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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낚는 어부
    2002-06-06 13:51:08   read : 2431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막 1:16-20

    2002. 2. 17.



    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17)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좇으니라. 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저희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오늘은 우tm갯 소리 하나 전하면서 설교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어느 정신병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화창한 봄날 오후 어떤 신사가 정신병동에 입원한 친구를 찾아 면회를 갔습니다. 그런데 ‘면회사절’이라는 안내판을 보고 발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현관 앞에 나와 택시를 기다리는데 건너편 잔디밭에 환자복을 입은 어떤 사람이 잔디 위에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자기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가가서는 고기를 많이 낚았느냐고 넌지시 그리고 다정하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낚시대를 응시하다가 얼굴을 돌려 자기의 친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한심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이 정신나간 친구야! 잔디밭에서 고기가 잡히니?” (이응교, '애들아! 웃고 살자' 40쪽)

    누가 정말 정신나간 사람입니까? 정상적인 사람과 비정상적인 사람 사이에는 통하질 않습니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그 친구들 사이에 만남이 있고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정상인 친구는 비정상인 친구를 찾아주고 함께 대화를 나누려했다는 점이 사랑입니다. 그러한 사랑이 있을 때 비정상적인 친구에게 힘이 되고 치료의 길이 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역시 비정상적인 것 같은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은 고기를 잡던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정신나간 소리로 들릴 수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사람을 고기 낚듯 낚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귀에 예수님의 말씀은 정말 비정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죄인된 우리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참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 그것도 지도자로 삼으시려는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러한 비정상적인 말을 들을 때 그 말을 한 사람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아마 대부분은 마음속으로 '아니요!'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도 비정상적인 말을 듣고 따라가는 경우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얼마 전만 하더라도 도심에 나가면 옆에 착 달라붙어서 ‘도(道)를 아십니까?’ 하면서 호기심을 자아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 이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전생을 알고 싶지 않으세요? 그러면 현재 고난을 당하는 이유를 알게 됩니다.“ 이러한 유혹에 빠져 좇아가면 복채로 약 150만원 아니면 300만원도 요구하곤 했습니다. 그래도 궁금해서 돈을 싸들고 찾아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오직 그들이 추구하는 이윤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보다 더 비정상적 말에 꼬득임을 당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한보그룹의 정태수 회장이었습니다. 그가 세무공무원으로 살던 어느 날 우연히 점쟁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점쟁이가 “참 아깝다! 큰 돈을 벌 사람인데!”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그 말에 솔깃하여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점쟁이는 그의 운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길로 사표를 내고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세무공무원으로 배웠던 방법을 썼습니다. 뇌물을 바칩니다. 탈세를 저지릅니다. 이득이 되겠다 싶은 사람을 찾아가 부탁도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회유와 중상모략과 협박을 하며 길을 뚫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철강회사를 중심으로 한 한보그룹을 일으켰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사랑의 윤리가 조금도 없습니다. 오직 돈만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리는 무지함이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만 탈세, 뇌물, 부도 등 말도 할 수 없는 죄목으로 인해 감옥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오늘날도 비정상적이며 도전적인 명령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을 괴로움 가운데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 사람들이 받는 도전과 예수의 제자들이 받는 도전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차이는 예수님 이후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귀에 생생하게 울려퍼지는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도전이야말로 우리가 오늘날 듣고 들어도 또 들어야 하는 도전이요 명령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베드로를 비롯한 어부들에게 준 도전적인 명령에는 방법과 정체성 그리고 보상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구체적으로 담겨져 있기에 오늘도 예수님의 도전적인 명령은 사라지지 아니하고 메아리처럼 계속적으로 울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도전적으로 제시한 명령 가운데 방법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따르라!’는 한 마디였습니다. '나를 따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deute opiso mou입니다. 이는 육체적으로 예수를 좇아다니며 따를 것을 원하는 명령입니다. 우리 주님은 항상 명령을 먼저 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보상이 그 다음에 나옵니다. 세상의 방법은 유혹할만한 댓가를 말하고 따르겠느냐고 말하지만, 예수님의 경우에는 이와 반대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바로 신적인 권위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죄인된 우리들을 불러 주시는 명령 그 자체도 우리에게 사랑의 명령인데, 그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바로 이러한 명령을 들었을 때 베드로와 안드레는 예수님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중압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을 들었던 베드로와 안드레는 예수님을 ‘좇았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좇았다’라는 표현을 위해 사용된 헬라어는 akoloutheo입니다. 이는 a 라는 닯다 혹은 일치하다 라는 뜻의 접두사와 길을 의미하는 keleuthos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다시 말하면, ‘같은 길을 가다’ 혹은 ‘함께 길을 가다’라는 뜻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예수님과 길을 함께 가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그물을 다 그 자리에 내려놓고 예수님을 주저하지 않고 좇았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함께 갔다는 말입니다.

    길을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은 친구입니다. 아니 그 이상의 사람들입니다. 아무튼 그들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예수님의 방향에 우리를 맞추어 나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가는 것은 그 분의 일거수 일투족을 따라 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닮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간다는 것은 그 분이 최종적으로 가는 곳까지 우리도 간다는 말입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을 따랐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따라가다’라는 말을 위해 사용된 단어는 헬라어로 apelthon입니다. 이는 어디로부터 장소를 이탈하여 누군가를 향하여 미련없이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기구들과 사람들로부터 예수님을 향하여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소유했던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전의 것과는 완전한 결별이지만 새로운 것 예수님에 대한 결합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실 때 그들은 배와 그물 그리고 그물을 깁는 도구들을 버렸습니다. 이를 버려두고 떠난다는 것은 자신들의 경제적 지위를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으로 당할 경제적 고통을 스스로 감당하겠다는 것입니다. 아니 예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순간입니다. 이제는 예수님만이 그들의 경제적 문제의 해결자가 되심을 믿는 모습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자기의 아버지 세베대까지 버려두고 예수님을 향해 떠났습니다. 이는 가장 사랑하는 분까지 버려두고 떠나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인정이 없는 분은 아닙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그의 아버지 세베대의 이름이 함께 거론이 되는데, 이는 그 아버지를 높여주는 보상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아무튼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마저 뒤로 한 채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예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취하여야 할 방법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새로운 목표를 주시는데, 이를 이루기 위한 첫 단계가 바로 도전적인 명령을 따라 나서는 일입니다. 우리의 버릴 것을 버리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나선다는 것은 지금까지 가졌던 비복음적인 가치관을 과감히 버리고 그리스도 예수를 향한 복음적인 가치관으로 삶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제는 주님만이 우리의 힘이요 소망임을 확신하며 살아가는 자세를 말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하나님이 더 하여 우리의 생활을 책임져 주시는 모습을 확인하며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좇는 제자들을 무작정 따르게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우선 정체성을 부여하였습니다. 이는 ‘사람 낚는 어부’라는 정체성이었습니다. 참으로 희안한 신분입니다. 고기를 낚기에도 어려운데 사람을 낚는 어부라니… 하지만 새로운 신분과 정체성을 받아들인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요한과 야고보는 어디에 비교할 수 없는 자부심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자기들을 인정하고 불러준 적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알아주고 불러주신다는 사실 자체로 그들은 기뻤습니다. 그들 자신이 귀중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깨달았던 순간입니다.

    여러분들은 오늘날 어떠한 정체성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까? 오늘날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은 정체성으로 인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포스트모던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 우리 자신도 혼동이 될 정도로 혼란한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각 자의 특수성을 다 인정하다 보면, 함께 살아가는데 방향을 잡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곤 합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에게는 좀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람을 낚을 자로서 먼저 우리가 예수님에 의해 낚였다는 감사와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신다는 자부심과 기쁨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인정하고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실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그들에게는 사명이 부여되었습니다. 바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한다‘는 사명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라! 도대체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는 바로 사람을 모으는 사명을 의미합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들이 있는 곳을 찾아 그물을 던져 고기들을 잡듯이 사람이 있는 곳을 찾아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해 들이는 일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네 사람은 호수에서 고기를 잡는데 각각 그 역할이 달랐습니다. 먼저 베드로와 안드레는 호숫가에서 그물을 던지는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고기가 있을 만한 지점을 찾아 하루에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그물을 던져야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어디에 고기가 많이 모여있는 지점인지를 잘 알아야 했습니다. 낚시하는 사람들은 이를 포인트(point)라고 하지요. 바로 그러한 지점을 잘 찾아 고기가 헤엄쳐 지날 때 그물을 던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가난한 어부였습니다.

    반면에 야고보와 요한은 부유한 어부였습니다.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삯군들을 고용했고 더욱이 배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더하여 그들이 깁고 있던 그물은 투망이 아닌 예인망입니다. 예인망을 던지는 사람들 역시 고기가 있는 곳을 알아야 합니다. 호숫가에서 던지는 투망이 닿을 수 있는 깊이는 기껏해야 2-3미터 깊이 이지만, 예인망은 5-6미터에서 수십 미터 아래까지 던져야 하는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 일이었습니다. 더 깊이 호수 속을 알아야 할 수 있는 어업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그들은 고기가 어디에 모이는지 그 길을 잘 알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부여하신 사명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을 찾고, 모으고, 만들어가는 일입니다. 어떤 때는 투망과도 같이 어떤 때는 예인망을 던지는 사람과 같이 일을 할 것을 예수님은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투망은 호숫가 수풀과 바위 사이의 다양한 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합니다. 하지만 그 고기들은 그리 큰 고기는 아닙니다. 반면에 예인망은 같은 종류의 고기를 그것도 대개는 큰 고기를 잡는데 사용됩니다. 예수님에게는 두 가지 모두의 그물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을 예수님이 부르면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하는 사명감을 불어 넣어주셨습니다. 고기를 잡던 그 원리를 따라 사람을 낚는 전도자가 되라는 예수님의 명령이요 사명입니다. 사명을 가진 사람들은 용기를 얻습니다. 바로 이러한 일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던 그들은 기쁨에 찰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이루기 위하여 끊임없는 인내를 겪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 작아 보이는 사람도 예수님은 필요로 하시고 귀중히 여기십니다. 또한 크고 위대해 보이는 사람도 예수님은 필요로 하시고 귀중히 여기십니다. 교회 안에서 알아주는 사람들과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유명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구별이 있다면 이는 예수님이 원하시는 모습은 아닙니다. 우리가 볼 때는 나와 다르다 할찌라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다 같은 사람이요 귀중한 영혼인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교회 안에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 모이면 즐거울 것 같습니다. 관심도 서로 비슷하고 생활수준도 비슷해서 어울리기에 불편이 덜하고 서로에게 기대지 않아도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순간부터 교회는 썩어 갑니다.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관심과 수준을 가지고 모일 때 건강해 집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하여 우리 모두를 다양한 가운데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이 일을 잘 하는 교회일수록 하나님은 그 교회로 하여금 왕성하게 하고 능력을 나타내는 교회가 되고 서로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대구제일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사순절의 첫 주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죄인된 우리들을 부르기 위해 오신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자숙하는 기간입니다. 우리는 이미 바로 그 예수님으로부터 찾아진 바 되었고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요 사람을 낚으라는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한 정체성을 가지고 사명을 이루어 나가는 목표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함께 어우러져 사명을 감당할 때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계시는 하늘나라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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