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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을 통해서
    2002-05-31 23:48:59   read : 2945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성경구절 : 행11: 22-26



    미국의 한 작은 도시, 통나무집에 이런 푯말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이 집은 작습니다. 그러나 이 집은 위대한 집입니다.’ 이 집의 후손들에 의해서 미국은 큰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한때 이 집의 주인이었던 조나단 에드워드와 사라 에드워드, 그리고 이 가정에서 자란 12명의 자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중 한 명은 일찍 죽고 나머지 11명은 건강하게 자라서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5대에 걸쳐서 이 가계를 조사해 보았더니 1명의 부통령, 3명의 주지사, 33명의판사, 116명의 목사 및 선교사, 75명의 사업가, 25명의 발명가, 66명의 교수, 68명의 의사, 82명의 고위관리를 배출했다고 합니다. 사회적 성공을 성공의 단순한 척도로 볼 수는 없지만 한 가문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을 이렇듯 많이 배출했다는 것은 예사로이 보고 지나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미국 사람들은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 부부에 대해서 훌륭한 부부이면서 훌륭한 교사였다고 그들의 교육 방법의 우수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자라나기까지 가장 중요한 요인이 교육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 가정의 미래는 자녀의 앞길에 달려 있고, 한 나라의 운명은 그 나라의 청년들 모습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나라의 모습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옛날에는 가정이나 학교 그리고 교회에서의 가르침이 전부였는데, 요즘에는 다른 곳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고 배우고 있는 현실입니다. 교육의 전반적인 위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내 아이만 잘 가르치고 내 가정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내 아이를 아무리 잘 가르친다 할지라도 다른 아이에 의해 좋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되면 잘못된 길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인식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영향력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학교의 교육도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대를 바라보면서 자라나는 저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어떻게 교육해야 저들의 삶이 더 복되고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고민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초대교회의 역사를 열어 가시면서, 그 중에서도 한 사람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그 한 사람 통해서 역사 속에 쓰임 받는 사람을 어떻게 만들어 가시는지 보여주시며, 오늘 어떻게 자녀 교육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입술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서 함께 나누지 않으면 교육의 영향력은 없어져 가는 시대 속에서 하나님은 바나바를 통해 그 사람 속에 담겨진 아름다운 양육의 비밀들을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주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바나바라는 사람은 신약성경에서 그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성경은 이 사람에 대해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 사람과 함께 등장하는 바울이 신약성경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기독 교육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신학자요 선교사요 그리고 목회자였던 바울이, 바울 되게 했던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다는 사실입니다. 바나바가 없는 사울은 생각해 볼 수 없습니다. 바나바에게 있어 어떤 모습이 이 사울을 바울로 변하게 되는 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단 말입니까? 오늘 우리가 고민하는 우리의 자녀와 청년들이 어떻게 하면 저들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사람들로 만들어 갈 수 있단 말입니까? 바로 바나바의 삶을 통해서 바로 바울을 바라볼 수 있고 바로 우리의 삶을 통해서 우리의 자녀들과 우리의 미래들을 우리는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을 바울 되게 했던 바나바의 삶, 그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었던 사람이라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즉, 눈앞에 있는 현실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볼 줄 아는 영적인 눈이 열려진 사람이었다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23절)

    초대교회는 놀라운 부흥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예수라는 사람, 그 청년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난 다음 부활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많은 종교학자들과 사람들은 스쳐 지나가는 한 사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폭발적인 영향력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꺼번에 3000명이나 되는 사람이 회개를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고, 그들은 자기의 가진 것을 서로 나누어주며 서로 기도하며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놀라운 감격을 날마다 날마다 맛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예루살렘 교회에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을 잡아 죽이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특별히 사울을 통해서 박해는 점점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었던 그리고 신실했던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박해는 그들로 도무지 예루살렘 교회에 머물러 있을 수 없게 했습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은 흩어졌습니다. 갑자기 부흥하던 교회, 아름다운 공동체가 갑자기 흩어지고 교회가 흔들거리기 시작할 때 이 지도자들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웠겠습니까? 그들은 흩어져서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들려오는 소식이 있습니다. 안디옥이라고 하는 저 멀리까지 가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는 염려와 근심과 더불어 바나바라는 사람을 파송하게 됩니다. 안디옥에 간 바나바는 근심스러운 모습으로 갔을 것입니다. 저들은 ‘함께 동거 동락하다가 아무런 근거도 없는 그 곳, 도와줄 사람도 없고 쫓김을 당해서 간 곳, 외롭고 고독한 그들이 간 현장은 어떤 곳일까?’ 걱정하며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염려되는 현실은 그대로라 할지라도, 그 너머에 그들을 도우시고 붙드시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섭리를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박해할 때 히브리파 유대인이 있었고, 헬라파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파 유대인을 박해한 것이 아니라, 헬라파 유대인들이 박해의 주 대상이 되었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교회에 머물 수 있었지만 헬라파 유대인들은 견딜 수 없어서 다 흩어졌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이 걱정을 해서 가보았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은 이미 헬라 문화의 영향 아래 있었던 사람들이라 낯선 곳을 가도 문화적인 이질감이 없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언어의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가서도 잘 동화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동시에 흩어진 그들은 신앙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불붙는 신앙을 가지고 흩어진 지역에서 복음을 증거 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바나바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위한 하나님의 역사를 열어 가시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용기를 가졌습니다. 힘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흩어져 있는 외롭고 고독한 사람들 그러면서도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비전이 있고 하나님의 꿈이 있고 이방인을 위한 여러분의 쓰임이 있음을 알려주며 분명히 약해지지 말고 담대하게 믿음 가운데 거하라고 권면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난과 어려움을 많이 겪게 됩니다. 고난과 어려움의 현실 속에서 낙담하고 절망하기도 합니다. 신앙과 성경의 역사를 바라볼 때 고난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는 놀라운 장이 되었던걸 아십니까? 오늘 이 자리 여러분이 있기까지 여러분은 고난이라는 현장을 통과하여 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의 마지막이 아닙니다. 고난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서 베푸시는 놀라운 은혜를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은 현실의 고통 앞에서 낙담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영적인 눈을 가진 사람만이 영적인 사람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세상의 언어로 표현하면 안목이라고 합니다. 믿음 안에서 표현하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볼 줄 아는 영안 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일을 읽을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없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이야기만 들려줄 것입니다.

    맹자의 제자가 관리로 등용되게 되었습니다. 그의 제자들이 맹자에게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 이 제자가 관리로 등용된 것을 기뻐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관리로 추천하셨습니까? 그에게 덕망이 있습니까?” “아니다” “그러면 그에게 통솔력이 있습니까?” “아니다” “그렇다면 그에게 놀라운 지식이 있습니까?” “아니다” “그렇다면 왜 추천하셨습니까?” “그 사람에게는 미래를 볼 줄 아는 안목이 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을 생각해 보십시오. 가나안 땅을 12명이 보고 왔습니다. 10명은 그 땅의 현실만을 이야기했고 2명은 그 땅의 현실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현실을 이야기했던 그들은 원망하고 불평하며 그 땅에서 죽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바라본 사람은 광야의 길을 가면서도 희망을 노래했고 어려운 문제 앞에서 낙담하지 않고 이겨나갈 수 있는 꿈을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펄벅 여사를 잘 아실 줄 압니다. 펄벅 여사는 ‘어머니의 초상’ 이라는 작품 속에서 자기 어머니 메리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22살에 결혼하시자말자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미지의 대륙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녀는 날마다 직면하는 굶주림과 생명의 위협 속에서 7명의 아이를 낳으셨는데 그 중 4명은 병들어 그녀 앞에서 죽어갔다. 그녀는 가난과 질병, 고독과 박해와 싸우면서 눈물의 골짜기를 헤쳐 나갔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는 어머니의 고통을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우리들을 조금이라도 즐겁게 해주시려 하셨고 고생을 모르게 하시려고 쾌활하게 노래를 불러 주었고 잡지 같은데서 재미있는 그림을 찾으면 오려 두었다가 우리들의 방을 장식해 주셨다.’ 미지의 땅 중국에서 그토록 아픔과 고통을 당하면서 그 어려움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어려움 너머에 자신과 자신의 가정에 베푸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비전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펄벅 여사의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시편 84편 5-6절 말씀을 철저하게 암송시켰다고 합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이 되게 하며 이른 비로 은택을 입히나이다.”

    펄벅 여사의 어머니가 고통과 아픔 속에서도 자녀들에게 희망을 노래 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입니까? 고난과 역경 너머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고 찬양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만이 찬양할 수 있고 소망을 줄 수 있고 사람을 양육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교회와 가정만이 바로 그러한 사람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만을 한탄하며 어려움과 고통만을 이야기 할 때 자녀들에게 꿈을 줄 수 있을까요? 펄벅 여사와 같이 세계적인 문학가를 기를 수 있을까요?

    지난 주 우리 교회는 도로변에 있는 땅을 사게 되었습니다. 재정적인 염려가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염려 중에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우리교회가 예산이 많이 없습니다. 40억 예산을 세웠지만 헌금하던 많은 분들도 교회를 떠났고, 최선을 다해도 여력이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돈이 있어도 구입할 수 없는 땅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지 않니? 우리의 지경을 넓히시기 위해 주신 비전과 꿈의 땅이라고 생각해 본적은 없니? 그렇게 재정 문제가 염려되면 내가 도로 거두어 갈께.”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땅을 우리에게서 거두어 가시면 우리 재정 문제는 염려가 없습니다. 이것이 맞는다고 생각하십니까? 돈이 없다고 이야기하면 듣는 우리 어린이들, 청년들, 교인들은 뭐라 생각하겠습니까? 여기에 희망이 있을까요? 생각을 바꿔서, 이제 우리는 도로변에 나가는 겁니다. 이제 우리가 도로변의 문화를 책임져야 합니다.

    저는 새벽기도에 오면서 외대 앞에 3시나 4시에 술을 먹고 흥청거리는 남녀의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점점 잘못되어 가는 대학 문화의 모습들과 도로변에서 우리 자녀들을 유혹하는 수많은 상점들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땅을 허락하시고 이 땅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교의 비전과 젊은이들의 문화를 바꾸어 나가고 하나님 앞에 훈련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꿈을 이야기 할 수 있다면 그 땅은 분명 우리에게 선물의 땅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바나바가 가서 친척도 없고 어려움이 많은 그들에게 현실적인 고통만 이야기했다면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볼 수 있었을까요? 그는 낙담하지 않고 안디옥 교회를 통해서 이방선교의 전초기지를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광대한 뜻과 비전이 있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거기에서 위대한 인물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무디의 어머니나 찰스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 여사가 자녀를 기를 때 고통과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에도 그들의 어려움을 한번도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 고통을 통해서 베풀어 주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할 때 그들은 꿈을 먹고 자랐습니다. 꿈을 먹고 자랄 때 위대한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동안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북에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피난민들인 선조들이 이 땅에 내려와서 외롭고 힘든 현실에 머물러 있지 않고,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했던 몇 몇 분들에 의해 시작했던 이 교회가 오늘 우리가 예배드리는 처소가 되었다는 놀라운 사실 다시 되새겨 봅니다. 꿈대로 됩니다. 그 비전과 꿈이 있는 곳에 우리의 자녀들은 소망의 사람으로 양육되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주님은 바나바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바나바는 격려와 위로의 사람이며 착하고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24절) 바나바의 본명은 요셉입니다. 바나바의 원래의 뜻은 ‘위로의 아들’ 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바나바에게만 가면 힘을 얻습니다. 공동체가 더욱 아름다워 집니다. 바나바는 가난하고 어려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재산을 모두 팔아 고아와 과부를 돕는데 자기의 삶을 던졌습니다. 사울이라는 사람이 회심을 했을 때 그를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사울을 격려하고 그를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고향 다소에 있는 사울을 찾아가 그를 격려하고 위로하고 사역의 현장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위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사람의 생애를 바꿉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 여행을 떠날 때에 마가라는 사람이 동행했습니다. 그런데 마가가 중간에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바울이 굉장히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다음 전도 여행을 떠날 때에 바나바가 다시 마가를 데려가려 할 때에 바울은 반대하고 서로 헤어지는 계기가 됩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도망자 마가를 격려하고 위로하여 결국 순교자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지난주 제가 섬겼던 무학교회의 선임 장로님 한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제가 동안 교회에 간 것을 교인들이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마 무학 교회에 부임하고 목사 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첫 아이를 잃고 아버님이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게 되었던 절망 중에 있었을 때, 교회에서 준 위로와 격려를 통해 하나씩 하나씩 딛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격려와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격려는 죽은 사람을 살립니다. 병든 사람을 새롭게 만듭니다. 좌절한 사람에게 새로운 힘을 줍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녀를 격려해야 됩니다. 위로해야 됩니다. 그렇지만 끝까지 위로하고 격려해야 되는데, 처음에는 위로하는 것 같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방의 마음속에 못을 박는 말들이 오늘 우리 가정과 교회에서 했던 모습은 아닌가요? 여러분 우리가 격려 받고 위로 받던 곳에서 삶이 바뀌어 집니다. 그곳에 점점 머물고 싶어집니다.

    현대인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단어가 있는데 맞춰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누구나 다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성을 마비시키고 감성을 혼란케 하며 의지를 무력화시킵니다. 기억력을 둔화시키고 사고력을 감퇴시키며 삶의 효율성을 떨어지게 만듭니다. 이것은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슬픔을 가중시키며 불안을 증대시킵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적대적이고 위험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방어현상으로 고혈압 심장마비 위궤양 불면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모든 질병의 70%를 이것이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맞습니다. ‘스트레스’입니다.

    요즈음 유치원 어린이들도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 마음에 상처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부모님들도 남편들도 청년들도 위로와 격려를 받기를 원합니다.

    H. 스티브 글렌이라는 사람은 난독증이란 시신경 장애가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글을 한 자 한 자 읽지 못합니다. 글의 형태를 사진을 찍듯이 받아드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늦겠습니까? 이 사람의 생활기록부에는 저능아, 학습부진아란 말이 항상 따라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만남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하디’라는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스스로 ‘나는 저능아야’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의 선생님 스티브는 “너는 저능아가 아니야. 너는 보통아이들과 조금 다를 뿐이야!”라고 말씀해 주셨고, 그는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자기를 가르치던 선생님이 말기 암으로 뉴욕의 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무려 700여명이나 되는 사람이 문병을 왔습니다. 병원당국에서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문병 온 사람 중에 미국 상원의원이 3명, 주 의회 의원이 12명 기업체와 회사 대표들이 즐비하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통적인 것은 그곳에 온 3/4가 이 하디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 저능아란 별명이 따라 다녔던 사람들입니다.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인생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시대의 바나바가 되지 않는다면, 가정과 교회 공동체에서 위로와 사랑의 전달자가 아니라 상처와 아픔의 전달자로 산다면, 이 세상은 위로 얻을 곳이 아무데도 없습니다. 우리의 위대한 인물들, 하나님의 역사 무대에 아름답게 쓰이는 인물들, 이 역사를 책임질 지도자가 어디에서 나옵니까? 격려와 위로의 분위기 속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 때 위로와 격려가 가장 필요할 때, 오히려 가장 많은 비난을 받지 않습니까? 요즘 김대통령께서 자녀들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울 겁니다.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일은 밝히되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셋째, 바나바는 지도자를 찾고 지도자를 세우는 놀라운 은사가 있었고 지도자가 서야 될 때에 분명히 세워지는 겸손함과 진실함이 있었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25-26절) 바나바가 바울을 찾으러 갈 때 바울은 잊혀진 존재였습니다. 바울은 자기 고향 다소에 가서 11년 동안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이방 선교를 위해서 세우신 교회의 목적을 바라보며 합당한 사람이 누구일까 하고 찾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찾지 않던 잊혀진 사람 바울을 찾기 위해 다소까지 가게 됩니다. 그를 격려하고 설득해서 안디옥 교회로 오게 됩니다. 바나바는 그를 교사의 위치에서 가르치게 만듭니다. 지도자의 위치에 세워주는 겁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처음에는 바나바와 바울 이렇게 나옵니다. 조금 지나면 ‘바울과 바나바’, ‘바나바와 바울’ 이렇게 섞여서 나옵니다. 조금 더 지나면 ‘바울과 바나바’ 나오다가 더 지나면 바나바의 이름은 빠집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 종이 하나님의 선교와 목적을 위해 세워야할 자리에 분명히 서게 만드는 그 겸손함, 지도자를 발탁하는 놀라운 용기, 자신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질 때를 분명히 알고 하나님의 역사하심 앞에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는 삶의 모습 거기에 위대한 인물이 자라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백만장자였던 카네기는 평범한 사람 43명을 고용해서 지도자 훈련을 시켰다고 합니다. “인재 개발은 금을 캐는 것과 같습니다. 금광에서 1온스의 금을 캐기 위해 몇 되 분의 흙을 파냅니다. 금광에서 금을 찾지 흙을 찾지 않습니다. 그러나 금을 찾기 위해서 흙을 파냅니다. 그것은 좋은 지도자를 개발하는 것과 같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잭 웰치라는 제너럴 일렉트릭 회사의 회장을 역임했던 경영학의 귀재요, 경영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교과서처럼 반드시 거쳐야하는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제너럴 일레트릭 회사에는 전통이 있습니다. 회장이 되고 나면 그 다음 작업이 후계자를 기르는 일입니다. 회장이 된지 얼마 안 되어서 후계자를 오랫동안 기르고 경험시키고 자기가 은퇴하고 난 다음 그 후계자들이 회사를 경영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기업이 굉장히 어려움을 격을 때 제너럴 일렉트릭회사는 구조조정을 강도 있게 하면서도, 세계적인 회사로 계속 유지될 수 있었던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과 청년들, 교회 속에서 지도자를 찾고 노력하는 일 속에 지도자는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미 나이가 먹어서 지도자 되는 것을 틀렸다고 생각하시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연세 드신 어른들 속에서 필요한 지도력을 우리 교회가 함께 찾고 세워드리고 함께 공유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다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찾고 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존 맥스웰이라는 분은 지도자가 세워지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 믿어 주는 것(believe), 둘째 격려해 주는 것, 즉 서로 삶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것(share), 셋째 신뢰하는 것(trust)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링컨과 링컨 부인이 건어물상에 갔습니다. 평소에 늘 하는 것처럼 링컨부인이 짜증과 신경질을 낼 때 건어물상의 주인이 항의를 했습니다. 그때 링컨은 웃으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보시오, 나는 15년 동안 참았는데 당신은 5분도 못 참소?”

    좋은 지도자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작업입니다. 우리의 인내가 그만큼 필요합니다. 때로는 5년 아니면 10년 아주 오랫동안 기도의 눈물을 쏟아 부어야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나바처럼 우리가 그렇게 산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가정, 우리가 속해있는 직장, 교회에서 하나님께서 마음껏 쓰실 놀라운 지도자들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이제는 교육 기관에만 의지해야할 때는 지났습니다. 단순히 내가 무엇을 가르쳐야할 때는 지났습니다. 우리의 삶이 바나바의 모습을 닮지 않고서는 새로운 지도자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한반도의 역사를 새롭게 만드실, 세계선교의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 가실 위대한 지도자를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 내실 것을 믿고, 믿음 가운데 걸어 나갈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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