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을 위한 두 가지 준비 2002-06-03 13:48:43 read : 3127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마태복음 11:1-15 // 2002.06.02
2002년도 벌써 반 년이 지나갑니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2002년 헌당의 해에 우리 하늘가족 공동체 전원이 똘똘 뭉쳐 하나되고 서로 신뢰하면서 나아가면 신앙생활에 큰 진전이 있고 축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세례 요한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그는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이 세상에 태어난 주님의 친척입니다. 그가 어른이 되자 광야에 살면서 회개의 세례를 부르짖습니다. 세례 요한은 메시야의 강림을 예언한 선지자들 중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메시야의 강림을 예언만 하고 직접 눈으로 보지 못했던 선지자들과는 달리 그는 직접 메시야를 보았습니다. 그는 물로써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는가 하면 예수님을 청중들에게 처음 소개한 선구자이기도 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로다"(요 1:29).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그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리라"(마 3:11). 그래서 그는 선지자보다 나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낙타털로 된 거친 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면서 몸소 청빈을 실천한 사람이었고, 헤롯왕의 불의를 나무라다가 감옥에 갇힌 지사형의 의로운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지금 조그만 감방에 갇혀서 수 개월을 지냈습니다. 하루 이틀 갇혔다면 바울과 실라처럼 찬송도 부르고 기도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길어지고 몸은 쇠사슬에 메여서 고통스러웠습니다. 이같은 육체적 조건과 환경적 여건은 여러가지 심적인 Stress를 가져오는 것이지요. 이 용감한 신앙의 사나이도 풀이 꺾이고 지치고 곤비해 졌습니다. 그런 괴로움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괴로움은 영적인 괴로움이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목숨을 걸고 소개했던 메시야에 대한 의구심이었습니다. 그가 자기 제자와 청중을 기꺼이 양도하면서 "그는 흥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증거한 메시야, 위에서부터 비둘기 모양으로 성령이 임하시던 그분에 대한 의혹이 생겨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늘 생각하고 말했습니다. "메시야가 오시면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12). 메시야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심판자이시다. 메시야는 이 세상을 심판하시므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그것이 메시야에 대한 그의 한결같은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옥에서 메시야의 심판과 구원을 대망하던 세례 요한은 무척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정말 예수님은 메시야신가? 예수님은 내 믿음과 너무 다른데가 많으시다 말이야?" 그는 극심한 Stress속에서 그가 가진 기성관념때문에 무척 괴로워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의 메시야 관념은 엣세나파의 선입주견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메시야는 깨끗하고 거룩해진 공동체에 오시며 따라서 광야로 오신다"고 그들은 믿었던 것입니다. 드디어 세례 요한은 그의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물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너희는 예수님께 가서 직접 여쭈어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님은 직접적인 답변을 회피하시고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간접적으로 요한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라 사 42:7의 기록대로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사 61:1의 기록대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라" 예수님은 요한으로 하여금 다시금 생각해 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요한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메시야는 심판만 하시는 분인가? 성경은 그것만 말하고 있는가? 메시야는 사랑과 연민의 사람은 아닌가? 메시야는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는 진노가 가득한 심판자일 뿐일까? 요한이여, 성경을 자세히 보아라! 메시야는 거룩하고 깨끗한 공동체만 선별적으로 좋아하시는 분인가? 그는 죄인과 세리의 친구요 가난한 자와 아무런 의도 없는 자의 구주는 아닌가? 그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신 분이 아닌가? 메시야는 병든 자의 치료자요 죄로 상한 자의 위로자요 죽을 자를 오래 참고 살리기를 원하시는 인애하신 구세주는 아니신가?"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이 전진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예수님께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때로는 잘못되어 있기 때문은 아닙니까? 여러분 자신의 편견에 고착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예수님은 여러분의 오해와 무지를 수정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소경과 앉은뱅이, 악하고 게으른 소시민을 무시하셨습니까? 문둥이와 귀머거리, 더럽고 무지한 자를 정죄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죄와 병을 대신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앉은뱅이는 걷게 하시고, 소경은 보게 하시고, 문둥이는 깨끗함을 받고, 귀머거리는 듣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들을 살리시기 위하여 오셨고 오늘도 우리를 살리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실패와 배반 때문에 몸부림치는 베드로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에게 찾아오셔서 따뜻한 용서와 이해로 그를 다시 품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용서가 쉽습니까? 여러분을 배신한 사람을 한번 용서해 본 적이 있습니까? 3일 밤을 뜬눈으로 보내고 7일을 가슴앓이 하지 않고 여러분의 사랑과 진실을 배반한 사람, 여러분의 충성과 신의를 저버리고 이용하고 희롱한 사람이 용서가 됩디까? 어떤 분이 주석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라고 용서하실 바로 그때 그분의 심장이 터졌기 때문에 군병들이 창으로 허리를 찔렀을 때 피와 물이 구분되어 흘렀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의심많은 도마에게 어떻게 하셨습니까? 도마를 기다리고 찾으시며 자기의 벗은 몸을 내보이면서 그를 확신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고 회당장의 딸을 살리셨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 아들 딸들을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금 성경을 보세요. 성경에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보세요. 그리하여 새로운 안목과 이해를 가지십시오. 하나님은 항상 거기 계시며 진실하시고 변함이 없으십니다. 다만 우리 자신의 생각과 경험의 수준에서 굴절되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의심하기 전에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생각과 견해를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시 힘차게 신앙생활 속에 전진할 수 있는 힘은 성경에 대한, 예수님께 대한 새로운 사랑의 이해와 인식을 가지는데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심하는 세례 요한을 어떻게 취급했습니까? 조금도 책망하거나 힐난하지 아니 하셨습니다. 도리어 그를 인정해 주시고 칭찬해 주시고 역사적인 평가를 올바르게 내려주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입은 사람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도다 그는 선지자보다 나은 자니라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자가 없느니라 그야말로 오리라 한 엘리야니라" 예수님은 의심하고 회의하는 세례 요한을 매도하지 아니했습니다. "그가 조금 흔들렸을 뿐이다. 그는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불안전한 사람이 아니다. 사치스럽고 쉬운 생을 사는 사람도 아니다. 나의 선구자로서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다. 그는 엘리야와 같은 사람이다. 어려운 역경가운데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견실히 일하다가 천국에 들어갈 위대한 사람이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이 사람보다 귀한 일을 할 자가 없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일시적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예수님께 대하여 의심할 수도 있고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죽을 죄가 아닙니다. 그런 가운데서 다시금 성경으로 돌아오십시오. 살아계신 그리스도께 대한 새로운 이해와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은 엘리야처럼 세례 요한처럼 역사의 전환점에 선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여러분에게 원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여러분이 이 시대의 엘리야고 세례 요한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2절에 뭐라고 말씀합니까? "세례 요한의 때로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세례 요한처럼 큰 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세례 요한 이후 모든 이에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지금 여러분 가운데 원망하고 의심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힘을 내시고 용기를 내세요. 여러분이 원하기만 하면, 다시 전진하리라고 결심만 하시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축복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세례 요한이 될 수 있고 엘리야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여기 모인 250(550)명 모두가 세례 요한처럼 큰 자가 되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구약의 좁은 테두리안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온 세계의 아브라함, 온 세계의 세례 요한으로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천국은 너무나 큰 나라이므로 수천 수만의 엘리야와 세례 요한을 수용하는 나라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전진을 위하여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쉬는 것입니다. 주남선 목사님은 "쉬는 것도 주의 일이다"고 말했습니다. 왕상 19:4-9을 보세요. 불의 사자 엘리야의 콤플렉스, 강박관념과 이상심리가 잘 나타납니다. 엘리야는 너무 무리했던 것입니다. 갈멜산에서 850명의 그 나라 모든 우상의 대표들과 힘겨운 영적 전투를 했습니다. 그리고 비 오기 위하여 일곱 번이나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싸움이요 고민입니다. 그리고 아합 왕의 마차 앞을 마라톤 선수처럼 달렸습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했지만 주님의 능력도 인간 엘리야의 몸과 마음과 영의 수고를 통하여 나타나기 때문에 너무나 피곤했습니다. 바로 그때 악한 여왕 이세벨의 체포령이 내려졌습니다. "너는 내일을 보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광야로 하룻길을 도망하다가 로뎀나무 밑에서 꼼짝도 못하고 쓰러져서 흐느낍니다. "하나님이여, 족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합니다 나는 영웅도 아니요 위대한 인물도 아닙니다." 얼마나 약해졌으면 살기를 구하던 사람이 죽기를 구했을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의 피곤을 이해하십니다. 여러분의 노고와 심적인 상처와 무거운 짐을 아십니다. "너는 잠시 쉬어야겠다"고 말씀하시는 인애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우리 교회가운데도 크게 상심하고 큰 고통중에 계신 분이 많습니다. 그런 분은 심신이 쉬어야 합니다. 저는 담임목사로서 하나의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무리하게 규칙속에 얽어매기를 원치 않습니다. 먼저 쉬세요. 조용히 정양하십시오. 푹 주무시고 나면 기도할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엘리야를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그의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을 갖다 두었습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숯불갈비를 먹게 했고 자주 나는 비위를 위하여 포도주를 마시게 했습니다. 엘리야는 먹고 마시고 잤습니다. 여호와의 사자, 그는 보통 예수님이십니다만 그분이 다시 그를 어루만지며 말씀합니다.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자비하신 여호와, 섬세하신 마음에 온유와 겸손의 관을 쓰신 사랑의 주님을 보세요. 그분이 여러분을 어루만지십니다. 여러분을 걱정해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먹고 마시고 자거라" 엘리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푹 쉬고 난 다음에 원기를 회복했습니다. 그리하여 40주 40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002년 6월, 하나님의 시간에 우리 모두 전진을 위한 두 가지 준비를 명령받읍시다. 우리가 준비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충분한 휴식과 성경말씀이 주시는 안위입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안식과 위로를 주십니다. 먼저 주 안에서 쉬십시오. 여러가지 컴플렉스에서 벗어나고 피로를 씻어버리십시오. 그리고 성경말씀에서 새로운 은혜를 받으십시오. 예수님께 대한 더 넓은 이해를 가지십시오. 오해와 편견을 버리고 원만한 이해의 부요로 나아가십시오. 그 사랑의 품속에서 여러분의 영적 심적 온갖 Stress를 치료하십시오. 그 다음에 다시 일어나서 전진하십시오. 그래서 제각기 천국에서 세례 요한처럼 큰 자가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