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뺀 무리 삼만을 다시 모으고 2 일어나서 그 함께 있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름하는 것이라. 3) 저희가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4) 저희가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행하고,
5)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주악하더라. 6) 저희가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 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8) 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칭하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9)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10)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치우쳐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11)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이번 주간에는 현충일이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본교단 총회는 다음 주일을 순국선열의 주일로 지키도록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순국선열이 많이 생겼다는 것은 그만큼 나라가 많이 어려웠음을 의미하지 않을까요? 전쟁은 영웅을 낳게 하듯이, 나라의 어려움은 많은 순국선열을 낳게 합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죽어간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 분들을 기려야 할 것입니다.
순국선열에 대해 언급하자면, 먼저 안중근(安重根, 1879-1910.3.26)의사를 떠올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일찍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이 나라와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1879년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출생해 한학(漢學)을 공부하다가 1895년 아버지를 따라 복음을 받아들이고 서양 학문을 접하였습니다. 그의 나이 28세가 되던 1907년에 연해주로 망명하여 의병운동에 참가하였습니다. 그는 동지 11명과 죽음으로써 구국 투쟁을 벌일것을 손가락을 끊어 맹세하였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조선의 독립을 방해하던 일본 총독 이토 히로부미를 용감하게 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나는 한국인이 이토의 압박을 받은 데에 대한 복수를 하였다"고 외쳤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뤼순 지방 법원으로 재판을 받으러 가면서도 "나는 대한 의병 참모 중장으로서 적군의 우두머리를 처단했다"고 떳떳하게 주장하였습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뒤, 두 아우와 홍석구 신부를 면회하면서 동포들에게 다음과 같은 마지막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거든, 시체는 하얼빈 공원 부근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나라가 독립되거든 고국으로 옮겨달라. 나는 죽는게 아니라, 천국에 가서 대한 독립을 위해 일할 것이다.” 그는 옥중에 있으면서도 굳은 결의를 잃지 않고, 의연한 자세로 임했다고 전해집니다.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정말 훌륭한 일입니다. 이를 신앙적인 사명을 가지고 한 사람을 우리는 더욱 기려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도자들이 나라를 잘 다스리고 백성들도 정신차려 사회를 잘 유지해 나가 나라를 어렵게 하거나 빼앗기는 일이 있어서는 않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지도자의 위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그래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사람에 대하여 깊이 신앙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지도자의 잘못으로 인해 죽어간 사람에 대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그의 성으로 옮기려 했던 다윗의 사건을 전해줍니다. 그런데 그 사건을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지도자였던 다윗 왕이 상황을 제대로 대처해 나가지 못해 애매하게 백성 가운데 책임맡은 사람만 죽였다는 것입니다.
먼저, 다윗은 법궤를 옮기기 위해 약 삼 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나갔습니다. 물론 법궤를 옮기는 일은 무척 중요한 예식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필요로 했을 것입니다. 또한 이 법궤에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기에 지키기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위해 진정 필요한 사람들은 데리고 가지를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법궤를 만질 수 있도록 허락된 제사장들은 어디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법궤가 머물러 있던 집의 사람들이 이 일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인 웃사는 법궤를 소달구지에 실고 소를 몰며 다윗 성을 향하여 떠났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소가 갑자기 뛰게 되자 법궤가 달구지에서 떨어져 넘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를 보자 웃사는 급한 김에 손을 들어 그 법궤를 붙잡아 넘어지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법궤에 손을 댄 웃사를 그 자리에서 죽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제사장도 아니면서 거룩한 법궤에 손을 대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웃사는 참으로 억울한 사람입니다. 다윗 왕의 잘못된 명령을 수행하다가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웃사는 오히려 잘 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 법궤가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면 산산조각이 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 법궤가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 손을 댄 웃사가 죽임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명분 때문에 죽어간 웃사는 오히려 칭찬을 받아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합니다. 나라의 지도자가 잘못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부하나 백성들이 죽임을 받는다는 것은 분명 불공평합니다. 웃사는 왕을 대신해서 죽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죽어간 사람이 다윗과 연관되어 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름하여 우리아입니다. 다윗은 우리아가 전쟁에 나가 있는 동안 그의 아내를 범하였습니다. 그는 그 잘못을 숨기기 위하여 우리야를 최전방에 내보냄으로 그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죄악은 숨길 수 없는 법 ... 숨길 수 있었을 것 같은 이 죄를 하나님은 가만히 두지 아니하시고 그의 선지자 나단을 통해 지적을 하시고 다윗에게 죄를 물었던 적도 있습니다. 우리야 역시 다윗이 왕으로 있는 동안에는 공신이나 무공훈장을 받은 영웅이나 순국선열로 기려지기는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지도자 다윗 왕의 잘못된 욕심으로 인해 희생된 자임에는 분명합니다. 그가 순국선열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왕이 왕으로서 제 역할을 감당하여 백성들에게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위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도 나라의 지도자에 의해 잘못되어 갈 때 백성으로서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보게 합니다. 우리도 우리가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여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랍니다. 그러면서 또한 우리는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직접 어려움을 당할 때 이를 감당하는 것은 또 다른 일입니다.
옛날에 이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후에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의 일입니다. 임진왜란뿐만 아니라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된 것은 분명 나라의 지도자들의 잘못이 큽니다. 하지만 고생을 하는 것은 대개 백성들이었습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직전 인조반정의 공신인 김류(金瑬)대감의 마님 생일잔치가 있었는데, 많은 대신들이 초청되었고 또한 부인들도 함께 모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시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청나라 병사가 쳐들어오면 치마끈으로 목을 졸라 자결하겠다든지 은장도로 목숨을 끊겠다든지 해서 몸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기염을 토하였습니다. 한데 유독 김 승지의 부인만은 “그 때를 당해 보아야 알지 미리부터 자기 행실을 규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부인들 가운데 이 참판의 부인은 김승지 부인에게 모욕적인 말로 꾸짖었습니다. 뙤놈에게 몸을 팔 더러운 년이라고 막말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청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들도 남편들과 또한 백성들과 함께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지금 서울의 잠실벌인 삼전도 건너 진터벌에서 사로 잡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김승지의 부인도 이참판의 부인도 함께 잡혔습니다. 한데 이 두 부인의 태도는 너무나도 현격하게 역전되고 말았습니다. 김승지의 부인에게 더러운 년이라고 욕하던 이참판의 부인은 청나라 군사들의 요구를 호락호락 받아들여 애첩이 되어 청나라로 가버렸고 김승지 부인은 끝까지 항거하여 살해되어 몸이 갈래갈래 찢긴 채 진터벌 어딘가에 암매장되었습니다.
정말 누가 자신과 나라를 위하여 몸바친 사람인지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김승지의 부인은 정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끝까지 나라를 위하여 몸바친 순국선열입니다. 지도자의 잘못으로 인해 그들은 피해를 보고 또한 백성도 피해를 볼 때 자기만 살려는 자세보다는 자신과 나라를 지키려는 자세로 몸을 던진 사람들은 모두 순국선열로 기려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지도자의 부재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대통령은 많이 있었으나 지도자는 없다고 지적한 어느 독일학자의 비판이 실감나는 때입니다. 대통령의 아들들이 비리의 핵심에 서 있고 대통령의 수족과도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부패의 핵심에 앉아 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백성들이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주 심각한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의 국운이 달려있다고도 보아야 할 상황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늦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천주교에 몸담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과 개신교에 몸담고 있는 이의호 여사는 하나님과 국민들 앞에서 회개하여야 할 때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내릴 것인데, 문제는 애매하게 국민, 백성들에게 그 피해가 온다는 것입니다. 현충일에 국립묘지에 가서 참배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고 진정 하나님과 백성들 앞에서 참회할 줄 아는 대통령이 될 때 진정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다시 이 나라를 정상으로 돌려놓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라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일부러 순국선열들이 많이 나오게 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국민된 백성들도 할 바를 알고 갈 바를 잘 알아야 합니다. 나라를 지키는 일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떤 위대한 인물이나 큰 사건만을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도 진정 나라를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요사이 어떤 껌을 볼 때마다 마음이 심란해집니다. 여러분들이 아마도 자주 대하는 껌일 것입니다. 이름하여 자이리톨껌(Xylitol Gum)입니다. 현재 껌 총판매량의 약 80%를 차지하는 껌입니다. 그 껌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 껌을 팔기 위한 상술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껌이 개발되어 처음 판매되기 시작했을 때에 별로 호응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홍보팀은 어떻게 하면 잘 팔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여러분들이 잘 아는 선전을 만들었습니다. “핀란드에서는 저녁식사 후 자기 전에 자이리톨껌을 씹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떻습니까?” 이 선전을 본 한국사람들은 그때부터 그 껌을 사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야 우리도 선진국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드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이 껌을 씹어본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사 본 적은 없습니다. 그 껌이 몸에 나빠서가 아니라, 그 껌을 선전한 사람들이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을 긁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유럽이 어떻게 하면 우리도 그렇게 하여야 한다는 식으로 몰고 갑니다. 그래서 무의식 가운데 유럽에 대한 한국사람들의 컴프렉스를 자극하는 상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 순국선열들이 이 선전을 들을 수 있었다면, 무덤에서 다시 일어나 크게 호통을 칠 것입니다. 이 나라를 어떻게 지켰는데 정신적으로 아직도 서양에 예속되는 것인지를 꾸짖을 것입니다.
국민된 우리들은 이 나라와 이 민족이 정신적인 면에서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가 몸담고 살아가는 나라, 하나님이 세우신 이 나라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제지도자들도 물건 하나 만들어 팔 때 이것이 진정 나라에 도움이 되는 방법인지 아닌지를 깊이 생각하며 만들고 팔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의 경제적 유익만을 생각하며 활동하다가는 나라를 망하게 하고 또 다신 순국선열들이 나와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대구제일교회 성도 여러분,
이 주간에는 또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월드컵이 시작되었습니다. 현충일이 끼어있는 이 주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진정 나라를 사랑하는 자세 또한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축구대표들이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한국축구는 많은 발전을 한 것은 분명합니다. 더욱이 값진 성과라 한다면 유럽에 대해 주눅이 드는 현상을 극복해 냈다는 점입니다.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저도 그 사실을 기뻐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직도 우리가 극복하지 못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아직도 히딩크라는 유럽의 감독의 지도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도자와 연관되어서도 우리 스스로 유럽에 대한 컴프렉스를 이겨나갈 때 또한 우리의 지도자를 외국에 보낼 수 있을 때 진정 스스로 서는 모습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래도 반가운 것은 우리 축구대표 선수 23명 가운데 약 11명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입니다. 최태욱 선수나 이천수 선수가 골을 넣은 후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더욱 알리는 기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과 나라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며 영광을 드러내는 모습은 진정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알리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를 반만년 전에 세우신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러한 신앙을 심어나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 국기게양대 주변에 무궁화를 심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민족을 세우신 하나님을 생각하지는 이유 때문입니다. 저는 앞으로 피어날 무궁화를 보면서 이 나라와 민족을 세워주신 하나님을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이 나라와 민족을 잘 이끌어 가고 유지해 나가며 다른 민족과 나라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는 나라가 어려워져 많은 순국선열들이 생기고 이를 기념하는 현충일과도 같은 날이 더 이상 있지 않는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