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불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행한 사람 가운데 불행
한 사람은 영혼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들, 또는 영혼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에게는 육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의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
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라는 말씀에 근거를 두
고 사람에게는 영과 혼과 몸이 있다고 하는 삼분설(三分說)이 있고 육체와 영
혼이 있다는 이분설(二分說)이 있습니다. 대개 이분설을 바른 주장이라고 하는
데 삼분설이건 이분설이건 여하튼 영혼은 있습니다.
영혼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불행합니다. 죽은 다음에 그 영
혼이 구원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천박한 삶을 살게 됩니다.
집단적으로 그렇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영혼의 존재를 부인하고 유물론을 주
장하는데 그들이 결국은 매우 비참한 처지에 빠지고 대부분 공산주의의 깃발을
내린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또는 반신반의하지만 영혼의 존재에 대해
관심이 적은 사람들은 지혜롭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지난 주 여자속회 공과의 성경 말씀이 고린도전서 2장 전체였는데 14절에 육에
속한 사람들은 성령의 일을 어리석게 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반대입
니다. 정말 어리석은 사람들은 육에 속한 사람들, 육의 일만 생각하는 사람들입
니다.
소크라테스는 영혼의 존재를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는 죽음이란 단순히 영혼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옮겨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종의 이사로 여
긴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귀족들의 모함을 받아 사형언도를 받고 독약을 먹고
죽으면서도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무디(Dwight Moody)라는 뛰어난 전도자가 있었습니다. 1837년 2월 5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났는데 1855년에 회심의 체험을 하였습니다. 뒷날 그는
자서전을 쓰면서 "나는 육신으로는 1837년에 태어났으나 영혼으로는 1855년에
태어났다. 육신의 나는 머잖아 죽을 것이지만, 영혼의 나는 영원히 살아있을 것
이다"라고 적었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밥을 먹고 삽니다. 우리의 영혼은 말씀을 먹고 힘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육신을 위한 떡만
취하려 하지 말고 영혼을 위한 말씀도 취하여라' 이렇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또 '떡으로만 살려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인간답지 못한 사람이다, 비참
한 사람이다'라는 교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말씀이 없으면, 말씀을 섭취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적 생명을 유지할 수 없습니
다. 본문 11절 끝에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는 말이 있는데 말씀의 기갈은
영적인 생명을 위태롭게 하고 나가서 육신적인 행복도 해칩니다.
절도범들은 여름에 피서여행 간 빈집을 노립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은 비어 있는 영혼, 채워지지 않은 영혼을 노립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빈집처럼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영혼을 채울 수 있고 영혼의 파수꾼을 삼을 수 있을까요?
누가복음 12장에 한 부자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부자는 밭에서 많은 소출을
거둔 다음에 자기의 영혼에게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말하겠다고 했습니다(눅12: 19). 영혼
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아주 어리석은 사람은 아닌데 재물을 가지고 영혼을
풍족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지혜로운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부
자를 책망하고 경고를 발하셨습니다.
영혼은 말씀으로 채워야합니다. 말씀이 유혹으로부터 영혼을 지켜줍니다.
말씀을 주식으로 하고 진리와 사랑과 공의를 반찬으로 할 때 진정 아름다운 영
혼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환난이 있습니다. 건강의 환난이 있고, 가정적인 환난이
있고, 경제적인 환난이 있으며 그밖에도 여러 종류의 환난이 있습니다.
가장 큰 환난, 환난 가운데 환난, 환난의 절정은 말씀의 기갈입니다.
아모스서 8장에는 여러 가지 환난이 임박했음이 예고되어 있습니다.
3절,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곳곳에 시체가 많아서 사
람이 잠잠히 그 시체들을 내어버리리라" 남과 북의 현실에 비추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인데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한다' 표현이 강하기는 하지
만 남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가운데 이와 비슷한 일이 있습니다.
곳곳에 시체가 많다는 말은 북한의 식량난을 저절로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모스를 통해 아모스서 8장 8절과 9절에서 자연재해로 인한 환난,
10절에서 큰 슬픔이 임박했음을 선포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11절에서 가장 큰
환난을 선포하게 하셨는데 그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입니다."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아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
이라" 이 말씀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은 양식과 물이 없는 것보다
더 큰 환난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일이 사울에게 일어났습니다.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는데 하나님께
물으려해도 하나님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않
았습니다(삼상 28:6). 말씀이 사울을 떠난 것입니다. 사울이 답답해서 견딜 수
없어 하는 모습이 사무엘상 28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 이후에 사울은 빠른 속도로 몰락합니다.
시편 74편 9절에 "우리의 표적은 보이지 아니하며 선지자도 더 이상 없으며 이
런 일이 얼마나 오랠는지 우리 중에 아는 자도 없나이다"라는 탄식이 있습니
다. 비통한 탄식입니다.
잠언 29장 18절에서는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고 했고 이사야서 8
장 20절과 21절은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고 하면서 참되지 않은 말
씀을 전하는 사람들, 마술사들은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이 땅에서 헤매며 굶
주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환난은 언제 사람을 찾아옵니까?
이런 환난은 교회가 타락했을 때 찾아옵니다.
아모스 때 제사장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율법은 흐려지고 선지자에게서는 말씀
이 거두어졌습니다. 8장 5절에 믿음이 타락한 모습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
식일을 귀찮게 생각했습니다. '이 안식일이 빨리 지나서 장사를 해서 돈을 벌고
싶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있으면 안식일을 제대로 지킬 수 없습니다.
그들은 '이 안식일만 지나면 장사를 실컷 할 텐데 거짓 저울로 돈을 벌어야하
겠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회개를 하면서 바르게살기 위해 기도해야 하는 날
이 음모를 꾸미는 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큰 축복의 하나는 제사장에게 율법의 말씀을 듣고
선지자들에게서 묵시를 듣는 것인데 교회가 타락하면 축복을 잃게 됩니다.
그럴 때 말씀의 기갈이라는 환난이 찾아옵니다.
이런 환난은 사람이 교만해졌을 때 찾아옵니다.
아모스는 여로보암 2세 때 예언활동을 했는데 이 때 나라가 외형적으로 많이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안으로는 썩었습니다. 8장에 썩은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
니다. 가난한 사람을 핍박하고 상도덕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안으로 썩은 것은 보지 못하고 외형적인 발전만 보면서 '아,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이렇게 되었다' 하는 교만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런 때 말씀의 기갈이라는 환난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환난은 경건생활을 게을리 할 때 찾아옵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환난 가운데 있지 않습니까? 또 이런 환난을 부르고 있지 않
습니까?
우리 나라에서는 성경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외국어 성경을 많이 찍
어서 수출을 많이 합니다.
그러니까 말씀의 기갈이 아니라 말씀의 풍년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매우 잘
못된 생각입니다.
국민소득이 늘어나면 교회의 헌금도 늘어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출석은 줄어든
다고 합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교회에 출석해서 십일조 하는 것으로 교인된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여기는 분들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 교회가 지
금 그런 문제를 만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말씀의 기갈이라는 환난을 부르고 우리의 영이 굶주려 비틀거리게 만드
는 일입니다.
말씀이 내 가운데 넘쳐 내 영혼이 힘을 얻으면 그것이 나의 외모에도 나타납니
다. 그런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사람을 대할 때 '아. 이 사람은 영이 참 맑다!' '이 사람은 영이 힘이 있다!' 이
렇게 느껴지는 분들이 있지요.
초대교회가 많은 박해를 받다가 313년에 신앙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로부터
십여 년 뒤에 교회 지도자들이 니케야라는 곳에 모여 첫 회의를 했습니다. 300
명쯤 되는 교회 지도자들이 모였는데 박해가 끝나고서 얼마 되지 않을 때라 그
가운데는 박해 때 고문을 받아 장애인이 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눈이 빠진
사람도 있었고 뜨거운 쇠에 달구어서 두 손이 없어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보기 흉했지만 영혼의 승리자들이었기 때문에 참석자들은 깊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그 회의를 주관하시어서 니케야 신조라는 좋은
신앙고백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소록도를 잘 아실 것입니다. 나환자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곳입니다.
지금은 나환자들의 재가치료가 허락되어 있어서 사정이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
에는 이 곳에 참 많은 나환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나환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
들이 예수님을 잘 믿고 있습니다. 교회가 여덟 개 있었는데 7, 8년 전까지 김두
영이라는 연세 많은 목사님이 혼자서 그 교회들을 돌보시다가 하나님의 부르심
을 받았습니다. 소록도의 교회들은 새벽기도회에도 찬양대가 섭니다.
나환자들, 얼굴 모습이 참 보기 흉하지요. 예수 믿는 나환자들도 마찬가지입니
다. 그러나 그 영혼이 맑기 때문에 그 모습이 감동을 줍니다.
20년 전쯤에 취재를 하러 소록도에 처음 갔습니다. 안내하는 분에게 믿음이 좋
은 분과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여러 사람이 있지만 그 가운데 한 분을
소개해 주겠다면서 저를 데리고 중앙공원이라는 곳으로 갑니다. 소록도에는 정
원이 잘 가꾸어져 있지요. 그곳에서 정원을 돌보는 분을 소개해 주겠다는 것인
데 정원 가까이 가서 나무를 손질하고 있는 분을 가리키며 저 분이라고 했습니
다. 그 분의 얼굴에 얼마나 기쁨이 넘쳐흐르는지 제가 가만히 서서 한참 보았
습니다.
인터뷰를 하는데 그 분이 버릇처럼 하는 말이 '감사할 뿐입니다' '기쁠 뿐입니
다'입니다. 영혼에 힘이 있으면, 기쁨이 있으면 육신의 불행을 이길 수 있습니
다.
성도들 가운데에도 참 어려운 처지에 빠져 힘들게 살고 있는 데도 말씀을 많이
읽고 기도를 많이 해서 그가 경제적으로 풍요할 때보다 더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는 성도도 있습니다.
말씀을 중히 여기기 위해서는 말씀과 가까이 지내야 합니다.
그 말씀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말씀에 꼭 붙잡혀서 말씀을 고수하며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의 삶에서 말씀 이
외의 것에 우선권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성경을 열심히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
다.
이것은 성도의 삶을 활기차게 하고 복 있게 하고 힘있게 하는 비결이요 근원
이요 원동력입니다.
이번에 이화여대 총장 장상(張裳) 박사가 총리서리가 되었습니다. 이 분은 기독
교장로회에 속한 목사님입니다. 경건생활에 힘쓰고 있는 분입니다. 연세대 신학
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가서 예일대학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고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국에서 공부할 때 한국에서 했던 것처
럼 매일 새벽에 학교 채플에 가서 혼자서 새벽기도회를 했답니다. 그랬더니 동
료학생들이 신기하게 여기고 구경을 오더랍니다.
이번에「국민일보」를 보니까 아무리 바빠도 남편 박준서(朴俊緖) 교수와 하루
에 한 시간씩 가정예배를 드린다고 보도되었습니다. 내외가 신학교의 선배가
되는 분이어서 잘 알고 있고 부군이 작년에 장기 금식기도를 한 일도 알고 있
는데 하루에 한 시간씩 부부가 예배를 드린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
다. 두 분이 예배를 드릴 때 교대로 설교를 하거나 말씀을 묵상하는 순서가 있
을 텐데 그 내용이 어떤지 궁금해졌습니다. 장상 목사님은 신약학자이고 남편
은 세계적인 구약학자입니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예일대, 하바드대 프린스턴신
학대학원 등 학문의 권위가 있는 신학교육기관에서 공부를 한 분입니다. 신학
자라고 은혜가 풍성한 것은 아닙니다만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있는 분들이라,
세상의 말로 하면 고수(高手)들이라 색다른 면이 있고 깊이가 있을 것 같습니
다.
장남의 국적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만 어려운 때 부임한 새 총리가 그가 연구하
고 가르친 말씀대로 국정을 이끌어나가도록 우리는 기도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 분이 좋아하는 찬송 가운데 하나가 73장이라고 합니다. 1절 가사가 "내 눈
을 들어 두루 살피니 날 돕는 구원 어디서 오나 그 어디서 하늘과 땅을 지은
여호와 날 도와주심 확실하도다"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총리가
되도록 기도해야 하며, 특별히 마태복음 6장 33절의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
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는 총리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를 바른 길로 안내해 줍니다. 시편 119편 105절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6·25 때 어느 부대가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에게 포위 당했습니다. 부
대원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불안에 떨 때 지휘관은 우리 당황하지 말고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습니다. 밤이 되자 지휘관은 침착한 태도로 지도를 펴고
살피더니 지형으로 보아서 이 쪽은 적이 없을 것 같다고 하면서 부대원들을 이
끌고 퇴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부대는 드디어 안전하게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부대에 위생병이었던 병사가 나중에 목사가 되었는데 이 분은 감리교의 감
독도 지냈습니다. 이 목사님은 지금도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성경을 열 때마
다 밤에 침착하게 지도를 보던 지휘관의 모습을 되살리곤 한다는 것입니다. '나
도 이 말씀을 지도로 삼아 성도들을 세상의 많은 유혹과 어려움에서 벗어나도
록 잘 안내해야지!' 이렇게 다짐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입니다. 요한복음 6장27절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
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예수
님이 주시는 양식을 통하여 영생에 이르시기 바랍니다.
말씀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요한복음 8장32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
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말씀은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합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짓고 교도소에 들어와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
다. 그 사람은 '나는 참 자유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교도소는 자유가 없는 곳인
데 거기에 들어와 자유를 얻었다니 모순이지요. 그러나 진리입니다. 이 사람은
작은 자유는 잃었 만 큰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자유로운 가운데 있는 분이 말씀을 소유한다면 더 큰 자유를 얻게 됩니다.
말씀은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라시기 전에 마지막 기도를 하시면서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하시고 "또 그
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
여 함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요17: 17, 19).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룩한 삶은 구별된 삶을 말하는데 말씀은
구분된 삶을 살수 있게 합니다.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
게 하고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하나님의 사람
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딤후3:15∼17).
말씀은 창조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셨습니
다. 히브리서 11장 3절은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
을 우리가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말씀의 유익을 알려 드렸습니다. 이것을 뒤집으면 말씀의 기갈을 만
나면 이 모든 것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의 기갈을 만나면 우리는 어둠 속에 버려진 사람들이 되고 지도 없는 여행
자가 되고 됩니다.
말씀의 기갈을 만나면 우리는 영생에 이를 때까지 버틸 힘을 잃게 됩니다.
말씀의 기갈을 만나면 우리는 참된 자유를 누리지 못합니다.
말씀의 기갈을 만나면 우리는 참된 진리를 소유하지 못합니다.
말씀의 기갈을 만나면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기 어렵습니다.
말씀의 기갈을 만나면 우리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소유하지 못하며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온전해지기 어렵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지 못합니다.
말씀의 기갈을 만나면 창조질서가 혼란에 빠집니다.
말씀의 기갈은 이렇게 무섭습니다. 여러분, 말씀의 기갈에 빠지지 않도록 힘쓰
시기 바랍니다.
말씀의 기갈을 만난 사람은 넘어지고 곁길로 빠지게 됩니다.
말씀의 기갈을 만나지 않으려면 신앙생활을 철저히 해서 우리의 심령이 튼튼해
지고 우리의 믿음이 건전해 지도록 해야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언제든
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유혹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여름에 우리는 우리의 육신을 위한 계획을 많이 세웁니다. 그와 함께 우리의
영혼을 위해
말씀을 많이 섭취할 계획도 세우시기 바랍니다.
기도원에도 가시고 건전한 단체에서 인도하는 산상집회에도 참석하세요.
저는 특별히 여름에 새벽기도회에 많이 참석하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여름
에는 날이 일찍 밝아서 잠이 일찍 깹니다. 조금만 더 일찍 깨어서 새벽기도회
에 나오세요. 주보에 새벽기도회 성경강해 본문이 적혀 있으니까 그것을 읽고
'오늘 목사님이 이 말씀을 가지고 어떤 메시지를 선포하려나?' 기대하면서 나오
세요.
새벽에 그렇게 할 시간이 없으면 저녁에 그 말씀을 읽고 주무세요.
기도로 출발한 하루와 그렇지 않은 하루는 다릅니다.
성경에 슬쩍 칭찬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슬쩍 칭찬 받았기 때문에 더 강한
인상을 주는 데요 베뢰아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 17장 11절과 12절에 "베뢰아
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옛날 성경에는
'신사적이어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
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
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베뢰아 사람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날마다
성경을 상고해야겠습니다. 말씀에 대해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
습니다. 말씀에 대해 마음이 너그럽다는 것은 말씀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우리의 믿음이 타락하지 않도록 힘쓰는 가운데 말씀을
상고해서 말씀의 기갈이 찾아오는 일이 없도록 하고 그로 인해서 영혼이 윤택
함을 얻도록 하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