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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꾼이 받는 면류관
    2002-05-03 17:47:59   read : 2326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디모데후서 2:3-6



    오늘은 디모데후서 2장 3절에서 6절까지 있는 말씀을 가지고 "일꾼이 받는 면류관"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면류관이라는 말을 상급이라고 바꾸어도 좋겠습니다. 일꾼에게는 상급도 있지만 돌아오는 욕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일꾼은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인데 일을 하다 보면 100% 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을 하다 보면 실수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시행착오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욕을 먹게 됩니다. 그러나 일꾼이 욕먹는 것을 무서워해서는 일을 하지 못합니다. 고의적이 아닌 실수는 얼마든지 용납을 해주어야 합니다. 사실상 무엇인가 해 내는 사람은 욕을 먹더라도 일하는 일꾼입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욕먹을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욕먹을 이유가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욕을 안 먹고 편하기는 하지만 그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즉 욕은 안 먹을런지 모르나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존재 이유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욕을 먹더라도 나중에는 일하다 보면 무엇이 되어도 크게 되고, 상급을 받아도 크게 받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사도가 디모데라고 하는 믿음의 아들 즉 젊은 목사에게 이러 이러한 일꾼이 되라 하면서 비유를 들어 쉽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가르쳐 주는 말씀을 따라 어떤 일꾼이 상급을 받는지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군사 같은 일꾼 (3-4)
    출애굽기 6장 26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을 그 군대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라 하신 여호와의 명을 받은 자는 이 아론과 모세요'라고 하였습니다. 430년 동안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해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데 그 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켜서 성경은 군대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12장 41절을 보면 '사백삼십 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이라고 하였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다 여호와의 군대라는 말입니다. 즉 여호와께 속한 여호와의 군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그 백성들이 요셉이 총리로서 세도를 부릴 때를 제외하고 350년 동안 고난의 종살이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종살이라고 하는 고난을 통해서 훈련을 단단히 시킨 군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뽑은 군대요, 훈련시킨 군대입니다. 그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군대라고 성경이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모으시고 모인 사람들을 하나님은 나의 군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현대적인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군대요, 하나님의 군사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3절에서 4절을 보면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군사에 대해서 첫째 예수의 군사, 둘째 좋은 군사, 셋째 모집한 자 즉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군사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군사가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1등을 하거나 2등을 할 때 1등에게는 금메달 주고 2등에게는 은메달을 줍니까?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운동장에서 경기할 때는 1등은 금메달 2등은 은메달감지만 전쟁에서 2등을 하는 날에는 망하고 죽는 것 밖에 없습니다. 전쟁에서 2등이라고 하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무조건 1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승리뿐입니다.
    이겨서 승리하는 군대가 되려면 첫째로 예수의 군대가 되어야 합니다. 병사들은 대장을 잘 만나면 행복합니다. 병사들은 작전명령대로 싸우고 승리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대장이 잘못 되면 전부 잘 못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뭐가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 잘못된 데가 있습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총 사령관으로 한 예수의 군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소속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즉 '나는 예수의 군사다'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정체라는 말을 예를 들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저 사람의 모든 행동이나 말이 이것인지 저것인지 회색적인지라 모르겠다고 할 때 뭐라고 합니까? "네 정체가 뭔지 밝히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처럼 우리는 '나는 예수의 군사다'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총 사령관으로 모시고 군사 된 자는 그 밑에서 예수와 함께 승리하는 겁니다.
    둘째 좋은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군사라고 하는 것은 요즘 말로 하면 정병이라는 말입니다. 군인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군인이 아닙니다. 전쟁에서 싸우다가 낙오되어 적진 가운데를 헤매고 다니는 군인도 있습니다. 전혀 본부와 연락이 두절이 되고 떨어져 나가 헤매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군인은 군인이지만 절대 군인 노릇을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믿음 생활도 군인생활과 똑 같습니다. 이런 사람을 낙오병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교인들 중에도 낙오병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다가 교회와는 뚝 끊어진 상태로 1년, 5년, 10년 동안을 살아갑니다. 교회와는 발걸음을 뚝 끊어 버리고 세상에 나가서 온갖 재미를 따라 헤매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교인 노릇을 제대로 하고 믿음이 되겠습니까? 군사라고 해서 다 군사는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열심히 싸우다가 부상을 당한 병사가 있습니다. 부상을 당하고 난 다음에는 싸우지 못하고 상의군인이 되지 않습니까? 그런 부상자들이 입원한 병원에 가 보십시오. 얼마나 앓는 소리가 심한지 모릅니다. 앓는 소리를 한다고 낫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오늘날 교인들 가운데도 마귀의 공격을 받아 부상당한 부상병이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 즉 예수의 군사지만 부상당한 교인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앓는 소리를 하듯이 원망 불평이 입에 붙어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원망과 불평을 하고, 직장에 나가도 원망과 불평을 하고, 교회에 나와도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이처럼 부상병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도망병이 있습니다. 군인은 처음에 훈련소로 부름 받아 가서 입소하여 훈련을 받게 됩니다. 훈련소에 계속 있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는 자대배치를 받게 됩니다. 그러다가 100일이 되면 100일 휴가를 나옵니다. 신병인지라 꼴지 노릇만 했으니 얼마나 고생스럽겠습니까? 이제는 휴가를 나왔는데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하여 도망을 합니다. 그래서 헌병을 보내서 잡으러 가면 저리로 도망을 가고, 저리로 잡으러 가면 이리로 도망을 갑니다. 이런 군인을 도망병이라고 합니다. 군인은 군인이지만 도망병은 절대로 군인 노릇을 못하는 것입니다. 교인들 가운데도 예수의 군사이지만 도망병 된 교인들이 있습니다. 이름은 군부대에 올라 있는데 자꾸 도망을 다닙니다. 교회에 교인으로서 등록을 했는데 교회는 나오지 않고 도망병처럼 빠져나가곤 합니다. 그래서 부목사님들이 헌병들이 잡으러 가는 것처럼 심방을 갑니다. 심방을 가겠다고 약속을 하면 약속은 해 놓고서도 가보면 없습니다. 도망을 갔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또 약속을 하면 다른 약속을 핑계를 대든가 아니면 약속을 해 놓고도 다른 곳으로 또 도망을 가 버립니다. 도망병은 군인 노릇을 못하지 않습니까? 이런 교인들과 함께 어떻게 마귀와 싸우겠습니까? 이렇게 도망병 같은 교인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일 좋은 군사는 정병입니다. 이런 군사는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습니다. 담 벽을 뚫고 나가라고 하면 정병은 발길로 차 봐야 뚫리지 않지만 그래도 벽을 찹니다. 머리로 박치기를 해 봐야 뚫어질리 없지만 박치기를 하고 총대로 벽을 쳐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해서 뚫고 나갑니다. 저기에 가면 죽는 자리인 것을 알지만 가라고 명령하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예부대 정병이요, 좋은 군사입니다. '저리 가라'하면 '내가 왜 가요?' '죽는 자리에 가라'하면 '내가 왜 죽어요?'라는 그런식의 군사라면 그들을 데리고 무엇을 하겠습니까? 좋은 군사는 주님이 가라고 하면 가고 죽어라 하면 심지어 순교까지라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군사가 좋은 군사입니다. 이런 군사라야 싸움을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군사는 반드시 승리하는 것입니다. 승리하면 얻어지는 영광이 많습니다.
    셋째 모집한 자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군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군사로 모집하고 훈련시켜서 영적인 전쟁을 할 때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군사라면 영적인 전쟁, 믿음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하신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라고 하셨으니 그 일을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라는 군사가 좋은 군사요, 승리하는 군사입니다. 이런 군사들이라면 싸워서 승리합니다. 예수님의 군사, 좋은 군사, 주인을 기쁘시게 하는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군사로 신앙과 영적인 전쟁에서 예수와 함께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선수 같은 일꾼 (5-)
    달리기를 하는 경주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단거리 경주입니다. 이것은 100m나 200m 달리기로서 출발신호가 나면 그 때부터 달려갑니다. 10초이면 100m 골인을 합니다. 10초라면 담배를 피우는 분들이 담배를 한 모금 빨아서 후하고 내 불면 10초가 됩니다. 경주하는 사람은 그 시간이면 출발하고 상을 타고 있을 시간입니다. 200m면 두 모금 빨아서 후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거리 경주입니다. 우리 믿음 생활에도 단거리 신자가 있습니다. 오늘 하루 믿고 끝내든가 1년만에 끝내는 신자를 말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처음에 교회에 나와서 열심이 불같습니다. 처음에 나와서 열심이 불같은 사람에게는 문제가 있습니다. 열심히 한결 같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의 달리기가 더 귀한 것입니다. 즉 장거리 경주입니다. 물론5,000m, 10,000m를 달리는 중장거리 경주도 있습니다. 장거리 경주는 마라톤입니다. 42km하고도 195m를 더 달려야 합니다. 그 거리를 인간의 체력의 한계에 다다르기까지 뛰어서 돌아옵니다. 진액을 다 빼는 것입니다. 끝까지 달려 1등으로 골인할 때 월계관을 받아쓰지 않습니까? 즉 올림픽 중에서 마라톤에 우승한 사람입니다. 오늘날 믿음의 경주장 안에서 믿음의 경주를 하는 우리 성도들도 장거리 선수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믿음 생활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장거리 경주입니다. 죽을 때까지 믿어야 하는 장거리 경주입니다. 진액을 빼기까지 우리가 달리고 달려야 월계관을 상급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달리기 선수 중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마추어 선수입니다. 아마추어라는 말은 우리가 많이 쓰기 때문에 국어화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 사전에도 아마추어라는 말이 나옵니다. 아마추어라는 말의 뜻은 동호인, 애호가를 뜻합니다. 더 쉽게 말씀드리면 무슨 일이나 취미로 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지난 주일에 잠실에서 하프 마라톤 대회가 있었습니다. 하프 마라톤은 전 코스를 다 뛰는 것이 아니라 절반 코스를 뛰는 것입니다. 그 마라톤에 우리 교회 청년 하나가 출전했었노라고 인터넷에 글을 올렸습니다. 그런 경우 전문적으로 또는 직업적으로 출전하는 선수가 아니라 취미로 하는 것입니다. 좋아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마추어라고 합니다. 거기에 인생의 승패를 걸지 않습니다. 거기에 밥줄을 대지 않습니다. 이것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업적인 것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프로가 있습니다. 프로라고 하는 것은 직업적이요, 전문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거기에 자기의 인생을 걸고 자기의 밥줄을 대고 뛰는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면 황영조와 이봉주 같은 선수가 그렇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냥 뛰는 것이 아닙니다. 월급을 받고 또는 후원자들이 돈을 모아서 줍니다. 이 사람은 뛰면서 돈을 벌고 먹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요즘 그 분이 다 끝났다고 해서 먹을 것이 없습니까? 황영조 같은 분은 지금도 코치를 하고 감독을 하면서 먹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프로입니다. 즉 본업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믿음 생활도 프로로 하는 사람도 있고, 아마추어로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마추어로 하는 사람은 시간이 있으면 하고 시간이 없으면 말곤 합니다. 재미 삼아 교회에 나오고 더 좋은 곳이 있으면 그 곳에 갑니다. 아마추어의 자세를 가지고 성공과 실패, 또는 인생을 거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아마추어 신자가 되고 교인이 되어 믿음 생활에 성공하는 법이 없습니다. 프로가 되어야 합니다. 전문적이어야 합니다. 본업이어야 합니다. 여기에 인생을 걸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선수 같은 일꾼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5절을 보면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이라는 표현은 부정적인 표현입니다. '법대로 경기하면'이라는 표현은 긍정적인 표현입니다. '면류관을 얻지 못한다'하는 것은 부정적인 표현이요, '면류관을 얻는다'라는 것은 긍정적인 표현입니다. 본문을 긍정적으로 바꾸면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면 면류관을 얻을 것이요'라는 말이 됩니다. 그러니까 이런 선수 같은 일꾼은 면류관을 얻고 상급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선수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열심히 연습을 하고 훈련을 해야 합니다. 피눈물나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 다음에 출전하여 달려갈 때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달려야 합니다. 달려도 좋고 안 달려도 좋고, 쉬며 달리는 토끼 경주식으로 하면 면류관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달려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달리는데도 반드시 거기에는 규칙이 있고 법이 있습니다. 그 법을 따라서 달려야 합니다. 그 법을 무시하고 달리면 1등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제가 이따금씩 스케이트장을 가보곤 합니다. 지금 손자가 열심히 스케이트를 배우기 때문입니다. 몇 달째 배우고 있는데 이제는 폼도 제대로 잡혀서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요즘은 두 손을 다 펼치고 달립니다. 비행기처럼 연습하는 이유는 넘어지지 않는 연습 즉 균형을 잡는 연습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그것을 훈련받고 있는데 조금 있으면 뒷짐을 지고 달릴 것입니다. 그렇게 연습만 시키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또래를 모아 놓고 달리기 경주를 시킵니다. 한번에 몇 바퀴씩 도는데 돌아 가다가 손자 녀석이 1등으로 앞서 가지를 못합니다. 자기 보다 1년이나 더 배운 또래들이 있으니까 당연한 겁니다. 그러나 1등을 하고 싶으니까 원을 무시하고 막바로 가로질러서 맨 앞에서 달려 1등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내 손자가 1등입니까? 아닙니까? 그런 1등을 열 번 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법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법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음생활도 열심히 죽기 아니면 살기로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법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믿어야 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그 법대로 달릴 때 우리는 월계관을 쓰고 상급을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덮어놓아 두면 안됩니다. 성경을 펴놓고 믿음 생활의 법을 익혀야 합니다. 그 법을 따라서 살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승리가 있고 월계관이 있습니다.

    셋째, 농부 같은 일꾼 (6-)
    존슨이라고 하는 분은 "토지에 가장 좋은 비료는 농부의 발자국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농부의 발자국이 어떻게 비료 중에 제일 좋은 비료입니까? 라고 하실 분들이 계실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농사짓는 것을 많이 보았는데 봄철이 되면 밭을 갈아엎기 전에 썩이고 썩여 놓은 퇴비를 전부 밭으로 운반해서 골고루 뿌리고 쟁기로 갈아 뒤엎습니다. 이 퇴비를 밑거름이라고 합니다. 밑거름 없이는 농사가 잘 되지 않습니다. 요즘은 금비만 주고 맙니다. 그러면 땅이 산성화되어 땅을 버리게 됩니다. 퇴비를 많이 주어야 땅이 기름지고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름 중에서도 최고의 거름은 바로 농부의 발자국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밭을 자꾸 밟고 돌아다니면 농작물들이 밟혀서 죽고 말텐데 왜 농부의 발자국이 가장 좋은 비료인가? 하실 것입니다. 그 만큼 농부는 밭에 나가 씨를 뿌리고 싹이 나고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 맺기 까지 아침 저녁으로 돌보아 주고 가꾸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발자국이 밭에 많을수록 그 만큼 정성 들여 가꾼다는 뜻이기 때문에 최고의 비료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믿음 생활에서도 농부 되는 우리들의 발자국이 많아야 됩니다. 예배당에 가는 발자국 즉 예배하는 발자국, 기도하는 발자국, 전도하는 발자국, 봉사하는 발자국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면 내 믿음이 잘 될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존슨은 "토지에 가장 좋은 비료는 농부의 발자국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6절을 보면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농사짓는 데는 반드시 때가 있습니다. 씨를 뿌리는 때에는 반드시 씨를 뿌려야 합니다. 씨뿌리는 때에 씨를 뿌리지 않고 김을 먼저 매겠다고 하면 안됩니다. 김을 다 매 놓고 씨를 뿌린다면 순서가 바뀌는 것입니다. 때가 바뀐 것입니다. 씨를 뿌릴 때에는 씨를 뿌리고 싹이 나서 자랄 때에는 김을 매 주는 것입니다. 이 때는 김을 맬 때이기 까닭입니다. 그리고 수확도 때를 맞추어 수확을 해야 합니다. 좀 일찍 수확을 해도 안되고 늦게 해도 안됩니다. 그래서 농부들을 때를 잘 맞추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최선을 다하고 오래 기다려야 되는 겁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오늘 아침에 물건 사다가 오늘 낮에 팔면 저녁에 계산해서 이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루면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농사는 오늘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때 거둘 재간이 없지 않습니까? 봄철에 씨를 뿌리게 되면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되어야 거두게 됩니다. 그 동안에 최선을 다해 수고하고 노력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농부는 열심히 일하고 기다리는 농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에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농사를 지은 농부가 햇곡식을 거두었습니다. 햅쌀이 좋습니까? 묵은 쌀이 좋습니까? 햅쌀이 나왔으면 나라님에게 가져다 바치고 싶을 때 나도 먹어 보지 않고 가져다 바칩니까? 아니면 내가 먼저 먹고 가져다 바칩니까? 나 같으면 먼저 햅쌀밥을 지어먹고 그 다음에 갖다 바치겠습니다. 임금이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이 아니지 않습니까? 여기 성경에 보니까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먹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수확을 얻고 누리게 되리라는 뜻입니다. 수고하는 농부는 반드시 30배, 60배, 100배의 수확을 얻어서 풍족하게 살 수 있는 축복이 있다는 교훈입니다.
    여러분들은 믿음의 농사를 짓는 분들입니다. 때를 잘 맞추어서 기도할 때는 기도하고, 예배할 때는 예배하고, 전도할 때는 전도해야 합니다. 봉사할 때는 봉사하고, 농사꾼처럼 열심히 또는 부지런히 믿음의 생활을 하면 우리의 믿음은 30배, 60배, 100배가 되어서 믿음 생활이 풍족해 지고 성공을 하게 됩니다.

    결론을 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런 일꾼이 되면 상급이 있다고 말해 주었는데 첫째로 군사 같은 일꾼입니다. 군사는 군사로되 좋은 군사가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군사가 전쟁에 패하면 망하고 죽는 것뿐입니다. 승리하면 모든 영광은 그의 것입니다. 좋은 군사 되어 승리하고 영광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선수 같은 일꾼입니다. 달리기 경주의 선수는 법대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경주하는 선수에게는 반드시 영광의 월계관이 주어진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믿고 살아 여러분 인생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로 농부 같은 일꾼입니다. 수고하는 농부에게 하나님께서 30배, 60배, 100배를 주신다는 겁니다. 이것이 축복의 약속입니다. 여러분들도 수고하는 농부 같은 일꾼이 되어 100배의 축복을 받고 그 약속을 복으로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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