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 2002-06-06 13:45:09 read : 2573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빌립보서 3:12-16
2001. 12. 30.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번은 세 명의 친구가 경치가 좋은 곳에 위치한 어느 호텔로 휴가를 떠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15층 호텔방을 내려와 산책을 하다 다시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마침 승강기가 고장났습니다. 그래서 1층에서 기다리다 할 수 없이 비상계단을 통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5층을 올라가던 중 어느 친구가 한참 더 올라가야 하니 지난 날 힘들고 슬펐던 일을 이야기하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좋다고 하면서 동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친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사실 첫 사랑에 실패하고 죽으려고 했었어!” 그러자 다른 두 친구가 그를 위로했습니다. 그 다음 두 번째 친구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사실 몇 일전에도 사업 때문에 아무도 모르게 이 세상을 떠나 버리려 했었어. 다행히 해결되어 그만 두었지만!” 그러자 친구들은 왜 자기들에게 이야기해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느냐고 한 마디씩 했습니다. 그 때 그들은 10층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세 번째 친구의 순서가 되었습니다. “난 사실 이 이야기를 하면 너무 슬퍼서 너희들이 가만있지 못 할거야! 그러니 관두겠어!” 그러자 다른 두 친구들이 “야! 괜찮아 친구들이 이해 못할 이야기가 어디 있어? 해봐!”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냐, 아무래도 안되겠어 너희들은 이해 못해!” 그 때 그들은 13층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계속 말하라고 친구들이 다그치자 그 친구는 15층 문앞에서 “좋아, 그러면 내가 하지!” 말하고는 한숨을 쉰 다음에 “나 사실, 방문 열쇠를 1층에 두고 왔어!”
우습지 않습니까? 하지만 밝은 웃음이 아니라 쓴웃음인 듯합니다. 그 쓴웃음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한 해를 살아가는데 이러한 모습을 자주 아니 너무나도 자주 보이고 있습니다. 맨 처음에 목표를 향하여 열심히 나가기로 했는데, 가다보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계속 처해왔습니다. 아니 잘못된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고치지 아니하고 무작정 계속 그대로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보여왔습니다. 연말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다시 처음을 생각하며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음으로 인해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일을 또 다시 반복하고 있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달랐습니다. 그에게는 삶의 목표가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잊지 아니하고 항상 꾸준히 달려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의하면 그는 뒤의 있는 것들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사소하게 도움이 되거나 관심을 끌 수 있는 부수적인 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을 이제는 더 이상 가장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푯대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른 부름의 상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좀더 넓게 보아 바로 앞의 본문과 연결시키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본받아 자신도 그 부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상을 얻는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믿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 목표는 매년 얻는 결과는 아닙니다. 인생에 있어 딱 한 번 얻는 목표로서 이 세상의 종말에 우리에게 주어질 목표입니다. 그 목표는 사람이 주는 목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주시는 목표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삶은 많은 하나님의 종들을 통하여 보여주었습니다. 구약시대의 대표적인 일꾼 모세도 그가 사십 년 동안 하나님의 백성을 광야에서 이끌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이 주신 목표 가나안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사십 년 동안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야 한다는 목표를 한 번도 잊어버린 적이 없었습니다. 힘이 들때도 하나님이 주신 목표를 생각하며 이겨나갔고 기쁠 때에도 그 목표로 인하여 기뻤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사십 년의 생활을 길다 여기지 아니하고 하루와 같이 생각하며 이겨나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데, 과정을 사도 바울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12절을 보면,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사도 바울은 부활을 이미 얻은 것이 아니기에 또한 온전히 이룬 것도 아니기에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는 모습은 바로 과정에 있음을 말합니다. 바로 과정의 중요성을 의미합니다.
그 과정을 걸어가는 방법을 세 가지로 제시하는데, 먼저 전진할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 나아간다고 했습니다. 그는 뒤를 돌아보며 자신의 사명에 대해 후회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하나님께 선택받은 것에 대해 의심하거나 후회한 일이 없이 오직 부르심을 받은 그 길을 따라 앞으로
두 번째로 과거에 대해 연연하지 말 것을 가르칩니다. 그는 과거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핍박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변화된 이후에는 이에 대해 전혀 연연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선교에 참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목표에 대한 집중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면 ‘오직 한 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오직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과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 집중력으로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가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한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하나님께 충실하여야 그러한 부활의 은혜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혹시 그 동안이라도 실족할까 두려운 마음으로 매 순간 순간을 매일 매일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수하게 걸으려 하고 있습니다. 항상 성령이 방향을 바로 잡아주며 푯대를 향한 과정을 계속하는 그의 삶은 신실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여기에 목표와 과정 사이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이 강사가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주장을 명확히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습니다.
"자, 퀴즈를 하나 해 봅시다."
그는 탁자 밑에서 중간치 항아리를 하나 꺼내서 탁자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나서 주먹만한 돌을 꺼내 항아리 속에 하나씩 넣기 시작하였습니다. 항아리에 돌이 가득하게 차자 그가 물었습니다.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습니다.
"예!"
그러자 그는 "정말?" 하고 되물었습니다.
잠시 후 그는 탁자 밑에서 자그마한 자갈을 한 뭉큼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항아리에 집어넣고 깊숙히 들어갈 수 있도록 항아리를 흔들었습니다. 주먹만한 돌 사이에 자그마한 자갈이 쑤시고 들어갔고 이제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이 가득 찼습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
눈이 동그래진 학생들은 "글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좋습니다" 하더니, 다시 탁자 밑에서 모래주머니를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모래를 항아리에 넣어, 주먹만한 돌과 자그마한 자갈사이의 빈틈을 가득 채운 후에 다시 물었습니다.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
학생들은 "아니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주전자를 꺼내 올리더니 물을 항아리에 붇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물었습니다.
“이제 가득 찼을까요:?”
학생들은 그제야 비로소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어느 분은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볼 때 이제는 가득 차 보이더라도, 노력하면 더 채울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그런 의미도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이 이야기는 던져주고 있습니다. 이는 큰돌을 먼저 넣지 않는다면, 영원히 큰돌들을 넣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과정이 중요한지 먼저 그것을 행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처음으로 돌아가 일을 다시 하는 후회와 아쉬움에 빠지게 됩니다.
여러분들과 마찬가지로 저에게도 인생이라는 항아리에 큰돌을 채우는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큰돌 하나를 채우는 일이 이제 지나가는 2001년에 있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도 인생의 중요한 변화가 있었던 해입니다. 이전에 원했고 또한 추구했고 이를 이루는 듯한 삶을 살았던 신학교 교수의 생활을 접어야 했던 해입니다. 그리고는 제가 별로 원치 아니했고 꺼렸던 목회생활이라는 어려운 여정으로 들어서야 했던 해였습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생각해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편하고 보장된 생활에서 힘들고 어려운 생활로의 변환은 정말 잘못된 과정으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기보다 사람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면 사람과 타협할 때도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타협을 거부했습니다. 학교에서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에 가까이 설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따라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항상 성령을 통해 인도하시는 모습으로 저에게 응답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했고 모세가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저도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궤도에서 벗어나지 아니하려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약간의 실족은 있었으나, 대체적으로 그 과정을 제대로 걸어가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저의 인생의 목표는 항상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원하시는 곳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교수생활에서 목회생활로의 변환은 큰돌 하나를 항아리에 채워 넣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제 저에게 또 다시 큰돌을 채워 넣게 하는 일이 있을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저는 더 이상 없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작은 자갈들을 그 사이에 채워 넣는 일과 모래를 채우고 물로 가득 채우는 일을 대구제일교회에서 여러 교우들과 함께 하는 일을 하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 어떤 때는 흔들어 채워야 하는 것처럼 흔들릴 때도 있을 것입니다. 고난과 어려움 또는 갈등과 싸움이 있을 수도 있단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부정적인 결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득 채우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흔드심으로 믿을 때 저와 여러분들은 참고 견디며 이겨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에 있어 최종 목표는 무엇입니까? 이는 사도 바울이 제시했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붙잡힘을 받아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결국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목표에 이르기 위한 우리의 과정이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이 과정을 걷기 위해 지난 일년을 달려왔습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살아오면서 우리는 어떤 힘으로 살아왔는지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지식과 지혜에 의지하며 살아왔습니까? 아무리 어둡고 안개가 낀 밤이라 해도 우리가 자력에 따라 움직이는 나침반을 가지고 있으면 방향을 잃어버리지 않듯이, 아무리 험하고 힘든 세상이라 할찌라도 우리에게 성령의 인도하심과 이끌림에 의해 움직인다면 우리의 삶도 방향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로 부활된 몸으로써 들어가는 그 날을 향하여 꾸준히 움직이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바로 그 여정 가운데 우리는 지난 한 해를 살아왔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제가 아는 바에 의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지난 일 년을 무난하게 살아오신 분도 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한 해를 뒤돌아보고 또한 더욱 희망찬 미래를 바라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반면에 지난 한 해 동안 고난과 고생을 하면 허겁지겁 살아오신 분들도 있습니다. 더욱이 지난 삶을 통해 모았던 모든 물질을 잃어버리는 듯 하면서 살아오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다고 고백하는 분의 말씀을 들을 때는 매우 희망적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그 순간부터 진정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살아가는 분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합니다. 그러나 너무 후회하거나 아쉬워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정하신 길을 꾸준히 나아가는 삶을 살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삶은 없을 것입니다. 한 해 한 해 사람들이 정한 시간의 구별보다는 진정 하나님이 정하신 우리의 인생을 더욱 잘 걸어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 길을 성실하게 걸어가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