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의 열기가 대단합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우리나라 대표선수들이 세계랭킹 5위이며 이번대회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포르투칼을 물리치고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4700만 대한의 사람들은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환호하며 승리를 자축했습니다.
길거리에는 수 많은 젊은이들이 쏟아져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애국가를 부르며 아리랑을 불러댔습니다. 아마 해방이후 이런 흥분과 감격은 처음일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항상 짜증나고 고통 스러운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신나고 유쾌, 상쾌, 통쾌한 날도 있는 것입니다. 1954년 처음 월드컵에 출전하여 헝가리에 9:0으로 참패했던 우리나라가 세계의 강호들을 물리치고 16강에 오르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이렇게 우리 인간은 마음에 벅찬 일을 만나면 너무나 감격스러워 할 말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나 감격스러운 일을 만나면 그 감격을 이기지 못하여 기절한 사람도 있습니다. 복권에 당첨되어 그 돈 만져보지도 못하고 심장마비로 죽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이 이런 감격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다같이 31절을 보겠습니다.
□ 이 일에 대하여 무슨 말 하리요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31절)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이 말은 너무 너무 기뻐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너무나 기쁘고 감격스러우면 할 말을 제대로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없을 만큼 감격스럽다는 것입니까?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 이 일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일이란 무엇입니까? 이 일은 "그런즉"이라는 접속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일이란? 사도 바울이 로마서8장에서 언급한 것들을 말합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을 그토록 감격스럽게 만들었던 그 일들을 잠깐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①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된 일(롬8:2)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일에 대하여 말씀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는 다 죄와 죽음의 법 아래 놓여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성령이 내 안에 찾아오사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 아래 놓였던 너를 구원하셨다. 얼마나 놀랍고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저는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보다 더 감격스럽고 놀라운 사건은 없습니다.
②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된 일(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8:15)
또 사도 바울을 감격스럽게 했던 이 일은 어떤 일입니까?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을 뿐마 아니라 더 나아가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된 일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누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까? 그런데 예수를 믿음으로 양자의 영을 받아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③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일.(롬8:28)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롬8:28)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이 이 땅에서 경험하는 실패와 넘어짐, 갈등과 아픔등 하나님의 사람이 이 땅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을 내 인생의 배후에서 함께 일하심으로 마침내 그것이 내 영혼에 가장 유익되게 하십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정말 믿으면 감격하지 않을 사람 없습니다.
④ 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계획
바울을 이처럼 감격하게 만든 일이 무엇입니까?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30)
나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키신 일,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된 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일, 그리고 창세 전부터 나를 선택하시고 부르사 의롭다하신 주님께서 마지막날에 나를 영화롭게 하실 것을 생각하니 너무 기쁘고 기뻐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을 지경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신 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와 축복을 생각해 볼 때 더 이상 무슨 할말이 있겠느냐? 그래서 "그런즉 이 일에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라고 말합니다.
□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사람의 확신
바울이 이렇게 감사하고 감격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사실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은 내가 경험하는 인생의 모든 것을 마침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이 창세 전에 나를 선택하시고 나를 부르사 나를 의롭다 하셨다면 그분이 마침내 나를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핍박을 받고 내 안에 있는 연약함 때문에 늘 넘어지지만 마침내 나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게 될 것이다.' 바울에게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감격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확신을 선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바울의 확신은 바울만이 가질 수 있는 확신이 아니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져야 할 확신입니다. 그러면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가져야 할 확신은 어떤 확신일까요?
□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31절하)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를 공격할 수는 있지만 우리를 대적하여 구원의 반열에서 끌어내릴 수 없다는 말입니다. 또 이 말은 오늘이라는 영적인 전투에서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왜 우리가 원수 마귀가 우리를 대적하지 못합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여기서 만일 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에이'라는 말인데 불확실한 의심이 아니라 확실한 사실에 대한 논리적 가정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는 말은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다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우리라는 말 대신에 각자의 이름을 넣어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 를(을) 위하시면"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중에서 백두산 호랑이를 생포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사냥개가 백두산 호랑이를 끝까지 추적하고 바위구멍까지 몰고 갑니다. 무서운 호랑이의 울부짖음과 공격 앞에서 전혀 굴하지 않고 끝까지 덤벼대는 사냥개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당돌함에 호랑이가 주춤 주춤 물러서는 것입니다. 불타는 듯한 눈동자나 그 거대한 송곳니, 그 앞발을 막 휘두르고 있지만 사냥개들은 조금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어찌 개가 호랑이 앞에 대들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 뒤에 어떤 맹수라도 제압할 수 있는 포수가 총을 들고 서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데 가 있으니까 개가 호랑이 앞에 대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 우주에서 하나님보다 더 강한 존재는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높은 자도 없습니다. 그분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인간을 만드시고 우주만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만유인력을 비릇한 자연의 법칙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나의 편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하나님이 나의 편이신데 누가 나를 대적할 수 있단 말입니까? 나를 유혹하고 공격할지라도 결코 그는 나를 하나님의 자녀의 반열에서 나를 끌어내릴 수 없습니다. 결코 영적인 전쟁에서 나를 대적하여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시118편 6-7절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일하심을 믿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이 내 편이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다윗도 시23편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불행이 엄습해 온다 할지라도 누가 우리를 대적하여 온다 할지라도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나의 편이심을 믿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많은 이유 중의 하나는 '나 혼자'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편이십니다. 왕중의 왕이신 그분이 당신을 위하여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아무도 당신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이제 시시하고 보잘것없는 것 문제들 앞에서 염려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들 앞에서 여러분의 인생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않겠느냐?(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많습니다. 공기도 주시고 마실 수 있는 물도 주시고 해와 달과별들도 주시고 비도 내려 주시고.....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 가운데 가장 값진 것은 최고의 선물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의 품 속에 계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히고 피 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물론 우리의 죄 때문이지만 사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 아들을 죽이신 것입니다.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은사는 선물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선물을 주시지 않겠느냐?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면 여기서 모든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데 있어서 필요한 모든 것을 말합니다. 선을 이루는데 있어서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세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소하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약속하신 것들 가운데는 건강도 있습니다. 물질도 있습니다. 지혜도 있습니다.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도 있습니다. 전도할 수 있는 능력도 있습니다. 방언도 있습니다. 평안도 있고, 위로도 있고, 병을 고치는 능력도, 예언의 은사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하나님의 뜻)을 이루심에 있어 필요한 것이라면 반드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이 약속된 모든 것을 받아 누립니까? 기도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기도라는 통로를 통해 이 약속된 것을 주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약4:2절에서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무엇이 필요합니까? 무엇을 잃으셨습니까?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일에 무엇이 필요합니까? 구하십시오.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신 분이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이 말씀을 붙들고 구하십시오.
□ 누가 정죄하리요
33절에 보면 송사라는 말이 나옵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3절)
34절에 보면 정죄라는 말이 나옵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34절)
송사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사단 마귀입니다. 요한계시록12:10절에 보면 사단 마귀는 밤낮 참소하는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송사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송사해 보아야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사단은 늘 송사하는 자입니다. 그는 참소자입니다.
바울도 정말 많은 송사를 당했습니다. 그가 예수를 영접하기 전 유대 종교에 몰두해 있을 때에는 사단은 율법을 가지고 바울을 송사했습니다. "너는 위선자다. 너는 율법을 진심으로 지키지 못하고 겉으로만 지키는 자다" 바울 사도가 예수님을 영접한 다음에도 사단은 계속 참소 했습니다. 네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이냐? 그런데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않고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느냐? "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사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하는 부문이 참 많습니다. 그러지 않습니까? 당신은 정말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고 있습니까? 물으면 자신있게 대답할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잘 압니다. 우리 안에는 온갖 탐욕이 있고 시기와 질투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오늘도 변함없이 끊임없이 저와 여러분을 송사합니다. 정죄합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너는 거짓 신앙인이다. 너는 위선자다. 하나님의 자녀라면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 " 사단은 이런 송사와 정죄를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고 궁극적으로 주님에게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의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사람의 확신이 무엇입니까? 누가 송사하리요? 누가 정죄하리요? 결코 송사를 당하지만 정죄를 당하지만 그 송사가 정죄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는 , 의롭다 하신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너는 의인이다 너는 한번도 죄를지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선언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의롭다고 선언하는 이는 목사도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보시고 의롭다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34절 하)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기도만 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변호자가 되어 주십니다. 사단 마귀는 우리가 연약하여 넘어질 때마다 그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 참소합니다. 보세요. 저래도 사랑하시겠어요? 저래도 집사라고 불러야 돼요? 마음에 시기와 질투를 보세요. 예배시간이 되었는데도 월드컵 축구를 보느라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아무개를 보세요? 그럴때마다 우리 주님은 맞아요? 죄인이에요? 그러나 아버지 제가 저 형제의 죄와 허물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음으로 죄 값을 지불하지 않았습니까? 아버지께서 저 형제를 보신 것이 아니라 나를 보시고 저 형제를 의롭다고 인치시지 않았습니까? 우리를 변호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심판주이십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에게는 심판 주가 아니라 변호자가 되어 주십니다.
요한일서 2:1절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사단이 송사하고 여러분을 정죄할 때마다 의롭다하신 이는 하나님이 아무도 나를 정죄할 자가 없다고 선포하십시오. 구원의 근거는 내가 아닙니다. 구원의 근거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셨고 하나님께서 시작하셨고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그리고 정하시고 정하신 자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자들을 또한 의롭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의롭다함을 얻은 자들을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구원의 근거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근거로 삼는 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까지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확신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신 이가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않겠느냐? 의롭다하신이는 하나님이신데 누가 너를 송사하며 정죄할 수 있느냐?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사람은 이런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확신을 가지고 사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때 감사와 감격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영국에 래클 경은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헨델의 메시아를 연주하곤 했읍니다. 그리고 연습이 다되면 연주일 전에 오케스트라와 총연습을 했읍니다. 한번은 메시아 오라토리오 중에 절정이라고 볼 수 있는 할렐루야 합창 후에 나오는 소프라노 아리아 내 주는 살아계시고라는 곡을 소프라노 가수가 부르는데 정확한 음정과 박자. 아름다운 음색과 감정표현 그리고 적절한 호흡을 조절해 가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많은 청중이 야. 참잘한다하면서 듣고 있었읍니다. 그런데 래클 경이 갑자기 지휘봉을 멈추고 노래를 중단시켰읍니다. 노래 부르던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오케스트라 단원들. 심지어 관중들까지 놀라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서로 마주 보았읍니다. 이 때 래클 경이 소프라노 가수에게 너. 정말 내 주가 살아계신 것을 믿느냐. 그 때 이 가수가 그런 것을 생각이나 했었겠읍니까. 너무 뜻밖의 질문이라 그저 당황해서 예. 예.하며 대답했읍니다. 래클경은 그러면 다시 불러 하면서 지휘를 시작했읍니다. 이 때 소프라노 가수는 음정. 음색. 호흡. 박자. 감정같은 것을 생각할 여지도 없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며 노래를 불렀읍니다. 내 주는 살아계시고. 이 노래를 듣고 많은 청중들이 아까는 참 잘한다고 생각하며 노래를 들었는데 이번에는 너무너무 감격스러워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들었다고 합니다. 꼭 같은 사람이 꼭 같은 노래를 불러도 확신을 가지고 부르는 노래가 이처럼 감동을 준 것입니다. 확신에는 힘이 있읍니다.
모든 고통도 절망도 확신이 있으면 딛고 일어 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