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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믿음을 보시는 예수
    2002-05-21 14:41:57   read : 2794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성경구절 마가복음 2:1-12
    설교날짜 2002/04/07

    우리 교회 교육선교센터가 완공단계에 이르면서 목사로서 잊을 수 없는 일들이
    어디 한두 가지겠습니까만 오직 믿음으로 함께 한 성도들의 마음을 보신 하나님
    은 우리 교회의 건축을 이렇게 잘 진행하도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교회 건축현장에서도 종종 아름답지 못한 일들이야 왜 없겠습니까만 그런 일보
    다는 믿음 있는 자들의 신실한 기도와 삶을 보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
    고 모든 시험조차도 비켜가게 하시는 것을 목사는 많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교회 교육선교센터가 이렇게 건축되리라고 누
    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믿음을 보신 주님은 우리의 믿음대로 이 거룩한 사역을
    이루어 주신 줄 믿습니다.

    개인 전 재산이 세들어 살고 있는 전세금 400만원뿐인데 전셋집에서 나와 그
    돈의 반, 200만원을 건축헌금으로 드리고 자신은 기도원에 가서 봉사하면서 생활
    하는 집사님이 계십니다.
    3년 동안 적금을 부어 평생 처음으로 만져 본 100만원을 하고 싶은 모든 것 접
    어버리고 건축헌금으로 드린 할머니가 계십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12년 동안 학교에 저축한 돈을
    그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건축헌금으로 드린 고등학생이 있었습니다.
    직장 생활의 첫 봉급을 건축헌금으로 드린 청년이 있었습니다.
    겨울 방학 중에 아르바이트를 해서 받은 돈으로 건축 헌금을 드린 중학생도 있
    습니다.
    매일 저녁 건축을 위한 기도회에 하루도 빠짐없이 출석하여 기도한 성도들이
    있습니다.
    건축을 위한 기도문을 읽고 또 읽어 닳아버린, 그렇게 3,000회를 넘긴 집사님
    도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교회 성도들의 믿음을 보시고 오늘도 교육선교센터를 건
    축해 가시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가버나움에서 중풍병자를 치료하신 예수님의 행적입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제 2의 고향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다양한 의미를 함축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 내용 전체를 요약하면 주님은 믿음을 보시고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도 예수께로

    오늘 본문의 내용을 몇 가지로 요약하면 먼저 중풍병자를 예수께로 메고 온
    네 사람의 행동하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네 사람이 한 중풍병자를 메고 예수님이 계시는 가버나움의 집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도저히 예수님 앞으로 환자
    를 데리고 들어갈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생각다 못한 그 사람들은 중풍병자를 메고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뜯고 중풍
    병자의 침상을 예수님 앞에 달아 내렸습니다.
    우리가 알지만 팔레스틴의 서민 주택은 흙벽돌로 된 단층 슬래브형으로 지붕
    이 평평하고 밖으로 계단이 있어 지붕으로 오르내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붕은 보통 나무로 들보를 놓은 후 짚으로 엮어 그 위에 놓고 그 사이
    를 흙으로 채워 비를 막도록 되어 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지붕을 뜯었을 때 흙먼지가 집안으로 떨어졌을 것이며 거기 모인 사람들이 얼
    마나 불평을 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것보다는 중풍병자를 치료할 수 있
    는 분은 예수님뿐이라는 믿음으로 그런 상황을 뛰어 넘어 행동하는 신앙을 보인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치유하신 것이 본
    문의 내용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일상 생활의 어떤 문제도 주님 앞으로 가지고 나아갈 때 주님
    이 해결해 주신다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분명한 것 한가지가 있습니다.
    주님은 역전시키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연약함을 강함으로 역전시킵니다.
    병든 몸을 건강으로 역전시킵니다.
    가난을 부요함으로 역전시킵니다.
    실패를 성공으로 역전시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믿음을 보시고 사태를 역전시키시는 것입니다.

    일치와 연합의 축복

    그리고 오늘 본문의 중요한 내용 또 한가지는 중풍병자를 주님께로 메고 온
    네 사람의 일치와 연합의 결과입니다.

    3절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중풍(paralysis)은 뇌일혈(cerebral hemorrhage) 등으로 인해 신체의 일부나
    반신 혹은 몸 전체가 마비되어 사용할 수 없게 되고 언어가 불통되기도 하는 중
    병입니다.
    이런 사람을 치료시키기 위하여 다양한 방법도 사용했겠지만 별 차이가 없던
    차에 사람들이 이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들것에 태워 예수님께로 데려왔던 것입
    니다.

    여기서 우리가 유념할 것은 한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네 사람이 그를 메고 왔
    다는 것입니다. 곧 일치와 연합을 통한 아름다운 결과를 얻은 것입니다.
    여기의 네 사람이 가족인지, 친구인지, 아니면 그 중풍병자의 하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를 메고 주님께로 나아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들은 중풍병자
    의 진정한 가족이며 친구이며 동료가 된 것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 그들의 일치와 연합으로 인해 중풍병자는 주님의 축복을 받았고 병
    에서 놓여 자유함을 누렸을 뿐 아니라 영혼까지 구원받은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일치와 연합의 정신에는 생명중시의 사상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하더라도 이 중풍병자를 살려야겠다는 생명사상이 있었기에 연합과 일
    치도 가능했던 것입니다.

    언젠가 장로님들과 식사를 하는 중에 장로님이 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국수와 국시의 차이가 뭔지 아십니까?"
    묻는 질문이 하도 이상해서 대답을 못하고 있었는데 들려주는 말씀이 너무도
    난센스였습니다.
    내용인즉 국수는 밀가루로 만들고 국시는 밀가리로 만든다고 해서 한바탕 웃음
    이 터졌습니다.

    책을 읽다가 이런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갓 결혼한 신부가 국수를 설탕물에 말아 내놓았습니다. 이를 받아든 남편이 몹
    시 곤혹스러워합니다. 남편이 이내 역정을 부리면서 다툼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놈의 집구석은 설탕 못 먹고 죽은 귀신이 붙었나? 어떻게 국수를 설탕물에
    말아먹느냐?"
    "그러면 어떻게 먹어요?"
    "국수는 다시다 물에 말아먹어야지."
    "무슨 놈의 다시다 물이냐 그러면 당신이 앞으로 요리를 해요."
    그렇게 다투다가 결국 누가 옳은가 판단하기 위해 이웃어른에게 갔습니다.
    자초지종 이야기를 듣고 난 이장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 국수를 설탕물에 말아먹는 사람 처음 보았다."
    그러니까 남편이 승리감에 도취되어 소리칩니다.
    "거 봐라 남편 말을 들어야지 이게 무슨 창피냐."
    그런데 어른이 기세가 등등한 남편을 향해서 말을 합니다.
    "나는 또 국수를 다시다 물에 말아먹는 사람도 처음 본다"
    이번에는 아내가 펄펄 뜁니다.
    "당신도 틀렸네 뭘!"
    그래서 또 한참을 싸우던 그들이 어른한테 물었습니다.
    "그러면 어르신은 국수를 어떻게 드십니까?"
    "국수는 콩국에 말아먹는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단면도입니다.
    사람이란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어
    렵고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다 보니 싸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에 살아가는 사람은 이해와 관용과 용서와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기서 진정 일치와 연합이 가능한 것입니다.
    자기 생각 앞세워서는 절대 일치와 연합이 불가능합니다.
    내 생각 죽이고 상대방 생각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인격자요 신앙인입니다.
    그것이 복음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오늘 본문의 네 사람이 만약 각자의 생각대로 행동했다면 어떻게 중풍병자를
    메고 주님에게로 나아올 수 있었겠습니까? 내 생각 죽이고 상대방의 생각을 앞세
    웠기에 일치와 연합을 이루어 중풍병자를 메고 주님에게 와서 치료함을 받은 것
    입니다.

    예수님의 관심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것은 매우 중요
    한 본문의 메시지입니다.

    5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말씀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입니다.
    둘째는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입니다.

    당시 가버나움 예수님이 계시는 집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하나, 예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는 개인주의적
    기대감이었습니다.
    그 상황을 조명해 보면 아주 중요한 한 가지를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관심에 관하여 몇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상황을 구경하기 위한 구경꾼으로서의 관심이고, 둘째는 각자 자기 문
    제를 가지고 해결받고자 하는 개인주의적인 관심입니다.
    또 하나 분류한다면 서기관들의 관심인데 그들은 예수의 행위의 적법성, 혹은
    잘못을 찾고자 하는, 곧 상대방의 허물을 발견하고자 하는 관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관심은 본질적으로 달랐습니다.
    중풍병자의 가련한 생명에 관심을 가지셨고, 그들을 치료하고자 하는 네 사람
    의 믿음에 관심을 가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지붕을 뚫는 네 친구들을 보신 주님이 5절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참 믿음은 곧 행함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고보
    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야보고서 2:14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
    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그리고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주님은 지금도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는 과부의 행동하는 믿음을 보셨습니다.
    주님을 대망했던 삭개오의 뽕나무에 올라간 행동하는 믿음을 보셨습니다.
    하인의 병을 고치고자 했던 백부장의 행동하는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행동하는 믿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축복
    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관심은 오직 믿음입니다.
    그것도 입술의 믿음이 아니라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주일을 성수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범사가 행복하게 됨을 믿는 행동하는
    신앙을 주님은 보시는 것입니다.
    온전한 헌금생활을 하면 세상에서 물질로 인해 결코 고난 가운데 처하지 않게
    됨을 믿는 행동하는 믿음을 주님은 보십니다.
    서로 사랑하면 주님도 사랑하시는 것을 확신하면서 서로 사랑하는 행동하는 믿
    음을 주님은 보십니다.
    용서하는 것이 지고한 삶의 행복임을 확신하고 용서하고 관용하는 행동하는 믿
    음을 주님은 보십니다.
    "섬기는 것이 천국에서 큰 자"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섬김을 실천하는 행동하
    는 믿음을 주님은 보십니다.
    그리고 축복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런데 우리는 여기사 아주 중요한 단어 하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곧 주님의 또 다른 관심의 초점인데 그 중풍병자를 '소자'라고 부르셨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헬라어로는 '테크논'으로 랍비들이 흔히 제자들을 향해 사용했던 호칭
    이면서 동시에 손아래 친근한 사람에게 사용한 부드럽고 따뜻한 호칭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영역에서는 'Son'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NIV 영어 성경에는 'Son, your sins are forgiven'라 했습니다.
    Holy Bible 에서는 'My Son, your sins are forgiven'이라 했습니다.
    즉 "내 아들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중풍병자를 중병 환자로 보았습니다만 예수님은 그 중풍
    병자를 아들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현장에 있던 바리새인들은 그 상황에 어디에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
    까?
    그들은 예수가 어떻게 이런 죄사함을 선언할 수 있느냐는 데 관심을 두었습니
    다. 그 즉시 주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
    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리고 곧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그리고 곧 그 중풍병자가 자기가 누웠던 상을 가지고 걸어가게 되자 그곳의 사
    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는 것으로 오늘 말씀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관심과 바리새인들의 관심이 달랐던 것처럼 그런 경우가 있습
    니다.

    살리는 데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직 죽이는 데 관심을 가지는 사
    람이 있습니다.
    용서하는 데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원수 갚는 데 관심을 가지는 사
    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데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워하는 데 관심을 가지는 사람
    이 있습니다.
    봉사하는 데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기주의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
    이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믿음 있는 자에게 관심을 가지십니다.

    자식이 아무리 예뻐도 미운 짓만 하면 밉습니다.
    아내가 아무리 예뻐도 바가지만 긁어대면 밉습니다.
    성도가 아무리 구분된 자라 할지라도 미운 짓만 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합
    니다. 믿는 자는 믿는 자답게 살아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복을 받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들의 믿음을 보십니다.
    그리고 믿음을 보시고 축복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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