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명의 가치 2002-06-06 13:56:02 read : 2711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요한복음 12 : 20 - 2642 2002. 4. 26.
20)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21) 저희가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22)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짜온대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오늘은 부활주일 후 첫 번째 주일입니다. 부활과 연관되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바쁜 생활 가운데 탈피해 보고자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장모님이 죽었다는 핑계를 대고 한 번 결석을 하였습니다. 그 다음 어느날 예수님을 믿는 어느 직장 상사가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부하 직원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자네 혹시 부활이라는 걸 믿나?”
“아뇨!”
“자네, 지난 주에 장모님 돌아가셨다고 결근했지? 장모께서 부활하셨네. 자! 자네 장모님
전화일세…” (유응교, 애들아! 웃고살자, 38)
비록 말을 통해서 이지만, 애매한 사람을 자꾸 죽이면 안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자기의 딸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이겨내고, 오히려 사랑으로 부활을 맛보게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영국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1987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재향군인의 날 행사가 있었습니다. 전몰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개신교 신자들이 모였는데, 그들 위에서 북아일랜드해방군이 던진 폭탄이 터졌습니다. 이로 인해 11명이 죽고 63명이 다쳤습니다. 그 가운데 고든 윌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스무살이 된 딸 마리와 함께 무너진 건물더미에 갇혔습니다. 구조대원을 기다리는 동안 아버지의 손을 꼭 쥐고 있던 딸은 “아빠, 정말 사랑해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의식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병원에 후송되었으나 척추와 뇌에 중상을 입은 터라 죽고 말았습니다.
윌슨은 병상에 누워 이렇게 말했습니다. “딸을 잃었지만 원한은 없습니다. 상대를 욕한다고 내 딸 마리 윌슨이 살아나지는 않습니다. 오늘 밤 그리고 매일 밤 나는 하나님께 기도할 것입니다.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의 이러한 말에 대해 BBC 방송의 기자는 이렇게 썻습니다. “고든 윌슨은 여생을 그 사랑을 좇아 살기로 다짐했다. 온 세계가 울었습니다.” 이러한 사정은 라디오를 통해 전파를 타고 영국 전체에 퍼져나갔습니다.
퇴원 후 고든 윌슨은 개신교와 천주교 사이의 화해운동을 펼쳐나갔습니다. 테러에 의한 보복은 어리석은 짓임을 외쳤습니다. 북아일랜드해방군 병사를 만날 때마다 기도하고 설득하여 무기를 내려놓을 것을 촉구했습니다. “당신들도 나처럼 사랑하는 이들을 잃었습니다. 이 정도로 충분합니다. 이만큼 피를 흘렸으면 그걸로 됐습니다.” 그래서 아일랜드 개신교 과격파 행동대원들도 보복하기를 그만 두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아일랜드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95년에 죽었습니다. 그러자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를 포함한 전 영국이 하나같이 이 그리스도인 시민에게 깊은 예우를 표했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딸을 그것도 폭력으로 잃은 것보다 더 아픈 경험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지만 고든 윌슨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따라 살았기에 한 알의 밀알이 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자신이 먼저 증오를 용서로, 미움을 사랑으로, 갈등을 화해로 바꾸기로 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어 나가고자 했습니다.
예화가 길었습니다만, 오늘 말씀을 보면 유월절이라는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 명이 예수를 뵈옵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빌립은 안드레의 도움을 받아 예수님께 그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은 무슨 선문답이라도 하듯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대답을 하셨습니다.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에게 이러한 사건이 일어난 때는 유월절이라 했습니다. 유월절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유대인들이 모세에 의해 애굽을 탈출한 날을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그날은 장자들이 죽음에서 구원을 받은 날이요, 나라의 해방을 얻은 날이요, 민족이 구원을 얻은 날입니다. 이로 인해 유대인들의 가장 큰 명절로 오래 동안 자리잡고 내려왔습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구원을 받은 그 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명으로 인해 기뻐하고 들떠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죽음을 기억하지 아니하는 생명은 무의미합니다. 이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인데, 한 가지만을 기억하는 것은 그 반대의 것을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우리 주님은 그 명절에 죽음도 함께 생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에 떨어져 죽게 될 한 알의 밀알에 대해여 언급하고 계십니다. 여기에 자신의 생명의 가치를 두고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 이상한 점은 헬라인의 요청을 받은 예수님께서 이같은 말씀을 하셨다는 점입니다. 거기에다가 그들로 인해 자신이 영광을 받을 때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도데체 무슨 의미로 이러한 말씀을 하셨을까요? 우선 헬라인들은 당시 유대인 입장에서 보면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무시할 수 없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당시 유럽에서는 가장 문화인으로 스스로 생각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호메르 같은 대문학자가 있었습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철학자이 조상 가운데 있었습니다. 엄청난 건축물을 그 유산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 이후 헬라어는 당시 전 유럽과 소아시아 중동 등 여러 지역에서 공용어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영어가 세계의 중심어가 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어디를 보아도 당시 헬라인들은 자랑으로 넘치는 역사를 가지고 있었던 민족입니다.
그러므로 당시 헬라인이 예수님을 찾았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습니다. 가장 문화인으로 스스로 여겼던 헬라인들이 그리스도 예수에게 머리를 숙이고 그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음을 시사하는 점입니다. 이는 그들이 추구하던 이 세상의 지혜를 포기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일 시기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그들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전 유럽 그리고 아시아 등 당시 세계 전체를 향하여 뻗을 통로가 되고자 했으며 바로 이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아들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영광을 얻을 때가 다가 왔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본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러한 사실은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고 있던 자연현상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수경재배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시대요, 밀은 당연히 땅에 뿌려져야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만 인정하던 시대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러한 현상을 사용하여 나름대로 진리의 말씀을 전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잘 아는 바와 같이 밀알은 크게 두 가지 용도로 쓰입니다. 하나는 양식으로 쓰이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다음 해에 씨앗으로 쓰이는 일입니다. 먼저 양식으로 쓰이는 경우를 보면, 그 밀알은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할 때 그렇게 사용됩니다. 그런데 이때 사용되는 것은 주로 배젖 부분입니다. 밀은 쌀보다도 영양이 상당히 부족한데, 쌀의 경우도 씨눈을 깍아서 떨어내 버리고 배젖부분만 먹으면 겨우 5%의 영양밖에 남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도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유익을 가져다 주는 일을 합니다. 바로 생활하는데 필요한 힘을 공급하는 탄수화물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큰 일을 하지는 못합니다.
이 세상에는 이러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부분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한 가지의 사명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별로 돌아볼 시간과 마음적인 여유도 없이 자기 한 사람만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좀더 넓혀야 자기 가정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자기로서는 최선을 다해 살되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다른 좋은 영향을 주지는 못하고 또한 줄줄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도 이 사회에는 있어야지요.
밀알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이 있습니다. 이는 종자 즉 씨앗으로 쓰이는 것입니다. 이는 추수하여 보관되었다가 다음 파종시기에 땅에 심겨져 더 많은 밀알을 얻게 합니다. 이때 배젖부분과 씨눈부분이 함께 필요합니다. 배젖에 저장되어 있는 탄수화물은 씨눈이 싹을 튀우고 떡잎이 자라게 하는데 큰 힘이 됩니다. 그리고 땅의 양분과 햇빛을 받아 줄기를 뻗고 이삭을 내고 알곡을 맺습니다.
이 밀알은 땅에 떨어져 심겨지면 이렇게 모든 부분이 필요하게 되고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일부 선택된 밀알만이 감당하는 일입니다. 제가 농사짓는 분에게 전화를 해 보았더니 우리나라에서 쌀농사를 짓는 경우 씨알 하나에서 약 120-140배 정도를 거둔다고 합니다. 이는 옛날 밀농사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지요. 이렇듯 한 번 땅에 심겨지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자기 몸의 100% 모두를 사용합니다.
이는 지도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신만의 삶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서도 힘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때 희생과 봉사가 따르는 것을 우리는 무시할 수 없지요. 자기가 하나님께 받은 재능을 모두 쏟고 자신의 재물까지 투자해야 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서구에서는 자기들 가운데 똑똑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내세우는데 익숙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는 한 사람의 지도자가 천 명을 먹여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마도 오늘 읽은 말씀이 깊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알의 밀알이 많은 밀알을 생산해 내듯, 사람도 한 사람이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것은 서로 상통합니다.
씨앗은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강한 지 오랜 세월 지난 후에도 땅에 심으니 싹이 나왔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약 십여 년 전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약 3000년 정도 오래된 밀알이 발견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학자들이 이 밀알을 밭에 심었더니 싹이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밀알들이 왜 피라미드 속에 있었습니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피라미드는 지금부터 4500년에서 3000년전 고대 이집트의 왕 파라오들의 영면의 장소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들은 죽음 이후에 언젠가는 부활할 것으로 믿었었는데, 그때 필요한 양식을 피라미드 안에 보관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부활하지도 못했고 또한 그 밀알을 양식으로 사용할 기회도 전혀 갖지 못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진정한 씨앗이 되셨습니다. 그의 부활 사건이 2000년 전에 일어났던 사건이지만, 오늘도 우리들에게 유효합니다. 세상의 밀알도 3000년이 지난 후에 땅에 심기니 다시 싹을 트게 하는데, 예수님의 부활은 수천 년 아니 영원히 우리로 하여금 영생에 대한 새생명을 싹트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은 여러 가지로 우리들에게 유익을 가져다 줍니다. 작게는 한 사람의 생애를 바꾸게 하는 열매도 맺게 됩니다. 크게는 많은 사람들의 생활을 변하게 합니다. 우리가 잘아는대로, 이 나라를 일본에게 빼앗겨 어려울 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을 키우는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 가운데 남강 이승훈 선생님이 계시는데 그 분은 오산학교를 세워 많은 인재를 길러냈습니다. 그분은 3.1운동시 독립선언문에 이름을 쓸 때도 제일 앞장을 선 분이었습니다. 누구의 이름을 쓸 것인가 의견이 분분할 때 이승훈 선생님은 “순서는 무슨 순서, 그거 죽는 순서야!” 하면서 자기의 이름을 제일 먼저 쓰게 하려했다는 말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감옥에 잡혀들어가면서도 “이제 죽을 자리를 찾았다”고 즐거워하신 분이었습니다. 감옥에 들어가서도 남이 하기 싫어하는 변소청소도 마다하지 않았던 분입니다. 그 분은 자기의 생명을 이 나라와 이 민족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치신 분이었습니다. 그러한 선생님이셨기에 그 밑에서 이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많은 제자들이 나왔습니다. 그분은 철저히 한 알의 밀알이 되기를 원하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러한 분이 있기에 훗날 이 나라를 그나마 다시 찾고 세울 수 있는 결과를 가져다 준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오늘 날 한 알의 밀알로 살아가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더욱이 교회의 지도자들은 한 알의 밀알과도 같은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일반적인 밀알처럼 음식에 사용되는 밀알처럼 자기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 한 가지 자기의 구원만을 만족하며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지도자적 교인들은 자신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일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희 교역자들은 지난 월요일과 화요일에 기도회를 가지면서 먼저 밀알이 되자고 다짐을 했습니다. 이는 교우들을 섬기는데 전문가가 됨으로써 가능할 것입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그대로 남을 대접하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우리도 살아갈 때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많은 생명을 인도하고 키우는 직분을 감당할 것입니다.
우리교회에도 한 알의 밀알과도 같은 지도자가 많이 나와야 합니다. 이는 교회의 항존직분자를 세울 때 특히 잘 반영되어야 합니다. 지도자로 세움받음은 지금까지 봉사한 희생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까지 봉사한 것을 바탕으로 더 많은 봉사와 희생을 하겠다고 각오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정이요 격려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항존직으로 선출된 후 봉사와 희생을 그만두면, 고등학교 때는 열심히 공부하다 대학생이 되어 공부를 쉬엄쉬엄하며 놀러다니기 좋아하는 학생과도 같은 격일 것입니다. 그러한 학생에게는 미래가 없고 그러한 학생이 많은 이 한국은 참으로 미래가 어두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우리의 직분이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더욱 더 봉사와 희생이 많아야 할 것입니다. 그때 그 사람과 그 교회의 미래는 밝습니다. 한 알이 아니라 많은 알이 썩어질 때 맺어지는 열매는 더욱 많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대구제일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부활절 후 첫 번째 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 생명의 가치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을 것을 요청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데 있습니다.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주의깊게 생각할 것은 사실 죽는 것처럼 보이지만 죽는 것이 아닙니다. 땅에 심기움은 밀알에게 있어서는 진정 있어야 할 곳에 놓여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영원한 삶을 위해 준비하는데 중요한 목적이 잇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이 영적인 고향에 속하매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