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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는 죽이고 영은 살린다
    2002-06-07 19:25:31   read : 2559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설교자:박 종 화 목사
    ■ 설교일:2001년 10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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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의 말씀: 창세기 8:18 ~ 22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을 데리고 나왔다.
    모든 짐승, 모든 길짐승, 모든 새,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것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바깥으로 나왔다. 노아는 주 앞에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새들 가운데서 제물을 골라서, 제단 위에 번제물로 바쳤다. 주께서 그 향기를 맡으시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셨다. "다시는 사람이 악하다고 하여서, 땅을 저주하지는 않겠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다. 다시는 이번에 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없애지는 않겠다. 땅이 있는 한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와,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아니할 것이다."

    서신서의 말씀: 고린도 후서 3:3 ~ 9

    여러분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편지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작성하는데 봉사하였습니다. 이것은 먹물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요,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쓴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확신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우리에게서 나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격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언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새 언약은 문자로 된 것이 아니라, 영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 돌판에다가 문자로 새긴 율법을 선포할 때에도, 빛이 났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은 비록 곧 사라질 광채이는 하지만,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그 광채 때문에,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 볼 수 없었습니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직분에도 이러한 영광이 따랐는데, 하물며 성령의 직분에는, 더욱더 영광이 넘치지 않겠습니까? 정죄를 선고하는 직분에도 영광이 있었으니, 의의 직분은 더욱더 영광이 넘칠 것입니다.

    복음서의 말씀: 마가복음 2:23 ~ 28

    또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가죽 부대를 터뜨려서, 포도주도 가죽 부대도 다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한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제자들이 길을 내면서, 밀 이삭을 자르기 시작하였다. 바리새파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어찌하여 이 사람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렸을 때에,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를 너희는 읽지 못하였느냐?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사장들 밖에는 먹지 못하는 제단 빵을 먹고, 그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 조차도 주인이다."



    --------------------------------------------------------------------------------



    인간들은 천지창조 이래로,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살아왔지만, 오랜 역사에서 수많은 굴곡을 겪었습니다. 오늘의 구약 본문인 창세기에 보면,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인간의 역사가 바야흐로 종말을 고합니다. 그 창조의 역사가 오늘 홍수로 완전히 씻겨져 갑니다. 홍수라는 말은 하나님의 창조 역사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노아의 방주에 탔던 사람과 생물들을 살아남게 하셔서, 그들이 씨앗이 되어 새로운 에덴의 역사를 이루어 가도록 복을 주십니다. 이것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옛 역사는 지나갔지만, 새로운 역사가 소수의 무리를 통해서 생겨납니다. 그때 노아가 배에서 나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첫 번째로 한 행위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제사 상에 무엇을 바쳤는지는 모르지만, 오늘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제사를 기꺼이 받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으신 이유는, 노아가 바친 제물에 노아의 마음의 향기가 묻어 있어서, 하나님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드리는 예배는, 무슨 말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찬양과 기도와 귀기울여 듣는 말씀 속에,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하늘을 향한 향기가 가득하다면, 하나님께서 이 예배를 받으십니다.
    노아가 바친 제사 속에 들어있던 하늘의 향기, 그 향기를 예수 그리스도가 가슴에 품고 오셨습니다. 여러분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으라고 성서는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가는 곳마다 풍기라고 합니다. 저는 오늘 아침 이 자리에 서서 우리가 진심으로 드리는 하늘을 향한, 하나님을 향한 예배, 이 감사의 축제에, 향기가 가득하다고 믿고 섰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향기로운 냄새를 받으시고, 우리의 향기를 통해서 교회 바깥에 있는 우리 형제 자매들에게도 이 향기를 전파하게 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제사를 받은 하나님께서 향기로운 제사를 바친 노아에게 이런 복을 주십니다. "다시는 모든 생물을 이 같은 방법으로 없애지는 않겠다.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절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보증으로 무지개를 보여주셨습니다. 무지개가 피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지키시는 줄 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생물은 다시는 멸절당하는 운명은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아 이후로 이 일이 너무나 고마워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법을 만들고, 그리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가지 법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삶을 이끌 그 법의 이름은 십계명이었습니다. 그 십계명을 하나님께서는 돌판에 새겨서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돌판에 새겨진 십계명, 그 계명들이 이스라엘의 법입니다. 하나님을 대면하고 돌판을 받았을 때에 모세의 얼굴이 너무나 빛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광채를 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십계명이 돌판에 새겨지고, 그 새겨진 십계명이 이스라엘 백성의 생활의 근거가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글자 하나 하나를 하나님께서 새겨 주셨다고 생각하고, 일점 일획도 어김이 없이 그 율법을 지켰습니다. 일점 일획도 틀리지 않고 지키는 것, 이것이 유대교의 특징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을 요즘말로 표현하면 일종의 "완벽주의"입니다. 완벽주의!
    완벽주의가 하나님을 완벽하게 믿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서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을 보았더니, 유대교 백성에게 주신 "완벽"이라는 복이 저주로 바뀝니다. 유대교의 그 완벽증 중의 하나가 오늘 안식일 논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포로 시절에도 안식일을 지켰고, 날씨가 나쁠 때도 지켰고, 날씨가 좋을 때도 지켰습니다. 성전에서 드리는 안식일만은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했습니다. 인간의 상황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완벽했습니다. 포로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 된 백성의 신분으로서, 어떻게 민족의 자주성, 주체성을 표현하며 지킬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안식일을 지키는 일을 통해서였습니다. 노동 시간도 거부해가면서 안식일을 지켰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투옥을 당했습니다. 후대의 평가가 재미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완벽하게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들을 완벽하게 보전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유대교 백성들은 이 율법을 지킵니다. 그런데 이 완벽하게 지키는 것, 그것에 함정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안식일 계명을 위반합니다. 안식일에는 먹지도 말라고 하는데, 예수는 배가 고파서 제자들과 함께 밀 이삭을 잘라서 먹었습니다. 안식일 위반이라는 비난에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모세의 돌판에 새겨진 십계명을 완벽하게 지키는 가운데에서, 안식일 계명에 대한 완벽주의 아래에서, 안식일을 지켜가야 할 바로 그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안식일이 주인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입니다. 더군다나 사람 중에 사람인 나 그리스도가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예수께서 율법이 나쁘다고 하신 것은 율법의 내용 때문이 아닙니다. 율법이 화석처럼 완벽주의로 굳어지는 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제가 히브리서 성서를 살펴봤더니, 히브리서 사상 속에서는 완벽함이라는 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인정이 풍만함"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완벽하다고 할 때, 그것은 사랑하는 일에 완벽한 사람, 인정이 철철 넘치는 사람, 인자함이 넘치는 사람, 사랑이 넘치는 사람을 말합니다.
    유대교 율법의 밑바닥에는, 안식일 계명의 밑바닥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면, 안식일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려면, 그 지킴 속에 하늘의 은혜와 죄 사함에 대한 감격과, 찬양과 감사의 기도와, 사랑과 인정이 철철 넘쳐야 합니다. 율법적 완벽함은 있으나, 인정이 메마르면, 사랑이 없으면, 안식일 계명을 통해 사람을 무시하면, 그날로 완벽주의는 화석화되고 맙니다. 그것은 율법의 뜻이 아닌, 율법의 모양을 완벽하게 지키는 행위입니다. 예수가 싫어하고 비판했던 것은 안식일 계명이 아닙니다. 안식일 속에서 사람이 죽어 간다는 것입니다. 돌판에 쓴 문자 속에서 영이 죽어 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일 논쟁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율법과 예수가 주신 복음, 이것이 오늘 우리의 중요한 테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종교개혁을 한 루터 선생이, "율법은 무엇이고 복음은 무엇이냐? 모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게 주신 복음의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차이는 단 하나, 자유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자유의 유무를 가지고 율법이냐 복음이냐를 구분했습니다. 루터의 말은 이런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되며, 그 무엇에도 예속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첫째 문장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체제나 법과 사상이나 율법이나 그 무엇으로부터도 자유하는 자,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어느 것에도 예속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율법이 화석처럼 되면 그리스도인은 완벽을 내세운 그 화석을 물리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유라는 복을 누립니다. 여기서 루터의 두 번째 문장이 시작됩니다 :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에 완전히 복종하는 노예이며, 모든 것에 예속된다." 일단 자유함을 받은 사람은, 죄악에서 해방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에 감격한 사람은 이제 모든 일에 완전히 복종하는 노예여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예속됩니다.
    복종이냐 해방이냐 하는 논란은 불필요합니다. 루터의 주장에 의지해서 말한다면, 율법적인 데에 노예가 된 사람은 지금 자유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이름으로! 그러나 일단 구원받아 감사하고 감격한 사람은 지금부터 예수의 사랑의 계명에, 복종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해방도 받지 않은 사람에게 순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억압입니다. 구원받았다는 사람이 구원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복종이 없을 때, 그 구원은 참 구원이 아닙니다. 율법과 복음의 한가운데에 자유가 서 있습니다. 이 자유는 그냥 얻은 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 중에 복입니다. 이 자유라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엄청난 복이라는 걸 어떻게 압니까?
    법정에서 가끔 경범죄 지은 사람에게 감옥살이 대신 몇 시간 봉사명령을 내립니다. 아마 죄를 탕감하는 방법으로 봉사명령을 받은 사람은 봉사생활이 감옥생활보다 낫기 때문에 봉사명령에 복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율적으로 하는 감격스런 복종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 오후에도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 클리닉"을 엽니다. 클리닉에서 봉사하는 많은 분들, 봉사와 헌신을 결단한 우리 모두는 사실은 시간도 들여야 하고, 손도 써야 하고, 발도 움직여야 합니다. 힘든 그 일을 왜 합니까? 우리가 받은 기쁨이 너무 커서,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율적 결단에 의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봉사에 순종합니다. 자유로운 해방의 감격을 맛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감사의 복종입니다.
    우리가 하는 봉사는 단순히 교회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해야 할 봉사가 있습니다. 참으로 자유한 사람, 그 사람은 종이 될 자유까지도 부여받은 사람입니다. 자유가 없는 봉사는 굴욕입니다. 하지만 해방받은 자유는 다시 사랑을 위해 봉사합니다. 이 두가지 사실 중에 여러분은 어느쪽을 택하시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전해 주는 복음의 명령은 먹물로 쓴 것이 아닙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썼습니다. 내가 준 복음은 돌판에 쓴 복음이 아닙니다. 당신의 살아 움직이는 가슴에 썼소이다. 내가 전해 주는 글자는 문자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영으로 나타납니다. 모세 얼굴에 나타난 광채보다 더 밝은 광채, 성령의 광채로 나타납니다. 나는 이런 광채 나는 글자를 당신들에게 드립니다."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말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는데, 파리 한 마리 없이 완전히 깨끗하고 정결한 말구유간과, 파리도 좀 있고 약간 더럽기도 한 말구유간을 나누어서, 그 두 종류의 구유간에서 지내는 말이 얼마나 건강한지 조사해 보았답니다. 그런데 병균 하나 없는 무균실에서 산 말은 저항력이 없어 쉽게 병이 들었고, 약간은 더러운 구유간에서 자란 말이 저항력이 많아 병에 잘 안 걸리고 오래 살더랍니다. 이건 무얼 말합니까? 사람은 너무 완벽하지 말고 약간은 잘못하고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들 웃음) 성서에 그런 말씀 있지 않습니까? "죄 많은 곳에 은혜도 많다." 그러나 은혜 많이 받으려고 죄 많이 짓지는 마십시오.
    말하는 핵심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주신 자유는 사람이 만든 완벽이라 이름하는 상자 속에 갇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죄가 좀 있더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죄 없는 것"이나, "죄 지은 것"을 절대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잘못한 사람도 회개시켜서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제가 지난 주일에 몇 분과 같이 심방을 했는데, 어느 집사님 댁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키우는 개가 사나운지 아주 꽁꽁 묶어 놓았더라구요. 낯선 사람이 오니까 묶여서도 많이 짖을 것 아닙니까? 그래 방에는 들어갔는데 하도 짖어대길래, 개 좀 풀어놓아 주시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그 개를 풀어놓았는데, 풀어놓은 개가, 방문을 열어놓았으니까, 방까지 들어올 줄 알았는데, 문지방에 딱 서 가지고 계속 짖어대는 것입니다. 그런데 짖는 소리가, 제가 듣기로는 낯선 사람이 있다고 짖는 것이 아니라, 낯설기는 한데 자기를 풀어주라고 하고, 안방에 앉아 주인과 같이 뭘 하니까 괜찮은 듯이 느끼고, 환영하는 소리 같았습니다.(다들 웃음)
    개도 묶였을 때는 풀리고 싶어합니다. 자유를 원합니다. 묶였다가 풀려나면, 그 자유가 얼마나 감격스럽겠습는가 하는 생각에, 개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에 저도 묶여 있으면 얼마나 자유하고 싶어하게 될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이 율법이든 돌판에 새겨진 명령이든, 죄든 억압이든, 속박은 자유의 갈망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개가 얼마나 잘 훈련을 받았는지, 문지방을 넘지 않고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내가 자유함을 받았지만, 내 임무는 문간에 서서 당신들을 환영하는 일이지, 당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개 주인의 훈련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그 개는 대단히 윤리적이었던 것 같습니다.(한바탕 웃음)
    그런데 인간은 해방의 기쁨을 어떻게 표출합니까? 해방을 받고서는 왜 남의 영역에 침범합니까? 우리는 해방 받은 기쁨을 어떻게 표현하시렵니까? 우리가 받은 자유는 이기적인 자유가 아니라, 책임 있는 자유입니다. 우리가 받은 자유는 자발적인 봉사로 이어집니다. 책임 있는 자유,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오늘 예수께서 다시 사도 바울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이 자유는 방종하는 자유가 아니라, 사랑으로 봉사하는 자유입니다. 그 자유는 스스로 자기 몸과 마음을 다 바칠 정도로 훌륭하고 철저한 자유입니다.
    그래서 다시 말씀합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은 사람을 살린다." 성서 말씀입니다. 문자 자체가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닙니다. 영이 빠져버린 문자가 사람을 죽입니다. 혼이 없는 무기는 사람을 무참하게 죽입니다. 인정이 없는 완벽은 사람의 숨을 끊어놓습니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사람을 죽입니다. 사람이 없는 제도는 사람을 질식시킵니다. 가슴이 없는 머리도 사람을 살지 못하게 합니다. 하늘이 없는 땅도 메말라서 사람을 견디지 못하게 합니다. 신령과 진정이 없는 말씀과 찬양, 기도는 영혼을 죽입니다. 그것들이 다 문자입니다. 뭐가 살립니까? 오늘 말씀은, 그런 문자가 아니라 영을 담은 문자, 하나님의 영, 그것은 우리를 살린다고 합니다. 왜? 해방시켜서 사랑의 봉사에 스스로를 헌신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늘 기도합니다. 세상이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 도와 주십시오. 주 성령이 오셔서 우리의 갈급한 심령을 채워 주시고 악이 창궐하는 이 세계를 뒤바꿔 주십시오." 하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제가 어느 성서 말씀을 읽어봐도, 주의 성령이 오셔서 직접 우리의 제도를 바꿔 주신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우리의 회사를 바꿔 주는 것 아닙니다. 우리의 제도도 바꿔 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민법이나 형법이나 헌법을 바꾸어 주시지 않습니다. 그건 성령의 일이 아닙니다. 성령의 일은 모든 시스템을 움직이는 인간, 그 인간을 속에서부터 바꾸어서, 감동 감화시켜서 새로운 체제를 만들게 하십니다. 요즈음 신경영 기법 중에 체제를 바꾸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체제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좋다고 하는 주장이 담긴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성령의 일은 체제나 제도나 이데올로기를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의 주인 되는 인간의 양심과 인간의 바탕을 감동 감화시켜서 하늘의 뜻에 따라서 제도를 다시 바꾸든가 새롭게 운영하도록 만드십니다.
    사람을 살리는 영, 이 영이 오늘 우리 가슴속 한가운데에서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란, 이렇게 살리는 영의 감동으로 죄 사함 받고 감사하는 사람들, 너무나 감사하기 때문에 진정으로 다시금 봉사하고 싶은 사람들, 섬기고 싶은 사람들, 이런 자유인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감동이 있는 자유, 섬기고 싶은 자유, 누군가에게 베풀고 싶은 인정, 이것이 여러분에게 넘치시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이 여러분을 감동 감화시켜 주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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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겸허한 자에게 은혜가
    오염된 성전은 허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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