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10) 이 일에 내가 뜻만 보이노니 이것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11) 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 있는 대로 하라. 12)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13)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14)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 15) 기록한 것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누가 세상에서 가장 부자일까요? 여러분 궁금하지 않습니까? 저는 외국의 이야기를 예로 들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세계 최고의 부자를 찾으려 하니 외국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 국가 자체를 소유하고 있던 절대군주인 왕들을 빼놓고 나면 아마도 미국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1990년대 후반 마이클 클리퍼와 로버트 군서가 공동으로 저술한 ‘미국의 최고 100명의 부자’라는 책에 의하면 최고의 부자는 석유왕 John Rockefeller라고 합니다. 그는 생존 당시 미국 총생산(GDP)의 1/65을 재산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생존하는 최고의 부자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Microsoft사의 대표이사 Bill Gates입니다. 그는 미국 총생산의 1/425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요사이 좀더 많은 재물을 그가 가지게 되었다 하더라도 John Rockefeller에 비하면 아직도 그 비율에 있어서는 상당한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John Rockefeller는 어떻게 그러한 부자가 되었을까요? 그는 어머니로부터 깊은 신앙적 교훈을 받으며 자라났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어머니의 가르침은 다음 열 개의 사항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을 친아버지 이상으로 섬겨라. 친아버지보다 더 중요한 공급자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2.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목사님과 좋은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른 것이 축복된 길이다.
3. 주일예배는 본 교회에서 드려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회에 충성하여야 한다.
4.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먼저 구별한 후 나머지를 사용하여야 한다.
5. 아무도 원수로 만들지 말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일마다
장애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6. 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 맡기면 모든 일에
함께 하여 주실 것을 온전히 믿는 기도가 필요하다.
7.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 빨리 회개하여 죄로 인한 어려움과
고통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8. 아침에는 꼭 하나님 말씀을 읽어라.
9.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우라. 그리고 도와준 일에 대해 절대로 남에게
알리지 말라.
10. 예배 시간에 항상 앞에 앉으라. 예배 드리고 말씀 듣는 일에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아 살면서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십일조를 지나 십의 삼, 사조를 하면서 지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의 생애 동안에 많은 기관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기도 하였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시카고대학 설립을 위해 6,000만 달러 이상을 기부하고, 그 후에도 3억 5,000만 달러를 기부하였다. 오늘날로 말하면 4300억 원입니다. 그가 죽을 때 남긴 돈이 14억 달러, 오늘날로 하면 1조6천억 원 가량 되는데, 그가 세운 록펠러재단 ・일반교육재단 ・록펠러의학연구소 등에 모두 기부하였습니다. 지금도 그가 남긴 유산을 바탕으로 이러한 재단들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 사회에 크게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좀 예화가 길었습니다만, 진정 John Rockefeller는 예수로 인하여 부자가 된 사람이요 또한 예수를 위하여 가난하게 된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기부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그의 이름이 높이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할 줄 알았고 하나님으로부터 또한 대접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한국사람이 이러한 자세로 살면 하나님께서도 이러한 사람을 이 땅에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혹은 여러분의 자손 가운데 이러한 사람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 부요하신 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이 세상을 만드신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과 …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로새서 1:15-17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이 세상의 창조에 참여하신 분입니다. 그렇기에 그 분은 이 세상의 주인이시기도 합니다. 결국 그 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부요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은 부요한 상태로 남아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부요를 사용하여야 할 부분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여 죄를 짓고 반역하는 자세로 살며 사탄의 권세 아래 있었기에 그 사람들을 위하여 죄값을 치루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신 값을 치루고 구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자신을 내어놓고 가난해 지셔야 했습니다. 어떻게 가난해 지셨습니까? 이는 바로 죄인이 된 우리들을 위하여 자기를 내어놓아 가난해 지시는 길이었습니다. 빌립보서 2:6-7에 의하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으로서의 신격을 포기하고 사람으로서의 인격으로 스스로 내려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하게 되심으로 인해 우리가 부요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주인으로서 다스리던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이어받는 권세를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요해진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위탁받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통해 물질적인 면에서도 풍요로움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렇게나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값있게 사용하여야 합니다. 이는 비록 우리가 사용하고 있으나 진정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되신 예수님으로부터 위탁을 받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대부분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얻는 것을 마치 자기가 주인인양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사용할 때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진정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더 가지고 싶은 욕심으로 인해 계속 더 많은 것을 가지고자 합니다. 이는 진정 가난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부요해진 사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위탁하신 것을 아주 값지게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는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처럼 사용하니 이 얼마나 부요한 사람입니까?
예를 들면 고아들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죠지 뮐러가 그러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림에서 그이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빵과 접시 그리고 잔을 앞에 놓고 간절히 기도하는 그림입니다. 그가 바로 죠지 뮐러입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곤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평생 5만 번의 기도응답을 받으면서 수 만 명의 고아를 먹이고 키웠습니다. 먹을 빵이 필요할 땐 기도로 빵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이 공급해 주십니다. 아이들이 입을 옷이 필요할 때는 기도로 옷을 구했습니다. 이 역시 하나님이 기묘한 방법으로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이 주실 것이라는 기도 가운데 이 세상의 물질을 사용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진정 부요한 사람입니다.
저도 가장 가까이에서 그렇게 사는 분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것을 사용하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분은 목사로 설교하시면서 설교한 그대로 설교집을 내셨습니다. 그래서 현재 많은 설교집을 내셨는데, 아마 숫자 면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많이 내셨을 것입니다. 이 설교집 한 권을 낼 때마다 약 450만 원 정도가 소요됩니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그 돈이 여러 사람들을 통해 공급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설교집을 농어촌교회와 군인교회 그리고 감옥에서 선교하시는 목사님 등 많은 곳에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젠가 이렇게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독자도 생겼을 텐데 그만 나누어주시고 책을 팔면 어떻겠습니까? 그 때 그분은 저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성령께서 여러 사람들을 통해 출판자금을 보내주셨는데, 내가 돈에 욕심을 내면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공급을 그치게 하실 것이다. 저는 이 말씀을 듣고 이것이 정말 신앙하는 자세로구나 하고 깨달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것으로 살기에 하나님의 부요하심을 함께 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해 부요하게 된 우리는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가난해질 차례입니다. 바로 이것을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구제헌금을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위탁하신 것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리는 모습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를 어떻게 실천합니까? 이를 위해 교회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은 바로 헌금입니다. 이는 함께 나누는 삶을 의미합니다. 헌금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것을 서로 나누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도 보면 너희 유여한 것으로 저희의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라. 그래서 평균케 하려 함이니라.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 해서 실제 하나님이 하늘로 직접 가지고 가시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서 전업으로 봉사하는 교역자들에게 나누어지고, 교회를 유지해 나가는데 사용되고, 또한 이곳에서 함께 사는 이웃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바로 헌금입니다. 그래서 서로 유여한 것으로 서로 부족한 자의 필요를 채워주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세상 사람들이 점쟁이에게 드리는 복채와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본적인 개념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복채는 많이 놓으면 놓을수록 자기에게 더 많은 복을 빌어달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결국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십일조도 복채식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십일조 10만 원을 드리면 하나님이 100만 원을 주실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도 합니다. 이는 진정한 십일조 헌금이 아닙니다. 헌금을 절대로 그러한 생각으로 드려져서는 안됩니다.
반면에 우리가 드리는 십일조를 비롯해서 감사헌금은 감사의 마음으로 드려져야 합니다.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의 일부를 감사의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헌금입니다. 십일조는 일반적으로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쓰게 된 수입의 십분의 일을 헌금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감사헌금은 십일조를 내고서도 더 감사한 일이 있을 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헌금을 드릴 때에는 다음에 더 큰 복을 주실 것이라는 은근한 기대마저 배제되어야 합니다. 이미 받은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신앙 안에서 헌금을 정성껏 드리는 분에 대한 하나님의 더 큰 축복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인천의 한국유리의 사장 최태섭 장로가 좋은 예 가운데 한 분입니다. 그는 한국동란 때에 신앙의 자유를 찾아 서울로 피난을 온 분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동대문 근처에서 성냥을 팔면서 하루에 5원을 벌면 50전을 십일조로 떼어 놓고 그 다음날 또 같은 방법으로 헌금을 꼬박꼬박 모았다가 주일에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가 축복을 받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시는데 엄청나게 축복하셨습니다. 결국 인천에 유리공장을 세울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유리 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이끌어 올릴 수 있었고 그 역시 하나님의 종으로 존경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세상을 떠나기까지 서울동신교회에서 참 훌륭한 장로로 봉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오늘날 우리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위하여 예수님을 위하여 가난해 지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계십니다.
헌금과 연관되어서는 우리 교회도 상당히 건강한 교회로 저는 판단합니다. 주정헌금을 비롯한 십일조 그리고 감사헌금이 상당히 건전하다는 말입니다. 주정헌금은 봉급을 주일별로 나누어 드리는 십일조요 십일조는 대개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사업자가 한달 수입 가운데 십의 일을 떼어드리는 형태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없이는 절대로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생활 가운데 하나님이 제공하신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감사하는 감사헌금 역시 귀한 예물입니다. 이러한 헌금이 우리 교회에서는 매주 헌금의 거의 85% 이상이니 저는 상당히 건강한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헌금을 드림으로 인해 우리가 가난해질 때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요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의 주인으로서 대접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주권이 온 천하에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진정 하나님으로서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하나님을 부요하신 분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난할 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주어집니다. 누가복음 6:20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요”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3은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늘나라가 저희 것임이요”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도 가난하게 되고 더욱이 마음이 가난하게 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 즉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약속합니다.
위의 말씀을 바탕으로 볼 때 하나님을 위하여 가난해 진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인이 되심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이 더욱 높임을 받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대구제일교회의 모든 교우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교우들을 위하여 서로 가난해질 것을 권합니다. 특히 교회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당회에 속한 모든 당회원들이 이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교우들도 기쁜 마음으로 따라 행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가난해지며 그렇게 살아가는 당회원들을 비롯하여 또한 그렇게 사는 교우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