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여러분 여러분에게 답답한 문제가 있다고 합시다. 예를 들면 사업을 시작하는데 과연 성공 할수 있을까. 라든지, 자녀가 결혼해야하는데 이 결혼이 과연 잘 사는 가정으로 이어질수 있을까. 라든지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직을 하려는데 과연 제대로 될까? 라든지 뭔가 미래 대하여 불안한 문제로 답답해 하는대 그런데 신통하게 알아 맞추는 점쟁이 족집게 도사가 있다면 찾아가 보시겠습니까? 물론 여기서는 아니라고 하겠지요 셋중 하나일 것입니다. 절대로 가지 않는 경우와 딱 한번만 하면서 진심반 호기심반 찾아가려는 사람. 그리고 이미 찾아갔던 경험이 있는 사람. 선거철이 되면 내노라 하는 사람의 신발들이 계룡산에서 도 닦고 내려온 도사들. 점쟁이 집에 즐비하게 놓여져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입시철이 되어도 점쟁이 집이 문전 성사를 이룬다고 하지 않습니까? 오늘은 바로 이런 문제를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가. 관련된 주제를 생각합니다.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
바울 일행은 루디아의 집에서 예배를 드립니다만 안식일이 되면 바울이 처음 루디아를 만났던 강가의 기도처로 갔습니다. 왜요? 그곳에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가지려고. 그런데 가는도중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을 만났습니다.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 이여자가 나이가 몇인지 외모가 어떤지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대충 세가지 정도를 알 수 있습니다.
여자는 귀신이 들렸습니다. 자기는 없고 귀신에게 끌려 다니는 여자였습니다. 옷이나 제대로 입었는지 밥은 제대로 먹는지 알수없지만 제정신 못차리고 귀신에게 잡혀서 전혀 자유가 없는 한마디로 불쌍한 여자입니다.
여자는 여종이였습니다. 자유인이 아니라 노예였습니다. 귀신이 들리지 않았다 해도 전혀 자유가 없는 여자였습니다. 주인 마음대로 부리는 여자였습니다. 주인의 소유물이었어요 일시키면 일해야 하고 때리면 맞아야합니다. 16절에 보니까 '주인들'이란 말이 나오지요? 주인이 여럿이였나 봅니다.
여자는 점치는 여자였습니다. 점이란 무엇입니까? 미래에 대해서 망막하고 불안해 하는 사람들이 알고 싶어서 치는 것이 점입니다. 점- 그냥침니까? 돈내야지요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 이 말로 보면 점치려오는 사람이 많았나 봅니다. 점치러오는 사람이 많았다는 말은 점중에 맞는 경우도 상당히 있었다고 보아야지요. 어쨌던 주인들은 귀신들려 제 정신 못차리는 여인을 돈벌이로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여자의 인격이야 어찌 되었던 주인들이 관심 있는 것은 돈이었습니다. 돈벌기위해 불쌍한 사람을 도구로 삼는 철저히 비인격적인 사람들이 었습니다.
16절에 '점하는 귀신,은 원어에 프뉴마 퓨도나-'퓨돈의 영, 이란 뜻입니다. 퓨돈은 뱀을 가리키는데 이 뱀은 신전의 여자 예언자들이 예언 할수 있도록 해준다고 하는 귀신이 었습니다.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은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을 가진 / 영에 사로 잡혀 있었다는 말입니다. 퓨돈,은 나중에 복화술사(複話術師)까지도 의미하게 되는 점치는 사람은 귀신의 말을 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깊이 들어가 보면 지금 복음이 그리스 - 로마의 미신적인 배경과 싸우고 있는것입니다.
"17절 바울과 우리를 좇아 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그런데 이 귀신들린 사람이 바울을 좇아 다니며 말합니다. 두가지를 말하지요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자. 성도여러분. 귀신들린자가 바울 일행에 대하여 하는 말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맞아요. 지극히 높은 하나님 - 바울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말입니다. 맞아요.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 - 맞잖아요. 구원받고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바울의 사역에 대하여 명쾌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당시 정상적인 사람들보다 바울과 바울이 하는 일에 대하여 더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성도여러분.
생각해 봅시다. 대답해 보세요. 바울이 가는곳마다 귀신들린 사람이 - 그것도 용하다는 점쟁이가 쫒아다니면서 '이사람 하나님의 종이다. 진짜야. 구원의 길을 전하는 사람이다' 라고 외치면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도움이 되겠습니까? 안되겠습니까? 단순하게 생각하고 대답하세요. 도움이 될거예요. '어, 하나님께서 귀신들린자를 쓰시네 하면서 대단히 좋아하실 수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18절을 봅니다.
" 18 이같이 여러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 하며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바울이 심히 괴오워했다고 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귀신들린 사람까지 자기편에서 자기들과 하는일에 대하여 명확하게 홍보(?)까지 해 주는데 / 왜 바울을 심히 괴롭다 했습니까? 오늘 바울이 괴로워한 이유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면 겉보기에 신통하게 알아 맞추는 점쟁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어떻게 대해야 하나? 하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됩니다. 또 하나 바울이 심히 괴로워한 시점이 언제였습니까? 귀신들린 여종이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외치자 마자 괴로워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날이 지나서 괴로워 했습니다. 처음에는 바울 자신도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지 않았는데 (추축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을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은 아니다' 결론이 나니 괴로워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찌 했습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명하노니 귀신아 그에게서 나오라' 했지요 그랬더니 귀신이 즉시 나왔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냈습니다. 누구의 이름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 결국 신통하게 미래까지 알아 맞춘다고 하는 그 귀신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 앞에는 별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내가 개인으로 귀신과 싸우면 질수도 있지만' 패할수도 있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싸우면 100전100승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왜 바울이 괴로워 했고 마침내 귀신을 쫓아 냈습니까? 먼저
1. 귀신이 예수를 믿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누가복음에서 볼수 있듯이 귀신들린 사람들은 영적 지혜로서 상대방의 정체를 알아 볼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너무 쉽고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닙니다. 귀신의 정체는 인간보다는 능력이 있을수 있습니다. 누가복음4장을 보면(4:31-37) 가버나음 회당에 나타났던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도 예수님을 보고 소리쳤습니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에 대하여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 퓨톤 귀신 들린여자도 바울과 그 일행의 정체을 아주 정확하게 말하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귀신들도 하나님이 누구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줄 정확히 압니다. 성도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도 잘압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분 이신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리라," 귀신들도 하나님은 한분이시고 가장 높은 분이시고. 세상을 창조 하셨으며 다스리시고 심판하실 분이라는 것 잘압니다. 그렇게 믿습니다. 그런데 귀신의 믿음은 지식적인 앎 정도이지 존재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신실한 믿음은 아닙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믿음과 삶. 믿음과 행함이 같이 있는 신실한 믿음이어야지 믿음만 있고 행함이 없는 것은 온전한 믿음이 아니지요 귀신들은 분명하게 알기는 했지만 아는 믿음까지는 있었지만 믿는대로 사는 행함이 없는 죽은지식 죽은 믿음이 었습니다. 주님은 뭐라 하셨어요?
"나더러 주여 주여 행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7:21)
지식으로 알고 믿는 정도가 아니라 그 믿음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맡기는 헌신과 순종이 따라야 비로서 온전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에 대하여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했습니다. 알뿐입니다. 떨뿐입니다. 두려워할 뿐입니다. 그런데 귀신들이 희미했다는 말 들어보셨어요? 알고 떨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믿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사랑합니다. ' '예수그리스도가 나의 구세주이십니다.' 고백합니다. 고백한다면 행동으로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고백하면서 행동하지 않는다면 진실치가 못한 것입니다. 진실치 못한 고백에 대하여 기뻐할 수가 있습니까? 진실치 못한 말로 홍보한다면 효과가 있겠습니까?
때때로 자신은 믿지도 않으면서 '하나님 은혜요, 하나님사랑'을 얘기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선거때만 되면 찾아오는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신앙 없으면서 하나님 이름 부르고, 신앙 없으면서 교회가 어떻고 하나님의 어떻고 얘기하는 것......생각해 보면 하나님 모독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신앙고백없이 하나님 운운하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제3계명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음 깊은 곳에서 신앙고백과 함께 하나님을 불러야 하는데 믿음도 없이, 고백도 없이 입술로만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이 어떻고 설령 그 말이 맞는다해도 그것은 하나님을 함부로 부르는 것일 뿐 헛되이 부르는 것 아닙니까?
● 바울은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처음부터 귀신들렸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믿지도 않는 하나님. 고백도 없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종 하면서 말하는 것이 어떻게 기쁘게 여겨지겠습니까? 성도여러분! 믿음의 고백과 행함도 언제나 함께 가야함을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2. 마귀가 예수믿는 사람, 예수 전하는 사람을 끝까지 세워 주겠습니까?
성도여러분!
칭찬받을 때가 기분이 좋습니까? 책망받을 때가 기분이 좋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망의 내용이 설혹 100% 맞는것일지라도 책망은 싫어합니다. 친한 친구라도. 가까운 사람이라도 만날 때마다 잘못된 것만 지적해 줘 보세요. 곧 멀어집니다. 곧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거짓일지라도 칭찬을 좋아합니다. 바울도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디모데후서4:3-4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私慾)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합니다.
바울도 처음에는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이 말을 듣고 가만이 있었습니다. 칭찬으로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말씀대로 '아 손도 부족하고 힘도 부족하니까 하나님께서는 귀신들린 자도 복음 전하는데 사용하시는구나' 생각했을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날 후에 바울이 심히 괴로워 했다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몇가지 좀 깊이 생각합니다. 먼저 '지극히 높은 하나님' 이란 용어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지극히 높은 하나님'이란 당시에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에게 이해 될 수 있는 말로 표현되었습니다. '지극히 높은 하나님' 호 데오스 호 휲시스토스용어는 같은 말이지만 히브리인들에게는 야훼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헬라인들에게는 제우스 신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지극히 높은 하나님' 이라고 번역이 된 호 테오스 호 휲시스토스 라는 말을 들으면 유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고 헬라인들은 제우스신을 생각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위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귀신들린 여종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외침이 결코 듣는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하는데 유익하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헬라인들 머리에는 엄뚱하게 생각이 되는데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어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 - 저들도 결국은 귀신들린 저 사람과 한패가 아닌가? 같은 부류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되지 않겠습니까?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바울 일행도 한통속이구나 오해 받기 십상입니다. 또 하나의 위험이 있습니다. 바울 일행이 복음을 전하고 옆에서 계속해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소리 지르며 다닌다면 처음에는 바울의 전하는 말에 귀를 기우릴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바울 일행에 대한 관심보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대한 관심보다, 귀신들린, 점치는, 따라다니는 여종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그랬을지 모르지요. 소도구도 잘 써야지요. 예화도 잘 써야지요 설교내용은 다 잊어버리고 예화만 생각나요? 잘못된 것입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내용보다 더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있다면 현명치 못한 일입니다.
성도여러분!
여기 결정적으로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백번 양보해도 귀신들린 여종의 외침이 맞는다고 합시다. 귀신들이 마귀가 예수 믿는 것 좋아하겠어요? 싫어하겠어요? 예수 믿는 것 권유하겠습니까? 방해하겠습니까? 퓨돈이 무슨 신이라 했습니까? 뱀 신이라 했어요. 빔이란 무엇의 상징입니까? 마귀 사탄의 상징 아닙니까?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 제일 싫어하는 존재가 마귀입니다. 교회 짓고 복음이 확장되는 것 제일 싫어하는 것? 누가? 마귀입니다. 마귀는 호시탐탐 때를 엿보고 있어요. 위해 주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쓰러지기만 기다립니다. 성전건축 위해 계속 기도해야 할 이유가 그것입니다. 때로는 성도들을 이간질시킵니다. 일하는 사람들 이간질시킵니다. 우리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교회에 기도하는 사람 많이 있잖아요 너는 안해도 돼! 너같이 힘들게 세상사는 사람, 헌금 안 해도 돼! 부자들 있는데....." 이런 생각 성령이 주신 생각이겠습니까? 아닙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절대로 신앙의 성도는 마귀사탄과 같은 편이 될 수 없습니다. 높여주는 것 같아도, 세워주는 것 같아도 아닙니다. 마지막에는 쓰러뜨리려 덤벼듭니다. 바울처럼 때로 타당한 듯 보여도 정체가 분명하면 담대하게 싸워 이겨야 합니다. 세워 주는 것처럼 하면서 방심한 틈을 타서 공격하는 마귀의 전략에 적대로 속아 넘어가서는 않됩니다.
3. 목적이 선(善)하면 반드시 수단도 선(善)해야 합니다.
바울이 귀신들린 여종이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 -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외치는데도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낸 중요한 이유는 선한 목적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선하지 않은 수단도 쓰지 않겠다고 마음에서 였습니다. 설혹 그 여종이 귀신들린 채로 복음 전파를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하더라도 복음전파에 귀신의 도움을 받은 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나라를 전하는데 귀신들린 사람의 도움을 받은 다 해서야 되겠습니까? 목적이 중요한 만큼 수단도 중요합니다. 목적이 선하다면 수단도 선해야 합니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서 아무 수단이나 동원하는 것은 옳은 삶의 태도가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여종은 악령에 사로잡혀 일하는 것이고 바울과 그 일행은 성령에 사로잡혀 일하는 것인데 어찌 서로 협력 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종이 계속 쫓아다니는 것을 계속 허락한다면 원든 원치 않든 어 느때가 되면 반드시 그 여종과 한 통속으로 불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바울이 그 여종에게서 악령을 쫓아 낸 것은 불의한 수단과는 결코 손잡을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도 여기서 귀한 교훈을 배워야합니다. 때때로 우리도 어떻게 하든지 빨리' 어떻게 하든지 많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밀어붙이려는 유혹을 받을 때가 많지 않습니까?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정당치 못한 수단이라도 사용하고 싶어하는 유혹 받을 때가 많이 있지요? 참아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정당치 못한 수단으로 일시적인 승리는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겠어요.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겠어요? 열매가 많지 못하더라도 정당한 수단을 택하라는 말씀입니다. 천천히 가더라도 옳은 길로 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 길이 아니더라도 빨리가기 만을 구하고 있습니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수단이야 어찌 되었든 목적만 이루기만하면 된다는 말이지요? "꿩 잡는게 매다" "꿩을 잡아야 매다. 목적을 성취해야 된다." 그런데 수단을 문제삼지 않는다는 얘기 아닙니까? 이런 생각들로 꽉 차니까 질서가 없어요. 질서가 없으니까 피차가 피곤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운전을 합니다. 급한 일이 생겼어요. 급하니까 차가 없는 곳으로 차를 몰아 가는데 보니까 중앙선을 넘어 반대 차선입니다. 사고가 납니다. 내가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빠를 것 같지만 아닙니다. 혼란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이렇게 혼란스러운 것은 목적은 선한데 수단이 선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마무리 하면서
성도여러분!
절대로 점쟁이 집에는 얼씬도 하지 마세요. 약령의 역사에 솔깃해지면 되겠습니까? 그 대신 성령께서 역사하시도록 기도하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귀신도 쫓겨가지 않았습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으로 문제를 이기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결코 유익을 주지 않습니다. 그럴듯해 보여도 아닙니다. 가족을 이간질시키고, 성도들을 서고 이간질시키고. 헌신하지 않도록 방해하는 것 - 마귀역사요 결코 넘어가면 안됩니다.
목적이 선한 만큼 수단도 정당해야합니다. 춘천중앙의 성도여러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문제를 이기시고 승리하시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