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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잔을 함께 마실 수 있느냐
    2002-06-07 19:01:05   read : 2478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설교자:박 종 화 목사
    ■ 설교일:2001년 4월 1일
    010401.ram(LOAD:69)



    민수기 21: 4 ~ 9
    그들은 에돔 땅을 돌아서 가려고, 호르 산에서부터 홍해 길을 따라 나아갔다. 길을 걷는 동안에 백성들은 마음이 몹시 조급하였다. 그래서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였다. "어찌하여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왔느냐? 이 광야에서 우리를 죽이려고 하느냐? 먹을 것도 없다. 마실 것도 없다. 이 보잘 것 없는 음식은 이제 진저리가 난다." 그러자 주께서 백성들에게 불뱀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사람을 무니, 이스라엘 백성이 많이 죽었다.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구하였다. "주님과 어른을 원망함으로써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이 우리에게서 물러가게 해 달라고 주께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모세가 백성들을 살려 달라고 기도하였다.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사람은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 것이다."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로 뱀을 만들어서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에, 물린 사람은 구리로 만든 그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히브리서 5: 7 ~ 10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세상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께, 큰 부르짖음과 많은 눈물로써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경외하심을 보시고서, 그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그의 경외하는 마음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간구를 들어주심을 얻었습니다. 그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복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 자기에게 복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로부터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서 대제사장으로 임명을 받으셨습니다.

    마가복음 10: 35 ~ 40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주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고, 내가 받는 침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였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시고, 내가 받는 침례를 너희가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그 일은, 내가 허락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해 놓으신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



    사순절 다섯째 주일입니다. 예수께서는 사순절에 몇 가지 중요한 말씀을 하셨는데,
    그 중에 오늘 복음서 본문에 나온 말씀, "내가 마시는 잔을 함께 마실 수 있느냐?"는 말씀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의 제자인 세베대의 두 아들이 오늘 예수를 따라오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이 두 사람이 와서 예수에게 요청합니다.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 왼쪽과 오른 쪽에 우리 둘을 좀 앉게 해주십시오." 요즘 말로 하면 대권을 잡으실 때 좌의정과 우의정에 임명하여 달라는 요청입니다. 그들이 스승에게 요청하는 것은 어쩌면 큰 무리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요구는 "영광을 받으실 때"라는 조건부입니다. 주님께서 어려움을 당하실 때 어떻게 해달라는 요청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요청을 좋게 여기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예수를 따라왔건만 고난받는 종인 스승의 운명은 생각지 않은 채 "영광을 받으실 때" 한 자리 차지할 것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두 제자는 한 가지 기억을 되씹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평소에 늘 제자들을 모아놓고는, 인자(人子)는 반드시 들려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은 구약시대에서부터 전해진 한 가지 전설과 같은 이야기를 회상하였음에 틀림없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로 나왔을 때 사람들이 아우성쳤습니다. 먹을 것을 달라고 소리쳤습니다. 목마르다고 소리쳤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간구해서 백성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려고 하는데, 백성들이 참지 못하고 하나님까지 원망하자 하나님께서 벌을 주셨습니다. 뱀을 풀어서 물리게 한 것입니다. 먹을 것 마실 것 없는 광야에서 뱀에 물리기까지 한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가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이 백성의 탄원을 들어주십시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막대기에다 구리로 만든 뱀을 매달아 세워놓고, 누구든지 독사에 물린 사람은 이 구리뱀을 보면 산다고 했습니다. 그 구리뱀은 그래서 "들린 뱀"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자들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뇌리에 남아있는, 과거부터 배워서 아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인자는 들려야 한다고 했을 때 구리뱀과 마찬가지로 인자도 영광스럽게 되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높이 들림을 받으실 때는 분명히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라고 믿고서, 그렇게 되면 자기들에게도 영광의 자리를 나누어주시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그 요청에 예수께서 물으십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함께 마실 수 있느냐?" 그리고 이어서 묻습니다.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도 받겠느냐?" 두 사람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보면서 깨닫는 바가 있습니다. 참된 영광의 자리는 고통의 자리 위에, 부활의 자리는 십자가의 자리 위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영광의 자리 뒤에는 수난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알았다면, 두 제자가 예수의 좌 우편에 앉혀달라고 요청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두 제자라고 하면 이 수난절에 주님께 무슨 요구를 할 수 있겠습니까? 높이 들린 예수의 좌 우편에는 강도 두 사람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혹시 세베대의 두 아들의 요구가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져서 두 강도 대신에 그들이 예수의 십자가 좌 우편에 못박혀 있었더라면 수난절의 이야기는 아주 달라졌을 것입니다.

    예수의 대답입니다. "좌 우편에 앉게 하는 것은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가 결정할 일이다. 그대들은 나와 함께 수난의 잔을 마시고 내가 받는 고난의 세례를 함께 받으면 그 뿐이다." 예수가 받은 그 수난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었는지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 이후에 성령을 받고 예수를 믿은 모든 사람들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따랐습니다. 엄청난 수난 가운데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신앙을 지켜나갔습니다.

    서기 313년은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해입니다. 그렇게 국교로 공인받기 전 3백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은 기독교의, 교회의,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의 수난의 절정기였습니다. 어떤 수난을 얼마나 받았느냐 하는 것은 너무 심하고 많아서 일일이 말씀드리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십자가 형틀에 달린 예수보다 결코 덜하지 않는 심각한 수난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가장 큰 이유는 로마의 황제 숭배를 거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의 황제 숭배는 결코 종교행사만이 아닙니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요, 통치의 방법이요, 그래서 로마의 기반이었습니다. 따라서 그걸 반대하는 사람들은 심판과 저주와 수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밝은 지상에 있지 못하고 지하 무덤인 카타콤으로 내려가서 예배드려야 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이 내놓은 국정 홍보 책자에 보면(그런 책자는 없었지만, 요즘에 빗대서 말한다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무신론자다. 이 사람들은 가족을 떠난 사람들이고, 가정을 파괴하는 사람들이다. 카타콤에서 부정하게 음행을 저지르는 자들이다. 성찬을 한답시고 피와 살을 뜯어먹고 마시는 흡혈귀들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런 정권 안보차원의 선전들이 유포되었습니다. 그리고서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붙잡아 불로 달군 쇠로 몸을 지졌습니다. 눈을 뺐습니다. 귀를 잘랐습니다. 사지를 잘랐습니다. 그 사지가 잘린 몸뚱이를 굶주린 사자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야생동물의 가죽을 씌어서 사냥개들에게 던져 주기도 했습니다. 네 마리의 말에다가 사지를 묶고 말을 몰아서 사지를 찢어 죽였습니다. 이런 박해와 수난의 피 위에서, 313년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되는 위대한 역사가 생겨났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순교자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고난받은 "주님의 몸 된 교회"라는 말에는 이런 뜻이 담겨있습니다.

    예수의 말씀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그대들도 마시겠느냐?" 수난
    가운데서 가장 큰 수난은 몸이 아픈 수난은 아닐 것입니다. 차라리 몸의 고통은 그런대로 참고 견딜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인생살이에서 가장 큰 수난이 뭐냐고 묻는다면 저는 육의 수난만이 아니라 우리가 능멸을 당하고 수치를 당하는, 몸과 마음을 합한 전인적인 수치일 것입니다. 예수는 고통과 수치를 동시에 당했습니다.

    첫 번째 수치는 이겁니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전능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하나님으로부터 거절을 당하고 버림을 받아서 십자가에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아 십자가에 달린 메시아의 수치, 이 수치가 예수에게는 수난의 절정이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수치는 이것입니다. 유대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무능력의 상징이었고 헬라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음의 상징이었습니다. 만약 오늘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서 처형당하는 것을 본다면, 휴머니스트는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할 것이고, 세속주의자는 불필요한 일이라고 할 것이며, 오늘날의 합리주의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불합리한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오늘 인간이 개발한 어떠한 사상과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보더라도 십자가 사건은 바보짓입니다. 광대극입니다. 이 모든 폄훼를 뒤집어 써야 하는 것은 예수의 수난에 담겨있는 또 하나의 수치입니다.

    또 다른 수치가 있습니다. 그렇게도 사랑했던 제자들의 배반, 그렇게도 몸을 바치고 마음써서 위해 주었던 민중의 배반, 이스라엘의 배반, 이런 배반에서 예수의 수치는 다시 극에 달합니다. 예수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내가 겪어야 할 이러한 수치를 너희가 알든 모르든, 이러한 수치를 나랑 똑같이 당할 각오가 되어 있느냐?" 세베대의 두 아들은 여기에 답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수치 없는 영광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수난절의 참된 의미를 추구하는 일은, 지금 우리에게 던져지는 예수의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나와 함께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이런 수치를 당해도 나를 그리스도로, 구세주로 고백하겠느냐?" "내가 받은 세례를 너희도 받을 수 있겠느냐?"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결단의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록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수난을 통하여, 십자가의 고통을 통하여 복종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도 수난 가운데에서 복종하는 것을 배웁니다. 수난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복종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어떤 복종입니까? 제도에 의해, 신분 질서에 의해 강요된 복종은 오늘 성서가 말씀하는 복종이 아닙니다. 그것은 "복종"이 아니라 "굴종"입니다. 예수는 하나님께 굴종한 게 아닙니다. 예수의 복종은 자유와 평화의 나라, 하나님 나라, 그 나라를 이루기 위한, 이미 하나님 아들의 복종, 곧 자유인의 복종이었습니다. 해방되고 자유한 사람이 스스로, 자율적으로 하는 하나님 찬양, 하나님 복종은 굴종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무조건 부모의 뜻을 따르도록 강요받고 자란 자식은 부모에게 "복종"하지 않습니다. 그는 "굴종"을 배웠을 뿐입니다. 진실로 부모에게 순종할 수 있도록 하는 길은 자식들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입니다. 자식들을 진정한 자유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젊은 세대에게 자유를, 책임 있는 자유를 주어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단을 하게 될 때, 그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합니다. 복종의 바탕은 주지 않은 채 복종을 강요하여서는 결코 복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자유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참된 복종을 합니다. 그 예수는, 그가 달린 십자가는 참된 복종의 상징입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동안에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가장 자주 받은 질문입니다. 당신이 오시겠다고 약속한 그분입니까? 하나님께서 보내겠다고 하신 메시아 그분입니까?" 예수의 대답입니다. 상징적인 대답입니다. "나는 미래로부터 왔습니다. 과거로부터가 아니라 미래로부터 왔습니다. 나는 희망의 나라로부터 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희망의 나라로 돌아갈 것입니다. 미래로 돌아갑니다." 간혹 이런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떠나온 고향이 확실한 사람은 행복하다는 생각입니다. 두고 온 고향이 있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돌아갈 고향이 있는 사람은 더 행복한 사람입니다.

    험난한 세월을 겪으면서 떠나온 고향과 돌아갈 고향이 다른 경우도 생깁니다. 여러분에게는 떠나온 고향과 돌아갈 고향이 같은 곳입니까? 우리는 죽어서 육신이 묻힐 수 있습니다. 흙에서 왔기 때문에 흙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미래로 돌아가는 것처럼 당신들도 미래를 향해서 갑니다. 과거에서 왔으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에서 온 여러분은 다시 미래를 향해 갑니다."

    예수님에게는 떠나온 고향과 돌아갈 고향이 같았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의 고향은,우리가 돌아가야 할 고향은 미래입니다. 우리가 온 고향도 미래입니까? 이게 오늘의 질문입니다.

    어느 신문에서 입양아에 관한 이야기 하나를 읽었습니다. 작년에 홀트아동복지회 통계를 봤더니 홀트복지회를 통해서 외국에 혹은 국내에 입양한 입양아가 1,592명이라고 합니다. 그중에 해외로 1,065명이 입양해 갔고 국내로 527명이 갔습니다. 국내 입양의 두 배 가량이 외국으로 입양되어 갔습니다. 그 중에 지체장애아, 정신장애아 등의 장애아는 423명이 해외로 입양되어 갔는데, 국내 입양은 딱 2건밖에 없습니다.4월 5일 식목일에 잠실야구장에서 프로야구 개막전이 있다고 합니다. 그때 시구(始球)할 사람이 정해졌습니다. 아담 킹이라는 중증 지체장애아인 한 아이입니다. 그 아이는 네 살 때 중증 장애 상태에서 입양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양부모 킹 부부의 세 번째 양자 입적되어서 이제는 자기가 태어난 이 땅에 와서 프로야구 개막식에서 시구까지 할수 있을 정도로 잘 자랐다고 합니다. 이 아이의 양부모 두 사람은 모두 여덟 명을 해외에서 입양을 했는데, 그 중에 여섯 명이 장애아라고 합니다. 이 아버지는 말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그냥 따랐을 뿐입니다. 장애아들은 더욱더 사랑이 필요합니다. 장애아라고 해서 쉽게 포기하는 한국 사람, 장애아이기 때문에 더욱더 입양을 꺼리는 한국 사람, 저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아담 킹, 시구할 아담 킹, 이렇게 물을 겁니다. "저를 낳아준 고향, 제가 돌아갈 고향은 어딥니까? 한국? 너무 멉니다. 제가 태어난 고향, 저를 낳아준 어머니는 누굽니까?

    저를 버린 어머니는 누굽니까?" 이 아이가 가야할 고향은 다시 자기를 버린 이 땅일까요? 시구하면서 이 아이가 이렇게 말할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돌아가야 할 고향, 다시는 버림이 없는 다시는 나와 같은 고통이 없는 고향, 하나님이 주인이신 그 나라로 가고 싶습니다. 야구공이여 날아가라!"

    십자가의 고향은 골고다입니다. 부활의 고향은 하나님나라입니다. 골고다는 하나님
    나라가 임한 현장입니다. 그 골고다 언덕 속에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고향인 하늘나라가 현재화되어 있습니다. 골고다는 영광이 아니라 고난이 있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의 자리를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마음속에 담고 나면, 예수와 함께 죽고 나면, 바로 거기에서 우리가 돌아가야 할 하나님나라가 펼쳐집니다.

    부활절 아침을 우리는 기대합니다. 골고다는 하나의 장소입니다. 수난의 현장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곳에서 우리가 가야할 미래의 희망이 펼쳐집니다. 골고다 언덕은 하나의 시간입니다. 미래가 현재화되는 시간입니다. 시간과 장소를 합하면 바로 여기 이곳, 라틴말로 히크 앤 농(hic et non)입니다. 수난의 현장인 이곳에 하나님나라가, 수난이 이어지는 이 십자가의 시간 속에 부활의 시간이 잉태됩니다.

    이 잔을, 이 세례를 여러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러면 우리한테 수난의 의미가 있게 됩니다. 십자가의 부활을 잉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에 참예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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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존 하시는 하나님
    방언의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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