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된 삶 2002-04-13 17:02:48 read : 3007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행 1 :6-8 // 2002. 04. 07
<목회기도>
세상 살다가 죽는 것이 끝이 아니고
부활과 영생이 있음을 가르쳐 주시고
그 부활과 영생의 길까지 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세상이라는 험한 삶의 싸움터에서 살던 우리들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기둥교회 예배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 귀한 시간에 들로 산으로 간 이들,
자신들의 즐거움과 가족들의 애경사에 얽혀 예배에 참석치 못한 이들
저들 모두가 삶의 우선순위와
신앙생활의 우선순위를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오늘 예배의 자리에 앉은 이들
하나님을 만난 기쁨과 삶을 새롭게 하는 변화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영육간의 질병이 치료 받으며
상처 받은 마음들은 평안을 얻으며
모든 심령들이 주님을 만난 기쁨이 충만한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지에서, 외국에서 교회와 가정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군대에 나가 있거나 병상에 누운 환자들
하나님, 저들에게도 은혜와 평강의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구석 구석에서 봉사하는 모든 이들의 땀흘림이
헛되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이미 개나리나 진달래… 등 꽃들이 활짝 피었고 나무에 새싹이 돋아 났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지난 날 가졌던 아픔과 상처를 잊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믿음으로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처럼 평안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설교가 성경을 말하고 있는 한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했습니다. 요한 칼빈(John Calvin)은 "성경을 설교하고 있는 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가진다"고 했습니다.
오늘 부족한 제가 설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여러분은 "아멘"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비록 우리가 죄 많은 세상에 살고 죄와 더불어 살고 있지만 회개하면 용서해 주신다는 말씀을 믿고 찬양합시다.
찬송가 205장 <예수 앞에 나오면>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1절)
오늘 본문(행1:6-8) 말씀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부활하셔서 활동하시다가 승천하시기 전에 주신 말씀으로 지상명령이고, 예수 믿는 우리 모두에게 주신 사명의 말씀입니다.
희망과 실망을 주셨던 예수님
사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실망을 함께 주셨습니다. 지배당하고, 핍박당하고, 배고프고 고달프게 살던, 희망이 없던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예수님은 구세주였습니다. 잔치집의 부족한 포도주를 채워 주셨고, 절망에 빠진 환자들을 치료해 주셨고, 배고픔을 참으며 예수님 앞에 몰려온 오천여명에게 먹을 것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야말로 예수님을 만나면 다 해결되는, 살 길이 열리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예수님이 목수의 아들이었지만 예수님이 임금이 되면 정말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았습니다.
그분은 이 당, 저 당 옮겨 다니는 얌체도 아니었고, 이 말 저 말 말 바꾸는 말꾼도 아니었습니다. 남의 약점을 들춰내 흠집이나 잡는 한심한 정치인도 아니었습니다. 이룰지 이루지 못할 지도 모르면서 엄청난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 치는 허풍쟁이도 아니었습니다. 비록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그분에게는 하늘의 세계를 전하는 입과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주는 사랑의 손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병들고 지친 사람들을 위로했고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비록 초라하게 나귀를 탔지만 그분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무엇인가 큰 일이 일어날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옷을 벗어 땅에 깔고 "호산나" 하며 개선장군을 맞이하듯 환영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처형 당했습니다. 얼마나 실망되었겠습니까?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사람들은 얼마나 겁이 났겠습니까? 범죄자로 십자가에 처형 당한 예수와 같은 무리였다는 것 자체가 겁이 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쉽게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씩이나 부인했다'고 비난하지만 얼마나 무섭고 실망스러웠으면 그랬을까요?
그 예수님이 처형되고 무덤에 묻혔습니다. 그런데 무덤에 장사 지낸 예수가 살아났습니다. 부활했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얼마나 놀라고 신이 났을까요? 뭔가 큰 일을 할 것으로 생각했던 예수님이 비참한 죽음으로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살아났다고 하니 사람들이 쉽게 믿었겠습니까? '의심이 많은 도마는 확인해 보고 믿었다'고 우리가 쉽게 단정지어 말하지만 여러분도 아마 도마와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죽었던 사람이, 돌 무덤에 갇혀 있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날 수 있느냐'고 하면서 쉽게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이라면, 도마와 같이 "예수님을 봐야 믿겠고, 못자국과 창자국에 손을 넣어봐야 믿겠다"고 했을 것입니다.
이 때니이까?
예수님의 죽음으로 실망에 빠져 흩어졌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접하고 다시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이 함께 모이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6절에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행1:6)
<죽음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이제 주님이 이루실 나라, 주님이 세우실 나라 그 나라를 세울 때가 이 때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그 나라가 이제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라고 질문했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몰라도 되는 것은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경이 가르친 것 외에 더 알려하지 않는 것이 바른 신앙자세입니다. 성경에 가르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더 알려하고 들으려 하면 잘못하면 이단이 됩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때, 종말에 대해… 하나님이 이루실 그 때와 그 날에 대해… 누가 누가 봤다더라, 들었다더라, 연구해서 깨달았다더라는 얘기만 들어도 귀가 솔깃해져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주일 낮예배, 저녁예배, 수요일밤예배, 금요심야예배 등 여러 예배가 있는데 그 예배에 다 참석하지도 못하고, 교회에서 하는 성경공부에 참석하지 못하면서 이상한 소리에 솔깃해져 슬금슬금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좀 보세요. 몰래 몰래 다니면서 보고 들어야 되는 것이 있다면 100% 잘못된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혹 "우리 목사님이 이런 것 알면 안되는데..."라고 하면서 몰래 다니는 곳이 있으면 100% 잘못된 곳에 다니는 것입니다. 좋은 곳이라면 담임목사에게 알리고 광고하여 온 교인들이 함께 다녀야 됩니다. 몰래 다녀야 한다는 생각부터 틀린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가운데 <알아야 할 것>과 <알지 말아야 할 것>, <더 알지 말아야 할 것>들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을 억지로 알려고 할 때 무리가 생기게 됩니다.
알바 아니요… 증인이 되리라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합니까?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정하신 기한은 우리의 알바가 아닙니다.
본문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알 바 아니요"(행1:7)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알 바가 아니라>고 선언하신 후 예수님께서 바로 하신 말씀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입니다.
정치적인 문제, 경제적인 문제, 삶의 현실에서 겪는 고달픈 문제들을 해결하고 자신들의 신분도 달라지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이제 너희들에게 성령, 도우시는 영이 임하게 될 것이다. 이제 내가 가면 이제 내가 하늘에 오르고 나면 너희에게 약속된 성령께서 임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해 주신 말씀이 8절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하늘에 오르시는 것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부활을 믿고 예배의 자리에 참석한 우리 모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들의 삶의 문제 대부분이 다 해결됩니다. 죄의식과 정신적 갈등, 긴장과 의심, 불투명한 장래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염려와 근심… 이 모든 문제들이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없어서이지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확신만 있으면 어떤 형편과 환경에서든지 주님을 모신 삶을 살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며 세례 받고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 나는 천국을 믿습니다. 영생을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여러분의 지혜나 결단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을 바라보며사는 사람들, 영생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은 비록 이 땅의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을 모시고 사니 내 모든 삶이 천국의 생활입니다>라고 간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함께 찬양합니다.
찬송가 495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
우리가 사는 세상은 슬픔이 있고 고통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중한 죄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부활을 믿고 영생을 믿는 사람은 이 세상 사람들의 가치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을 믿고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시고 천국을 꿈꾸며, 영원히 살겠다고 하는 사람이 어떻게 세상 사람들과 생각이 같겠습니까? 어떻게 가치관이 같겠습니까?
예수를 믿는 사람, 부활하신 예수를 믿고 사는 사람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며 살,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본문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증인"이라는 말은 법적인 용어입니다. 증인은 "재판정에 나가 자기가 보고 들어서 직접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헬라어에서는 <증인>이라는 말을 <마르투스(martus)>라고 하는데 "죽음으로 증거를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한 사형수가 곧 처형당하게 되어 있다고 합시다. 이 사람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어떤 사람이 증인으로 나타나서 "이 사람은 그런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증거를 대면 살 수 있습니다. 만약 가짜로 증언하다 들통이 나면 사형수도, 증언한 사람도 같이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증언을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산다는 말은 "신앙 생활에 목숨을 건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24:48)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2:32)
-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행3:15)
-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행5:32)
-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행10:41)
■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 그 예수님을 증거하고 살려면
우리의 삶이, 우리들의 삶의 자세가 부활을 믿고 영생을 믿는 사람다워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 47절에 보면 초대교회의 모습을 한 마디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7)
이를 쉬운 말로 표현하면 "예수 믿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호감을 샀습니다.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구원 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해갔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사랑과 친절, 봉사와 헌신이 모든 불신자들에게 호감을 주었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날마다 새 신자가 늘어갔다는 것입니다. 바른 신앙생활 자체가 복음을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부활과 영생을 믿고 사는 신자의 으뜸 가는 책임인 것입니다.
■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으로 호감이 가야 합니다(칭찬 받아야 합니다).
• 주일 성수하는 사람, 예배를 귀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일인데 교회 안가고, 예배 시간인데 예배 안 드리고, 장로/권사/집사가 산으로 들로 놀러 간다면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칭찬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칭찬받지 못할 뿐 아니라 복음 전하는 일에 방해가 되고 맙니다.
• 예수 믿는 사람으로 호감이 가려면, 먹고 마시는 것에도 호감이 가고 칭찬 받아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거는 기대가 있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에도 신앙생활하는 사람으로서 호감이 가야 합니다. 칭찬 받아야 합니다.
• 예수 믿는 사람은 노는 것에도 호감이 가야 합니다.
기둥교회 권사, 집사가 놀음이나하고 고스톱 타령이나 한다면 안 믿는 사람과 다를 바 없습니다. 불신자들에게 책망거리가 되고 복음전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며 사는지 살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삶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호감이 가야 합니다. 칭찬 받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뿐만 아니라 그냥 인간적으로도 호감이 가야 합니다.
• 부부간의 관계도 사람들에게 호감이 가야합니다.
기둥교회에 출석하는 집사 부부가 날마다 싸운다고 한다면, 이웃사람에게 호감이 가겠습니까?
• 가족과의 관계도 사람들에게 호감이 가야 합니다.
'무릇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8)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부모와 형제간에 원수맺고 산다면, 기본적인 인간의 자세가 되지 않으면… 복음전하는 일에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으로서 부활을 증거하기는 커녕 오히려 방해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 이웃과의 관계도 사람들에게 호감이 가야 합니다.
예의를 갖추고 사람답게 살 때에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운전할 때 바르게 하십니까? 주차장에 차를 바르게 주차하십니까? 평범하게 사는 삶에서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이웃으로서 어떤 삶을 살고 계십니까?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세가 삶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 목회자와의 관계도 호감이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세상에 나가서 목회자를 어떻게 말합니까? 저는 지금까지 절에 다니는 사람들이 절의 승려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조차도 함부로 말하지 않는데, 신앙생활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목회자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기둥교회에도 많습니다. "아 그 고신일목사, 뭐 어쩌구 저쩌구...."라고 하는 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방해가 됩니다.
영생을 증거하는 증인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려면 우리의 삶이 우리의 생활 자세가 부활을 믿고 영생을 믿는 사람 같아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과 영생을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사실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음이신 예수님을 전할 수 없다면 그가 어떻게 증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전도해 보셨습니까? 여러분의 남편, 아내, 형제, 자녀, 이웃에게, 친척에게 얼마나 전도해 보셨습니까? 아마 한번 쯤은 다 해 보셨을 것입니다. 그래도 "예수 믿으라, 교회에 한번 가 보자"라고 얘기해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몇 번이나 해 보고 포기하셨습니까?
미국의 소매상 협회의 조사 통계가 있습니다. 판매원의 48%가 한 번 전화하고 포기하고, 25%는 두 번 전화해 보고 포기하고, 15%는 세 번 전화해 보고 포기한다고 합니다. 즉 88%의 세일즈맨이 한 통 내지 세 통의 전화를 해 보고 판매를 포기한다는 결론입니다. 그런데 나머지 12%의 사람은 끈질기게 전화를 해서 결국 판매를 하게 되는데 그 12%가 전체 판매량의 80%를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장사 하는 사람, 물건을 파는 사람도 한 두 번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하물며 생명을 살리는 일, 천국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한 두 번 해보고 포기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아직도 증인이 못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천국의 복음을 얼마나 더 전하시렵니까? 언제쯤 포기하시겠습니까? 포기하지 않는 전도의 입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을 살면서 우리 힘으로, 의지로 믿음을 지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비록 힘들고 어렵고 때로 멸시 받고 소외 당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증인으로 살고 복음을 전하며 살 때, 마지막 때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던지, 아니면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심판 하실 때에… 증인으로서 최선을 다했던 사람에게 "잘 했다. 너 참 잘 했다. 너 멋있는 증인이었다. 잘 했다. 충성된 종이로구나"라고 칭찬 받는 그 자리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세상을 살면서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의지로
믿음을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증인으로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연약한 우리들을 도와 주시옵소서.
증인된 삶을 살며 복음 전하며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 가던지 주님 다시 오실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잘했다."
칭찬받는 그 자리의 주인공이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증인으로 살 만한 믿음과 용기를 주시옵소서.
연약한 우리를 도와 주시옵소서.
부활하셔서 우리가 증인으로 살기를 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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