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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사는 주님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2002-05-31 18:34:38   read : 2898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목회비전(봉사)



    마태복음 22:39-40, 요한복음 6:5-6, 베드로전서 4:9-11




    사람은 누구나 죽음 앞에 서게 되면 착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임종을 앞두면 마지막으로 세 가지를 뉘우친다고 하지요.

    그 첫째가 베풀지 못하고 산 것을 뉘우칩니다.

    좀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좀 더 줄 수 있었는데. 좀 더 베풀며 살 수도 있었는데. 이렇듯 악착같이 먹을 것 입을 것 아껴 가면서 긁어모아 봐도 결국 다 쓰지도 못하고 가는 것을 하면서 후회하게 된답니다.

    둘째로 뉘우치는 것이 참지 못한 것입니다.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좋았을 걸. 왜 쓸데없는 소리를 했던고. 왜 그런 행동을 했던고. 그래도 내가 참았어야 했는데.

    세 번째는 좀 더 행복하게 살수도 있었는데, 좀 더 즐겁게 살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아웅다웅하고 울고불고 왜 그처럼 힘들게 살았던고.

    괜히 여러 사람을 괴롭혔구나. 그렇게 살 필요가 없었는데. 이것이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뼈아픈 회한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순간 한 가지 생각을 해봅니다. "과연, 이것이 공통적인 회한인가? 설사, 세상 사람들이 이러한 회한을 품고 마지막을 맞이한다 할지라도 내가 적어도 그리스도인인데 나마저 이렇게 살다가 가야 하는가?" 성도 여러분, 우리가 다 이렇게 똑같은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까? 과연, 이런 삶이 되지 않기 위한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깊이 생각하다가 한 가지 방법을 깨달았습니다. 가르쳐 드릴까요? 봉사하는 삶을 사세요. 희생하는 삶을 사세요. 정말 열심히 봉사하는 삶을 살다가 인생의 종착지에 다다른 사람은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평생 참된 봉사 정신을 가지고, 희생하면서 산 사람치고 후회하는 사람을 보셨습니까? 예수님을 보세요. 마지막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다 이루었다!" 그렇습니다. 평생을 나누며, 베풀며, 희생하며 사셨던 예수님께서 마지막 하신 말씀은 "다 이루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삶을 사시고 싶지 않습니까? 봉사하세요. 희생하세요. 그러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봉사를 말하면서 몇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전제된 봉사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최고의 표현이 뭐라 했지요? 예배. 다시 말해, 예배가 회복되어야만 참된 희생, 참된 봉사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1. 봉사란 무엇입니까?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참된 봉사', '참된 희생'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22장의 말씀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참된 봉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 그 사랑을 실천할 때 참된 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 6장의 말씀은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말씀이 참된 봉사의 정신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요한복음 6장 5-6절의 말씀을 봅니다.

    "5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6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질문을 빌립에게 하면서 의도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스스로 하시려고 계획하신 일에 무엇인가가 부족해서 빌립에게 질문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또한 빌립이 그것을 제대로 하나, 못 하나를 시험하시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빌립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을까요? 이 질문은 우리가 생각하는 '수단'과, 예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수단'이 어떻게 다른가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빌립에게 물었을 때, 빌립은 어떠한 해답을 제시했습니까? "돈"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돈이 있어야 먹을 것을 사고, 마실 것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돈으로 해결될 문제였습니까? 아니, 예수님이 돈을 구해 오라고 하신 것일까요? 예수님이 진정으로 원하셨던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진정으로 원하셨던 것은 무엇으로 어떻게 그들을 먹일 수 있을까 하는 방법이 아니라 얼마나 자기의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그 사람들을 진정으로 도우려 하느냐 하는 제자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어린아이는 방법 따지지 않았어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어떻게 이 무리들을 먹일 수 있을까를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가진 모든 것을 내어 놓았을 뿐이었습니다.

    때로 우리는 빌립과 같이, 봉사를 하면서 잘못된 환상 속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환상이신지 아십니까? "주님이 뭔가 부족한 것 같군! 내가 뭔가 해드려야겠어! 내가 없어서야 주의 일이 되겠나?" 이런 생각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내어놓는 그 어떤 것도 예수님이 능력있게 일하실 방법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굳이 예수님의 일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이 어린 아이와 같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어맡기는, 즉 자기 자신을 예수님 품에 내어맡기는 헌신일 뿐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무슨 일이 있어서 돈이 필요할 때, 헌금을 하면 그 헌금 자체가 무슨 일을 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돈 그 자체가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진 것은 아닙니다. 돈이 아니고 돈을 하나님 앞에 맡긴 내 진심이 받아들여진 것뿐입니다. 그래서 돈많은 부자의 많은 헌금보다 과부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두 렙돈을 헌금했을 때, 예수님은 과부의 헌금을 더 높이 평가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는 얼마를 드렸느냐보다는 드리고 난후 내게 얼마가 남았느냐가 더 소중한 평가 자료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쉽게 이야기 하면 내가 헌금해서 하나님께서 그 돈으로 부자가 되셔서 일하시는 것도 아니고, 내가 무슨 특별한 일을 해서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다만 우리가 헌금하는 마음, 우리가 헌신하고 희생하는 마음을 받으셔서 일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봉사할 때 어떤 생각을 가지고 봉사하십니까? 혹시 주님 대신 내가 일하는 것을 봉사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께서 아무 일 하지 않고 편안히 있을 수 있도록 내가 모든 것을 하겠습니다"하는 것이 참된 봉사입니까? 아니지요. 내가 봉사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하신 주님을 이 세상에 드러내게 될 때, 그 봉사가 비로소 참된 봉사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가 봉사하는 모습은 어떻습니까? 교회 내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때로는 봉사하다가 자신이 드러나지 않으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드러내려는 봉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내가 봉사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합니다. 더 나아가서 어떤 교회는 열심히 봉사하면서 그 봉사로 인해 교회의 어떤 기득권을 가지려고까지 합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이처럼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봉사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하는 봉사가 누군가에 의해 인정받기를 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탈무드에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왕의 외동딸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외동딸이 죽어가니까 왕이 하도 다급한 나머지 "내 딸의 병을 고치는 자를 사위로 삼고, 내 대를 이어 왕위에 오르도록 하겠다"고 방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먼 나라의 산골에 삼 형제가 살았는데, 그들은 저마다 신기한 보화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습니다. 큰 형은 멀리 보는 망원경을 가졌습니다. 그 망원경으로 임금님이 방을 써 붙인 것을 봅니다. 둘째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양탄자 하나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양탄자를 이용해 공주에게 가려고 했습니다. 셋째는 먹기만 하면, 어느 병이라도 낫게 하는 사과 한 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 이 삼 형제가 망원경으로 멀리서 보고, 양탄자를 타고 와서, 이 사과를 먹이므로 공주를 살려냈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은 사위를 삼아야 하는데, 세 사람 모두 공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딸은 하나인데 남자는 셋이니 셋중 하나만을 사위로 삼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왕의 사위가 되었을까요? 탈무드는 이렇게 가르쳐줍니다. '망원경은 도로 가져가면 되고, 양탄자도 도로 가져가면 된다. 그러나 사과는 먹어서 없어졌다. 그러니 셋째야말로 큰 희생을 한 것이다.' 그래서 셋째가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희생이란 없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희생해서 내가 없어져야 참 봉사이며, 참 희생입니다.



    2. 봉사를 해야 하는 이유

    성도 여러분, 우리가 봉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명령이기 때문에 성도는 봉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명령이기에 해야 한다고 하면, 죄인된 인간은 오히려 명령에 불복종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봉사를 해야할 목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명령이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는 하지만, 목적에 대해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엉뚱하게 봉사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 만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진실된 만남을 가지고자 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이것이 첫째되는 계명입니다. 둘째 계명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은 어떤 목적이 있을까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봉사하는 이유는 그것이 명령이기도 하지만, 봉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그럼으로 예배드리는 대상과 봉사로 섬겨야 할 대상이 다를 뿐이지, 사실은 모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는 점에서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봉사를 하더라도 하나님의 이름이 빠지면 성도로써의 참된 봉사라할 수 없습니다.



    3. 봉사의 원칙

    그렇다면, 봉사를 할 때 어떤 원칙으로 해야 합니까?

    첫째로, 성령의 힘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봉사해야 합니다.

    봉사는 내 지식의 힘으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내 경험으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해가 안 되시죠? 베드로전서 4장 11절에서 사도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그렇습니다. 봉사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봉사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몸이 약하든지, 그 일이 힘에 벅차든지, 자신이 없기 때문에 봉사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위해서 봉사하려면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것임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해야지요. "하나님! 봉사할 능력을 주세요. 힘을 주세요. 도와주세요."



    둘째, 봉사하면서 불평이나 원망을 해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전서 4장 9절입니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원망 없이 봉사하라. 봉사하면서 불평하지 말아라."

    봉사를 하면서 대가를 바란다면, 참된 봉사라 할 수 없습니다. 인정이나 칭찬을 받으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봉사가 주님을 드러내는 일인데, 인정받을 것은 무엇이고 칭찬받을 것은 또 무엇입니까? 오직 주님만 드러나면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원망하거나 불평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나는 이것을 했는데 너는 무엇을 했느냐?"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봉사한다면, 원망없이 대접할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 존재와 가치를 드러내고 증명하려고 "내가 해놓은 업적을 보시오"라고 한다면 성도는 언제나 봉사를 통해 사랑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드러내야 합니다.



    셋째로, 은사를 받은 대로 활용해야 합니다.

    봉사는 자기가 받은 은사대로 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10절입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모든 사람이 똑같은 봉사를 할 수는 없습니다. 봉사의 종류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은사대로 일하면 모두가 다 즐겁습니다.

    은사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간단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일해도 싫증나지 않고 피곤하지 않는 일이 내가 받은 은사입니다. 예를 들면, '가르치기만 하면 신난다', '찬양은 아무리해도 즐겁기만 하다', '나는 설거지하고 세탁할 때, 힘이 넘치고 속까지 시원하다' 바로 이것이 은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사는 서로 다를 수 있어요. 서로 인정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부엌일 못하지만 가르치는 것 잘하고, 어떤 사람은 가르치는 것은 잘하는데 부엌 일 못할 수 있어요. 서로 탓하지 말고 '은사가 다르구나!' 이해해야 합니다.



    넷째, 한결같이 인내하며,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봉사하다가 어려움 겪는 사람들 많습니다. 식당 봉사하다보면, "반찬이 짜네요. 국이 싱겁네요." 이런 말 듣기 십상이지요. 주차 봉사자들은 어떻습니까? 추운 날씨에 밖에서 주차시키려고 하면, 왜 이리 말을 듣지 않는지, 정말 짜증날 때가 많을 것입니다. '이곳에 주차하지 말고 저곳에 해 주세요' 안내하면 '당신이 뭔데 교회에 와서까지 간섭이냐? 주차관리원 보면 괜히 짜증부터 난다'는 표정으로 민망하게 얼굴 찡그리고 그냥 가 버립니다. 주차요원이 없으면 질서가 없어지고 질서가 없어지면 내가 불편해진다는 사실을 아셔야지요? 성가대는 성가대원으로써, 교사는 교사로써 자신이 봉사하는 현장 속에서 속이 탑니다. 화가 치밀어 올라올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결국에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성경은 이런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갈라디아서 6장 9절 "우리가 선을 향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렇습니다. 봉사는 인내로써 해야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봉사라는 것이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5장 1절로 2절 말씀은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성도 여러분, 나 자신을 위해 열심을 내는 것도 힘든데, 하물며,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생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으로 이왕 봉사할 것이라면 어려움 속에서도 인내하며 봉사한다는 굳은 각오로 임하시는 성도들 되시길 바랍니다.



    4. 봉사의 결과

    봉사하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감당할 만한 건강을 허락하십니다. 건강하시길 원하십니까? 봉사하세요. 봉사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 받기 원하십니까? 봉사하면 복 받을 수 있습니다. 봉사하면, 남들이 가질 수 없는 그런 기쁨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십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기쁨이 충만하시길 바랍니까? 봉사하세요. 그 어떤 것으로도 누릴 수 없는 기쁨이 내 마음 속 깊은 데서부터 솟아오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5.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결단해야 합니까?

    첫째, 희생을 각오할 수 있어야 합니다.

    봉사는 희생을 각오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참된 봉사가 있기 위해서는 자신의 것을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주었던 사르밧 과부가 그랬습니다. 엘리사에게 방까지 만들어주었던 수넴 여인도 그랬습니다. 그뿐입니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가지고 나온 어린 아이도 자신의 것을 희생했습니다.

    봉사하면서 자기 것 움켜쥐고 봉사하려고 하면, 오히려 더 힘이 들지 않습니까? 내 것 생각하기 시작하면, 작은 일에도 실망하고 실족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봉사할 때는 우리가 예배드릴 때 하나님만 바라보고 예배드리듯, 내 것 포기하고 봉사할 각오로 임하시길 바랍니다.



    둘째, 협력하고자 하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교회에서 봉사하는 일은 혼자 아무리 잘났어도 다 해낼 수가 없습니다. 교회학교 교사로서 봉사하는 일도 그렇고 식당에서 봉사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차를 주차하는데도 한 사람이 다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자신에게 맡겨진 부분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고 서로 협력하고자 할 때 봉사의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협력한다는 것" 그것의 참된 의미는 무엇입니까? 단순히 힘을 모은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협력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처지를 알고 상대방이 어려워 일을 감당하지 못하게 될 때, 도와줄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커지니까 한 가지 걱정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뭔지 아십니까? 다른 위원회들은 걱정이 덜 되는데, 저 위에 조정실을 보면, 정말 걱정이 돼요. 봉사하는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거든요. 자막도 만들고 프로젝트 화면도 만들고, 음향도, 조명도 해야 하는데, 각 분야마다 한 사람 정도 밖에 없으니, 참 걱정입니다. 조정실만 봉사자가 부족합니까? 장차 우리 교회를 이끌어갈 어린 아이를 키워야 할 교사들도 너무 부족합니다. 힘들다고 하지 않으려고 해요. 성도 여러분, 모두가 편안한 봉사만 하려고 하면, 아예 협력이라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함께 봉사하고 함께 상급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설교석상에서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여러분들 가운데 조정실에서 봉사하고 싶은 분들이 계시면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조정실만이 아니겠지요? 다른 곳에서도 여러분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많은 봉사자들이 있을 때, 그래서 서로의 힘을 모을 수 있을 때, 우리 춘천중앙교회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리라 믿습니다.



    셋째, "지금" 결단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마음속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허락하신 이 교회를 위해서 뭔가 하고 싶은 것이 있지 않습니까? 뭘 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까?

    그런 분들 계시면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 결단하세요. 오늘이 봉사하고자 결단하는 날입니다. "좀더 생각해 보고 결정하겠습니다"하지 마세요. 그러면, 봉사하기 힘듭니다.

    봉사할 곳이 없다구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 많아요. 지금 이 순간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시는 분들은 모두들 제게 오세요. 얼마든지 봉사할 수 있는 곳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정리>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같이, 봉사는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이웃 사랑입니다. 성도 여러분, 봉사합시다. 우리 교회 목회 비전을 상징하는 그림 생각나십니까? 예배가 한쪽 팔이라고 하면, 봉사는 또 다른 한쪽 팔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예배가 중요하지만, 봉사도 그 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봉사를 통해서 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힘써 봉사하세요. 내가 가진 것으로 봉사하겠다는 생각을 버리세요.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 이것만 생각하면서 봉사에 힘쓰시길 바랍니다.

    춘천 중앙 교회 성도 여러분, 감사함으로 봉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은사를 충분히 활용해서 봉사하시길 바랍니다. 성령의 도우심에 힘입어 봉사하시길 바랍니다. 힘쓰시는 자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진심을 보시고 갑절의 은혜로 채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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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감사가 넘치게 하라
    탁월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되라
    삶의 균형을 이루라!
    마라에서 엘림으로
    부흥을 확산시키라!
    부흥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되라!
    흔들리지 않는 신앙인이 되라
    부흥을 경험하라
    부흥을 사모하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라
    섬기기를 즐겨하라
    욕망을 다스리라
    평생 사명을 가지라!
    의미 있는 삶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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