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말아야 할 것 2002-05-21 10:42:28 read : 3305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5.19 // 엡 5:22-33
행복을 찾아서
세상에 행복해지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다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원하는데 실제로 행복한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 이유는 선택을 잘못하면 불행해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할 때, 그 하는 일 자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며 사명감에 넘쳐서 하는 것이냐 하는 여부에 따라 행복하냐, 행복하지 않느냐가 결정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평생을 일하면서 살게 되어 있는데 무슨 일을 할 것이냐의 선택여부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는 자기가 해야할 일이 있는데 그것말고 자꾸 다른 일 하겠다고 생각하면 불행해진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잘 선택해서 그 일에 소명의식을 느끼고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충분히 깨닫고 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밖에 없으나 자기가 좋아서 하거나 자기의 진짜 할 일이 아닌데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을 자꾸만 하겠다고 애를 쓰면 불행해진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불행해지는 이유는 가정에서의 생활이 잘 안될 때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남과 더불어 사는데 이 남과 더불어 사는 것 중의 하나가 결혼해서 아내와 남편이 가정생활을 이루는 것입니다. 밖에 나가서 자기 맡은 일을 열심히 해서 훌륭하게 되었다고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자기 분수에 맞는 마땅한 일을 하고 결혼해서 가정생활이 원만할 때 행복할 수 있는데 이 가정생활이 잘 안되면 불행해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의식주라고 한다. 먹고, 입고, 함께 살수 있는 집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중요한 것이 충족될 때 사람은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 현실을 보면 이 의식주문제는 엄청난 발전을 했습니다. 먹는 문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고 입고 사는 문제는 세계적인 수준에 와있습니다. 사는 집도 제가 어렸을 때와 비교하면 특권층에 속할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왜 살기가 어렵다고 힘들어하며 많은 가정들이 파경을 하는가요? 왜 환경은 엄청나게 좋아졌는데 살기는 힘들다고 이혼율은 증가되고 있는가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이 우리의 삶에 기쁨과 만족을 줄까요?
오늘 본문은 한 가정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환경이 아니고 관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환경 같지만 실상은 관계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 관계를 갖는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과 자세입니다. 마음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은 타락했고 어두워졌고 더러워져서 항상 이기적입니다. 이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는 서로 사랑하며 존경하며 위하며 살수가 없습니다. 사랑을 해도 이기적으로 합니다. 존경을 하고 섬기면서도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가지고 합니다. 그 결과 항상 하는 만큼 요구하고 기대하므로 실망하고 상처를 받습니다.
가정은 인생의 안식처요, 정신적인 안식처요, 육신의 휴식처가 되어야 합니다. 남편이나, 아내나, 자녀들의 생각에 가정이 늘 전쟁터와 같이 느껴진다면 그 가정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곳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곳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가정입니다. 어떤 화가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그림도구를 갖고 길을 나섰답니다. 어 떤 그림이 아름다울까 하다가 일년 내내 땀 흘려 일하여 추수하는 농부들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땀 흘려 가을 추수의 보람을 찾는 모습 그야 말로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조금 부족한 것 같아서 다른 그림을 그리기로 하였습니다. 결혼식장에서 결혼하는 신랑 신부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아름다운 것 같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전쟁에 나가서 승전하고 돌아오는 장군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씩씩하고 용감한 그 그림도 완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림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피곤한 몸으로 가정으로 돌아옵니다. 문을 열자마자 아내가 미소를 지으며 맞아 주었습니다. 어린 자녀들이 반갑게 인사하며 아빠하고 안깁니다. 음식을 차려 놓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서로가 얼굴을 바라보면서 맛있게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 화가는 깨달았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가정이다." 그는 행복한 가정의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 가정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귀한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말씀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흙으로 직접 지으시고 에덴에서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에덴보다 더 좋은 곳을 만들어 주셨는데 그것이 가정입니다. 가정은 이렇게 아름답고 귀한 곳입니다. 가정은 행복하고 형통하여야 합니다. 그럼에도 가정에 위기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가정은 아름다운 예술품
멋진 연기를 보았을 때나, 빼어나게 아름다운 경관을 보았을 때 우리는 예술 같다느니 예술품을 보았다느니 말합니다. 그런데 가정은 우리가 무엇보다 소중히 여겨야 할 아름다운 예술품입니다. 그래서 구성원 모두가 예술적 사고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특히 가정의 두 주체라고 할 수 있는 부부는 아름다운 예술품을 만드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논쟁에서 꼭 이겨야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성장하면서 지속적이고 아름다운 관계를 세워 가는 것이겠습니까? 우리는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의 몫을 나누어 빼앗기 위해 가정을 이룬 것이 아닙니다. 상처가 많은 이 세대에 보기 드문 예술품을 만들기 위해 가정을 이룬 것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가정이 유토피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완전한 아름다움과 완전한 분위기를 줄 수 있는 인간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이 타락한 세상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각 가정마다 방해와 좌절과 오해가 수시로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에서도 연합을 통해 아름다운 예술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정생활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확실히 깨달아야 합니다. 가정생활에서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아내에게 혹은 남편에게 자신이 옳다는 것을 확신시키는 것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온전한 서로간의 관계가 중요합니까? 우리는 가정생활에서 자신이 옳다는 것을 확신시키는 것보다 부부관계 혹은 부자관계의 예술품을 만들어내는 일이 더 중요하다 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부부애는 이러한 관계의 예술을 통해 더욱 깊어지게 됩니다. .
연애는 일순간에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지만 부부애는 서로 동고동락하면서 깊은 정이 드는 것입니다. 잡초 속에서 네 잎 클로버를 골라내듯이 부부는 불행과 비극의 가능성 속에서 행복을 창조해야 합니다. 가정은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며 나의 행복을 채굴하는 곳이 결코 아닙니다. 가정은 관계의 예술을 통해 우리의 행복을 저축하는 곳임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부관계는 맞물려있는 예술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부가 서로를 진실로 사랑한다면 세상의 어느 부부가 그렇게 상대방을 누르려고 하겠습니까? 결혼생활에서라도 각 개인의 고유한 영역은 되도록 침해받지 말아야 합니다.
맞물림의 관계는 각각 자기의 특이성을 버리지도 않고 상대방을 배척하지도 않는 관계입
니다. 이 맞물림의 관계에서 하모니가 생겨나고 화해가 생겨납니다. 화해는 상대방을 흡수하거나 자기와 같게 만드는 동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예속화나 종속화도 아닙니다. 물론 지배도 아닙니다. 화해는 바로 맞물림의 관계에서 생겨납니다. 이러한 관계의 예술을 잘 발달시켜서 자기 가정을 귀한 하나님의 가정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최초의 예술가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본받아 서로를 사랑하는 일도 예술적으로
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일도 예술적으로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심지어는 부부싸움도 예술적 사고를 가지고 해야 합니다. 부부싸움에는 승부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이기려고 버티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문제의 해결을 통해서 공동 우승자가 되려는 것이 부부싸움의 원리이자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은혜롭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부싸움을 할 때 꼭 기억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녀가 있는 데서
는 결코 부부싸움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리입니다. 자녀에게 부모님의 싸움만큼 고통스러운 영상을 남기는 것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즉흥적으로 부부싸움 타이틀 매치를 벌이는 무자격 부모라면 마땅히 '부모 자격증'을 반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정은 예술품을 만들어 보관하는 곳
우리는 관계의 예술을 통해 가정을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만들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또한 가정은 그 자체가 예술품일 뿐만 아니라 예술품을 만들어 보관하는 곳도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가정을 추억의 박물관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예술품보다 더 아름다운 가정생활의 추억들이 가정이라는 박물관에 조심스럽게 수집되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가정의 구성원은 모두 "추억이란 참으로 소중한 것이며 오늘 일어난 일은 내일을 이끌어 가는 추억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서 시간을 이중으로 귀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첫 번째 축복이며 첫 번째 기관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의 가정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도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행복한 가정은 무엇이 있을까요?
첫째, 건강한 가정이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오늘날 가정이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결혼이란 일생에 단 한 번의 일회적이라는 관념이 깨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우리 조상들은 결혼하면 죽어서도 그 집의 귀신이 되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다음의 이유는 대화의 단절이라는 것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가족과 하루에 얼마의 시간 동안 대화하시나요? 미국의 경우입니다만 하루에 대화하는 시간이 10분이라고 통계가 나왔습니다. 자주 대화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성격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부부들이 이혼사유를 말할 때에 성격이 도무지 맞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격이 일치하는 부부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맞추어서 살아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거리 때문이라고 합니다. 결혼은 환상이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가정이 건강하지 못하니까 사회도 건강하지 못합니다. 하루에 태어나는 9,077명중에 1,282명이 사생아요, 하루에 5,962쌍이 결혼하고 1,986쌍이 이혼한다고 합니다. 건강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 이해가 있는 가정입니다.
서로가 알아야 합니다. 남자는 인정받고 싶어하고 여자는 칭찬을 듣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자는 남편을 인정해 주어야 하고 남편은 아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칭찬해주면 그렇게 가정이 아름다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은 칭찬에 인색합니다. 오히려 비난하는 투로 말하면 3년 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합니다. 여자들이 남편을 통하여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데 그로 인해 사소한 일에도 신경을 쓰게 되고 쉽게 피곤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모든 일에 재미가 없다고 말합니다. 답답하고 불안하다고 합니다. 그럴 때에 남편들이 칭찬을 해 주어야 합니다.
대화하는 것도 그러합니다. 남자는 한쪽 뇌의 발달이 느려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한 가지를 깊이 연구하는데 적합하지만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양쪽 뇌가 같이 작용을 하기에 라디오도 듣고 다리미질도 하면서 부엌에서 밥이 되는 지도 알고 아이가 넘어지는 것까지 다 살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퇴근한 남편이 신문을 보는데 자꾸 무슨 말을 여자가 걸어옵니다. 남편은 신문 보는 데만 집중할 능력밖에 없습니다. 자꾸 질문하니까 남편 왈 "당신은 몰라도 돼. 시끄러워" 그러면 아내는 섭섭하다고 짜증을 부립니다.
서로가 심리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남자는 대화로 이끌려면 이야기를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시작해야 합니다. 남자는 독립적이고 경쟁적입니다. 여자는 의존적이고 수용적입니다. 남자는 목표 지향적이고 여자는 욕구 지향적입니다. 자기가 바라는 대로 되면 행복한 것입니다. 잘못을 했을 때도 남자는 죄의식을 느끼는데 여자는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어느 장소에 가서 자기 아이가 시끄럽게 하면 엄마는
"얘 너는 창피하지도 않니 그러면 사람들이 욕해 조용히 해" 그러는데, 아빠는 "너 그러면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되는 줄 몰라" 그럽니다. 죄의식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가 다름을 이해하면서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는 가정이 건강한 가정입니다.
삶에 있어서 자신감이 있고 미래의 꿈이 있습니다.
삶에 있어서 자신감이 있고 미래의 꿈이 있을 때, 이것이 건강한 가정입니다. 모든 일에 만족함을 느끼고 서로가 자신감 있게 살아가는 가정입니다. 한쪽이 열등의식을 가지면 적신호가 됩니다. 남편 내조에 자신감이 있고 만족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현대인은 3명이면 한 사람은 열등의식을 갖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신앙교육이 바로 되어 있는 가정이 건강합니다.
브쉬넬은 자녀 교육을 위해 힘써야 할 교육적 측면에 대하여 말하기를, 1) 신체적인 양육이라 하였습니다. 몸을 잘 훈련 시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2) 처세방법을 훈련시키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좋아하게 하고 말할 때에 긍정적인 말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3) 놀이방법 교육이라고 하였습니다. 같이 놀아주는 것, 노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도 교육이라는 말입니다. 4) 치유 돌봄의 방법이라 하였습니다. 상처를 싸매 주는 것입니다. 혹 성적이 떨어졌을 때 무엇이라 합니까? "너 열심히 했는데 그리 되었구나. 그 실력은 나중에 나타나는 것이야. 너는 실력이 있는 아이야. 아빠가 너는 믿는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교육이라는 것입니다. 5) 중요한 것은 성경교육이라고 합니다. 말씀으로 교육하는 가정이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건강한 가정은 서로가 신뢰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믿어주고 아내는 남편을 믿어 주는 것입니다. 가정에 의심이 들어오면 가정은 병들고 파괴되는 것입니다. 비행 항공술의 선구자인 핸드리 페이지가 많은 관중에게 에어쇼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는 창공에서 고난도 기술을 선 보였습니다. 그런데 비행기 안에서 계속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생쥐 한 마리가 전선을 갉아 대고 있었습니다. 만약 전선이 끊기거나 합선이 되면 비행기는 여지없이 추락할 상황입니다. 비행기가 추락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순간 페이지는 중대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자. 그리고 더 높이 날아오르자. 그는 고도를 최대한 높였습니다. 비행기가 높이 날아오자 더 이상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아니합니다. 쥐는 비행기가 높이 오르자 산소 부족으로 죽은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의심이라는 적은 쥐가 가정을 파괴시키려고 합니다. 서로가 신뢰하고 믿어주는 가정이 건강한 것입니다. 그런 가정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는 가정이 행복하다.
엡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본문에서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비유했습니다. 그러면서 남편과 아내의 사랑의 관계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사랑의 관계와 같다고 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교회를 향한 사랑처럼 부부의 사랑도 닮아야 합니다. 이처럼 참사랑은 상대의 수준으로 내려가 주는 것입니다. 올라가는 것도 어렵지만 내려가는 것도 어렵습니다. 계단을 오를 때보다는 내려오다가 발을 다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내려오셨습니다. 우리 사람의 수준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부부사이에 왜 서로 상처를 받게 됩니까? 남편은 남편의 수준으로 아내에게 요구하고, 아내는 아내의 수준으로 남편을 판단합니다. 그래서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기에 싸움이 생기고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지난 수요일이 스승의 날이었습니다만 유능한 교사는 학생의 눈높이에서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아내든 남편이든 상대의 수준으로 내려가지 않기에 상처가 되는 것입니다.
가정은 사랑을 기초로 건설된 집과 같습니다. 따라서 부부와 자녀들은 사랑을 나누며 사랑을 먹으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결혼한 부부는 하나님께는 예배하고, 부모님에게는 효도를, 형제끼리는 화목을, 남편에게는 순종을, 아내에게는 사랑을, 자녀에게는 교양과 덕을 주는 가정을 꾸며야 합니다.
모든 단체를 관리하고 유지하려면 반드시 법과 규칙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정만은 법과 규칙이 아니라 사랑에 의해서 관리가 되고 유지되는 곳입니다. 이것을 사랑의 법이라고 합니다. 이 법을 잘 지키면 노년에 이르러서도 행복한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예)왼손잡이와 스트레스
최근의 통계에 의하면 왼손잡이가 스트레스를 더 받는다고 합니다. 미국과 캐나다의 통계자료를 보면 오른손잡이의 평균수명은 75세이고 왼손잡이는 66세라고 합니다. 그리고 교통사고도 왼손잡이가 오른손잡이보다 6배나 더 많이 낸다고 합니다. 범죄자 통계에서도 왼손잡이가 오른손잡이보다 많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어릴 때 부모로부터 오른손을 쓰지 않는다고 시달린 것이 원인이라고 합니다.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냥 용서하고 바꿀 수 없는 것은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가정은 이 사회에서 가장 불행스러운 집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가정은 결혼 시에 약속한 사랑이 변하지 않도록 서로서로 노력하고 협조하고 이해하여야 합니다.
머리가 있는 가정이 행복하다.
엡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1)우선 하나님을 머리로 모셔야
부부 사이에는 남편이 머리역할을 하지만 가정의 머리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머리가 되셔야 가정이 하나가 되고 하늘의 복이 임합니다. 하나님이 가정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이 중심이 될 때 가정을 행복해집니다. 부부는 서로 "누가 높고 낮고"가 없고 다만 기능이 다르고 역할이 다를 뿐입니다. 따라서 두 사람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여 자신의 역할을 다 할 때 진정한 가정의 모습이 회복됩니다. 그래서 그 머리의 자리에 아내나 남편이 있어서도 안되고 자녀가 그 위치에 있어서도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이 머리가 되셔야 한다. 그래야 가정이 질서가 있고 은혜가 넘칩니다.
(2)부부 사이의 질서가 있어야
가정의 질서는 남편이 머리가 될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은 남편의 머리됨을 주장만 해서는 안됩니다. 남편의 의무를 다해야겠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라 했습니다.
대화가 있는 가정이 행복하다.
잠18:13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 대화의 기술이 부족합니다. 끝까지 듣기 전에 말함으로 인해 오해가 많이 생기지 않는가?
예)대화의 1,2,3법칙
마포중앙교회 홍순철 장로의 칼럼입니다. 체험으로 얻은 법칙으로 '대화의1 2 3법칙'이란 것이 있습니다. 무슨 법칙인가? 즉 자기의 말은 1분 하고, 상대방의 말은 2분 동안 들어주고, 3분 동안은 상대방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는 자기를 이해해 준다고 생각하게 되고 신뢰를 갖게 할 수 있어 대화는 거의 성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말만 하면서 다른 사람만 탓하는 사람은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이런 대화의 기술도 중요하지만 대화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화) 브라질의 어떤 부부(71세,65세)는 1965년 이래로 지금까지 35년 동안 단 한마디의 대화도 없이 살아왔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말 한마디도 없이 무려 12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합니다. 아내가 5번째 아이를 낳고 나서 그 아이의 눈이 파랗자 외도한 것으로 오해해 그때부터 지금까지 대화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 할 말이 있으면 아이들을 통해 하고 있다고 합니다. 별난 부부도 다 있습니다.
하지만 부부사이에 자주 대화가 된다면 이미 문제의 80퍼센트는 해결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렇다고 바쁜 세상에 부부가 하루 종일 마주 앉아 대화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가정 전문가들에 의하면 가장 이상적인 대화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4-5분간씩 하루 2회를 대화하라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4-5분간, 저녁에 퇴근해서 4-5분간 대화해보라고 권합니다. 어디나 대화가 있으면 이해가 있고 용서가 있습니다. 자녀들과도 대화가 중요합니다.
안식이 있는 가정이 행복하다.
가정은 위로의 처소요, 소생케 하는 병원이요, 안식처요, 사랑의 요양소요, 지상의 낙원이어야 합니다. 가정은 우리에게 세 가지 면에서 안식을 주는 곳입니다. 마음의 평안, 정신적인 안정, 육체적인 피로회복 등입니다. 가정이 안정과 쉼을 제공해주지 못하면 남편, 아내 혹은 자녀들은 밖으로 돌게 됩니다. 집에 오면 쉴 수 있어야 합니다. 집이 전쟁터가 되면 안됩니다.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존재세계의 절정은 바로 가정입니다. 가정은 존재세계의 모든 집단 중에 기본 집단입니다. 결코 가정을 단순한 생물학적 집단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가정을 경제적, 정치적, 심리적, 지식적, 기계적 차원에서 보아서는 안됩니다. 사실상 이런 것들은 가정을 위한 제2차적인 수단들에 불과한 것입니다.
가정이라고 하는 그 자체가 보유하고 있는 본질적 성격과 내용은 제2차적인 것이 아닌 제1차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천부적으로 하나님께서 창조질서 중에 주신 축복의 은총들이 있는 곳입니다.
가정에 주어진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부모, 자식 같은 이름들은 특수한 이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위하여 직접 주신 축복의 이름들입니다. 결코 사람이 배우거나 노력하거나 연구해서 얻은 인적 산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의 은총을 나타내기 위하여 주신, 사실상 사랑의 대명사입니다. 그 이름 안에는 이해와 용서를 나타내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축복하는 기원의 마음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부모와 자식으로 이루어지는 가정에는 사랑이 있고, 이해와 용서와 축복하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내 집 같은 곳은 이 세상에 다시 없는 것입니다.
30배, 60배, 100배의 산실은 바로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고, 아들과 딸이 함께 숨쉬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수상이었던 처칠은 ‘가정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바꿀 수 있는 논리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내 집 같은 곳은 다시 없습니다. 그럼에도 타락한 인류의 가정은 홈 스위트 홈을 잃어버리고, 도적질 당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새 구원의 가정, 곧 그리스도인의 가정의 중대성이 있는 것입니다. 바로 아가페의 사랑이 혈통의 사랑을, 우애의 사랑을, 낭만(이성)의 사랑을 주장하는 그리스도인의 가정 말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로 말미암아 새로 찾아주신 가정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고, 예수의 이름으로 그 사랑을 나누고 축복하는 가정 말입니다. 여기에 예배가 있고, 기도가 있고, 찬송과 감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넘치는 기쁨과 소망이 있습니다. 내 집 같은 이런 곳은 세상에 다시 없음을 고백하며 감사합시다.
오늘은 또한 성령강림주일이며 스승의 주일입니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나를 비운다는 말입니다.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을 버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협력한다는 말입니다. 반목과 적대가 아니라 소통과 일치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응집된 그 힘을 하나님의 영광에 맞춥니다. 그럴 때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되어 복음과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함으로 이 땅에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약속한 사랑이 변하지 않으며, 머리가 있는 가정이고, 대화가 있는 가정이고,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가정이고, 온 가족이 구원받은 확신이 있는 가정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들인가요? 돌아가는 세상의 물레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진리의 중심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물레의 가장자리는 언제든지 돌아갑니다. 가변적입니다. 때로는 이것이, 때로는 저것이 다가왔다가는 거품처럼 사라집니다.
세상은 빨리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가정의 주인 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사랑입니다. 또한 스승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모든 것을 하나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