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2025년 04월 30일 (수요일)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지구촌교회 담임목사에 김우준 목사 청빙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명성교회에서               빗속에서도 울려 퍼진 부활의 기쁨 / 지구촌교회 제4대 담임 후보에 한인 목회자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 '무장공비→ 목사' 김신조 별세 / 이재명 지지율 1위               헌재 전원일치로 윤석열 대통령 파면 /교회 건물 명의만 소유했던 목사…법원               산불 피해 한국교회 지원 총력 / 고령 교인 10명 중 6명               기독교인 수, 감소 멈추고 안정세 /일제 침략으로 예수 믿었으니 '수고했다'고 말해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이마에 십자가 인터뷰 출연               사순절에 대한 흥미로운 5가지 사실/ 트럼프 2기 첫 내각 회의, 목사·장관인 터너의 기도로 시작               국회 앞 25만 인파 “3.1정신으로 체제 전쟁 승리” /인사만 잘 해도 좋은 일이 생깁니다               수십만 시민들 모여 “탄핵 반대” “자유 수호/ 이만희 교주로부터 수년간 성폭행 피해              

  홈     강대식     강문호     계강현     고신일     곽선희     곽창대     권오선     권오진     김경진     김광일     김기석     김도완     김명혁     김병삼     김삼환     김상복     김상수     김성광     김성수     김승규     김양인     김영훈     김용혁     김원효     김은호     김의식     김재곤     김정호     김진수     김진흥     김창규     김창진     김형익     김홍도     남수연     노창영     노환영     류영모     명설교(A)     명설교(B)     명설교(C)     문기태     박병은     박봉수     박신진     박요한     박일우     박진호     박한응     박형근     배영진     배의신     배진기     배혁     서명성     서진규     손재호     송기성     스데반황     신만교     신현식     안두익     안효관     양인국     양향모     염두철     오주철     오창우     옥한흠     원영대     유기성     유민용     유은호     유장춘     유평교회     이강웅     이건기     이국진     이규현     이기복     이대성     이동원     이동희     이백민     이삼규     이상호     이성우     이성희     이양덕     이영길     이영무     이우수     이윤재     이은규     이익환     이일기     이재철.박영선     이재훈     이정원     이정익     이종철     이준원     이지원     이하준     이한배     이호준     임현수     장부완     전승문     정근두     정오영     정준모     조봉희     조상호     조성노     조영식     조용기     조학환     조향록     주준태     지성래     지용수     차용철     채수일     최동규     최인근     피영민     피종진     하용조     한경직     허창수     홍문수     홍정길.임영수     홍종일     외국목사님     .     괄사(왕)     기도문     (1)새벽     새벽.금언     인물설교     상식/주일     장례,추도.심방     가정설교     영문설교     목회자료/이단     교회규약     예화     성구자료     강해설교     절기설교     창립,전도,헌신,세례.주례사     어린이.중고등부     << 창세기>>     출     레     민     신     수     삿     룻     삼상     삼하     왕상     왕하     대상     대하     스     느     에     욥     시     잠     전도     아     사     렘     애     겔     단     호     욜     암     옵     욘     미     나     합     습     학     슥     말     <<마태복음>>     막     눅     요     행     롬     고전     고후     갈     엡     빌     골     살전     살후     딤전     딤후     딛     몬     히     약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유     <<요한계시록>>     말씀별설교     제목별설교     A)행사,심방     B)행사심방     예수님행적설교     성구단어찾기     이야기성경     설교(틀)구성하기     자주사용하는본문     구약사건     신약사건     구약삽화     신약삽화  

:: 로그인 ::
 ID   
 PASS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설교작성법(여기누르면 다나옴)
  설교잘하는 방법(여기누르면 다나옴)
  김기홍 설교학
  동영상.간증자료(여기누르면 다나옴)
  교계 뉴스 ------- (전체보기)
  생활전도(여기누르면 다나옴)
  전도편지
  참고 설교(성구)
  장례식 설교(내부에 많이있음)
  웃음치유와 영업
  기타

설교내용검색

성경 찾기

네이버.다음.구글


검색



Daum


(방송)설교 교회

해외교회사이트

예배와 찬양


목회자 컬럼
  • 교회와신앙칼럼
  • 뉴스미션칼럼
  • 뉴스엔조이칼럼
  • 당당칼럼
  • 기독공보칼럼
  • 기독목회칼럼
  • 크리스천칼럼
  • 타임즈칼럼
  • 김명혁목사
  • 김형준목사
  • 양인순목사
  • 이동원목사
  • 조현삼목사
  • 밤중소리

  • Home

    제목 치료하시는 예수
    2002-05-21 14:38:58   read : 3844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성경구절 마가복음 1:29-34
    설교날짜 2002/03/10

    부흥회 강사로 봉사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
    은 모든 사람들, 곧 신앙인이나 불신앙인이나 육체적인 질병으로 인한 심적 부담
    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항상 마지막 시간에 치유집회를 인도하면서 왜 그리 병든 자들이 많은지, 육신
    적 질병에 시달림 받으면서 그것이 가중되면 영적 생활에도 엄청난 힘을 잃어버
    리고 좌절감에 빠지는 것이 심화된 경우를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종종 불치의 병자들이 고침 받기도 하고, 오랜 지병으로 고생하던 사람들이 주
    님의 사랑을 입어 치유의 감격을 경험하는 것을 보면서 의사도 약사도 목사도
    다 하나님의 치유의 손이 되어 봉사함의 의미를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육신적 질병의 고통은 재론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힘든 것입니다.
    또 더욱 힘든 것은 가족, 혹은 친구로부터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거나, 치료불가능의 중병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
    마음은 무엇보다 무거운 것을 우리는 경험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육체적 질병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적인 병입니다. 마
    음이 병들면 육체도 병들고 그것은 치료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17:2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그만큼 마음이 모든 병을 치료하기도 하고 병들게도 한다는 말씀입니다. 즐거
    움은 약이 되지만 근심은 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건강과 질병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건강학을 강의하던 사
    람이 어느 날 중병으로 인하여 입원해 사경을 헤매는 이야기가 바로 그런 것입니
    다.

    질병으로 고난받는 사람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를 치료하시고 이어 각색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어쫓으시고 다스리시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예수의 복음 사역의 시작은 귀신을 쫓으며 각색 병
    든 자들을 치료하시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바로 '각색 병든 자들'에 주목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인간은 질병으로 고난 가운데서 생활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는 경험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난주간에도 많은 성도들이 육신적 정신적 아픔으로 인해 힘들어하면서 목사
    에게 기도를 받고 돌아갔습니다.
    육신의 치유 감격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의 기쁨을 경험하는 것
    은 육신의 치유함을 경험할 수 있는 첩경이 되는 것이기에 기도는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치료하시고 목사는 봉사한다는 치유목회의 철학을 성도들에
    게 가르쳤기에 기도 그 자체를 통해 이미 병든 마음은 치유로 나아가고 있음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각색 병든 자란 말을 사용한 것은 당시에 예수님께 나아 온 병든 자들의 양상
    을 보여주는 것으로써 인간이 경험하고 있는 질병이 그만큼 다양하다는 뜻입니
    다.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내가 이 병을 지녔으
    면' '너는 저 병을 지녔다'는 질병의 보편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인간은 누구나 병을 앓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볼 때 건강해 보여도 그렇지 못한 것이 인간의 보편성이란 말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를 무론 하고 죄로 말미암아 육체의 질병을 지니게 된 것입
    니다.
    이 병을 치료하실 분이 누구입니까?
    병원의 의사, 약국의 약사, 능력 있는 목사입니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말입니다.
    병을 치료하실 자는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내로라 하는 의사도, 약사도 소위 치유능력이 있다면서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
    의 목사도 치유자는 아닙니다.
    치유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기 15:26절 말씀에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
    와"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치료하는'이란 히브리어는 '라파'(ap;r:)로서 '의사' '의원'을 가리키
    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치료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말라기 4: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
    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여기의 '의로운 해'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치료하는 광선'은 원어를 보
    면 '그 날개 안에서 치료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신유
    의 은혜와 구속의 은총을 통하여 참된 치료가 됨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중요성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가 되신 것은 우리의 영혼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육체도 질병에서 치료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온전한 구원은 영과 육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인간의 고난에 대해서 아주 중요한 한 가지를 지적했습니
    다.
    "본성에 있어서 인간은 질병 속에서 살아가는 죄인이다. 정신과 육이 분리 된
    것이 아니고 결합된 것이므로 죄와 질병은 연관되어있다.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에 의해서만 진정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치료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나 제사장을 통하여 치료의 사역을 하시
    고, 때가 차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치료의 사역을 하신 것
    입니다.
    예수님이 치료자가 되심의 증거는 그 때나 지금이나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
    다.
    당시에도 지금에도 의사도 약사도 어느 누구도 온전하게 치료할 수 없는 각색
    병든 자는 물론 죽은 자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는 치료하셨고 죽은 나사로도 살리
    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병든 자를 고치시는 치료의 이름입
    니다.
    모든 복음서 기자는 이것을 강조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아주 분명하게 그 이
    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8:16-17절입니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
    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
    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
    더라."
    예수님은 이렇게 인간의 질병 문제를 심각히 여기시고 치유 사역을 통해 영혼
    을 구원하는 구속 사역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의 치유 사역의 핵심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
    라."였습니다.
    즉 육신을 치료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영혼 구원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치유사역의 첫 번째가 바로 오늘 본문의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신 사건입니
    다.

    소명의 확신과 사명의 응답

    베드로가 갈릴리 해변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게 되었지만 그것이 베드로에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는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
    니다.
    본문 30절 말씀입니다.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웠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의 일로 예수께 여짜온대"
    여기 '누웠는지라'의 헬라어 '카테케이토' (katevkeito)는 과거 미완료 동사
    로 오랫동안 누워 있는 만성적인 환자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님을 따르는 베드로의 마음은 그리 편안하지는 못했을 것입
    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서를 보면 제자들이 실제로 예수가 오실 메시아인지를 묻
    는 질문이 있습니다. 예수를 따르겠다고는 했지만 확신이 서지 않은 상황에서 예
    수님이 그의 장모를 고쳐 주시는 것을 통해 메시아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것입
    니다
    더욱 아름답고 놀라운 장면이 3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저희에게 수종드니
    라."

    여기에는 두 가지의 아름다운 모습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는 장면입니다.
    또 하나는 오랫동안 중병으로 사경을 헤매던 여인이 수종을 들게 되는 장면입
    니다.

    오늘날도 어떤 괴로움과 아픔, 질병으로 인하여 좌절하고 절망에 이른 사람일
    지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손을 잡아 일으키시면 일어날 줄 믿습니다.
    미문 앞의 앉은뱅이가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외치는 베드로의 소
    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 걷고 뛰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것처럼 오늘도 예
    수 이름은 앉은뱅이도 일으키시는 줄 믿습니다.
    가난의 앉은뱅이, 봉사의 앉은뱅이, 전도의 앉은뱅이, 헌신의 앉은뱅이, 기도
    의 앉은뱅이를 일으키사 걷고 뛰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일어난 베드로의 장모처럼 수종드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수종드니라'의 헬라어 '디에코네이'(dihkovnei)는 미완료 과거형으로 계속하
    여 수종드는 현재적 상태를 나타낸 단어입니다.
    즉 구원받은 백성은 헌신의 응답이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서 고침 받은 사건을 통하여 아주 은
    혜로운 감정을 갖게 됩니다.
    그것은 베드로를 부르신 것을 통해서 진정한 소명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베드
    로의 장모가 중병에서 일어나 수종드는 모습을 통해서 사명의 의미를 깨닫게 됩
    니다.
    다시 말하면 부르심에 응답했으면 확신 있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고, 구원의
    은총을 경험했으면 진정한 헌신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작은 자 선교회가 있습니다.
    병들고 가난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없는 작은 자들을 찾아 그들을 위로해 주
    고, 돌보아 주는 십여 명의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봉사하는 모임입니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분 가운데 한 분은 자신이 육신의 연약함으로 얼마나 힘
    들게 살았는지 모릅니다. 목사는 그분을 생각할 때마다 중보기도를 아끼지 않았
    고 요즈음은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교회생활을 잘하고 있습니다.
    그가 건강을 회복하고 난 후에 주님 앞에 가장 아름다운 헌신이 무엇일까 생각
    하다가 작은 자 선교회를 창립하였고, 뜻있는 아름다운 분들로 자연스럽게 모여
    지금도 너무 아름답게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진정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수종드는 아름다운 헌신이 지속
    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이란 바로 그와 같은 아름다운 삶으로 엮어지는 것입니다.

    계속되는 치료의 역사

    32절 이하에는 예수님의 치료 사역이 계속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시고 베드로의 장모를 고쳤다는 소문은 자연스럽게 퍼
    지게 되었고, 33절에서 온 동네가 모였더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치유의 소문
    은 엄청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병자들이 모여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색 병든 자들이 고침을 받고 귀신 들린 사람이 온전하게 되었던 것입
    니다.

    우리는 여기서 또 하나의 교훈을 얻습니다.
    베드로의 집은 믿음의 터전이 되었고, 복음선교의 문이 열린 벧엘이 되었고,
    각색 병든 자들이 고침 받은 치료의 병원이 되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예수님이 계시는 곳이 축복의 장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베드로의 가정 때문에 온 가버나움의 백성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병들어 죽어
    가던 베드로의 장모가 예수님 때문에 고침 받고 수종들게 되면서 온 동네 사람들
    이 몰려와서 고침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참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우리의 가정이, 우리 각자가 그렇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어떤 집은 직분자의 집인데 구역 예배 장소로 내어놓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떤 집은 오랜 신자의 집인데 날마다 고스톱 판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집은 어떠합니까?
    이웃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찬송할 때 있습니까?
    구역원들이 모여서 예배드린 적이 있습니까?
    성경공부 하기 위하여 모여본 적이 있습니까?
    가난한 이웃사람을 초청하여 잔치해 본 적이 있습니까?
    주의 종이 와서 축복한 적이 있습니까?

    루디아는 자기 집을 내놓아 바울 일행에게 예배 처소로 사용하게 함으로써 빌
    립보 교회가 탄생되게 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은 기도모임의 장소로 사용되어 세계 역사를 바꾸는 선교기지가
    되었습니다.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은 베드로를 모셔 가정 부흥회를 개최하여 이방선교의 산
    실이 되게 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초청하여 세리와 죄인들이 구원받는 거룩한 도구로 자기 집
    을 사용했습니다.
    사르밧 여인과 수넴 여인은 엘리야와 엘리사로 하여금 최고의 휴식과 영적 재
    충전의 장소로 자기 집을 내놓았습니다.

    이 모두가 주님이 함께 하시는 가정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가정이 이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미국에 다녀오신 분들은 금방 이해하실 것입니다. 고급 레스토랑일수록 그릇
    이 아주 중요시됩니다. 금이 간 그릇, 깨진 그릇이 사용되었다면 그건 보통 문제
    가 아닙니다.
    그런데 중국에 다녀오신 분들 또한 금방 이해하실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깨진
    그릇 금이 간 그릇을 사용하는 식당일수록 고급식당, 전통 있는 식당입니다.

    인생도 그렇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떤 경우는 정말 모든 것이 다 갖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어떤 경우
    는 정말 보기 힘들 정도로 어렵고 힘든 깨진 그릇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
    습니다.
    분명한 것 한 가지는 하나님은 좋은 그릇 같은 인생도, 깨진 그릇 같은 인생
    도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남들이 볼 때 다 깨어진 그릇처럼 상처투성이 인생 같지만 그
    상처가 오히려 귀하게 여겨지는 것을 우리는 잊으면 안 됩니다.
    분명한 것 하나,
    우리의 영혼이 병들지 않기를 하나님은 원하시고 그러기 위해 오늘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치료하시는 것입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독자 설교

    설교작성하기 (3년 후에는 자동삭제됩니다.)
    이 름 E-mail
    제 목



    프린트하기 기사메일보내기 독자설교


    이전으로
    빛에서 빛으로 가는 길
    제자 입니까?
    감사함이 아름다운 삶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
    달리다굼의 은총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악령의 사슬에서 벗어나라
    주님을 깨우십시오
    교회 성장과 사명의 원리
    영적 빈익빈 부익부의 교훈
    마음도 밭과 같습니다
    새로운 가족의 의미
    성령님과 함께 하는 삶
    이름보다 삶이 중요합니다
     | Home | 사이트맵 | 설교검색 | 설교전체보기 | 설교쓰기 |___ |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 김효자 /사업자번호831-29-0156/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 /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4394-4414 /E-mail:v919@naver.com   Contact Web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