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2025년 06월 22일 (일요일)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시골 마을 만능 일꾼 ‘이장 목사’ 3人의 목회 이야기/ 설교 잘하려 하지 마십시오               시청역~광화문역까지…‘동성애 방파제’ 세운 남녀노소/ 조용한 부흥', 어떻게 봐야 하나               이재명 대통령 시대... 대한민국의 정체성 잊지 말아야 /'무릎 꿇고 설교하던 목사' 그대로 세상 떠났다               잿더미 위에도 교회는 세워진다 / 신대원생 59% “이혼할 수 있고 해도 무방”               기하성 제74차 정기총회 / 부교역자 청빙했더니 '지원자 없다' 83%               효과적인 설교 시간과 방법 / 교회 공적 예배에 후보 인사 시키지 말아야               美 대법"트랜스젠더 군 복무 금지 행정명령, / 일영연수원으로 옮긴 기감               카이캄, 51회 134명 목사안수식 / 4페이지 설교법               지구촌교회 담임목사에 김우준 목사 청빙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명성교회에서               빗속에서도 울려 퍼진 부활의 기쁨 / 지구촌교회 제4대 담임 후보에 한인 목회자              

  홈     ,     강대식     강문호     계강현     고신일     곽선희     곽창대     권오선     권오진     김경진     김광일     김기석     김도완     김명혁     김병삼     김삼환     김상복     김상수     김성광     김성수     김승규     김양인     김영훈     김용혁     김원효     김은호     김의식     김재곤     김정호     김종철     김진수     김진흥     김창규     김창진     김형익     김홍도     남수연     노창영     노환영     류영모     명설교(A)     명설교(B)     명설교(C)     문기태     박병은     박봉수     박신진     박요한     박일우     박진호     박한응     박형근     배영진     배의신     배진기     배혁     서명성     서진규     손재호     송기성     스데반황     신만교     신현식     안두익     안효관     양인국     양향모     염두철     오주철     오창우     옥한흠     원영대     유기성     유민용     유은호     유장춘     유평교회     이강웅     이건기     이국진     이규현     이기복     이대성     이동원     이동희     이백민     이삼규     이상호     이성우     이성희     이양덕     이영길     이영무     이우수     이윤재     이은규     이익환     이일기     이재철.박영선     이재훈     이정원     이정익     이종철     이준원     이지원     이하준     이한배     이호준     임현수     장부완     전승문     정근두     정오영     정준모     조봉희     조상호     조성노     조영식     조용기     조학환     조향록     주준태     지성래     지용수     차용철     채수일     최동규     최인근     피영민     피종진     하용조     한경직     허창수     홍문수     홍정길.임영수     홍종일     외국목사님     .     괄사(왕)     기도문     (1)새벽     새벽.금언     인물설교     상식/주일     장례,추도.심방     가정설교     영문설교     목회자료/이단     교회규약     예화     성구자료     강해설교     절기설교     창립,전도,헌신,세례.주례사     어린이.중고등부     << 창세기>>     출     레     민     신     수     삿     룻     삼상     삼하     왕상     왕하     대상     대하     스     느     에     욥     시     잠     전도     아     사     렘     애     겔     단     호     욜     암     옵     욘     미     나     합     습     학     슥     말     <<마태복음>>     막     눅     요     행     롬     고전     고후     갈     엡     빌     골     살전     살후     딤전     딤후     딛     몬     히     약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유     <<요한계시록>>     말씀별설교     제목별설교     A)행사,심방     B)행사심방     예수님행적설교     성구단어찾기     이야기성경     설교(틀)구성하기     자주사용하는본문     구약사건     신약사건     구약삽화     신약삽화  

:: 로그인 ::
 ID   
 PASS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설교작성법(여기누르면 다나옴)
  설교잘하는 방법(여기누르면 다나옴)
  김기홍 설교학
  동영상.간증자료(여기누르면 다나옴)
  교계 뉴스 ------- (전체보기)
  생활전도(여기누르면 다나옴)
  전도편지
  참고 설교(성구)
  장례식 설교(내부에 많이있음)
  웃음치유와 영업
  기타

설교내용검색

성경 찾기

네이버.다음.구글


검색



Daum


(방송)설교 교회

해외교회사이트

예배와 찬양


목회자 컬럼
  • 교회와신앙칼럼
  • 뉴스미션칼럼
  • 뉴스엔조이칼럼
  • 당당칼럼
  • 기독공보칼럼
  • 기독목회칼럼
  • 크리스천칼럼
  • 타임즈칼럼
  • 김명혁목사
  • 김형준목사
  • 양인순목사
  • 이동원목사
  • 조현삼목사
  • 밤중소리

  • Home

    은혜의 말씀을 전하라
    2002-05-31 23:06:09   read : 2873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사도행전 14:1-7



    얼마전 책 한 권이 우편으로 배달되었습니다. 그 책은 철저한 자신과의 싸움,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없이는 인생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목이 무엇인지 궁금하시죠? 「골퍼와 백만장자」(The Golfer & the Millionaire) P.G.A 투어 진출을 포기한 채 좌절의 나날을 보내던 프로골퍼가 구두닦이에서 백만장자가 된 거부를 만나서 그 사람에게서 골프를 배우는 얘기입니다. 기술을 배웠겠습니까? 골프라는 운동은 어느 수준에 이르면 10퍼센트가 기술이고 90퍼센트는 멘탈 게임이라고 합니다. 기술만 좋다고 승리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자신을 다스리고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 인생에서 마지막 승리를 노래할 수 있습니다.

    지난주 사도행전 13장 52절, 바울과 바나바의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열심히 복음을 전했는데 핍박이 심해지자 비시디아 안디옥을 떠나야 했는데 그때 바울과 바나바는 성령이 충만했다고 했습니다. '주님 일 하다가 쫓겨 가는구나' 하는 패배감이 아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는데 시련이 오고 갈등이 온다고 하더라도 쉽게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마세요. '내가 뭐가 잘못됐다고 그리 하십니까' 원망하지 마세요. 바울에게서 배우세요. 그럴수록 기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세요. 오늘 설교를 귀담아 듣다보면 그 지혜가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다음 선교지로 택한 곳은 이고니온이었습니다. 이고니온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동남쪽으로 140km 떨어진 곳으로 소아시아 지방에서 제일 오래된 도시요 옛 갈라디아 왕국의 수도였으며 그곳에는 신전과 왕국도 있었습니다. 현재는 터키에 속하여 현재 지명은 코냐(Konya)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곳에서도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하면서 전했던 말씀, 만났던 상황, 그에 대한 대응등에 있어서 전형적인 하나의 모형입니다. 오늘 바울과 바나바의 이고니온 전도에서 몇가지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1. 바울은 성령이 충만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설교/전도)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큰 핍박을 만나서 이고니온으로 오면서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했습니다. 실패했다고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성령이 충만해서 다른 마을로 가서 또 예수를 전합니다. 바울은 되어지는 모든 일이 주님께서 인도하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충만'(充滿)이란 말의 뜻을 아시지요? 가득찼다는 뜻 아닙니까? 충만이란 말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나십니까? 뭔가 흘러 넘치는 것 같은 생각이 나지 않습니까? '충만'이란 마음, 생각, 뜻이 언제나 가득찼다는 뜻입니다. 믿음 생활은 오직 충만한 가운데 해야 매사가 힘이 들지 않는 법입니다. 신앙생활하는데 할 수 없이, 억지고, 마지 못해 안할 수는 없고 하기는 해야 하고, 반신반의하면서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여기 다 같이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충만한 마음으로 예배드리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충만한 마음으로 교회에 오는 사람들은 예배시간에 늦는 법이 없어요. 늦는 사람을 보면 늘 늦어요. 특별한 사정도 한두번 이지요. 마음이 차지 않았으니 교회에 오는 것, 예배드리는 것이 신이 나겠어요? 성가대, 교회학교 교사, 속회인도자 다 마찬가지입니다. 충만함이 없이 부르는 성가, 충만함이 없이 가르치는 가르침, 충만함이 없이 하는 전도, -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피곤하기만 합니다.



    가끔 권투 중계를 봅니다. 목사가 때리는 것 좋아한다고 뭐라 하시겠지만 거기도 교훈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권투하면 대개 한 사람은 이기고 한 사람은 지게 마련입니다. 누가 이기겠습니까? 많이 때리는 사람요? 대게는 많이 때리는 사람이 이기긴 합니다. 그런데 안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수없이 때렸는데도 별 효과가 없어요. 그때 해설하는 사람이 분석해서 하는 말 있지요? '한번의 펀치에 체중을 실어서 쳐야 한다' '짧게 끊어쳐야 한다' -휘두른다고 되는 것 아니라는 말입니다. 체중을 실어서 힘껏 쳐야 K.O가 나올 것 아닙니까?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도 제발 그렇게 하시기를 권면합니다. 제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자는 것인지 조는 것인지, 하는 것인지 마는 것인지 - 본인만 피곤합니다. 즐기세요. 사랑하세요. 성령충만해서 신앙생활하세요. 바울은 박해가 와도 조금은 기죽지 않고 담대하게 전도했습니다. 성령충만해서.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만이 아닙니다. 세상사 다 마찬가지입니다. 운동을 해도 공부를 해도, 일을 해도 사랑해서, 충만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쁨이 있어요. 그래야 보람이 있어요.



    2.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반드시 믿는 자가 생겼습니다.

    "1)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에 가서도 다시 회당으로 갔습니다. 왜 회당으로 갔을까요? 핍박을 받긴 했지만 동족을 구원하겠다는 사랑의 마음이 강했습니다. 같은 민족에게 공통점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해할 수 있는 점이 서로에게 있으니 통하지 않았겠어요? 또 회당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으니 일부러 사람을 모으지 않아도 전도하기가 좋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회당에서 전도하다가 어려움을 당했는데 다시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고니온에서도 회당에 들어가 전도하니 수많은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믿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복음은 전하기만 하면 반드시 믿는 사람이 생긴다는 사실을 꼭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어디서나 전하기만 하면 반드시 믿는 사람이 나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 사실을 보아야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어디에서든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핍박이 있었지만 쫓겨났지만 다시 전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예수를 전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간에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예수였습니다. 예수를 전하지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6:14에서 고백합니다.

    (표준새번역) "그런데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울에게 정말 자랑할 것이 없었습니까? 지성인 중에 지성인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어요. 신약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바울에 의해 씌여졌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뭐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예수 외에는 할말이 없다' 이 말 아닙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할말이 많습니까? 세상에서 얼마나 할 일들이 많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까? 그런데 인생을 다 살고 마지막에서야 여러분이 한 일 가운데 신앙생활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 말 가운데 예수 전한 것이 가장 귀했다는 것을 깨닫는 데서야 되겠습니까? 바울이 예수님을 전하고 싶어했던 열심을 성도 여러분도 느끼고 품게 되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는 바울은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를 전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듣고 감동받고 예수 믿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전하는 것 때문에 매도 맞고, 핍박도 받았습니다. 그래도 예수 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전도하다보면, 전도하는 것을 잘 들어주면 전도 할만 한데 처음부터 따지고 면박주면 전도하고 푼 생각이 나겠습니까? 전도폭발훈련을 가면 반드시 실습을 나갑니다. 훈련받고, 복음제시 암기하고, 기도하고 그 날은 남산에 가서 저희를 내려 놓았습니다. 훈련생은 목사고 뒤에서 배운대로 제대로 하나 못하나 지켜보는 사람은 평신도 집사였습니다. 드디어 모여있는 노인분들에게 갔습니다. 가서 복음제시 과정으로 가는데 한 사람이 계속 딴소리를 합니다. 목사 얘기하면 듣는 사람만 이제까지 만났지 그런 사람 별로 만나지를 못했으니 얼마나 당황이 되었겠습니까? 뒤에서 지켜보는 집사는 빙긋빙긋 웃기만 하고 얼마나 땀흘렸는지 어떻게 전도했는지 몰라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전해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1:16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 로다"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 때문에 핍박을 받고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쫓겨나고 이고니온으로 왔지만 똑같은 방법, 똑 같은 내용으로 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전하니까 어찌 되었습니까? 허다한 무리가 믿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복음, 예수가 여러분 마음에도 뜨겁게 살아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기죽지 않고 담대히 전하는 바울의 열정이 여러분 마음 속에도 생생하게 살아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에서라도, 비록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지라도 담대히 전하기만 하면 반드시 믿는 사람이 생긴다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전하는 사람도 참으로 중요하지만 복음 자체가 능력이 있어 사람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능력입니다. 어떤 사람도 복음과 제대로 만나기만 하면 변화됩니다. 반드시 변화됩니다.



    3. 복음을 전하다 보면 반드시 핍박자도 만난다는 사실입니다.

    "2)그러나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먼저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핍박은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 입니까? 핍박은 결코 좋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자청해서 핍박을 받을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핍박을 통해 복음을 다른 곳에 전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루살렘에 핍박이 몰아 닥치자 복음은 안디옥으로 갔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 박해가 오자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을 가지고 이고니온으로 왔습니다. 결과적으로 박해 때문에 이고니온에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성도 여러분.

    복음 전하다가, 신앙생활하다가 박해가 오더라도 너무 속상해 하지 마시고 '아, 하나님의 다른 뜻이 계신가 보구나' 생각하며 더 기도하시고 이기시기 바랍니다.

    2절에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은 '설득되지 않은 유대인들'로 번역하는 것이 원문에 가깝습니다. 복음을 전했는데 모두가 믿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안 믿는자,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된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자기들만 믿지 않는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이방사람들을 선동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나쁜 감정을 품게 했습니다. 여러분 자신에 대해 나쁜 감정을 품고 있는 사람과 자리를 같이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고 괴로운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바울과 바나바는 어떻게 했습니까? 3절을 같이 봅니다.

    "3)두 사도가 오래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4. 바울이 반대자 앞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했습니까?

    (1) 함께 있었습니다.

    핍박받자 마자 금방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들과 오랫동안 함께 머물렀습니다.

    성도 여러분.

    어려울 때는 같이 있어만 줘도 힘이 되지 않습니까? 표현할 수 있는 슬픔을 당했어요. 참 억울하고 힘든 일을 당했어요. 누구에게 제대로 얘기할 수도 없어요. 그럴 때 누군가가 말없이 옆에 있어만 줘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라고 보내실 때 어떻게 하셨어요? '둘씩 짝지어서, 함께 보냈습니다' 3절에도 '두 사도'가 같이 있었어요. 그 두 사도가 이고니온에서 주를 믿게 된 사람들과 함께 오랫동안 있었어요. 처음 믿게 되어 뭐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바울과 바나바가 위험속에서도 쫓겨가듯 도망하지 않고 오랫동안 함께 머물렀으니 얼마나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힘이 되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특별히 문제와 시련 속에서 힘들어 하는 형제, 자매와 함께 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했습니다.

    여기 참으로 귀한 믿음의 지혜가 있습니다. 핍박중에 바울과 바나바가 어떤 자세를 취했느냐? 하는 것을 보면 오늘날 시련과 갈등 속에 있는 성도들이 어떻게 문제를 극복해야 하는 지를 보여줍니다.

    두 사도는 박해 속에서도 담대히 말씀을 전했습니다. 문제는 그 담대함이 어디에서 왔느냐 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보기보다는 그 순간에도 주님을 보았습니다. 누가? 바울과 바나바. 만일 바울과 바나바가 핍박을 받으면서 "저 사람들은 왜 안믿을까? 믿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은데, 믿지 않는 것까지는 참을 만한데 왜 이방인들을 선동하여 모략하고 중상할까?'" 바울과 바나바가 끈질기게 선동하고 박해하는 그 무리들만 보았다면 그들도 사람인데 용기를 잃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보기보다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점을 분명하고 깊이있게 생각해야 합니다.

    스데반이 순교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기를 돌로 치려는 유대인들을 보면서 - '네가 그럴수가 있느냐? 얼마전까지도 함께 하던 친구였는데, 네가 나를 돌로쳐' - 이런 생각을 했다면 얼마나 낙심이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스데반은 누가 나를 돌을 들고 치는지 상관치 않았습니다. 어찌 했습니까?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나안 정탐에 가서 볼 것 다 보았습니다. 땅도 보았습니다. 거대한 원주민도 보았습니다. 견고한 성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보긴 보았지만 그보다 약속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이 더 크게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분명한데 원주민과 성읍이 문제겠습니까? 문제는 원주민이 강하고 성읍이 견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편을 들어주시느냐? 아니냐?'가 문제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신14:8)

    여호수아와 하나님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대적하는 원주님을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찌 되었습니까? 결국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하늘을 보았어요. 하나님을 보았어요.

    성도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이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살다보면 때로 고난도 당합니다. 시련도 당합니다. 그런데 어떤 고난과 시련이든 그 자체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시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내가 뭐가 잘못되었나? 저 사람은 뭐 잘한 것이 있나? 그럴 수가 있나? 백 번 양보해도 이것은 내 잘못 일수만은 없어' 이런 생각하게 되면 결국 쓰러집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복음성가 잊으셨어요? 주님을 보아야 합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성도 여러분.

    주님을 보세요 하나님을 보세요. 담대하게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3)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셨습니다.

    담대하게 주의 말씀을 전했을 때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습니다. 꽉찬 믿음으로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니 하나님께서 사도들에게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셨습니다. 꽉찬 믿음으로 담대하게 전하면 지금도 표적과 기사가 나타납니다. 사실 표적과 기사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는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고 함께 일하시고 함께 역사하신다는 증거아닙니까? 그러니까 얼마나 힘이 나겠습니까? 이적은 언제나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도 일어납니다.



    (4)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주의 깊게 보면 여기도 귀한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 은혜의 말씀'은 '나에 대한 은혜' 조금 더 의미를 분명히 한다면 '내게 주신 은혜'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면서 자신에게 주신 은혜도 함께 증거했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에게 주신 은혜는 무엇일까요? 본문에서는 뭐라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지만 짐작키에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울에게만 있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쉽게 말하면 받은 바 은혜에 대한 간증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예수를 전할 때/복음을 전할 때 예수와 함께 자기가 받은 바 은혜에 대한 간증이 있으면 더 효과적이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 - 예수 믿는 성도라면 '내게 주신 은혜' '자신만이 받은 바 은혜' '자신있게 나누고 싶은 간증'은 하나씩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증거리, 나만 받은 은혜가 있으십니까? 이 은혜가 있어야 신앙생활이 힘이 있어요. 이 은혜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힘이 있게 됨을 아시기 바랍니다.



    5. 복음을 전한 결과

    마지막으로 갑니다. 먼저 4절 5절을 함께 봅니다.

    "4)그 성내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좇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좇는 자도 있는지라

    5)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복음을 전하자 온 동네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나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한쪽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빛과 어두움, 사랑과 미움, 찬성과 반대, 신앙과 불신앙은 언제나 상존합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여와서 이제 노골적으로 바울과 바나바를 모욕하고 도로 치려합니다. 은밀하던 배척이 노골적으로 대규모 박해로 변했습니다.

    이때 바울과 바나바는 어떻게 합니까? 6절과 7절을 봅니다.

    "6)저희가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 및 그 근방으로 가서 7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바울과 바나바는 그냥 박해를 받고 있지 않았습니다. 공연히 피할 수 있는 고난을 그냥 당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비가 쏟아지는데 미련스럽게 맞고 있다가 감기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비를 피하는 것이 현명한 일 아닙니까? 돼지나 개에게 진주를 던져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물론 돼지에 비유될 인생은 없겠지만 돼지보다 추하게 사는 인생은 있어요. 계속 거부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시간과 정력의 낭비일 뿐일 때가 있지 않겠습니까?

    바울과 바나바는 다시 다른 곳으로 가서도 '거기서도 복음을 전하니라' - 복음을 전했습니다. 계속 뿌렸습니다. 도망 다니면서도 뿌렸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뿌리면 반드시 거두게 되니까.



    <정리>

    마지막으로 이야기 하나 하면서 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순정적인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나와 결혼해주십시오. 답장이 없으면 마음이 없거나 다른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 젊은이를 좋아하던 여자도 곧 답장을 썼습니다. "좋습니다" 그 편지를 오빠에게 부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났는데도 남자에게서 소식이 없습니다. 어느날 오빠의 외투 주머니에서 빛이 바랜 편지가 발견되었습니다. 오빠가 깜빡 잊고 우체통에 넣지를 않았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성도 여러분,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편지를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지금까지도 까맣게 잊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 일에 바빠 주머니에 있는 편지를 깜빡 잊어 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주님 사랑, 주님 은혜 증거하며 사시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독자 설교

    설교작성하기 (3년 후에는 자동삭제됩니다.)
    이 름 E-mail
    제 목



    프린트하기 기사메일보내기 독자설교


    이전으로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감사가 넘치게 하라
    탁월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되라
    삶의 균형을 이루라!
    마라에서 엘림으로
    부흥을 확산시키라!
    부흥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되라!
    흔들리지 않는 신앙인이 되라
    부흥을 경험하라
    부흥을 사모하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라
    섬기기를 즐겨하라
    욕망을 다스리라
    평생 사명을 가지라!
    의미 있는 삶이 되게 하라
     | Home | 사이트맵 | 설교검색 | 설교전체보기 | 설교쓰기 |___ |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 김효자 /사업자번호831-29-0156/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 /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4394-4414 /E-mail:v919@naver.com   Contact Web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