리 몸에 와
    닿은 감촉으로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사람도 바람과 같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우리
    가 알지 못합니다.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성령이 임재하
    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바람이 보이지 않지만 바람이 부는데 따라
    서 일어나는 현상을 통해서 바람을 볼 수 있듯이, 내가 성령이 충만
    한 사람이라면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그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은 눈에 보입니다. 바람을 알
    수 있는 것이 다른 물체를 통해서, 나의 피부에 접촉되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우리 스스로가 성령이 충만한 것을 우리의 삶의 모습을 통
    해서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욕망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립니
    다. 성령이 충만하면 말씀으로 가득찹니다. 말씀이 가득차다는 것은
    말씀이 바로 나의 삶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충만한 성도는 삶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요15:26 "내가 아버지
    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
    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 성령이 충만하면 책망에
    귀를 기울입니다. 요16:7-8)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
    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
    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
    을 책망하시리라 " 성령이 충만하면 진리가운데 거합니다. 하나님께
    영광만을 돌립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다툼이나 나누어지지 않습다. 오
    히려 하나됩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푸른초장이 있는 곳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 받으셔서 성령충만한
    삶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어느 계절도 중요하지 않는 계
    절이 없고 어느 시간도 중요하지 않는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
    덥다고 나태한 모습으로 살지 마시고 오히려 믿음을 회복하는 기회
    로, 성령충만 삶으로 회복하는 여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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