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가 없으면 죽는다 2002-05-28 14:05:14 read : 3161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4.7 // 막11:12-21
어렸을 적에 무화과나무에 대해서 성경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기억이 나는 것은
무화과나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많은 나무 중에 이 무화과나무가 예수님을
만났을까? 참 재수 없는 나무구나!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좀 커서 깨달았던
것은 아! 열매가 없어서 죽었구나!
그리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죄책감이 늘 있었습니다. 그건 목사가 되서도 마찬가지였습니
다. 그리고 나서 간만에 다시 본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시 보니 어처구니없는 말씀 내용입니다. 마치 무협소설 같습니다.
무화과나무 열매가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라 죽이십니다. 그렇게 선하신 분이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마가의 눈을 통해서 명확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읽어보신 것처럼 본문이 독특하게 엮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막11장 12-14절을 보면 무화과나무 이야기가 나옵니다.
15절-19절을 보면 성전 청결 사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20절과 21절에 다시 무화과나무가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구조는 뭔가 다릅니다. 명확한 메시지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왜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말라 죽이셨습니까? 불태워 죽이면 이상하
니까요? 참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무화과나무가 불쌍합니다. 왜요? 대부분 해석은 이
렇습니다. 예수님도 사람이신데 먹을 것을 찾았는데 없으니 화가 나서 저주를 하신 것이라
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래요?
결국 이 해석은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의 수준입니다. 자기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보니 그
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문제가 있습니다. 배가 고파 저주를 하시다니요. 어떻게 그러실
수 있습니까? 그런데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이 시기는 무화과 열매 맺을 철이 아닙니다. 그런데 열매가 없다고 해서 떼를 쓸 수
있을까요? 그리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오천 명을 먹이신 분이십니다. 배고파서? 게
다가 40일 금식기도 후 마귀의 유혹도 이기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배가 고파서 말라 죽였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죠.
우리는 이 무화과나무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본격적인 무화과나무의
추수기는 6월이나 7월경입니다. 그 때까지 본격 적으로 무화과나무가 많은 열매를 냅니다.
그러나 이 무화과나무는 좀 더 이른 시기에, 봄철에 이른 무화과나무 열매를 맺기도 하고
좀 늦은 시기에, 가을에 열매를 맺기도 합니다. 이른 무화과나무의 열매의 경우에는 3월이나
4월에도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 9월이나 10월에도 얼마든지 따먹을 수가 있습니
다. 늦은 무화과나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일년에 세 차례씩 열매를 따먹을
수 있는 것이 무화과나무의 열매입니다. 그런데 이 무화과나무 열매는 먼저 잎사귀를 냅니
다. 그런데 잎사귀가 나면 열매가 있습니다, 거기에. 다른 나무와 달리 잎사귀가 있으면 무
화과나무는 이미 열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화과나무의 아주 독특하면서도 일반적
인 성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잎사귀가 있으면 열매를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이른 때가 바로 이맘 지금 이 때쯤 되는 시기였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잎사귀
가 있으니까, 이 때도 무화과나무 열매가 있으니까 그것을 기대한 것은 예수님에게 있어서
는 상식적인 기대였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까 열매가 없었단 말입니다. 이
건 정상이 아닙니다. 무화과나무의 잎파리가 있으면 열매가 있는 법인데 열매가 없었다. 그
래서 비정상적인 나무, 이것은 어쩌면 창조주의 기대처럼 그렇게 열매를 맺어주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나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 나무를 저주하신 것입니다. 하등의 비상식적이라
고 할 이유가 없는 그런 사건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의미를 우리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께서 이 나무를 도대체 왜 저주를 하셨느냐? 어떤 뜻을 가지고 했느
냐?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무엇인가 의도적인 부분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통
해 의도적인 일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결론은 예수님 관심은 성전입니다. 무화과나무가 아닙니다. 예수님께
서 무화나무 열매 없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저주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들어가셨습
니다. 그리고 성전에 들어가 어떤 사람을 만납니까?
어떤 일을 하게 됩니까? 분노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셔서 네 종류의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분노를 행하
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15절부터 보시면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셨다
고 하셨습니다. 이들의 비리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제사장들과 짜고 멀리서 사람들이 제일 좋은 동물을 가지고 오면 퇴짜를 놓습니다. 그 이
유는 무엇인줄 아십니까? 소의 양쪽 눈의 크기가 맞지 않아 대칭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흠
이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 고향에 가지고 가질 못하니 그곳에서 헐값으로 팔고 다시 사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돈 바꾸는 자들입니다. 성전 안에서 성전세를 받을 때에 지금 식으로 얘기한다
면 외국돈은 안 받았습니다. 순례를 오는 유대인들은 많았습니다. 이때 환전을 하게 했습니
다. 그리고 돈을 벌었습니다. 또한 비둘기를 파는 자들도 있습니다. 다양하게요.
또한 성전에 아무 기구나 가지고 다니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 종류의 사람들의 공통적
인 점은 성전을 통하여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득을 얻기 위해 대제사장과 결
탁되었던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원래 성전 밖에서 해야 할 일을 돈을 벌게 하기 위해서 안
으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성전에서 장사를 합법화시키면서 완전히 전매사업화 해 버린 겁니
다. 돈에 대한 이익 - 그것이 그들의 머리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이런 예루살렘 성전 안에
서 소위 신앙의 행태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었을까요? 그들의 머리 속에는 이익밖에 없었
어요. 신앙의 본질은 외면되고 그리고 잘못된 것들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 바로 예
루살렘 종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은 오늘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사
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에게서 얼마나 중요한 것은 신앙의 본질, 예배의 본질 내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결과로써 내가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영광을 안
고 우리의 삶을 통해서 얼마나 주 앞에 올바른 삶을 살고, 살수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
속에 하나님의 변화가,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고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대로 사는 것, 이것이 우리 교회의 유일한 관심이 되기를 기도하십시다. 중요
한 것은 그러나 우리의 삶이 만약 껍데기만 내비치는 다시 말해서 무화과의 잎파리만 무성
한 삶이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저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본문을 통해서 오늘 우
리에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엄숙한 경고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용 없는 형식뿐인
종교, 그 종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오늘 이 말씀 속에서 사랑하는 그 당시 하나님의 백
성들을 향해서 아픈 마음으로 전달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신앙의 행태속에서는 어떻습니까? 형식은 있습니다. 이미 예배당 안에 들어와 있으니까 여
러분들에게 형식은 있습니다.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열매입니다.
여러분! 성전이 무엇 하는 곳입니까? 하나님께서 임재 하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곳은 성전이라고 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없습니다. 장사치들만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
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전의 예배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경고하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확실하게 교훈하기 위해서 무화과나무의 실물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마가는 이 무화과나무 사건에서 성전 청결 사건을 중간에 집어넣었습니다. 성전에 대한
내용은 없습니다. 즉 예수님은 성전을 보시고 결심한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자들
이 오랫동안 기억하시길 원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의 순서의 탓도 있지만 무화과 나무사건을 양쪽으로 붙여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성전에서 자기의 유익만 추구하는 자들에 무화과나무를 비유하신 것입니다.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다. 그러므로 말라 죽게될 것이다.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러 나옵니다. 과연 이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
에 잡동사니가 가득합니다. 하나님만 있어야 하는데 여러 복잡한 생각에 잡혀 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내 안 성전에 하나님만이 계십니까? 아니면 여전히 잡동사니
로 가득 차 있습니까? 하나님만을 생각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다른 오염
된 생각으로 고민하지 마시고 승리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또 하나는 열매부분입니다. 강조가 무엇이든지 무화과나무는 열매가 없어서 죽었습니다.
무섭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열매가 있습니까? 아니면 열매가 있습니까? 열매
있는 분들 한번 손들어 보세요. 아이고! 이것 큰일 났습니다. 말라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두
렵습니다. 이 두려운 마음을 마귀는 이용합니다. 걱정되죠?
여러분! 궁금합니다. "열매!" 그러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목사님! 그것을 말이라고 합니까? 한 영혼을 전도하는 것이 당연하죠."
그러면 할말이 없습니다. 우리가 다 말라죽어야 하는 무화과나무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열매를 찾아봅니다. 예배 열심히 참석했습니다.
봉사, 헌금, 선교? 과연 이런 것이 열매입니까? 무엇일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3장 10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번 볼까요?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어 불
에 던지우리라'
열매 맺지 않는 것은 이해되나 좀 두려운 말씀이죠? 좋은 열매 안 맺으면 도끼로 찍어버
리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성경이 이렇게 위협을 하시면 안되죠. 안 그렇습니까? 큰
일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나무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까? 어떻게 합니까? 나무가 어떻게 순종합니까?
누가 순종합니까? 상식적으로 말입니다. 아 내가 말씀에 순종해서 열매 맺어야지! 그런다
고 열매가 맺어 질 수 있을까요? 나무는 할 수 없습니다. 결국 농부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
다. 결국 열매는 스스로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농부가 책임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대상은 세례요한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게 하는 말입니다.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면서 협박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무에 열매가 맺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한 것은 누구에게 한 말입니까? 적어도
바리새인, 불신자. 거짓선지자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나무에게 한 말씀이 아닙니다.
정말 사실입니까? 한번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무슨 여인 천하에 나오십니
까? 후궁 경빈 같은 분이십니까?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찍어버리게---"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위협적인 말을 하신 곳이 한군데도 없습니다.
단지 최후의 심판에 경종을 우리기 위해 쓰신 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믿어야 합니다. 한번 구원받았으면 취소가 되지 않아요. 열매 없다고 찍혀서 불에 태
워져요? 왜 이랬다 저랬다 하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예수님 만나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여쭈어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열매 있는 무화과입니까? 아니면 열매 없는 무화
과나무입니까? 어렵죠. 열매가 무엇인지 그래서 알아야 합니다.
열매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죽으러 이 땅에 오셨음을 믿
는 것 이상의 큰 열매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입니다. 우리가 봉사
하는 것은 상급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만약 그런 열매가 없어도 지옥에 던지우는 것이 아니
라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봉사 못할 수 있습니다. 조금 방학할 수 있습니다. 전도하지 못해
서 섬기지 못해서 안타까워요. 한 명의 영혼도 못 건져서 어떻게 할까? 두렵습니까?
아니에요.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보다 내가 주님을 고백하고 사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나를 위해서 돌아가셨다는 복음의 사실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
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돌아가셨다는 복음을 믿는 것이 최고의 열매인 것입니
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생각해 할 것이 있습니다.
만약에 이 무화과나무가 말라죽으면서 한 마디 했다면 무엇이라고 했을까요? 당연히 '목
마르다'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무슨 예수님입니까?
무화과나무가 죽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그 나무는 기분 나빴을까요? 왜 죽었
습니까? 사실 무화과나무의 죽음으로 인해 오늘 의미 있는 말씀을 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
을 말하자면 그 나무는 주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이번에 영락교회 베다니 홀에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58세 되시는 고등부 선생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어머! 1년 동안 교사하다 그날 처음 나간 날이래. 헌금을 떼어먹었다고 하더군, 어머! 두
집 살림살이를 하고 있었대!" 별의 별 이야기를 합니다. 기가 막힙니다.
그런데 과연 사람이 자기 죄로만 죽는 것인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요한 복음 9장을 보면 소경을 보고 "이것이 누구 죄입니까?" 물어보지 않습니까?
그때 대답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9장2-3절에 나옵니다.
"그것은 누구의 죄도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나타나기 위해서이다"
번동 제일교회 목사님이 계십니다. 몇 년 전에 교회 유치원 버스에 아이가 치여 죽었습니
다. 그런데 제일 힘든 것은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자신의 아이가 죽은 것에 감
사하셨습니다. 문제는 교인들의 손가락질입니다. 목사가 기도를 하지 않아서! 돈만 밝히다
가! 게다가 여자 문제까지 만들어서 괴롭히는 데 못 견디겠다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어려울 수 있습니다. 힘든 일이 있습니다.
그때 제발 그러지 마세요, 하나님은 그분을 도구로 쓴 것입니다.
내게 너무나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당신을 도구로 쓰기
위함입니다. 말못할 고난에 빠져있습니까? 무화과나무로 쓰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냥 말라죽으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드러내십시오, 성전에서 하나님을 더럽히는 자들에
대한 경고의 도구로 사용 받다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성경은 묘한 구조로 우리에게 중요성을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 없는 성전은 무화과나무처럼 시들어 버렸습니다. 내 안에 하나님이 함께 하고 있
습니까? 혹시 더러운 장사치들로 가득 차있는 것은 아닙니까?
둘째로 우리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혹시 어리석은 열매를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을 무엇입니까? 열매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열매, 그 열
매를 통해서 주께 영광을 돌리고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려고 존재하는 것.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 바로 열매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떻게 열매
를 맺습니까? 오늘 내 신앙이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교회 나온 지 몇 년 되셨습니까? 그
것은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도 중요한 것
이 아닙니다. 어떤 열매를 맺고 계십니까? 어떻게 열매를 맺고 있을까요? 신앙생활의 연륜
은 계속되고 있지만 열매맺지 못하는 사람, 무력한 삶, 가정에서 직장에서 삶을 사는 내 모
습은 무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또 실패하고 또 넘어지고 왜 이렇게 무력합니까? 왜 열매를
맺지 못합니까?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가 정말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달라 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것이 첫 번째 열
매를 맺는 길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얘기를 봤는데, 깊은 동굴에, 아주 깊은 동굴에, 아주 깊은 동굴에 조그만 호수가 있
어요. 그 호수 안에 고기들이 있는데 어떤 동물학자가 그 고기들을 연구해 보니까 그 고기
중에서 소경 고기, 보지 못하는 고기가 그렇게 많더래요. 그래서 왜 그런가 연구해 보니까
깊은 동굴 속의 어둠 속에서 빛을 봐야할 필요가 느끼지 않은 이 고기는 시간이 가면서, 세
월이 흘러가면서 점차 장님이 되고 말았다. 소경이 되고 말았다. 보아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눈이 있어도.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존재할 필요가 없는 인생은 끝난 것입니다. 가치가 없는 인생. 여러분, 우리 인
생이 얼마나 존재할 가치가 있는 인생으로 지금 여기서 살고 있습니까? 주 앞에 영광을 돌
리고 이웃들에게 필요한 인생, 쓰임을 받는 인생, 열매를 맺는 인생, 여러분! 이런 인생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 길은 하나밖에 없어요. 창조주 하나님 앞에 나와 굴복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구
요? 내 삶을 돌아보시고 내가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살펴보시고 그를 용서하십
시오. 그 순간 하늘의 문이 열리고 주의 능력이 쏟아질 것입니다. 내 삶이 살아 움직일 것입
니다.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만약 내 인생이 열 매를 맺지 못하는 잎파리만 무성한 나무라
면 주님은 내 인생의 나무 앞에 오시면서 나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는 존재
할 필요가 없느니라. 너로부터 영원히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이 저주가 두렵거든 열매를
맺는 인생을 향해서 새롭게 태어나십시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
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을 받으시길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도 무화과나무처럼 고난 당하고 있다면 하나님에게 맡기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주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