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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로운 사람이 되라
    2002-05-28 14:29:21   read : 2955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05-26 // 창6:5-12

    1. 진정한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말 잘하기도 소문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명강사가 수많은 사람이 모인 세미나에서 그 강사가 열변을 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 강사는 갑자기 호주머니에서10만원 짜리 수표 한 장을 높이 쳐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10만원입니다. 이 돈을 갖고 싶지요? 어디 이 돈을 갖고 싶은 사람 손 한 번 들어보십시요."
    그러자 세미나에 참석한 그 수많은 사람들 대부분이 손을 들었습니다.

    강사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 중에 한 사람에게 이 돈을 드릴 생각입니다. 하지만 먼저 나의 손을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쳐들었던 10만원 짜리 수표를 손으로 이리저리 마구 구겼습니다. 그리고는 구겨진 수표를 손에 들고는 말을 하기를 "여러분 아직도 이 수표를 가지기를 원하십니까? 가지고 싶은 분은 손 한 번 들어보십시요"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강사의 그 행동에 놀라면서도 역시 거의 모든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그 10만원 짜지 수표를 땅바닥에 던지더니 구둣발로 밟으며 더럽혔습니다. 그리고 땅바닥에 떨어져있는 구겨지고 더러워진 그 10만원 짜리 수표를 집어들고, 아직도 그 돈을 갖고 싶은지를 물었습니다. 또다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이때 강사는 힘찬 어조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여러분, 제가 아무리 10만원 짜리 수표를 마구 구기고 발로 짓밟고 더럽게 했을지라도 그 가치는 전혀 줄어들지 않습니다. 10만원 짜리 수표는 항상 10만원 짜리 수표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어떤 상황이 닥쳐도 변치 않고 가져야할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가치에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삶 속에서 정말 부서지고 더러워졌다고 할지라도 꼭 있어야 할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의로움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온 인류가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가운데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으신 하나님의 그 마음과 그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딱 하나입니다. 홍수로 모든 사람을 다 죽여도 살릴 사람은 딱 한사람이다, 누구냐? 그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이렇게 변해도 그 속에서 살아날 사람은 딱 한사람인데, 누구냐? 의로운 사람 하나 살아남는 것입니다.

    여러분, 노아의 홍수 사건을 읽으면서 이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성경을 헛 읽은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딱 하나입니다. 의로운 사람을 살리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죄악 세상이라고 해도 그 중에 살아날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냐?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유황불로 멸망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을 멸망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의로운 사람 있으면 살리겠다는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되라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가치 가운데 가장 귀중한 가치가 무엇입니까? 의로움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길,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하셨습니다.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살리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의로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명절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유월절입니다. 애굽이라고 하는 나라, 그 당시의 강대국 아닙니까? 이 나라에서 이겨서 해방을 받았습니다. 자존심입니다. 또 하나의 자존심이 있는데, 그것이 부림절입니다.

    이 부림절이라고 하는 명절이 생긴 유래가 있습니다. 바벨론 이후에 바사가 다스려서 바사의 속국이 되었는데,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바사 나라의 관직을 맡은 사람 중에 모르드게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에스더의 사촌오빠입니다. 이 모르드개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모르드게를 싫어하는 하만이라고 하는 정적이 있습니다.

    하만이 모르드게를 싫어하는 이유는 모르드게가 정치인으로는 걸맞지 않게 정직하고 의로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의로운 사람 모르드개는 하만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출세를 위해서는 불의를 일삼는 하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높아지는 것만 좋아하는 하만, 누가 그를 부러워하고 누가 그를 귀하게 여기겠습니까? 인사 안한다, 하면서 하만은 모르드게를 모함을 하여 죽게 할 계략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 전부를 죽이려고 합니다.

    바로 그 때 나서는 것이 에스더입니다. "기도하십시오 내가 왕 앞에 나아가겠습니다." 그 때 유명한 말, "죽으면 죽으리라"하지 않습니까? 왕 앞에 나아가 유대인들을 살려 달라고 합니다. 그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여 지난 궁중의 일기를 보는 중에 모르드게의 이름이 나온 겁니다. 자기를 암살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것을 미리 고변해서 왕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찾아보니까 상을 준 기억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르드개에게 상을 주는 가운데, 하만이라고 하는 사람은 이 의로운 모르드개를 죽이고 유대인들을 죽이려고 했던 그 높은 장대에 매달려 죽게 되고 모르드개는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존심입니다. 유대인들의 자존심은 부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신앙인의 자존심은 높은 권력이 아닙니다. 무엇이 자존심이냐? 딱 하나입니다. 그것은 의로움입니다. 당장은 그것이 손해보는 것 같고, 당장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언젠가 의로운 사람은 높이 들어서 상도 주시고 승리케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3·1절 행사 크게 합니다. 3·1절, 유관순, 왜 그것이 자랑스럽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3·1운동은 독립운동을 했지만 실패한 독립운동입니다. 3·1운동해서 나라 독립 찾았습니까? 대한독립 만세! 만세! 하다가 나라 찾았습니까? 나라 독립 못했습니다. 실패한 것입니다. 그래도 그것은 우리의 자존심입니다. 무엇인가 하면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나라 뺏은 일본사람하고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린 너희들하고는 다르다하는 얘기입니다. 너희가 악한 일 해도 우리는 대항해 싸운 것이 아니고 의만을 부르짖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자존심입니다. 그런 나라는 축복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자존심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것이 3·1절입니다.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성경이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말씀은 의인은 어떤 상황으로 변해도 살게 되고 악한 사람은 상황이 바뀌면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살리고 이런 사람을 높이십니다. 의로움은 꼭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불의가 승리하는 것 같지만 불의는 절대로 승리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을 기뻐하신다.

    이 "의"라는 말은 히브리말로 "차디크" 입니다. 차디크 라는 말은 곧다, 흠이 없다, 올바로 행하다 라는 뜻입니다.
    오래 전에 교회 사무실을 수리를 하는데 보니까, 목수가 나무들을 쌓아 놓았는데, 골라서 씁니다. 휘어지지 않은 곧은 것을 찾아서 씁니다. 나중에 보니까 휘어진 것도 있는데, 갔다가 버립니다. 그것은 쓸모가 없습니다. 쓰레기 밖에는 안되는 것입니다. 집을 짓거나 가구를 만들 때는 올바른 나무만 필요합니다.

    과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 과일코너에서 딸기상자를 보았는데, 유난히 다른 것보다 싼 것이 있습니다. 왜 그런 것 같습니까? 며칠 된 것인지 물르고 곰팡이도 약간 났습니다. 이렇게 흠이 있는 것은 값이 나가지를 않고 쌉니다. 여러분, 흠 있는 고릅니까? 흠 없는 것 고릅니까? 당연히 흠 없는 것을 고릅니다. 그런 것이 더 가치 있고 더 쓰임 받는 것입니다.

    집 짓고 가구 하나 만드는데도, 올곧은 것만 사용하고 휘어진 것은 내버리고, 과일을 하나 먹어도 잘 생기고 흠 없는 것만 삽니다. 흠 있는 것은 싸게 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습니까? 회사에서 직원을 채용하는데 어떻게 채용하겠습니까? 그 채용의 방법은 딱 한가지입니다. 올곧은 사람, 흠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을 뽑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사용하실 하나님의 일군으로 어떤 사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의인을 통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노아의 방주가 어느 정도로 큰 지 아십니까? 길이가 136m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축구장의 길이가 105m입니다. 축구장보다 큰 것입니다. 그 엄청난 일을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을 누구에게 맡깁니까? 악한 사람에게 맡기지 않습니다. 기술 좋지만 악한 사람에게 맡기지 않습니다. 노아가 기술이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의인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사람에게 방주를 만들게 하신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 교회가 얼마나 크냐? 여러분, 의로운 사람을 통해서 교회가 지어져야지 악한 사람을 통해서 지어지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복음을 증거하는데 어떤 사람이 복음을 증거해야 될 것 같습니까? 여러분, 바르지 못한 사람, 흠이 있는 사람이 가서 아무리 얘기해보십시오. 복음이 진짜라고 해도 믿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바르고 흠이 없는 사람이 가서 복음을 증거하면 누구든 믿게 될 거란 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물건을 사도 메이커를 사지 않습니까?

    제가 지지난 주간에 한 병원에 심방을 갔습니다. 퇴계로의 한 병원인데, 환자심방을 위해서 갔습니다. 이 병원이 그 전부터 좀 지저분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병원에 가서 깜짝 놀랐습니다. 전혀 다른 병원이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인데도 들어가는 입구에서 안내원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안내를 했습니다. 대통령된 기분이었습니다. 주차 공간도 넉넉하게 준비를 했습니다. 차가 들어가니까 안내를 해주고 자리를 지정해줘서 어디에 주차해야 되나 고민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까 또 잘 안내해주었습니다. 건물도 전혀 다른 건물이었습니다. 안내판도 잘 만들어 놓았고, 병실에 들어가니까 8인실인데 자리도 넉넉한데다가 침대마다 칸막이를 해놓아서 참 쾌적했습니다. 건물은 옛날 건물을 수리해서 그대로 쓰고 있는데, 사람이 달라졌고, 받는 대우가 달라졌습니다. 얼마나 조용한지 8인실인데도 독실에 있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병원에 입원할 일이 있으면 이 병원에 입원을 해야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가보시면 그런 마음이 드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것입니다. 병원도 서비스입니다. 그럼 서비스 제대로 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얘기하면 비싸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 당연하지.` 여러분, 싸다고 사고, 비싸다고 안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바르게 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쓰신다면 어떤 사람을 쓰시겠는가? 당연히 의로운 사람 쓰시는 것입니다. 올곧고 흠 없고 이런 사람이 쓸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홍수 때에 하나님의 방주를 만들고 시대를 구원할 사람이 누구냐? 남겨 나야될 한사람이 누구냐? 당연히 의로운 사람이라는 얘기입니다. 우린 다 하나님 자녀입니다. 하나님 일하는 일군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의인이 되야 될 줄로 믿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했습니다.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을 꺼지느니라" 의인은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빛으로 쓰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승리케 하실 줄로 믿습니다.


    3. 의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1)의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기준으로 사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기준으로 산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착한 것과는 다릅니다. 착한 것은 언제나 상적인 기준에 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기준으로 사는 입니다. 자기의 형편보다는 하나님의 마음에 기준을 두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면 천국 문 앞에 베드로가 서있습니다. 그러면서 "너는 여기에 왜 왔느냐?" 하고 묻는데, 우리가 늘 하는 얘기로 "나는 죄인입니다." 하면 베드로는 "그러냐? 여기는 죄인이 올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당신을 지옥으로 가라" 고 한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당신 누구냐고 물을 때 "나는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라고 하면 베드로는 나의 지나온 세월을 펼쳐 보이면서 나의 과거에 불의한 일들을 들추어낸답니다. 그러면서 "당신은 이 죄 때문에 지옥에 가야 합니다. 지옥에 가십시오" 한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때 어떻게 들어갑니까? 착한 것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본래 죄인인데,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나는 그런 주님만 믿고 살았습니다." 그러면 천국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진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기준으로 사는 사람만 의로운 사람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착하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서도 통할 것 같으나 아닙니다. 우리의 기준은 언제나 하나님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이 멸망을 한 것도 의인10사람이 없어서입니다. 이 의인도 하나님의 기준이지 사람의 기준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진정한 복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부자 된다, 지식 있다, 권력 있다, 이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준으로 사는 것이 복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삶의 기준을 자기의 멋대로,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맞추어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의인이어야지, 내가 스스로 의롭다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하는 말이 "나는 죄인입니다." 합니다. 굉장히 겸손한 것 같지만 착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구원받을 때는 죄인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구원받고 난 뒤에 우리는 죄인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죄인이었지만 예수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이 말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중책을 맡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제 "나는 죄인이다"이런 얘기하지 마십시오. 언제까지 죄인입니까?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찬송가 342장 "세월 지나갈수록 의지할 것뿐일세" 가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가 세월 지나가면 모든 것이 다 그런데, 10년 20년 하면 기술이 늘어 가지고 몸 많이 안움직여도 다 됩니다. 집안 살림도 그렇습니다. 칼질을 해도 10년 20년 지나면 다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것은 10년 20년 30년 지나면 지날수록 더 의지하게 됩니다. 인간의 약함,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아야 되겠다 이렇게 다짐하고 이렇게 애쓰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기준으로 산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세상 유행을 따라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2장 1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모두 그렇게 말합니다. 그 시대를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 `본받는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스케마`라고 하는데, 유행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세상 유행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유행이 있습니다. 어느 시대나 유행이 있습니다. 머리고 유행이 있고, 옷도 유행이 있습니다. 유행 못 따라가면 사람 구실도 못하는 듯 합니다. 촌스럽다고 합니다. 공부하는 것도 유행이 있고, 집 짓는 것도 유행이 있고, 결혼하는 것도 유행이 있고, 하다못해 말하는 것도 유행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행은 멀리 가지 못합니다. 유행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바람이기 때문에 바람의 방향에 따라서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릅니다.

    삼십 년 전의 앨범을 한번 꺼내 보십시오. 그 앨범을 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촌스럽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실 지금은 촌스럽지만 그 때는 대단했습니다. 장발이었는데, 그것을 최고의 멋으로 알았습니다. 박대통령이 단발령 내려서, 한번은 명동에 갔다가 붙잡혀 갔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잘라서 내보냈습니다. 어떤 친구는 머리가 아주 길었는데 가위를 피하다 귀가 잘린 일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머리 기르는 것을 그렇게 좋아했습니다. 그 때는 그것이 최고의 유행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게 안 하면 사람 구실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보니까 그 때 입었던 나팔바지 별로 멋이 없습니다. 유행이 그런 것입니다. 바람 같습니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지 모릅니다. 잡아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 명품이 유행 아닙니까? 명품 비싸게 주고 사보십시오. 3년 못 가 또 새로운 명품이 나옵니다. 그것을 왜 비싼 돈을 주고 삽니까? 유행은 바람입니다. 오래 가지 못합니다.

    제가 몇 년 전에 무슨 옷을 사기 위해서 옷가게에 간 일이 있습니다. 그 주인이 저에게 귀한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선생님, 오래 입으시려면 유행에 따른 옷을 입지 마세요. 이건 참 좋기는 좋은데 금년 넘기면 못 입고 다닙니다. 왜냐하면 새로 유행이 나오기 때문에 이거 입으면 창피해서 다닐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정말 좋은 것을 배웠습니다.

    오래 살려면 유행을 따라 살지 말아야 합니다. 천국을 갈려면 유행을 따라 살지 말아야 합니다. 멀리 바라보는 사람은 유행을 따라 움직이면 안됩니다. 무엇이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유행이 우리의 삶을 불안하게 하고 유행이 이 사회를 혼란하게 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느 것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곧 얼마 있지 않으면 쓰레기통에 버림을 받는 것이 유행에 따라 움직이는 제품들입니다.

    사람이 제품처럼 버림받지 않고 영원히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고 축복 받는 삶을 살아가려면 하나님을 기준으로 사는 의인이 되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준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준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성경에 `의인`이라는 말도 나오고, `완전한 자`라는 말도 나옵니다. 이 두 말은 다 비슷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 완전이라고 하는 말의 뜻은 히브리말로 "타밈"인데 `온전하다`는 뜻하고, 성실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완전`은 `온전`이 아닙니다. `온전`과 `완전`은 다릅니다. `온전`은 `쓸만하다` 하는 뜻입니다.

    여기 `성실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의인이다, 완전한 자라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인되기를 원하는데, 완전한 자가 되기를 원하는데, 그것은 완벽한 자가 아니라 완전을 향해서 나아가는 자를 얘기합니다. 신앙생활이 과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현재가 계속 진행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세상 유행 따라가지 않고 어떻게 하면 온전한 자로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딱 하나입니다.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의 완전한 자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말은 하나님과 같이 간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부부는 닮는다고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자식도 부모를 닮습니다. 왜 닮습니까? 상대방을 나에게 맞추려고 하면 절대로 닮지 않습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맞춰 가면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식성도 맞춰가고 생각도 맞춰가고 어떤 때는 말하는 것도 맞춰갑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다른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 맞춰 살려고 하니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동행입니다. 세상에 맞춰 살지 않고 하나님께 맞춰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 성경을 보면서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았습니다.

    19절 말씀, "혈육이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방주로 이끌어들여라 했습니다. 그런데 20절에 보게 되면,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19절에는 끌어오라는 얘기고 20절에는 오겠다는 얘기입니다. 노아가 만약에 19절 말씀만 들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짐승을 잡으러 다니느라고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20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오게 한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끝까지 들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저는 의심을 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 이 짐승들 어떻게 잡아 오냐? 그런데 하나님께서 넣어주셨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그렇게 짐승들이 들어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 해방 받을 것이다" 그 다음에 "하나님 섬겨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해방 받는 것만 듣습니다. 그것만 좋아합니다. 그래서 홍해 바다 갈라지고 반석에서 물이 나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면서도 이들은 하나님 섬기지 않습니다. 반만 듣고 반만 섬깁니다. 결국 광야 생활에서 헤매다가 죽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 하면서 어떤 사람 분명히 말씀대로 사는데, 그 생활이 편하지가 않습니다. 광야 생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왜 그럽니까? 끝까지 듣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끝까지 들어야 합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기준에 맞춰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 십자가에 죽는다, 거기까지만 들었습니다. 부활한다는 얘기 안 들으니까 다 도망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반만 들으면 그렇게 헤매고 다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네게 능력 주신 자 안에서 네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모든 일을 할 수 있으니까 편하기만 하다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12절에 "네가 궁핍에 처할 줄도 알고" 가난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할 줄 안다는 것은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13절만 들으면 능력 있으니까 다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시험 드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끝까지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끝까지 들을 줄 아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사는 것은 다른 것 아닙니다. 세상 따라가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을 따라 가십시오. 우리는 완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실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 높이시고 이런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줄로 믿습니다.


    2) 의인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1995년 미국의 타임지 10월2일자 어린이 대상 연구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4살 된 어린아이에게 빈방에 데리고 들어가 앉혀 놓고 빈 접시에 마시멜로(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말랑말랑한 과자)를 놓고 "잠깐 나갔다 오겠으니 기다려라, 그리고 그 때까지 이 과자를 먹지 않으면 한 개를 더 준다." 했습니다. 그리고는 이 장면을 부모와 연구원이 행동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반 정도는 먹고 반 정도는 먹지 않았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2-3분을 참지 못하고 먹어버립니다. 다른 아이는 참고 먹지 않습니다. 먹지 않는 아이들은 먹고 싶은 것을 참느라고 혼자 흥얼흥얼거리거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그것을 바라보지 않기도 하고 참느라고 몸을 비비꼬기도 하고 머리를 아래로 숙이고 억지로 끝까지 참습니다. 이제 연구원은 방에 들어가서 안 먹고 기다린 어린아이를 칭찬을 해주고 약속대로 머시멜로를 한 개 더 줍니다.

    15년의 시간이 흘러서 이 아이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습니다. 조사를 해보니 참지 못하고 먹은 아이들과 참은 아이들은 현저하게 차이가 났습니다. 그 때는 머시멜로 한 개의 차이였지만 15년 후에 보니까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기다렸다가 한 개 더 먹은 아이들은 적응력이 뛰어나고 인기가 있고 모험심과 자신감이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성격인 반면에 금방 먹었던 아이들은 유혹이 올 때 쉽게 넘어지고 더 고독해하며 금방 화를 내거나 고집이 셌습니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이 불량청소년이 되었습니다. 성적도 기다렸다가 두 개를 먹은 아이들은 대부분이 학업성적이 뛰어나고 수능시험(SAT)에도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우리 아이들에게 달라는 것 다 주고, 하고 싶다는 것 다 해주면, 이 아이들의 미래는 너무나도 뻔합니다. 절대 잘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우리 손주들을 키울 때 이 아이들에게 인내를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는 인내를 가르치려고 하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들을 인내하게 시키지 못하면 이 아이들의 인생이 어떻게 되느냐? 이것은 보다마다 뻔합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36절에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이 아이들은 그 약속을 지켰기 때문에 머시멜로 하나를 더 먹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인내를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무엇이 있느냐?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것입니다. 그 인내 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 인내를 농사 짓는 사람과 비교해보았습니다. 봄에 씨앗을 뿌립니다. 가을에 거둡니다. 그러면 여러분 봄에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 거둘 때까지 가만히 앉아있습니까? 농사꾼이 어떻게 합니까? 계속해서 농사짓는 일을 합니다. 이것이 자라기는 저절로 자라지만 저절로 자라게 내버려두지 않고 김을 매주기도 하고 비가 안 오면 물을 갖다 주기고 하고 거름도 주기도 하고 이렇게 해서 잘 자라고 난 다음에 때가 되어서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 인내한다는 것은 멍청하게 참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그러면 노아가 방주 속에 얼마나 오래 있었느냐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 노아가 방주 속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아십니까? 방주에 들어갈 때는 노아의 나이가 600세 2월 10일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방주에서 나올 때는 언젠가 하면 601세 2월 27일에 나왔습니다. 자그만치 1년 17일 동안을 있었습니다. 방주 안에 혼자 있었습니까? 그 안에는 갖은 짐승들이 다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 저희 집에 이쁜 강아지 한 마리가 왔습니다. 그런데 이 개가 돌아다니면서 여기다 싸고 저기다 싸고 합니다. 그것 닦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1년 17일 동안 있으면서 얼마나 많은 짐승들이 먹고 싸고 했겠는가? 아무리 방주가 커도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래도 노아는 한마디 불평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문을 열어주시고 나오라 하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의 일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집이 사기를 당하고 고난을 당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나에게 그런 얘기를 한마디 듣지를 않습니다. "너는 교회 가야 된다" 제가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13년 개근했습니다. 그런데 교회학교는 유치부 1년해서 13년을 개근했습니다. 저하고 제동생이 개근했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얘기했습니다. "지금은 이렇지만 하나님이 꼭 축복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데, 우리 아버지는 나에게 늘 그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고 가르쳤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 때문에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모릅니다.

    어떤 때는 "너는 한경직 목사님 설교 듣고 와야 된다" 그래서 한목사님의 설교를 1부 예배에 가서 듣는데 그것을 6년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우리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시험 때도, 몸이 아플 때도, 계속 그 일을 했습니다. 때론 그 일 때문에 공부에 손해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그 안에서 성실하게 믿음 생활하는 사람, 절대로 버리지 아니하고 복 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믿음 안에 살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기 위해서는 때로는 손해도 보고 핍박도 보고 놀지도 못하고 망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우리를 높여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보게 되면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상황이 좀 더 나빠진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 안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주일 성수해라, 십일조 생활해라, 말씀드리는 이유는 딱 한가지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 때를 기다리기 위해서 우리는 열심히 김도 매주고 열심히 거름도 주고 그러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열매 맺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의인이고, 그런 사람을 높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진정한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신앙인의 가치는 의로운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의인은 하나님을 기준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을 기준으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 말씀 안에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더운 여름에 힘들고 어렵지만 기다리면 가을에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인된 자에게 높여주시고 은혜 주십니다.


    4.결론 - 하나님은 의인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높여 주신다.

    오늘 성경은 "노아는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었더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을 베푸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보면서 2가지 은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노아에에 높여주시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당시 죄인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하면 `홍수 심판한다. 너희들은 구원받아라`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홍수라는 채찍을 통해서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이 하나님이 점점 높여주시는 은혜를 받아야지 채찍에 맞고 사는 이렇게 광야 같은 삶을 사는 어리석은 인생 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의인되어야 합니다. 세월 지나갈수록 더욱 주님 의지합시다. 하나님 높여주시고 승리케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한 주간도 의인으로 잘 사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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