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쉬고 싶어요. 수십년을 하루도 쉬지 못하고, 기계처럼 산다는 것이 어느때는 서글퍼지기도 하고, 삶에 대한 의미를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되었네요. IMF 한파가 몰아닥친 이후, 이런 생각을 더욱더 하게 하네요. 그렇다고 해서 교회의 생활이 편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모처럼 휴식의 시간을 가지려면 교회 직분 때문에 모처럼 안식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주일날 마저도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하루종일 교회에서 보내지요”
“이제 쉬고 싶어요”
이 말은 서울 S교회에서 주일학교 부장을 맡고 있는 K집사가 자신의 처지를 설명한 글이다. 그렇다 오늘을 살아가는 가장들은 격무에 시달리면서 피곤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정이 이런 가장들을 따뜻하게 맞아준다는 보장도 없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가장들은 “주일날 모처럼 안식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나, 교회의 직분이 억압을 한다”고 한결같은 대답을 한다. 이렇게 격무에 시달리는 가장들에게 안식의 시간과 이를 위한 프로그램은 없는가? 그래서 일부 교회에서는 가장들이 일주일에 한 번 안식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가정중심의 목회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일부 교회에서 실시하는 가정중심의 목회가 격무에 시달리는 가장들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깨가 무거운 가장들이 모든 것에서 손을 놓을 수 없는 것은 오늘 우리 사회의 실정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가장들은 이것을 운명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 다시말해서 가장들의 어깨에는 생존권과 직결되어 있으며,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생존권의 투쟁은 더욱더 가중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있는 가장들에게 교회가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한 각단체에서 실시하고 있는 수련회 및 수양회도 격무에 시달리는 가장들에게 안식과 영적재충전의 기회를 주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가장들을 위한 프로그램 부재에서 오는 교회안의 문제중 하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교회를 가정같이, 가정을 교회같이’ 만들어 가장들에게 안식을 베풀 프로그램은 없는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열심있는 교회생활을 강요하는 것은 가정 파괴를 불러오는 경우도 있다. 몇 년전 서울시 서초구애서 일어난 일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K여집사는 하루종일 노동을 하고 돌아온 남편을 뒤로하고, 교회에 갔다가 화근을 불러 일으켰다. 부인이 성경책을 끼고 교회에 나가는 것을 본 남편은 화가 치밀어 집에 불을 질러 버렸다. 이로인해 부인은 불에 타죽고, 자신과 아들은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았다. 남편은 방화로 인해 마땅히 처벌을 받았지만, K여집사의 가정은 파괴되고 말았다. 이에 대해 한국교회는 무엇이라고 변명할 지(?) 의문이다. K집사의 열심있는 신앙생활에 박수를 보내야 할지(?) 아니면 가정파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지(?)
교회와 가정은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안식처이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들로 부터 ‘교회를 가정같이 가정을 교회같이’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실 가장들은 가족들과 안식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 전혀 없으며, 이로인해 무능력한 가장, 가족들에게 무기력한 아버지로 전락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러한 가장들의 처지는 가족들과 대화단절을 가져오고, 나아가 가족해체로 이어진다. 이것은 오늘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당면한 선교적 과제중 하나이다.
‘안식’ 통해 원기 새롭게
일주일 내내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현대 기독교인들은 주일마저 교회에 저당 잡혔다는 생각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되던 날 안식하셨다는데, 왜 우리들은 안식하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괴리감에 사로잡힌다.
‘안식’이란 말은 사전적 의미에서 볼 때 ‘근심 걱정 없이 편안하게 쉬는 것’을 뜻한다. 구약에서 ‘안식’이란 단어는 영적이라기보다는 육체적인 쉼을 뜻했다. 구약에서 최초로 언급된 안식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의 안전한 거처에서 머무는 것이었다. 안식은 또한 전쟁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기도 했다.
안식일의 ‘안식’은 단순히 일상적인 일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이 안식은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의 종, 그들의 땅에 살고 있는 이방인, 가축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안식의 목적은 원기를 새롭게 하는 것에 있다. 하나님께서도 창조작업을 마치신 후 7일에는 쉼으로 원기를 새롭게 하셨다. 신명기에서 보면 안식일에는 노동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인도주의적 면이 강조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초기 역사에서 안식일은 기꺼이 일을 쉬고, 하나님의 성소에서 엄숙히 예배 드리는 날이었다. 기독교 주일의 기원은 많은 사람들이 히브리의 안식일 기원과 일치시키면서 안식일은 예수 자신이나 그의 사도들에 의해 한 주의 제 칠일로부터 첫째 날로 변경되었다고 믿고 있다. 물론 이러한 내용이 성서에서는 전혀 발견되고 있지 않지만 지금까지 지속되어왔다.
“교회 가기 두려워요”
모태신앙으로 신앙의 큰 시련 없이 교회생활을 적극적으로 해온 A양.
고등학생 A양의 일주일은 늘 빡빡하다. 학교생활에 학원, 수요일에는 수요예배 반주를 해야한다. 금요일에는 철야예배에 참석하고, 토요일에는 중고등부 예배, 주일에는 교회학교 봉사, 예배 반주, 예배가 끝나면 성가대 연습을 한다.
100명 남짓 모이는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기 때문에 A양이 없으면 당장 교회에 일손이 부족한 형편이다. 그래서 고2이지만 A양은 교회에서 1인 3역의 역할을 해내야 한다. A양은 요즘 고민이 많다. 이제 곧 고3이 되면 지금처럼 교회에서 이렇게 일을 할 수 있을 까 하는 걱정도 생기고, 부모님과 선생님의 걱정하는 눈치가 역력하기 때문이다. 자꾸 이런 생각이 들다 보니 요즘에는 교회 가는 게 부담스럽다.
사회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늘 경쟁에서 이겨야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는 현대인들은 교회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대형교회보다는 중소형 교회로 갈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중소교회에는 대형교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꾼들이 적기 때문에 대부분 봉사하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일을 맡게 된다. 그래서 금방 지치고 의욕을 상실하게 돼, 처음에는 기쁨으로 봉사했지만 나중에는 신앙에까지 영향을 미쳐 교회 가는 것이 점점 짐이 되기도 한다.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하고 있는 대학생 S양은 이제 곧 취업을 준비해야한다. 그래서 각종 자격시험과 영어 시험을 위해 공부를 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 자격증은 대부분 주일에 시험을 치러야하기 때문에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주일예배에 참석할 수 없어서이다. 시험을 보자니 주일을 지키지 못한다는 자책감이 들고, 그렇다고 시험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목사님 너무 힘들어요”
100여명이 모이는 서울의 K교회에 다니는 H양(27세). 금요일 저녁 철야예배부터 토요일 학생부 교사, 저녁에는 청년부 예배, 주일새벽기도, 교회학교 교사, 성가대, 교회학교 오후예배, 저녁예배, 성가대 연습을 마치면 밤 10시가 넘어버린다.
금요일 저녁부터 주일저녁까지 교회에서 살다시피하는 그야말로 믿음이 너무 좋은 청년이었지만 이제는 체력적인 한계를 느낀다.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을 해야 하는 그녀로서는 월요일처럼 부담스러운 날이 없다.
H양의 경우 이같은 부담 때문에 교회학교 교사 자리라도 그만두려고 담임목사님께 이야기를 했지만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다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는 너무나 뻔한 대답을 듣고 말았다. 최근 H양은 이러한 봉사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대형교회로 옮기려고 교회를 물색중이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주일날 아침에 벌어지는 풍경 중의 하나는 오랜만에 늦잠자는 남편을 깨우느라 부인들이 이불을 끌어당기고 남편은 조금이라도 더 자려고 부인과 이불을 붙잡고 “5분만 더”를 외치며 실랑이를 벌이는 것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가장들은 주중에는 직장에서 과중한 업무와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해 피로가 누적되어 있어 의례 쉬는 날이면 주중에 부족한 잠을 보충하려는 듯 한숨이라도 더 자기 위한 투쟁아닌 투쟁을 벌인다.
하지만 이러한 일반적인 가정에서의 잠 더자기 위한 전쟁은 소위 믿음이 좋은 기독교인들에게는 꿈도 못꾸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오히려 주일날이면 더 바쁘다. 온전한 주일성수를 위해 새벽기도를 시작으로 교회학교 교사, 예배후 성가대 연습, 부서별 회의 등을 거치다 보면 어느새 저녁때. 곧바로 저녁예배를 드리고 곧바로 성가연습 등 새벽부터 밤까지 빡빡한 일정속에 움직인다.
“장로가 되다보니 다른 성도들의 눈도 있고 목사님 눈치도 보여 매일 새벽기도회에 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새벽기도회 끝나고 회사에 출근하면 한 두시간은 졸면서 헤매다가 업무를 제대로 못보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얼마 전 인천 구월동 S교회 A장로는 “솔직히 목사님들은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얼마든지 잠을 잘 수 있지만 우리 평신도들은 바로 직장에 출근해야 하다보니 직장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고 어려움을 토로하고 “이해하실지 모르지만 하루라도 늦잠좀 자는 것이 소원이지요. 목사님들이 우리 평신도들이 겪는 이러한 고충을 좀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A장로의 이같은 하소연은 아마도 대부분의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의 경우가 공감하고 있는 부분일 것이다. A장로는 “IMF 사태로 인해 직장에서 감원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윗사람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경우가 되다보니 더욱 신경이 쓰인다”고 말하고 “신앙생활이 삶의 기쁨보다는 오히려 삶의 큰 부담이 될 때가 많다”고 밝혔다.
이처럼 A장로의 경우는 대부분의 직장생활을 하는 모든 성도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참 ‘안식’이란 요원한 문제인 것이다. 더구나 최근 IMF한파로 인해 직장 내에서 감원 문제가 공식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한 주일 내내 직장에서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주일 하루가 공식적으로 쉼을 얻을 수 있는 하루가 되는 것이다.
이같은 경우는 직장생활을 하는 성도들뿐만 아니라 가정주부들도 마찬가지이다. 서울 강남구의 K교회 이 권사는 주일날 새벽부터 저녁늦게까지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다보니 교회를 다니지 않는 남편과 갈등이 잦다. 비기독교인인 남편은 이처럼 이 권사가 교회일에 열심을 내는 것에 대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소한 주일만큼은 가정에서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지내길 바라는 남편이지만 이 권사는 교회 일에 너무 바쁘다보니 오히려 주일에 가족들과 지내기가 더 힘든 상황이다.
이러한 형편들을 고려, 최근에는 저녁에는 가족들과 함께 식사도 하면서 대화의 장을 만들라는 의미에서 주일날 저녁예배를 오후예배로 바꾸는 교회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즉 “교회를 가정처럼, 가정을 교회처럼” 여기라는 것이다. 바쁜 일상생활속에서 최소한 주일날만큼은 가족들이 모여서 함께 진정한 안식을 누려 보라는 것이다
최근 한국교회가 겪고 있는 고민 중에 예년에 비해 주일저녁예배에 참석하는 교인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처하기 위하여 일부 도시교회는 주일 저녁예배를 주일오후에 드리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오후예배로 전환 증가
이것은 그동안 7-80년대 부흥의 열기를 타고 모이기에 힘써온 한국교회가 점차 물질문명의 발달로 생활에 여유가 생기기도 하였고, 또한 한 주동안 생활전선에서 시달리기 때문에 주일만이라도 휴식의 시간을 갖고 싶어함에 따라 이러한 교인들의 추세를 일부 반영하기 위해 나온 조치중 하나다.
앞서 지적했듯이 오늘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가장들은 주일만이라도 휴식과 안식의 시간을 갖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주일날 예배외에 교회의 과중한 모임으로 인해 안식일을 안식일답게 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일부교회는 주일예배 후 이어서 오후예배를 드리고, 교인들이 휴식과 안식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최근들어 도시교회의 대부분은 주일저녁예배와 수요저녁예배에 교인들의 참석률이 매우 저조하며 이로인해 주일낮 대예배를 제외한 다른 예배는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다 보니 일부교회에서는 궁여지책으로 수요저녁예배도 당일 오전에 드리는 경우도 있으며, 이것은 교인들의 의식변화와 사회적인 추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처럼 교회가 사회적인 추세와 교인들의 의식변화를 수용하지 못할 경우, 모든 공예배가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나오고 있어 개체교회들이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이같은 의기의식은 일주일동안 생존권의 현장에서 시달리다가 주일날만이라도 안식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교인들의 의식변화에서 나온 것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사실 많은 교인들이 교회의 부담스런 직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추세이며, 더욱이 일주일 내내 가족들끼리 함께 모일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는 현실도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앞서 지적했듯이 교회내에 평신도들의 휴식문화가 발달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장목회자들이 평신도들의 휴식문화와 관련된 목회 프로그램을 공감하면서도, 이를 실행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렇게 한국교회가 현실적인 것에 대해서 민감하지 못한 것은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평신도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지 교인들에게 열심있는 교회생활과 출석을 강요해 왔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평신도들은 구원받은 성도로서 마땅히 교회의 공예배에 출석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라기보다는, 구약의 계명처럼 안식일을 어길 경우 벌이나 받지 않을까(?) 하는 염려 속에서 공예배에 출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추세다보니 진정한 교인이라기 보다는 마지못해 의무감으로 교회에 나가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오늘의 교회들은 교인들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하여 주일저녁예배를 오후로 전환해서 드리고 있으며, 일부교회의 목회자는 가정중심의 목회를 펼쳐, 시대적인 흐름에 적극 대처하고 있다. 정읍성결교회(담임=전병일목사)와 한강중앙교회(담임=신신묵목사)가 그 대표적인 교회다. 전병일목사의 이야기다.
“오늘 한국교회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변화하는 교인들의 휴식문화에 대해서 공감하면서도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목회자들이 좀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평신도들의 의식을 이해하면서 교회에 발을 붙이고 신바람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것은 ‘가정을 교회같이, 교회를 가정같이’ 만들때 가능하며, 목회자들은 가정중심의 목회활동을 통해 변화하는 교인들의 의식변화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평신도 프로그램 절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수도권지역 대부분의 교회는 현재 저녁예배 대신 오후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점차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처럼 오후예배가 저녁예배를 대신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은 시대에 따라 변화된 교인들의 생활패턴과 무관하지 않다. 사회생활을 통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현대 기독교인들은 주일 저녁 시간에나마 쉬고 싶어한다. 또 주일 낮 예배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 다시 저녁 예배를 드리기 위해 나선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점차 저녁예배 참여도가 줄어들게 됐다. 이러한 현대 기독교인들의 편의를 위해 저녁예배 시간을 양보하고 오후예배를 택하는 교회가 점차 늘고 있다.
물론 오후예배는 순전히 수도권 지역 교회에서나 볼 수 있다. 지방교회, 특히 대부분 농어촌지역 교인들은 낮에 밭이나 논에 나가 농사를 지어야하므로 오후예배는 농어촌교회 상황과는 맞지 않아 저녁예배를 드리고 있는 실정이다.
오후예배에 대해서는 목회자와 교인들 사이에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가 반반이다. 우선 오후예배로의 전환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의 경우 일단 예배 참석율이 높아지다 보니 저조한 저녁예배 참여도에 대해 걱정하던 목회자들은 그 고민을 덜게 됐다.
또 새벽부터 오후까지 모든 주일예배를 연달아 드릴 수 있어 편하다는 주장이다. 교인들도 목회자들과 마찬가지로 낮예배 후 곧바로 오후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 편하다. 아울러 교인들이 낮 예배후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하며 교제를 나눌 수도 있어 교인들의 친목도모와 단합에도 도움이 된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점차 오후예배가 저녁예배를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오후예배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모교회의 S양은 교회에서 교회학교 교사와 성가대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그녀가 출석하는 교회에서는 최근 저녁예배를 없애고 오후예배를 드리고 있다. S양은 오후예배가 오히려 교회 봉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불편하다고 하소연한다. “오후예배를 드리게 되면서부터 주일 내내 정신없이 시간에 쫓겨야하고, 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S양의 주일 하루 일과는 아침 8시부터 나와 교회학교 교사회의와 기도회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곧바로 9시부터 교회학교 예배를 드리는 S양. 10시부터는 성가대 연습을 해야한다. 그리고 11시부터 12시까지 주일예배를 드린다. 예배가 끝나면 몇분 쉬지도 못하고 다시 성가대석에 앉아 다음 주 성가연습을 한다. 그리고 황급히 점심식사를 마치고는 채 쉬지도 못한 채 오후예배를 드려야한다. 저녁예배를 볼 때는 그래도 조금이라도 한숨 돌릴 시간이 있었는데, 오후예배를 드리게 되니 주일 아침부터 오후까지 잠시도 쉬지 못하고 정신없이 시간에 쫓기면서 교회봉사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평신도들 뿐만 아니라 오후예배에 대해서는 목회자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드러낸다. 모교회 M목사는 “저녁예배를 통해 고요한 저녁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면서 한 주를 계획할 수 있지만, 오후예배는 그렇지 못하다”면서 “낮예배 마치기가 무섭게 오후예배를 드리는 것은 억지춘향격으로 주일 저녁예배를 형식적으로 재빨리 드리기 위한 것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오후예배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M목사는 이어서 “여러가지 상황에 따라 저녁예배 대신 오후예배를 드린다면, 무엇보다 주일 낮예배와 오후예배의 차별성을 두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추세가 생활전선에서 평신도들이 너무나 시달리다 보니 교인들에게 쉼을 주는 측면에서 오후예배로의 전환이 바람직하다는 주장과 인간의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반대하는 주장이 맞서고 있지만 도시교회의 경우는 점차 오후 예배가 강세를 나타내고 있어 이에 대한 교회의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내 교회에서만(?)
물론 구원받은 성도로서 평신도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와 봉사, 물질적인 헌신을 통해 충성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 없는 중요한 사실이고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처럼 목회자들이 평신도들에게 무조건 예배란 예배는 다 참여해야 한다는 신앙생활을 강요하다 보니 평신도들이 때로는 하나님 앞에 충성하기 위함보다 목회자 앞에 잘 보이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더우기 교회 임직을 맡으려면 반드시 따라붙는 전제조건이 새벽기도를 포함한 모든 예배에 필수로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장로를 하려는 집사(권사)가 평소에 새벽예배에 나오지 않다가 갑자기 새벽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하는 웃지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 부천에 사는 J모 장로는 인천에 있는 K교회에 다니는데 새벽기도회에 다니려면 남들보다 최소한 30분 일찍 일어나야 한다. 물론 가까운 교회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고 몇 번 가까운 교회에 나가기도 했지만 담임목사의 불호령에 아예 포기하고 30분 정도 차를 몰고 본 교회 새벽기도에 참석하고 있다.
J장로는 “새벽기도회는 가까운 교회에 나가고 부활절이나 성탄절 등 특별한 절기에만 본 교회에 출석하면 좋겠다”고 말하고 “물론 거리가 가까우면 당연히 본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드리는 것이 당연하지만 새벽기도회까지 강요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똑 같은 교회에서 기도하는 데 굳이 본 교회를 고집하는 이유를 알 수 없고 목사님들이 너무나 평신도들의 입장을 고려해 주지 않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서울의 모 교회 장로의 경우는 심지어 2시간이 넘게 전철을 몇 번 갈아타고 본 교회에 출석하는 경우도 있어 주일에 한 번 예배에 참석하고 나면 진이 빠진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는 등 목회자들이 평신도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주일 대예배뿐만 아니라 모든 예배에 내 교회에만 출석해야 한다는 의식 때문에 평신도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평신도들이 부담을 안고 있는 경우중의 하나는 부흥회를 비롯한 각종 대외적인 모임에 평신도들의 참석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직분자들의 경우는 직장생활에 지장을 주면서까지 직분 때문에 억지로 참여하는 경우도 많아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서울 동대문구 모교회의 K집사의 경우 “부흥사인 목사님이 대표로 있는 단체의 행사에 담임목사의 체면을 생각해 무조건 참여하라는 목사님의 권유에 할 수 없이 낮에 직장에서 조퇴를 하고 참석한 적이 있다”고 말하고 “목사님들이 우리 평신도들의 사회생활을 너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평신도들은 교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 보다 즐겁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봉사하며 신앙생활을 하기를 원한다. 따라서 이러한 평신도들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평신도들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목회자들의 노력이 절실히 요청된다. 아울러 이러한 평신도들이 신바람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회내에서 쉼을 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목회자의 의식변화 중요
교인들의 휴식문화에 대한 의식은 계속해서 변하고 있는데 반해, 목회자들의 교인들에 대한 휴식문화는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이같은 지적은 보수적인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전통적으로 내려온 예배의식을 비롯한 행정 등의 모든 것에 변화를 줄 경우, 교회공동체가 깨지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를 포함해 자칫 평신도들에게 휴식문화를 강조할 경우 예배 참여 저조 등 많은 부작용이 나타날 것을 우려하는 데서 나온 것으로 여겨진다.
더욱이 최근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교인들이 교회에 나와 휴식의 시간을 가지면서 영적재충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평신도들에게 교회 출석은 곧 축복임을 내세워 열심있는 신앙을 요구하며,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면서 주일날 교회에 붙잡아 두기 위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현장목회자들의 의식이 바꾸어 지지 않고, 고집과 아집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 목회자의 말이다.
“목회자들이 평신도들의 휴식문화에 대한 의식이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평신도들을 교회 예배를 비롯한 모든 프로그램에 즐겁게 참여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며, 평신도들에게 순종만을 강요하여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한 잘못된 생각을 청산하지 못하는데서 비롯되고 있다. 이것은 또한 목회자들이 평신도 앞에서 당당하지 못하다는 것이며, 목회계획의 헛점 중 하나다”
이 말은 오늘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변하지 않는 의식구조를 그대로 나타낸 것으로 주목된다. 오늘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전통적인 예배의식 등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의식이 전혀 번하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로인해 평신도들은 과중한 교회직책에서 오는 부담으로 인해 더욱더 지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원인으로 인해 평신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으며, 교회성장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일부 목회자들은 평신도들이 교회에 안착하고, 편한 마음으로 교회의 직분에 충실할 수 있도록 상황목회를 펼치고 있어 매우 고무적인 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정읍성결교회(담임=전병일목사)는 ‘행복한 가정, 행복한 교회’란 주제를 내걸고, 교인들이 교회에 나와 평안과 휴식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으며, 가정목회로 이 교회는 크게 성장하고 있다. 이 교회의 가정목회는 시대적인 변화와 함께 허물어져 가고 있는 교회공동체를 회생시켜주고, 나아가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한국교회 발전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전병일목사의 말이다.
“IMF한파 등으로 인해 오늘 평신도들은 설자리를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목회자들은 방황하는 평신도들이 교회를 피난처로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와같이 목회자들은 교회가 평신도들의 피난처가 되어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를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목회자들과 교회지도자들은 일주일동안 생활현장에서 지친 사람들에게 피안의 세계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것은 목회자들이 자신보다 평신도들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질 때 가능하며, 한국교회가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상황목회중 하나다.
온전한 예배·지도력 배양 요구돼
바쁜 현대사회 속에서 직장에서 생존싸움으로 지칠대로 지친 평신도들을 위해 교회가 내놓은 대안은 저녁예배를 오후예배로 바꾼 것이었다.
오후예배의 채택으로 많은 평신도들은 일주일에 단 하루인 휴일을 알차게 보낼 수 있게 된 것이 사실이다. 여전히 ‘오후예배’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은 존재하긴 하지만 몇몇 교회와 농촌교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교회가 오후예배를 채택하고 있다.
또 과거와 달리 주일에도 일할 수밖에 없는 상인들이나 직장인, 주일에도 입시준비를 해야하는 학생들을 위해 주일에 한번 드렸던 대예배를 1,2부 등 시간대별로 마련해 자신의 사정에 맞게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여러 시간대별로 예배를 드리다보니 같은 교회에 다니지만 얼굴도 모르는 교인들이 생기고, 예배를 마치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교회의 기능 중 하나인 ‘코이노니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몇 교회는 교회 안에 ‘까페’문화를 들여오기 시작했다. 차를 마시면서 친교도 나눌 수 있고, 신앙서적을 비롯한 다양한 책을 구비해 언제든지 책을 볼 수도 있는 ‘교회까페’가 몇몇 교회에 생긴 것이다. 이내 교회 청년들과 교인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교회까페’에 대한 반응이 좋자 이제는 여럿 교회가 까페를 꾸미고 있다.
또 영화를 볼 수 있는 시설을 구비해놓고, 매주 좋은 영화를 선정해 상영하는 교회도 등장하고 있으며, 탁구장을 설치해 놓아 각 부서별 친교와 단합을 꾀함으로 교회 분위기를 한결 밝게 만들고 있는 교회도 상당수이다.
이러한 교회의 시도는 평신도들이 예배만 드리고 황급히 집으로 돌아가던 교회모습을 바꾸어 놓고 있다. 이처럼 딱딱한 예배만 있는 교회가 아니라 따뜻하고 사람 냄새가 나는 훈훈한 가정과 같은 교회를 만들어 가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의 외적인 시도뿐만 아니라 참된 평안을 얻고 싶어하는 평신도들에게 교회의 온전한 예배와 친교를 통한 참된 위로를 줄 수 있도록 하는 교회의 내적인 노력이 더욱 시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달라지지 않는 똑같은 형식의 예배는 변화무쌍한 세상문화에 익숙한 평신도들에게는 감동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 예배의식의 다양한 시도와 연구를 통해 생동감있는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하는 목회자들의 노력이 요구된다.
물론 예배의 형식이 바뀐다고 해서 진정한 예배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바쁜 평신도들의 눈치를 보면서 예배 시간을 지키기 위해 예식장 결혼예식처럼 시간에 쫓기는 예배가 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바쁘다 바뻐’를 외치며 교회봉사를 기피하는 평신도들에게 봉사야말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표현임을 깨닫게 하는 교육도 필요하다.
평신도들이 교회봉사를 꺼리고 기피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교회 봉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교회봉사가 집중된다는 점이다. 보통 교회 봉사를 하는 이들을 보면, 성가대 대원, 교사는 기본으로 한다. 여성인 경우에는 여기에다 점심식사, 청소까지 하게 돼 손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이들이 교회에서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하소연이라도 하면 이내 ‘기도가 부족해서 그렇다’, ‘하나님이 다 갚아주신다’ 등의 대답이 돌아온다. 일하는 사람들만 데리고 교회일을 하려다보니 봉사자들은 점점 지치고 나중에는 교회 나오는 것도 부담을 느끼게 된다. 교회에서 봉사하던 이들이 사정이 생겨 교회에 나오지 못하게라도 되면 교회의 여러 가지 일들이 마비상태가 되는 문제도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 교회는 무엇보다도 평신도 지도력을 키우는데 노력을 기울여야할 것으로 보인다.
흩어지는 교회에 관심 가져야
7-80년대 세계에서 유례 없는 부흥과 성장을 이룩한 한국교회가 90년대 후반부터 점차 교세가 감소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새 천년 들어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교세의 감소 추세는 교회 지도자들의 영적, 도덕적 타락에서 오는 지도력 상실이라는 내적 문제와 더불어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인터넷과 영상매체를 통해 예배를 드려도 된다는 분위기의 확산 등으로 인한 교회 출석률 저하라는 외적 문제가 맞물려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 외에 더욱 큰 문제는 산업사회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여가 문화의 발달은 더욱 평신도들의 교회 출석률을 저하시키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 거론되고 있는 주 5일 근무제가 정착된다면 이러한 교회의 위기는 더욱 심화되리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지금의 상황에서 막연하게 평신도들에게 사명과 예배의 중요성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평신도들이 교회에 정착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의 개발과 함께 적절한 휴식문화 제공 등 자체적인 노력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교회 교인들의 감소 추세를 감안, 최근에는 주일저녁예배만큼은 오후로 대치하는 교회가 상당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평신도들이 사회생활을 하며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 주일만큼은 말 그대로 쉬고 싶어하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교회들마다 저녁예배를 가족예배로 대치하거나 평일에 모두 모이기 어려운 가족들이 함께 모여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가족 간의 시간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평신도들에게 쉼을 제공하고 가족 간의 친목을 나눌 수 있는 시간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실제로 자체적으로 수도원이나 기도원을 가지고 있는 몇 몇 대형교회는 한 달에 한 두 번 가족 모두 수도원에 들어가 예배를 드리며 쉼도 얻을 수 있어 상당히 호응을 얻기도 한다.
한편 최근에는 평신도들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들에게도 교회가 딱딱한 분위기가 아니라 예배를 엄숙히 드리면서도 이들이 충분히 젊음을 발산할 수 있는 체육관이나 카페, 극장 등 다양한 공간을 제공하는 교회도 늘고 있는 추세다.
많은 신학자들은 21세기는 평신도가 주역이 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평신도 사역의 중요성은 결국 그동안 목회자 1인에 의해 주도되어온 한국교회가 한계를 드러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제는 목회자들이 평신도들을 교회 안에서만 묶어놓으려는 고루한 생각을 벗어버리고 삶의 현장에서 충실히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평신도로 양육하려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목회자들이 먼저 삶의 현장에서 마치 전쟁하듯이 일을 하고 있는 이들 평신도들에게 주일에 교회에서조차 직분에 따른 봉사와 의무적인 예배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먼저 이들의 삶을 이해하고 삶 속에서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교회가 겪고 있는 이러한 위기는 그동안 목회자 1인에 의해 주도되어온 한국교회가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이제 21세기는 모이는 교회보다 잘 훈련된 평신도들을 훈련시켜 과감히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흩어지는 교회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21세기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교회의 상이요 한국교회가 현재의 양적 질적 저하의 문제를 타결해 나갈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