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터어키말로 인사를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멜하바 당신을 사랑합니다. - 세니 세비요름
오늘 본문 로마서 8장 28절 말씀은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좋고 안 좋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여기서 좋다는 말은 특별히 이 말씀을 통해서 많은 은혜를 받고 이 말씀을 통해서 많은 위로와 힘을 얻는다는 그런 말입니다. 특별히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이 말씀은 저에게 많은 힘과 용기를 주었고 또 다시 달려갈 길을 달려 갈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로마서 8장 전체의 내용이 그렇듯이 본문 로마서8:28절의 말씀도 누가 하나님의 사람인가?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무엇인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로마서 8:23절을 말할 때 두 개의 고사성어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첫째는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입니다. 여러분! 새옹지마라는 말의 유래를 아십니까? 옛날 한 나라에 새옹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 노인의 말이 국경을 넘어 호나라로 갔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몹시 근심하니까 노인은 말하기를 ‘이러다가 행운이 생길지 모르지 않소’라고 아주 태연하게 말을 했습니다. 과연 몇 달 후에 그 말이 돌아왔는데 많은 말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축하를 하니까 노인이 하는 말이 ‘이러다가 화근이 될지 모르지 않소’ 라고 했습니다. 과연 얼마 후에 그 아들이 새로 들어온 말을 타다가 떨어져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위로하니까 또 노인은 ‘천만에 어쩌면 이 일이 행운이 될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1년 후 호족들이 국경을 넘어 쳐들어 옴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활을 메고 전쟁터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90%가 그 싸움에서 전사했습니다. 그런데 이 노인의 아들은 절름발이어서 전쟁에 나가지 않음으로 무사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인간만사는 새옹지마라는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또 하나의 고사성어는 전화위복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화가 변하여 복이 된다는 말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두 개의 고사성어를 가지고 이 본문을 설명합니다. 어떻게 보면 본문을 설명하는데 꼭 맞는 말 같습니다. 그러나 이 고사성어는 운명론적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을 말하고 오늘 본문은 운명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적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이 말씀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적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 누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누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롬8장은 계속해서 누가 하나님의 사람인가?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자입니다. 또 누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인가? 아니면 이 세상에 속한 자인가? 무엇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평상시때는 잘 모릅니다. 언제 알 수 있습니까?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고난을 만났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또 언제 압니까? 유혹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월드컵 경기가 열릴 때 특별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과 맞물렸을 때 예배를 다음으로 미루고 축구를 보느냐? 아니면 그 유혹을 물리치고 예배를 드리느냐? 금방알 수 있습니다. 영국의 성공회는 축구중계로 성도들이 예배에 참석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영국이 경기를 하는 날에는 자유롭게 예배시간을 변경하여 드려도 된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 누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연이 되어진 사건이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지 않았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그의 구원이 시작되었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심으로 출애굽의 역사가 시작되었듯이 저와 여러분의 구원도 부르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르심을 우리의 갈망과 소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 부르심을 하늘의 부르심이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서3:1절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3:1)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육체의 연약함을 통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의 실패를 통하여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의 아픔을 통하여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어떤 분은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어떤 형태로 부르심을 받았든지간에 우리가 이 자리에 나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와 인새의 주인으로 고백하며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하늘의 거룩한 부르심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옆 사람에게 인사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부르심에 대하여는 다음 시간에도 계속하여 말씀을 나누고자합니다. 아무튼 누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성도 여러분!
당신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설암에 걸려 혀를 절단해야 하는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의사가 혀를 절단하기 전에 물었습니다. 혀를 절단하게 되면 이제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오늘 당신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지금 하십시오. 그때 그 자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 세상의 무엇과도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그 주님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 다같이 이 사랑을 노래함으로 주님을 찬양합시다.
사랑합니다. 나를 자녀 삼으신 주
내 부르짖음 들으시고 감싸 주시는
영원히 주 찬양합니다. 내 삶을 다해
□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① 선을 이룬다는 것은?
그러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할 때 선을 이룬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기서 선이라는 것은 ‘아가돈’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세상에서의 성공이나 만사형통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선을 이룬다는 말은 ‘값진 열매를 맺게 한다.’ ‘옳고 유용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을 가장 유익하게 만들고 가장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마침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유익하게 만드십니다. 가장 우리의 영혼에 유익된 방향으로 인도하십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② 합력해서라는 말은?
여기 합력해서라는 말은 ‘쉬네르게오’라는 말인데 이 말은 ‘함께 일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어쩌다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배후에서 함께 일을 행하심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유용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배후에서 나와 함께 일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배후에서 일을 행하심으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수 있다”는 말을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운이 좋아서 때를 잘 만나서 저절로 그렇게 되어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결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운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때를 잘 만나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배후에서 그렇게 행하심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유익하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자의 모든 배후에서 그들과 함께 일하심으로 모든 것이 그 영혼에 유익되는 방향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무엇이 내 영혼에 유익되고 복이 되는지 잘 모르지만 하나님은 무엇이 내 영혼에 유익이 되는지 너무나 잘 아십니다.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삶의 배후에서 함께 일하심으로 모든 것이 유익되게 하십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함께 행하시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도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는 일을 생각했습니다.(롬8:26-27)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사 우리가 빌 바를 알지 못할 때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우리가 빌 바를 알지 못할 때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기도하십니다.
롬8:34절을 볼까요?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34)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이런 주님의 기도가 있기에 성령님의 기도가 있기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연이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③ 모든 것이란?
그러면 여기서 모든 것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여기서 모든 어떤 특별한 사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경험하는 인생의 모든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성공만이 아니라 실패도 경험합니다. 진학에 실패하기도 하고 결혼에 실패하기도하고 사업에 실패하기도합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의 아픔도 경험합니다. 핍박도 받고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유혹을 받아 넘어지기도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마지막에는 죽음을 경험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우리의 삶 속에도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요셉의 경우를 한 번 살펴 보십시오.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어린 나이에 형들에 의해 종으로 팔려 가는 요셉을 상상해 보십시오.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신임을 얻어 가정의 총무로 섬기던 중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유혹을 물리친 것 때문에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바로왕의 꿈을 해몽하여 줌으로 일약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형들에게 배신을 당하였습니다. 그래서 노예아닌 노예가 되었고 죄수 아닌 죄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인생의 배후에서 요셉의 생애를 붙드시고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요셉은 그 하나님의 섭리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식량을 구하러 왔던 형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두려워할 때에 그는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45:5)
한 신실한 목재소직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40대 초반에 회사에서 청천벽력과 같은 해고통보를 받았습니다. 극심한 불황으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게 되자 회사측에서 감량경영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 실직자가 된 중년 남성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해고에 담긴 진정한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는 건전한 사람들이 묵을 수 있는 여관을 시작하라는 음성을 듣고 저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세계적인 사업망을 거느린 호텔 ‘홀레데이 인’을 창업한 케몬스 윌슨입니다. 그는 눈 앞에 해고통지서를 놓고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았습니다. 시련을 도약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만약 케몬스 윌슨에게 ‘해고통보’가 날아들지 않았다면 그는 목재소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의 연약함까지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당신의 좋지 못한 과거까지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실수와 허물까지라도 마침내 당신의 영혼에 유익하게 하십니다.
□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본문은 ‘우리가 알거니와’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에 해당되는 헬라어는 『오이다멘』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문장의 가장 앞에 사용되었습니다. 어떤 문장이든지 특별히 강조하고자 하는 단어를 그 문장의 서두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헬라어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라는 말을 문장의 서두에 사용하여 이 말씀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은 누구도 반박할 수 없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 확신 가운데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핍박 중에 있는 로마교회 성도를 향하여 “우리가 알거니와”는 말씀으로 이 문장을 시작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한 확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사도 바울은 얼마나 확신에 찬 삶을 살았는지 모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31절)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33절)
“누가 정죄하리요”(34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35절)
성경을 보세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바 되어 쓰임 받았던 사람이 누구입니까? 확신의 사람입니다. 다윗도 확신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물맷돌만을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향해 돌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확신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져야 할 확신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확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은 연약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잘 모릅니다. 우리는 무지합니다. 아니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욱 많습니다. 내일을 모르기에 잘못된 선택을 할 때도 있습니다. 또 우리에게는 많은 실수와 허물이 있습니다. 사단은 우리의 실수와 허물을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참소하며 공격합니다. 너의 인생은 이제 끝났어. 너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네가 살아온 과거를 한번 생각해봐? 네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거야?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니야, 너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네가 아무리 넘어졌고 망가졌고 잘못된 선택을 하였을지라도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는 너의 모든 인생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만들어 줄거야, 네 영혼에 가장 유익된 방향으로 너를 인도할 거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낙망하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연약과 실패와 실수와 허물까지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그리고 이 말씀을 얼마나 확신하느냐?입니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한없는 축복을 우리게 주시는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