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관계, 특별한 사랑 2002-06-25 16:30:55 read : 3334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사야 43장1-7 // 2002.06.23
할 수 있다는 희망
여러분은 혹시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어떤 지체 높은 분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그분으로부터 특별한 관심과 특별한 사랑을 받고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 적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안타깝게 여기는 분은 안 계십니까?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특별한 관심과 특별한 사랑을 받고있음을 확신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며 감사해야할 존재들입니다. 특별히 요즘 우리나라에 대한 생각을 할 때 하나님은 우리나라와 특별한 관계가 있고 특별히 사랑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민족은 드디어 해냈습니다. 염원하고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는 믿음, 그 결실을 맺게 해준 태극전사들 앞에 4강 진출은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잠시 몰랐을 뿐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 민족인지를 우리가 믿고 노력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라운드 위에서 우리가 보았던 것은 120여 분의 축구 경기가 아니라 우리의 가능성, 우리의 저력이었습니다. 목이 터져라 외친 4800만의 "대한민국"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임을 일깨워주던 순간 함께 부둥켜안고 같이 느꼈던 감격 그것이야말로 여러분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입니다. 아시아의 조그마한 나라 대한민국, 우리가 한뜻으로 일어서는 순간 더 이상 작은 나라의 민족이 아님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우리는 하나가 됐습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가장 유명한 신문 상담가 중 한 사람인 앤 랜더스은 매월 약 1만여 통의 상담 편지를 받는데 이 분이 그 편지들을 주제별로 분류를 해보았더니 두려움에 관한 편지가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상담을 요청하는 가장 많은 이유가 불안과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갖가지 두려움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죽음과 자기 숙명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교통사고는 당하지 않을까? 암에 걸린 것은 아닐까? 암 노이로제에 걸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갑자기 죽지는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재산을 잃어버릴까봐,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릴까봐, 직장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일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처한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무서운 것입니다. 실패를 했을 때 실패도 문제이지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문제가 됩니다.
심리적 두려움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어떤 특별한 현상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밀폐공포'라는 것이 있습니다. 갇히고 밀폐되면 겁이 나는 것입니다. 식은 땀이 나고 혈압이 올라갑니다. 밀폐된 공간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광장공포'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은 거꾸로 갇히면 편안한데 넓어지면 두려운 것입니다. 두려움의 문제는 두려움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두려움에 쌓이면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삶을 살지 못합니다. 나중에는 건강마저 해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멸망을 앞 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그들의 지은 죄가 너무도 엄청납니다. 선지자들을 통한 끝없는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아니했습니다. 이제는 소망이 끊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어 멸망이 오고 포로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은 크게 낙담하고 두려워합니다.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은 저들을 위로하십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두려워 말라는 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약속의 핵심입니다.
환경이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패망의 역사는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나라는 망하고 예루살렘은 불타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극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두려워 할 것 없다는 것입니다. 환경을 초월하는, 모든 환경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너는 내 것이라
여러분은 혹시 어떤 지체 높은 분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그분으로부터 특별한 관심과 특별한 사랑을 받고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특별한 관심과 특별한 사랑을 받고있음을 확신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며 감사해야할 존재들입니다.
먼저 "너는 내 것이라" 고 했습니다.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여러분 여러분의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까?
우리가 어디에 속하여 있는가를 묻는 것은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였든지 세상에 속하였든지 소속은 그 사람의 신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군복을 입었으면 군인이요, 경찰복을 입었으면 경찰임을 알듯이 말입니다. 요즘 우리국민들은 한결같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속해있음을 실감나게 기뻐하며 뿌듯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소유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래서 낮에도 밤에도 항상 우리를 간수하시고 챙기시고 그리고 감싸주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 종 삶에 대한 소속감 더욱이 영혼의 소속감의 결핍을 봅니다. 우리가 어디엔 가는 소속되어야 하는데 우리가 하나님께 소속되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셔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주고 지켜주고 인도해 주셔야 만이 우리 인생이 잘 나갈 수가 있는데, 우리를 지켜주고 보호해 주고 우리를 책임져줄 보호자 하나님께 소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분과의 특별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3장은 바벨론으로부터 이스라엘의 해방을 바라보고 있는데 넓은 의미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인간의 구속과 함께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릴 은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지칠 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주권적 사랑으로 자기 백성을 사랑하셨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기대를 좌절시켜 버렸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구속을 입은 자들이 하나님을 부르지도 아니하였고, 하나님을 괴롭게 하였고, 진정한 감사의 제사를 드리지도 아니했습니다(22,23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사유하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허물과 죄악에 오염된 자들에게 네 허물을 도말하고,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겠다고 은혜로운 선언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려워 말라'(1,5절)고 위로하고 있습니다. 비록 바벨론의 침략이 있다할지라도 성도는 하나님만이 구원자이심을 믿고(11절) 하나님만 의지해야 됨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도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될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내 것이기에 내가 너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인생의 여정을 걸으면서 '나는 하나님의 것이다, 나는 하나님에 의해 구속을 입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다'라는 철저한 확신과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모습은 커다란 변화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 된 특권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 됨으로써 누리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것은 임마누엘의 축복과 함께 보호와 존귀입니다. 본문 2절에 보면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분문 2절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우리는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물 속으로 지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예수 믿기 때문에 강을 건널 이유가 없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불이 네 곁으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를 열심히 믿는 데도 불구하고 물을 지날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강을 건너는 어려움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열심히 헌신하고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는데도 불구하고 불 가운데로 지나는 고통의 때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에게 어떤 약속이 주어지고 있습니까? 임마누엘입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환난과 역경이 성도에게도 찾아오지만 주님은 그 곳에서도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인생 길에 풍랑이 일고, 불꽃이 나를 삼킬 것 같은 고난이 있다 할지라도 하늘과 땅을, 존재 세계를 있게 하신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나의 연약함과 나의 형편을 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무엇이 나를 두려움에 빠뜨리겠습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십니다. 이런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오늘도 당당히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보호
본문 2절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물이 침몰치 못할 것이라는 말씀은 홍해를 건넜던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확인이 되어졌고,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할 것이라는 말씀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세 청년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가 되시고 산성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머리터럭 하나 상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십니다.
존귀
본문 4절에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나의 나된 가치는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될 뿐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어느 백성보다도 성도를 더 사랑하시고 보배로운 존재로 삼으셨습니다.
성도여러분! 지금 내가 처한 세상적인 환경이 초라할지라도 나는 하나님의 보배로운 존재임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지금 내 손에 아무 것도 쥐고 있는 것이 없어도 하나님은 나를 존귀케 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십니까?
특별한 관계
성경은 전체적으로 일관되게 하나님과 우리와 특별한 관계에 있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본적인 약속을 줄여서 말한다면 '나는 네 하나님이다(3a), 너는 내 백성이다(1b)'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우리와의 특별한 관계를 늘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2a, 5a)" 이것이 하나님의 가장 기본적인 약속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도 전형적인 그런 약속이 나오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계십니다.
1절과 7절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셨다고(1a, 7b) 말씀하고 있고, 1절 하반절에는 조성하셨다(1b)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하나님께서 하나의 존재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혹은 또 그릇을 만드는 도예가가 도자기를 만들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빚어서 하나의 작품으로 우리를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에, 그 인간은 가치 있는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작가가 작품을 만들 때에 혼신의 힘을 쏟아서 온 정성을 쏟아서 내 모든 재능을 다해서 정성껏 그 작품을 만드는 것 같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그렇게 온 정성을 기울여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시장에 가보면 대량생산되어서 나오는 상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해에 어떤 옷의 디자인과 색깔이 유행한다 하면 그 해에는 대부분 그것만 입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똑같은 상품을 많이 만들어 내니까 똑같은 옷들을 입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유명 디자이너가 옷을 만들 때에는 자기 고객의 개성에 맞게, 그 사람의 체형에 맞게, 독특한 하나의 옷을 만들어서 주는 데 그것은 하나의 작품입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에, 조각을 할 때에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독특한 작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똑같은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독특한 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도예가가 도자기를 만들 때에도 독특한 그릇을 각각 만들어내는 것이고, 서예가가 글씨를 쓸 때에도 독특한 자기 나름대로의 필체를 가지고 글씨를 써서 거기에 낙관을 찍습니다. 그럴 때 그것이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작가와 작품은 특별한 관계
우리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각각 다른 개성을 가진 독특한 작품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판단하고 평가할 때에는 그 사람의 외모를 가지고 잘생겼느니, 못생겼느니, 유능하니 무능하니 그렇게 평가하고 판단합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은 각각 다 독특하게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요즘엔 산모들이 영양상태가 좋아서 그런지, 요새 태어난 아이들은 갓난아기, 갓 태어난 핏덩어리를 봐도 얼마나 애들이 뽀얗고 눈망울이 똘망똘망한 지 아주 참 예쁜 아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못생긴 애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어떤 분이 아기 낳는 집에 가서 갓 태어난 아이를 보고는 개구리 갔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엄마가 그 아기를 볼 때에는 개구리같이 보지를 않고 세상에 그렇게 예쁜 아이가 없는 것입니다. 다 내 아이가 그렇게 예쁜 것이지요. 그것은 무슨 객관적인 평가하고는 관계가 없습니다. 특별한 관계에 있는 내 아이는 다 예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한 작품으로 만드셨습니다. 각각 다 개성을 가진 독특한 특별한 작품으로 만드셨고 하나님은 작가가 되시고 우리는 작품이고, 작가와 작품은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서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또 1절 말씀에는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1c)? 말씀하고, 3절에는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3a)'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나는 네 주인이고 너는 내 소유라는 말씀입니다. 마치 목자가 자기 양을 하나 하나 그 개성과 성품을 다 잘 알아서, 한 마리 한 마리 이름을 불러내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볼 때에는 양이 다 똑같은데, 목자는 그 여러 마리 되는 양을 다 한 마리 한 마리 독특하게 개성이 어떤지 습관이 어떤지 식성이 어떤지 이런 것을 다 잘 알고 한 마리 한 마리 다 이름을 불러 낼 정도로 잘 안다는 말이지요. 목자와 양의 관계는 특별한 관계입니다. 개인적인 관계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하나의 작품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유로 삼아주시고 우리의 주인이신 데, 하나님과 우리가 개인적인 사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 사람 한 사람 개성을 속속들이 알고 우리 성품을 속속들이 알고 한사람 한사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하나님과 우리는 그런 개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특별한 관계의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서 오늘 6절 말씀에는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고 말씀하십니다.(6b) 특별한 관계 가운데 가장 최고의 관계가 부모와 자녀관계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 말씀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피 흘려 죽으시므로 우리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사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되고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작품이다 소유다 자녀다 말씀을 하시고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하신다(4a)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관계이기 때문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특별히 사랑하고 특별히 높인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작품이나 자녀를 돈으로 계산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어떤 그림을 돈주고 사고 팔고 그렇게 돈으로 계산하겠지만 작가, 그 그림을 그린 작가는 자기 작품에 대해서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그런 사랑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자녀를 돈으로 계산할 수 있습니까?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스러운 존재가 자녀입니다. 특별한 관계이기 때문에 특별한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작품으로 만드시고 소유로 삼아주셔서 개인적인 관계를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삼아주셔서 특별한 관계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잘생기던 못생기던 유능하던 무능하던 빈부귀천 관계없이 각각 다 독특하게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랑과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들 각자가 다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함께 하심
그런데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 환난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어떨 때는 내 탐욕이나 실수로 인해서 고난을 당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나하고 아무 관계없이 갑작스레 닥치는 그런 고난과 환란이 있습니다.
자연재해(2절)
오늘 성경말씀에는 제일 먼저 자연재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과 불에 대해서 자연재해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연재해는 우리가 예측하지 못했을 때에 갑작스레 닥쳐오는 환란입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환난입니다.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이런 자연재해 같은 환난이 닥쳐올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두려워 떨고 불안해 할 뿐이고 그런 환난을 당하면 낙심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 환난 가운데 있을 때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1절 중간의 말씀을 보십시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1-2) 말씀하십니다. 긴 문장인데 하나로 줄이면, 환난 가운데 있는 우리를 향해서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그 말씀입니다.
우리가 자연재해 같은 그런 환난 가운데 닥쳐 있지만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창조하시고 지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모든 우주만물의 창조자요 지배자이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 가까이 계셔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홍해를 건널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고 보호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불 속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그 곁에 계시고 함께 계셔서 보호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그 곁에 함께 계시고 보호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여기 구속한다는 말이 1절에 나옵니다만 그 구속한다는 것은 내 가까운 친척이 빚을 졌을 때에 그 사람 대신 내가 갚아주어서 저당으로 잡혀 있던 것을 다 가져온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내 가까운 사람이 곤란에 처해 있을 때에 그것을 구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특별한 관계, 아주 친밀한 가까운 관계 가운데 있는 분이신 데, 내가 환란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내 곁에 오셔서 함께 계셔서 나를 그 가운데에서 구속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역사 속의 환난 (3-6절)
두 번째로는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보면 역사 속에서 겪는 환난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주변 여러 나라들에 침략을 당하기도 하고 먼 곳으로 포로 되어 쫓겨 나가기도 하는 그런 상황들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변의 강대한 나라가 침략을 하는데 나는 힘이 약해서 도저히 그것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내 자신도 보호를 못해서 침략을 당해 가지고 그만 거기에 꺾이고 정복을 당하고 혹은 포로로 잡혀 갈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입니다. 내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내 힘 가지고 막아낼 수 없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 환난입니다. 그런 환난을 당할 때에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저 두려워서 떨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럴 때에 성경은말씀합니다. 5절 말씀을 보십시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5a) 말씀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든지 어떤 어려움 가운데 처하든지 그러나 역사를 주관하시고 지배하시는 하나님께서 내 곁에 함께 계셔서 보호하시고 구원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기드온과 함께 계셔서 미디안 군대를 물리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엘리사와 함께 계셔서 아람군대를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왕과 함께 계셔서 앗수르 군대를 멸망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가진 그 하나님께서 내 곁에 함께 계셔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환난을 당하고 있을 때에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인생 전체를 하나의 환상으로 보았는데, 인생 걸어온 길을 죽 보니까 모래밭에 발자국이 찍힌 환상을 자세히 보았더니 주님과 자기가 둘이 같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어요. 그런데 가다보니까 어떤 시기에 가서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한 사람 발자국으로 줄어들어서 가만히 보니까 그 한사람의 발자국만 있을 때가 바로 자기가 굉장히 고난을 겪을 때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주님께 투정 겸 불평 겸 이야기했습니다. '주님, 내가 고난을 당할 때에 주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발자국이 하나밖에 없네요.?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업고 갔다'는 말씀을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에, 환난을 당할 때에 다른 사람들은 다 떠나갑니다. 그러나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분, 나와 특별한 관계가 있어서 나에게 특별한 사랑을 가지고 계신 그분은 고난을 당할 때에 오히려 더욱 가까이 오셔서 더 내 곁에 계시고 나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연재해 앞에서, 역사가 전개될 때에 닥치는 환난에 대해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도 못하고 저렇게도 못하는 굉장히 어려운 처지 가운데 우리가 놓이게 될 때가 많습니다. 한 때 경제위기로 말미암아 많은 기업들이 부도가 나고 그로 인해서 연쇄부도로 인해서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나 많은 사람들이 부도가 나기도 했습니다. 부도가 나서 사업체를 잃어버리고 실직자가 생기는 상황 가운데에서 처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내가 게을렀다든지 내가 불성실했다든지 그래서 겪는 어려움이 아닙니다. 성실하게 부지런하게 일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경제위기가 다른 곳에서부터 몰아쳐 와서, 그래서 나도 거기에 같이 피해를 보게 되고 넘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 불안과 두려움이 우리 가운데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럴 때에 성경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작품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시고 우리는 소유고 우리는 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한 사랑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환난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우리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6.25 한국전쟁 가운데서도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특별한 관심과 동행하심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 민족과 함께 하시리라 확신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환난 가운데 있는 분들 계십니까? 특별한 관계 가운데 있어서 특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환난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를 상대하시며 나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시고 지명하여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어떠한 역경에서도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보호하시며, 존귀케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곧 인생의 본분입니다. 나의 나된 존재 목적입니다. 우리 모두 '너는 내 것이라'는 하나님의 음성 앞에 내 존재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오늘도 승리의 체험을 하시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