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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보다 삶이 중요합니다
    2002-06-18 12:29:42   read : 3713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06/09 // 마가복음 3:13-19

    요즘은 월드컵 축구 경기로 온 나라 안팎이 열광의 도가니가 된 듯합니다.
    승자와 패자의 희비는 당연하겠지만 그에 따른 주인공의 이름들이 언론에 보도
    되면서 개인의 이름 또한 희비의 교차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48년 만에 월드컵 축구의 1승을 올린 한국은 지금 완전 잔치 분위기가 되어
    그 1승의 주인공으로 황선홍과 유상철의 이름이 언론의 전면을 장식하게 되었고
    명장(名將) ‘히딩크’의 이름은 4,500만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 전 세계에 새롭
    게 기록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름이란 순수 우리말입니다.
    사전적으로 이해하면 넓게는 성과 이름을 모두 합쳐 이름이라고도 합니다.
    이름은 한국 중세어에서 ‘일홈' 또는 ’일훔' 등으로 표기되고 있지만, ‘이
    르다’(謂)나 ‘말하다'는 뜻을 가진 옛말 ‘닐다'에서 출발하여 ‘닐홈-일홈-이
    름'으로 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이르는 것이 곧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이름의 높임말로는 방명(芳名) 방함(芳銜) 성함(姓銜) 존명(尊名) 존함(尊銜)
    함자(銜字) 휘(諱) 휘자(諱字) 등이 있습니다.
    ‘휘(諱)는 죽은 사람의 이름을 높이는 말로서 이를 ‘휘자(諱字)라고도 합니
    다.
    특히 ‘휘자’는 죽은 이의 이름 글자를 일일이 말할 때 씁니다.
    예컨대 어른의 이름자를 일컬을 때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아들 석훈이에게
    하는 말입니다.
    “네 조부 휘자는ꡐ성(聖)자 달(達)자’를 쓰셨단다.”
    이 말은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름은ꡐ聖達ꡑ씨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석훈이가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입니다.
    “저희 성(姓)은 서가이고, 아버님 함자는ꡐ맡을 임(任) 자, 무거울 중(重) 자
    ꡑ를 쓰십니다.”
    이 말은 남 앞에서 자기네 성은 낮추어 말하고 어른의 이름은 붙여 말하지 않
    고 한자씩 구분해서 말하는 것이 높임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름이란 그 사람의 모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작명소가 있어서 좋은 이름을 지으려고 가히 몸
    부림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도 작명소가 호황을 누린다고 합니다. 이름 짓는 데 수십 만
    원, 심지어는 수백 만원까지 들여가면서 이름을 짓는 경우도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름의 의미

    성경에서도 이름을 짓는 일에는 아주 신중했습니다. 모든 성경의 위인들이 이
    름대로 살다가 이름대로 죽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그 이름을 지음에 있어서 생활환경, 어떤 상황 등 여러 경우에
    서 취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동식물에서 이름들을 취하여 명명하기도 했는데 다말은 종려나무, 데라는 염
    소, 레아는 들소, 라헬은 양, 갈렙은 개, 드보라는 벌, 요나는 비둘기 등입니다.
    사람의 얼굴 모습이나 성질에 따라 지은 것도 있는데 에서는 털 많은 자, 십
    보라는 아름다움 등입니다.
    부모의 경건성, 감사 등에 의해 지어진 이름도 있는데 시므온은 여호와께서 들
    으셨다, 유다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등입니다.
    사건과 관련해서 지어진 것도 있는데 야곱이 그 막내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내
    슬픔의 아들), 베냐민(오른 손의 아들)으로 바꾼 것은 흉조(凶兆)에서 길조의 이
    름으로 바꾸는데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엘리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가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고 해산
    하여 낳은 아이를 이가봇(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이라고 한 것이 그 예입니
    다.
    특별한 일로 이름이 바뀐 것도 있는데 야곱이 이스라엘로, 요셉이 사브넷바네
    아로, 시몬이 베드로로, 사울이 바울로 된 일들이 그것입니다.
    그 외에도 예언적, 상징적으로 명명된 경우도 있고, 하나님에 관계된 이름도
    많으며, 가나안의 신 바알과 관계된 이름도 나타납니다.
    신약시대에는, 여러 나라의 국어가 사용되어, 그리스명, 라틴명, 히브리명 등
    의 이름, 혹은 한 사람이 둘이나 세 가지 이름을 가진 경우도 있습니다.

    히브리인에게는 성이 없었기 때문에, 성읍의 이름을 붙여 쓰기도 했는데 예컨
    대 나사렛의 예수, 아리마대 요셉(요 19:38), 막달라 마리아가 그 경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이름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사람
    의 삶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이름을 잘 지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그 이름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삶
    을 통하여 이름을 빛내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인간 생활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열두 제자와 피택의 의미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의 이름입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바돌로메, 도마,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 가룟 유다가 그 이름들입니다.
    이 이름들은 각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과 함께 그들의 삶이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열두 제자의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 더
    중요한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그 의미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됩니
    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시기 전에 중요한 일 하나를 하셨습니다.
    13절입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그렇습니다. 주님은 복음사역을 위해 동역할 제자들을 부르시기 전 먼저 산에
    오르셨던 것을 우리가 깊이 알아야 합니다.
    ‘산에 오르사’는 현재 직설법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생동감과 역사성
    이 넘치는 표현기법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이 사건을 보다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누가복음 6:12~13절
    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
    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그렇습니다.
    열두 사도를 부르시기 전에 예수님은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둘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자들이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하는 것
    입니다.

    영적 중요한 일을 수행하기 전에 반드시 기도하여 그 하고자 하는 일이 실패하
    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일이어야 함을 오늘 본문은
    잘 깨우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교회 일을 하면서 기도보다 일이 앞설 수 없고, 말씀보다 일
    이 앞설 수 없고, 성령님보다 일이 앞설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교회에서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
    을 이루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그랬습니다.
    메시아로서 사역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일을 기도하셨고, 전도 여행을 떠나시
    기 전에 새벽 미명에 산에 오르셔서 기도하셨고, 문둥병자, 귀신을 쫓아내신 후
    많은 사람들이 예수 이름을 높일 때 다시 한적한 곳으로 가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열두 제자를 선택하시기 전 산에 오르셔서 밤이 맞도
    록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따라 열두 제자를 부르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또한 예정교리(doctrine of predestination), 선택교리의 근간(根
    幹)이 되는 말씀으로서 하나님의 소명론이 되기도 합니다.
    즉 하나님의 피택 사건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행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
    라 누가, 왜 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의 교회에서 항존직분자 피택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영적 사건입니
    다.

    대부분의 항존직분자의 영적 삶의 실패는 바로 여기에 있는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라는 것에 관점을 두고, ‘누가 왜’라는 관점을 갖지 않는 데서 실패
    적 신앙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일을 하게 하기 위하여 피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항존직분자들은 그것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채 교회 생활을 함으로
    써 스스로의 삶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각처에서 항존직분자들의 삶을 뒤집어 보면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기 위한 직무론으로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교만과 자기 주장을 앞세운 직분
    론으로 사역하기에 지도자로서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의 목적이 14~1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친교와 교육과 선교와 봉사를 위한 권능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늘의 교회의 사명의 기본 틀이 되었습니다.

    14절 말씀의 상반 절입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찬송가 102장을 감격하면서 찬양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밖에는 없네.
    이 세상 명예와,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아멘.

    이름보다 중요한 삶

    16절 이하는 예수님이 택하신 열두 제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귀한
    이름들입니다. 역사에 이보다 더 존귀한 이름들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참으로 존귀한 이름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삶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제자들의 이름 하나하나는 존귀한 이름들입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의 삶입니다.

    우선 마지막에 기록된 이름 ‘가룟 유다’를 생각해 봅시다.
    ‘가룟’이란 이름은 여러 학설이 있습니다.
    첫째는 ‘케리옷’ 출신 사람이라고 보고, 남쪽 유다의 한 지역인 가룟이라는
    동네에서 살았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둘째는 ‘가룟’은 열심당원들의 운동과 유사한 운동을 의미하는데 사용된 라
    틴어인 ‘시카리우스’의 음역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그 외 여섯 가지 정도의 학설이 있는데 ‘유다’라는 이름은 ‘그를 찬미하
    자’ ‘그를 기억하자’라는 아주 좋은 의미의 뜻을 지닌 이름입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그의 이름 값을 하지 못하고 인간으로서 가장 실패한 인생
    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이 중요한 것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특별한 것을 좋아합니다.
    직분도 그렇고 이름도 그렇고 직장도 그렇고 환경도 그렇고 생활도 그렇습니
    다.
    롯이 그런 사람이라면 아브라함은 다른 삶을 추구했던 사람의 대표적인 사람입
    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선택했던 롯과, 그것보다는 다른 삶을 살
    기 위해 애썼던 아브라함을 비교해 보면 누가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았
    는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롯은 더 좋은 땅인지 알고 더 좋은 것을 원하는 삶의 관점을 가졌지만, 아브라
    함은 어느 것이 더 좋은 땅인지 알려고 하는 데 관점을 두지 않았습니다. 아브라
    함의 관점은 오직 하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 아니하느냐 이었습니다.
    그 결과 롯의 삶은 언제나 하나님 없는 삶으로 내려가게 되었고 아브라함의 삶
    은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으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롯의 일생의 마지막은 실패적이지만 아브라함의 일생의 마지막
    은 축복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즉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이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까?
    목사라는 이름보다 세상에 존귀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목사라는 이름에 맞는 삶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교회에서의 직분으로서의 다양한 이름이 얼마나 존귀한
    것입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이름에 맞는 삶이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이
    란 큰 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이름 값을 하지 못하고 살다가 예수님
    을 만나고 그 이름을 바울이라고 고쳤습니다. 작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가 사울에서 바울이 되려고 했을 때 누구도 그의 마음
    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왜 그 좋은 이름을 바꾸었는가? 왜 그 좋은 생활을
    버렸는가?
    누구도 바울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여기에 삶의 비밀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람들의 이름을 아는 데 동분서주합니
    다.
    요즈음처럼 선거 철이 되면서 많은 후보들이 자기들의 이름을 알리려고 몸부림
    을 합니다. 총회에서도 노회에서도 다양한 사회 단체에서도 자기 이름을 알리려
    고 애씁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이름을 알려고 하고 그 이름과 연관된 인간관계
    를 가지려고 합니다.

    지난 전국 목회자 세마나 강사로 갔을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3
    박4일 일정의 강사가 광고되었는데 서임중 목사라는 이름 때문에 왔다는 이야기
    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래서 강의 첫 머리에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임중이라는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임중 목사의 삶이 중요한 것입니
    다.”
    아무리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으로 명성이 높아도 그 사람의 삶이 어떤가를 이
    해하려 하지 않는 데서는 아무 것도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름을 알려고 하는 것보다는 그 사람의 마음을 알려고 하는 것이 더 좋은 것
    입니다.
    그 마음을 알려면 그 사람의 삶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떤 삶인가를 알게 되
    면 어떤 마음의 소유자인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것을 중시하셨던 것입니다.

    열두 제자들의 삶을 살펴보십시오.
    베드로는 주를 위해 사역하다가 말년에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했습니다.
    야고보는 사도 중에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고, 요한은 밧모섬에 귀양가서 에베
    소로 돌아와 폴리갑, 익나티우스 같은 훌륭한 지도자들을 배출한 훌륭한 사도였
    습니다.
    빌립도 히에라폴리스에서 순교를 했습니다.
    모든 제자들이 하나같이 신명을 다해 복음 사역을 수행하다가 순교하여 아름다
    운 삶을 마무리하였는데 유일하게 단 한 사람, 가룟 유다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도 분명 열둘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의 이름도 분명 좋은 뜻의 이름이었고, 예수님이 선택하신 존귀한 이름입니
    다. 그런데 그의 삶은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열두 제자들의 삶을 통
    해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의 지금 삶은 이름 값을 하시고 계십니까?
    이름보다 삶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것을 깨달아 살아가는 것이 진실로 진실로 아름다운 삶입니다. 그 삶을 살아
    가는 사람의 이름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이름이 되는 것입니다.
    이름으로 삶을 엮으려 하지 말고 삶을 통해 이름을 빛내기를 축복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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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악령의 사슬에서 벗어나라
    주님을 깨우십시오
    교회 성장과 사명의 원리
    영적 빈익빈 부익부의 교훈
    마음도 밭과 같습니다
    새로운 가족의 의미
    성령님과 함께 하는 삶
    이름보다 삶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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