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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된 사람의 특권(1)
    2002-05-31 15:00:45   read : 2825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년 5월 26일 // 롬8:26-27

    하나님의 은혜로 성지순례를 잘 마치고 어제 돌아왔습니다. 아직 시차로 인하여 정신이 좀 멍멍하지만 12박 13일 동안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걸었던 길을 순례하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깨달음과 도전을 받았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걸었던 그 길, 그들이 피를 흘리며 순교했던 그 자리, 그들이 떡을 떼며 성도의 교제를 나누었던 그 자리,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던 그 현장은 그 현장을 찾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감동과 도전을 주었습니다. 한 마디로 앞서간 믿음의 선배들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예루살렘교회의 핍박을 인하여 흩어진 평신도들에의해 세워지고 바나바와 바울을 최초의 선교사로 파송하였던 수리아의 안디옥교회는 당시의 핍박을 피해 안디옥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산 위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바위 굴 속에 숨어 지내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금식하며 기도하던 중 성령의 음성을 듣고 바나바와 바울을 최초의 선교사로 파송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베드로전서를 쓰면서 문안하였던 갑바도기아 성도들 역시 바위에 굴을 파서 생활을 하였으며 지하 8층 깊이의 미로와 같은 지하교회에서 함께 모여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로마교회 성도들은 우리가 잘아는 바와 같이 카타콤베(지하무덤)에서 생활하며 신앙을 지켰습니다. 카타콤베는 다녀오신 분이 많이 계시겠지만 그 지하무덤의 길이가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길이보다 더 긴 500km 이상이나 된다고 합니다. 어찌나 미로로 되어 있든지 몇 년전에는 독일에서 수학여행을 온 7명의 학생이 대열에서 이탈하여 미로를 헤매다가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정말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믿음의 선배들이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했습니다.

    우리는 12박 13일 동안 성지순례를 하면서 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비행기를 타고 좋은 전세버스를 타고 성지순례를 하면서도 힘들어 하는데 믿음의 선배들은 어떻게 이런 바위굴 속에서 지하 무덤에서 생활하며 신앙을 지킬 수 있었을까? 어떻게 원형경기장의 사자의 밥이 되면서도 찬양을 할 수가 있었을까? 로마의 핍박이 한창이던 때에 "나는 예수를 믿지 않겠습니다." 라는 말 한미다만 하면 자유의 몸이 되어 살 수 있었는데 왜 그들은 지하 굴 속에서 평생을 지내며 살아야 했을까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남의 눈을 피하여 핍박을 받으며 산다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들도 육을 입고 있는 인간인데 힘들지 않았겠어요? 물론 힘들었겠지요? 물론 고통 스러웠겠지요? 그러나 그들은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비굴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왜? 성령께서 그들을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도우십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누가 성도입니까?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다 성도가 아닙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된 사람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마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누가 성도입니까?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성령께서 그의 몸을 성전 삼고 그 안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누가 성도입니까? 누가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4)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자에게는 생명과 평안의 축복이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6)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육신의 생명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생명으로 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생명과 평안의 축복이 있습니다. 영광의 자유함에 이르기를 원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의 생명이 있고 주님이 주시는 자유함이 있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그들 안에 있고 영광의 소망이 그들 안에 있었기에 앞서간 믿음의 선배들은 그 고난을 이겨낼 수가 있었습니다. 비록 깊은 땅 속에 있었을지라도 바위 굴 속에 거하며 살았을지라도 음란과 사치속에 살았던 에베소에서 사람들보다, 폼페이의 도성에서 살다가 화산재에 묻힘을 당한 사람들보다 더 자유함을 누리며 살았을 것입니다. 오늘은 그동안 우리가 절기 설교에 앞서 함께 묵상했던 로마서8장 강해를 다시 하도록 하겠습니다.

    □ 성령께서 도우시는 인생
    오늘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사람이 특권이 누리는 특권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고자 합니다.
    26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아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사람이 누리는 특권은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며 산다는 것은 얼마나 엄청난 특권인지 모릅니다. 바울은 롬8:9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그 안에 계시지 않으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러면 왜 성령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왜 성령께서 우리 안에 찾아오셨습니까?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우리 안에 찾아오신 성령님의 이름을 보혜사라고 말합니다. 보혜사란? 조력자, 돕는자, 위로자, 격려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 우리 안에 오셨습니다.

    □ 성령은 우리 연약함을 아십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도울려면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고 연약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듯이 성령님도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26절 상)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연약함이란? 힘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령의 도움이 필요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무기력한 상태를 말합니다.
    인간은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한 만큼 연약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정죄에서 벗어났지만 우리 안에는 아직도 죄성이 남아 있습니다. 연약함이 남아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강한 것 같지만 떨어지면 바싹 깨어지는 질그릇과 같습니다. 병원엘 가보세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입원해 있는지 모릅니다. 대학병원 같은 큰 병원은 한번 입원할려면 몇 달을 기다려야 하는지 모릅니다. 질병에도 약하고 유혹에도 약합니다. 의지도 약합니다.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라는 찬송의 가사처럼 우리의 힘과 결심도 약합니다. 아무리 믿음 좋은 사람도 인간의 연약은 벗어날 수 없습니다.
    타이타닉이라는 영화를 보셨지요. 그 영화를 보면 제일 먼저 배의 파선을 알고 움직이는 것이 뭔지 아세요? 사람이 아니라 쥐들입니다. 개미는 홍수가 날 것을 미리 알고 집을 나무 꼭대기에다 짖는다고 합니다. 거미란 놈은 바람이 불기 전에 어디서 바람이 불어올 것인지를 미리 알고 그 방향을 향하여 거미줄을 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5분 후를 알지 못합니다. 얼마나 연약합니까?
    영적으로도 약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약함이 뭔지 아세요? 26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26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할 정도로 우리는 연약하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두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와 "주여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우편에 앉게 명하소서"라고 요구했을 때 우리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보실 때 정말 구해야 할 것은 구하지 못하고 구하지 않아도 될 것을 구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렇게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할 정도로 약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라는 표현을 써서 자기 자신도 이런 연약함의 소유자인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약합니다.

    또 사도 바울이 우리의 약함을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기도를 거론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약할 때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이 바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우리가 육신적으로 연약하든지, 정신적으로 연약하든지, 영적으로 연약하든지 간에 어떤 연약한 것을 가지고 있으면 제일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이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모든 연약은 기도를 공격합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를 방해한다는 말입니다.
    열을 조금만 받아도 기도가 안됩니다. 부부싸움만 조금 해도 기도가 안됩니다. 밖에서 조금만 기분이 나빠서 들어와도 기도가 잘 안됩니다. 세상 향락에 조금만 취해도 영혼이 캄캄해지고 기도가 막힙니다. 나의 연약함이 기도를 빌바를 알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기도의 문을 막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여러분의 연약함이 무엇입니까? 그런데 성령님은 우리의 약함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얼마나 질병에 약하고 유혹에 약하고 분위기에 약하고 2차에 약하고, 술과 담배에 약하고 정욕에 약한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그런데 아신 다음 어떻게 하십니까? 연약함을 아신 다음에 그냥 방치하십니까? 방관하십니까? 아닙니다. 도우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26절 상)
    여기서 "도우시나니"라는 말씀은 '함께 담당한다' '함께 맞잡아 준다' 는 뜻입니다. "도와 준다"는 말(순안티람비노)은 두 사람이 함께 짐을 지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 보면 눅10장에서 한번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 언니 마르다는 열심히 만드느라 분주했지만 동새 마르다는 손에 물하나 묻히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서 말씀을 듣기만 합니다. 그때 마르다가 열을 받아 가지고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를 명하여 나를 도와 주게 하소서"(눅10:40) 바로 그 때에 사용된 돕는다는 말이 바로 본문에 사용된 말입니다. 그러니까 마리아에게 명하여 나와 함께 음식을 만들도록 해 주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기분나빠 음식을 안 만들테니까 마리아더러 음식을 준비해서 예수님을 대접하든지 말든지 하라는 그런 애기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시되 우리가 연약해서 그것을 할 수 없을 때 우리를 도우심으로 그것을 행하게 하십니다. 죄성을 가진 나 혼자의 힘으로는 불 가능할 때 성령님은 나를 도우심으로 그것을 가능케 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고 했습니다.

    그런나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어떤 성도는 이 말을 오해해서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성령께서 성령께서 모든 일을 다 해 주실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령님은 내가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무릎을 꿇어 기도하며 최선을 다할 때 나를 도우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순종할 때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도와서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게 하십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 시절에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신학생들이 기말이 되 어서 기말고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성령론 시험을 치게 되었는데 한 학생 이 다른 과목은 다 공부해서 시험칠 일이지만 성령론 만큼은 공부해서 시험칠 일이 아니다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동안 금식하고 철야하며 기도하고 성령충만 받은 다음에 시험을 치기로 했습니다. 열심히 기도해서 시험 고사장에 들어갔습니다. 시험지가 나누어 집니다.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라 한자도 풀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한 그 학생은 하나님 앞에서 기 도했습니다. 하나님 성령론 시험을 치려고 하는데 정말 시험듭니다. 내가 그렇 게 기도하고 시험문제를 받았는데 한 문제를 풀 수가 없습니다. 가르쳐 주시 옵소서. 열심히 기도하는데 시험지를 낼 시간이 되어 번쩍하고 영감이 왔습니다. 정답을 썼습니다. "성령님은 다 아십니다. 끝." 서양선교사 교수님이 그 시험지 답안 채점을 해야 되겠는데 맞은 것도 아니고 틀린 것도 아니거든요. 그래서 또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럴 때는 어떻게 채점을 해야 옳습니까?" 번쩍 영감이 왔습니다. 기가막힌 채점을 했습니다. "성령님 100점 너 0점." 그리하여 성령님은 100점 잡수시고 이 학생 은 0점 먹어서 그 학기 낙제했다고 하는 얘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장군으로 만들거나 천사로 만들어 우리를 도우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을 그대로 그대로 두시고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돕기 위해 우리 안에 찾아오셨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성령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생명줄과 같은 것입니다. 기도생활의 문제는 우리의 영적인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성령은 어떻게 우리를 도우십니까?
    그러면 성령님은 우리를 어떻게 도우십니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기도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님은 우리의 기도를 도우십니까? 두 가지로 돕는데요.

    첫째로 , 성령께서 친히 간구하심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26절 하)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시되 우리를 슈퍼맨이나 천사와 같은 존재로 만들어서 우리의 연약함을 이기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영화의 속의 주인공들을 보십시오. 맥가이버, 로보캅, 터미네이터 같은 사람들이 언제 죽는 것 보았습니까? 곤경에 빠지지만 언제나 승리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와 같은 영화 속의 주인공들로 만들어서 우리를 도우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을 그대로 두시고 성령께서 친히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심으로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한 자를 찾으시지 하나님 없이 강한 자를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네피림을 저주하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강한 자를 찾으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한 자를 찾으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친히 간구하심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런데 그냥 기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는 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그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흘리는 땀 방울이 핏방울이 되듯이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
    어떤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성령께서 어떻게 탄식하실 수 있단 말인가? 성령께서 탄식하신다면 우리 인간과 다를바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하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며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시는 가를 잘 보여줍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근심하시고 탄식하신다는 것은 그분이 나를 떠나실 수 없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분이 나를 버리시고 떠나실 수 있다면 왜 내 안에서 근심하시고 탄식하시겠습니까? 나를 버릴 수 없고 떠나실 수 없기에 내 안에서 탄식하시며 근심하신 것입니다. 자식이 잘못된 길을 갈 때 부모가 탄식하듯이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가 범죄하고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는 것을 구하고 영원한 것을 잃어버리고 순간적인 것을 위하여 살아 갈 때 우리 안에서 탄식하시며 친히 간구하십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심으로 도우십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27절)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죄성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할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빌바를 알지 못하고 기도할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서로의 생각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관심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실 때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간구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관심을 따라 기도하십니다. 만일 성령께서 우리의 원함을 따라 기도하신다면 그분은 우리의 꼭두각시에 불과한 존재가 되고 말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도 때문에 비참해 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된 사람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연약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기 위하여 우리 안에 보혜사로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성령께서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 먹은대로 이 세상을 살 아갈 수 있다면 왜 성령께서 우리 안에 찾아오셨겠습니까?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셨고 나의 연약함 때문에 성령께서 내 안에 머물러 계실 수 있다면 도리어 여러분의 약함을 바울처럼 감사하며 자랑하십시오.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알았을 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노라"(고후12:9)
    여러분이 약하기 때문에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약함 앞에서 좌절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약함을 정죄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당신의 약함을 발견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당신의 약함을 도리어 자랑하십시오. 당신은 당신의 약함을 인하여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겸손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신의 약함이 무엇입니까? 당신의 약함은 우리의 실패의 조건도 아니고 성공의 장애물도 아닙니다. 도리어 이 연약함이 성공의 열쇠가 되고 도리어 이 연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케 하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당신의 연약함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무릎을 당신의 교만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약합니다,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누구의 도움을 받으며 살기를 원하십니까? 부모입니까? 남편입니까? 친구입니까? 직자의 상사입니까? 물질입니까? 그것은 어느 정도의 도움은 될 수 있지만 진정한 도움은 되지 못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도울 힘이 없는 연약한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살고 싶지 않습니까? 그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저와 여러분을 도와 주시려고 우리 안에 찾아오셨습니다.

    이 험한 세상 나그네길 성령님의 도우심을 따라 사시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따라 살기를 원한다면 기도의 무릎을 꿇으십시오. 그분은 기도하는 자를 도우십니다.

    여러분의 약함이 무엇입니까? 이제 그것을 끌어안고 탄식하지 말고 그것을 가지고 주님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성령님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면 기도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며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기도하십시오. 기도의 땀방울을 흘리십시오. 그분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아멘)

    247장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 내릴 때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약함을 사랑으로 돌봐주시네
    누군가(성령님) 널 위하여 누군가(성령님)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성령님) 날 위해 기도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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