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2002-06-25 15:38:55 read : 2566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시 32:1-7 // 2002년 6월 23일
□ 복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시 32:1-7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이다) (시편 32:1-7)
요즘 우리 나라는 온통 축구 열기로 꽉 차 있습니다.
그것은 그간의 축구 강국이라고 일컬었던 나라들을 상대하여 하나, 하나씩 직접 부딪치며 싸워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32개국 본선에 올라온 나라들 중에 16강에 들기만 해도 좋겠다고 그렇게 바라고 그렇게 되기를 외치며, 16강 16강 하는 말이 귀에 못이 박힐 정도였고 심지어 새우깡 표지에 16깡이라고 붙인 것도 보았는데, 16강을 넘어서니 8강에 오르게 되었고 어제는 4강 전을 펼쳐 승리하게 되었으니, 어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문에 보니, 영국에서는 자기 나라 선수들이 이길 수 있도록 응원하라고 주일날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좋으니 그렇게 하라고 광고했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남과 겨루어서 이길 때 기뻐합니다.
남을 제치고 앞장설 때 승리감에 도취되어 행복해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성공이라고 하고, 그래서 성공하려고 들 합니다.
또 성공하면, 그것이 복(福)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면, 누가 복있는 사람인가?
이렇게 묻는다면 아마 대부분의 경우에서 남과 겨루어 이긴 사람,
남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
남들로부터 부러움을 가지고 사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과연 세상에서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복 있는 사람은 남과 겨루어 이긴 사람이 아니라 다르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죄의 가리움을 받은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복은 경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더욱이 복은 무엇을 가지고 있는 소유에 있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즉, 지식을 많이 소유하고 있던가,
훌륭한 명예를 소유하고 있던가,
재물을 많이 소유하고 있다고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가난하게 살 때는 <돈>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배고픈 시절에는 밥이라도 실컷 먹었으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요즘에 와 보면 그렇지만은 아닌 것을 누구나 다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재물이 많이 있어도 불행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공부를 많이 했지만, 불행스럽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대신 가진 것은 별로 없고 아는 것도 별로 없지만,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가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죄가 있는 한 아무리 행복 하려고 해도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죄를 품고는 복이 따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복은 인간 실존의 모습을 바르게 살피는 과정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됨의 참 모습을 모르고 사는 사람을 어찌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사람됨의 실존의 모습을 알려고 한다면, 우주 만물의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태초에 이 우주를 누가 지었으며, 인간 존재가 어떤 존재인가를 가장 잘 설명해 준 책이 성경책입니다.
만일 성경이 없었다면 아직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서 왈가왈부 할 것입니다.
먼저 인간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피조물이라면, 조물주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 합니다.
이것을 모르면,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 존재의 근본을 모르고,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죄가 들어오면서 인간의 모습은 본래 형상이 파괴되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졌고, 그 대신 육체의 욕망대로 살아가는 오직 육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인간 존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능적으로 완전한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 흠이 있습니다.
정서적으로 온전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흠이 있습니다.
의지적으로 온전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흠이 있습니다.
이렇게 지, 정, 의로서의 인격이 온전한 사람이란 없이 다 흠이 있는 존재들이 되었단 말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능력적인 면에서도 그렇습니다.
인간의 능력이란 모두 한계가 있습니다.
비록 인간은 이렇게 과학기술의 문명 사회를 이루어 놓았지만, 이것은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한때 유행했던 '타타타'란 노랫말처럼, 인간은 한치 앞도 모르고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렇게 모두 우리는 제한된 존재들입니다.
한평생 살면서 죄 짓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허물과 실수투성이 들입니다.
그 허물과 죄가 가리워 졌기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습니다.
만일 죄가 드러나면, 세상 법정에 설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드러나지 않았고 가리어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도 동일합니다.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범죄 하였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의인은 없으나, 한 사람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죄가 가리어지고 사함 받은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처럼 정확한 말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너무나도 당연한 말입니다.
죄가 가리어지고 사함 받은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2. 죄를 회개하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죄인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살려고 합니다.
죄를 지었어도 안 지은 것처럼 숨기면서 살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더욱 더 많은 죄를 짓게 되고, 그래서 무거운 멍에를 메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렇게 사는 불쌍한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고 왔다고 했습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의 공생애의 첫 말이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 생활에서 <회개>는 매우 중요합니다.
천국은 회개하는 사람이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반대로 지옥은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이렇게 볼 때 <회개>가 분수령입니다.
천국행이냐, 지옥행이냐는 것은 죄를 회개하느냐, 안 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죄를 회개하는 사람이면 천국에 들어갈 것이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라면 지옥행으로 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사람이 많으면 사회는 아름다워지고, 회개하는 사람이 많으면 나라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요, 흥망성쇠의 원리입니다.
① 회개가 없는 사람은 참 평화가 없습니다.
② 회개가 없는 사람은 참 기쁨이 없습니다.
③ 회개가 없는 사람은 참 행복이 없습니다.
용서받는 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그런데 이 용서는 회개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반드시 용서가 따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못합니다.
회개해도 인간은 용서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은 모두 용서하십니다.
그러기에 회개하지 아니하면 용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많은 허물과 죄가 있습니다.
이 많은 허물과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회개가 필요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허물과 죄는 그대로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제일 큰 죄는, 회개할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고 있는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제일 미워하십니다.
그래서 죄는 반드시 보응과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이 모든 허물과 죄에서 용서를 받고,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하시고, 우리의 죄를 억조차도 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참 복 있는 사람이 누구냐?
이것을 깨달아 죄를 회개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3. 죄 용서함을 받고 사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사야 1:18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인간 구원입니다.
인간의 죄를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요 계획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냈습니다.
희생 제물로 삼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① 용서를 받아야 죄 사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② 용서를 받아야 예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③ 용서를 받아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④ 용서 없이 구원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① 죄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불행한 사람입니다.
② 죄가 사망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사망에 이릅니다.
③ 죄가 심판 받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심판을 받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실수할 수 있고,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어디에서 그 죄를 용서함 받을 수 있겠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와야 합니다.
어떤 죄를 지었던지 십자가 앞에 나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면 용서함을 받습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의 음성입니다.
우리 모두 죄 사함 받고 용서함 받아 복 있는 사람들로 살다가 가야 하겠
습니다.
이제는 죄인으로 살다 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 시민으로 살다가 가는 것입니다.
천국 시민의 긍지를 갖고, 아직도 죄에서 허덕이는 형제자매들에게 이 소식을 전해 줄 책임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내가 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앙화가 미칠 것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복 있는 천국 시민들로서 끝까지 이 사명 다하면서 살다가 주 앞에 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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